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8)
얼굴 천재 배우님-108화(108/200)
얼굴 천재 배우님 108화
다섯 번째 감독을 당장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지 고민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독립 영화에 도전하기로 한 것은 정당하게 꿈을 좇는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다섯 번째 감독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기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김필성 감독의 작품에 또 한 번 출연하는 건 분명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탈출>을 통해 일약 스타 감독이 된 김필성 감독과는 모두가 함께 일을 하고 싶어 할 테니까.
나에게 캐스팅 제안을 준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꼭 아니어도 다른 사람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다섯 번째 감독에게는 다른 감독들처럼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감독에게 밀려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아마 이 감독이 유명해지는 것도 4년 후의 일이지?’
그때까지 이 감독은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꽤 오래 방황할 예정이었다.
영화감독조차 경력자를 찾고 있는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 이렇게 독립 영화를 찍기로 한 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겠어.’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윤석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정윤석 대표는 무슨 낌새라도 눈치챈 것처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한마디 말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자.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작가이자 메인 남주인 이시준 배우님께서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조금 부담스러운 시선이었지만 나는 이미 생각의 정리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최서영 감독님과 작업을 해 보고 싶습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적이 흘렀고.
곧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 * *
최서영 감독이 제출한 영상까지 확인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네 번째 감독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것은 최서영 감독의 영상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서영 감독의 영상은 훌륭했다.
문제는 최서영 감독만큼이나 네 번째 감독의 영상도 훌륭하다는 데 있었다.
‘심지어 둘 다 미장센을 강조한 짧은 영상을 제출했어.’
최서영 감독에게 마음이 끌렸기 때문일까.
내가 보기에는 미묘하게 이쪽의 영상이 더 미장센이 훌륭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의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듯했다.
그런 까닭에 그 자리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네 번째 감독을 더 선호했다.
경력에서 이쪽이 압도적으로 앞섰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계속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최서영 감독이 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
뜻밖에도 정윤석 대표가 내 편을 들어줬다.
“저는 이시준 배우님이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시나리오 작가인 만큼 그 의견을 따르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껏 이시준 배우님이 하자는 대로 해서 실패한 적이 있었나요? 그래도 정 여러분이 반대한다면 최서영 감독의 졸업 작품을 다 함께 보고 다시 논의해 보도록 하죠.”
정윤석 대표가 워낙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아무도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 흩어져 최서영 감독의 대예종 졸업 작품을 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최서영 감독의 졸업 작품 제목은 <댄스의 밤>이었다.
<댄스의 밤>의 내용은 조금 난해했다.
백수 같은 남자가 이태원 골목을 카메라로 찍으면 갑자기 그곳이 무대로 변하고.
다양한 인종이 춤판을 벌이는 형태로 영화가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댄스의 밤>의 주제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댄스의 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아 있는 외국인에 대한 인식을 다루고 있었다.
‘장면을 구성하고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탁월해.’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댄스의 밤>의 모든 장면이 너무 아름답게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댄스의 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춤이라는 매개로 드러내는 만큼 너무 아름답게 장면을 미화하는 게 좋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춤이 신나는 음악과 대비돼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여야 했다.
마지막에는 이를 의식한 듯 장면을 구성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아직 최서영 감독에게는 화면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게 영화라는 강박이 존재하는 듯해….’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앞서 설명한 바 있듯이 내가 원하는 감독은 딱 이런 느낌이었다.
화면의 색감과 미장센을 중요시하는 감독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댄스의 밤>을 보기 전보다 최서영 감독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를 연출할 사람은 최서영 감독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다음 날.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어제와 달리 반대의 의견이 많이 줄어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여전히 경력이 출중한 네 번째 감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최서영이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감독으로 결정됐다.
나로서는 또 다른 세계적인 명장과 작업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얼마 후.
나는 드디어 최서영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페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에 도착하니 최서영 감독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왠지 신입 사원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 연출을 맡게 된 최서영…. 아!”
최서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로서는 익숙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최서영 감독님. 저는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배우 겸 작가 역할을 맡은 이시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허리를 90도에 가깝게 접으며 인사했다.
그제야 최서영이 정신을 차리고 마주 고개를 숙였다.
“바, 반갑습니다!”
왠지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최서영 감독을 정중히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 그대로 최서영 감독, 오늘부터 내 작품의 감독이었다.
다만 여경찬은 최서영 감독의 태도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경찬이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만난 감독과는 캐릭터가 사뭇 달랐으니까.
그러면서도 여경찬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렇게 여경찬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 나는 최서영 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앉아서 얘기를 나눌까요?”
“네, 네.”
“저는 마실 것 좀 가져오겠습니다. 어떤 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배우님?”
“아. 그냥 생수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은 더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최서영 감독이 물병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잠시 후 여경찬이 마실 것을 가져왔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선 이렇게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보니까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데 바로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 연출에 지원한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곧장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서영 감독이 너무 긴장한 기색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탈출>에서 내가 지정현, 김필성 감독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영화의 좋은 아이디어는 대부분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술을 마시자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최서영 감독이 지정현이나 김필성 감독처럼 술을 즐기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회식 자리로 끌고 간다면 분위기가 더 어색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최서영 감독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여경찬이 적절히 대화에 끼어들어 이 얘기, 저 얘기를 한 게 도움이 됐다.
괜히 내가 다른 사람을 전부 제쳐 두고 여경찬을 이 자리에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최서영 감독의 학교생활 얘기부터.
군대에 가서 축구를 차는 게 꿈이었던 여경찬이 면제를 받게 된 얘기까지.
정말 시답지 않은 말을 계속해서 주고받았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자 어느 정도 분위기가 완전히 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슬슬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감독님께서는 어쩌다가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연출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아….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영화를 찍고 싶어서 졸업 후 열심히 친구들이랑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는데 그걸 한 놈이 들고 날랐거든요.”
“아이고. 맞아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네. 운이 없었죠. 그렇게 돈도 잃고 의욕도 잃은 채 침대에 쓰러져 있는데 페스타 엔터테인먼트의 공고가 보이는 거예요. 이 영화에 참여하면 이시준 배우님을 주연으로 쓸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잽싸게 지원서를 작성했죠.”
“아아. 그렇게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를 만나게 된 거구나.”
페스타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감독을 구하기 위해 인맥만을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홈페이지에 해당 소식을 전하거나 각 대학에 구인 공고를 올려서 새로운 얼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최서영 감독은 이런 식으로 지원을 하게 된 케이스인 것 같았다.
“그런 셈이죠. 그 후 서류 심사에 통과하고 페스타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시나리오를 받아 보고 무척이나 놀랐어요.”
“그랬나요?”
“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퀄리티가 높았거든요. 이게 프로의 세계인가. 감탄도 했죠. 그런데 웬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이시준 배우님이더라고요?”
“칭찬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이름을 확인하고 어찌나 놀랐는지….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굳게 내가 꼭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어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최서영 감독의 표정에는 처음으로 결연함이 깃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의 주인공 세랑이요.”
“네. 우리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윤세랑이죠.”
“저는 이 영화에 참여해 꼭 세랑이를 제 손으로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제가 학창 시절 세랑이와 같은 학생이었거든요.”
얼굴 천재 배우님 108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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