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
얼굴 천재 배우님-16화(16/200)
얼굴 천재 배우님 016화
1부 1씬을 찍는다니.
정말이지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1부 1씬을 주인공이 받았을 게 분명했다.
‘뭐…. 그다지 길지 않지만…. 나도 3부까지는 주인공이 맞긴 하지.’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신한재 고등학생 역의 감정을 끌어올렸다.
황인섭 고등학생 역을 연기할 때처럼 감정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은 신한재 고등학생 역을 소화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렇게 신한재 고등학생 역의 밝고 활기찬 기운을 온몸에 채웠을 때.
“레디, 액션!”
강한성 감독의 신호가 떨어졌고 나는 신발 끈을 묶고 밝은 표정으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의 첫 씬은 달리는 것이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가상의 무대, ‘성동’의 골목 곳곳을 누비는 것.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였다.
‘살면서 아무런 고난을 맞이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뿐만이 아니었다.
성동의 주민들 또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감하지 못한 채 활기차게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동의 골목에는 이미 질투, 분노, 절망, 사기, 자살, 살인 등이 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온몸에 피칠을 한 남자가 낡은 철문을 벌컥,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남자는 마치 나와 함께 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 화면이 두 개로 분할되며 나와 피칠한 남자의 모습을 대비시켰다.
물론 나는 분할된 장면을 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찍은 두 화면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편집본이 나왔을 때나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미 이러한 그림이 그려졌다.
수천 번 대본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메소드 마스크를 통해서 실제 몸으로 경험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예감하듯, 밝고 상쾌하기만 했던 표정을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점점 지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마침내 사거리에 다다랐을 때.
나는 표정을 완전히 굳힌 채 가쁜 숨을 내쉬며 신호를 기다렸다.
성동의 사거리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무단 횡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얌전히 신호를 기다렸고 내 옆으로 누군가 쓰윽,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심하게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던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했다.
그와 동시에 끼이익, 화물 트럭이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쿠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피칠한 남자의 몸이 화물 트럭에 치여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내 눈앞으로 그 장면은 아주 느린 속도로 펼쳐졌다.
남자는 허공에서 간절히 뭔가를 붙잡기 위해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손에 잡힐 만한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화물 트럭에 치여서 허공을 날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다니.
그렇게 눈이 마주치고 나자 단순히 당황한 줄 알았던 남자의 눈에서는 여러 가지의 감정이 읽혔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인가.
정말 화물 트럭에 치인 것인가.
하필이면 이럴 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살아야 하는데.
살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남자의 몸은 바닥에 처박혔고 그대로 쭈욱, 미끄러져서 가로수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갔지만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남자의 목숨이 이미 끊어졌다는 것을.
남자의 정체는 황인섭의 아버지.
정보라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
그렇게 성동에는 분란의 씨앗이 뿌려졌다.
* * *
재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신한재 고등학생 역을 전부 다시 찍어야 하는 만큼 재촬영 분량이 많았는데도 너무 늦지 않게 1부의 절반을 소화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상대 배우들의 일정이 잘 조율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금방 재촬영을 마치고 계획대로 <체포>를 방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한성 감독도 같은 생각인지 밝은 표정으로 정수민 작가와 통화했다.
“역시 저희의 눈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시준 배우님이 아주 완벽하게 배역을 준비해 왔어요. 이대로라면 1부 방영 전에 비축 분량까지 쌓겠어요.”
강한성 감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도 좋았던 촬영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스태프들이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씬이 끝날 때마다 무자비한 극찬이 돌아와서 이대로 ‘칭찬 감옥’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기 징역이 따로 없었다.
“이시준 배우님! 정말 최고예요!”
“신한재 고등학생 역까지 이렇게 찰떡같이 소화하다니!”
“원래 신한재 고등학생 역이 이런 캐릭터였구나!”
“무거운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개그 씬도 잘 살리네! 웃음 참느라 죽는 줄!”
“그렇다고 너무 가볍기만 한 느낌도 없고! 완전 좋아요! 빨리 편집본 보고 싶다!”
“잘생긴 사람이 연기까지 잘하다니! 역시 천생 배우!”
나는 겸손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한편, 칭찬 속에 담겨 있는 신한재 고등학생 역에 대한 인상적인 분석도 놓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한재 고등학생 역은 단순히 황인섭 고등학생 역처럼 진지한 분위기만을 풍겨서는 안 됐다.
<체포>가 이후에도 스릴러의 정수로 평가를 받는 것은 긴박한 긴장감 가운데에서도 잔잔함 웃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한재 고등학생 역은 <체포>의 이런 분위기에 가장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3부 분량까지는 내가 드라마의 이러한 특징을 거의 대부분 살려내야 했다.
‘그러니 단순히 사건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행동해서는 안 돼.’
마치 1부 1씬에서 마냥 밝기만 한 것 같았던 신한재 고등학생 역이 교통사고라는 큰 사건을 맞이하며 감정적 변화를 느끼는 것처럼.
한 씬 안에서도 울고, 웃고, 화내고, 다시 웃는 등 다양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야 했다.
안명현이 신한재 고등학생 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연기의 난이도 때문이었다.
‘정수민 작가가 최근의 경향에 맞게 대본의 전개를 아주 빠르게 만들어 놨어. 그러니 신한재 고등학생 역의 감정 변화도 상당히 빠른 것이지.’
나 또한 감정 변화를 모두 익히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웬만한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난이도가 높았다.
하지만 다행히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도 자만해서는 안 돼. 남은 촬영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게 계속 연습하자.’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의 마지막 촬영을 남겨 둔 채 혼자 쉬고 있는 내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가며 인사를 나눈 적 있는 양이듬의 담당 매니저였다.
“이시준 배우님. 혹시 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어쩐 일이세요? 이듬이랑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직 배우님께서 소속사를 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양이듬의 소속사에서 나를 데려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양이듬의 소속사 측에서 직접적인 접근을 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양이듬의 담당 매니저와 대화를 나눴다.
“아아. 이듬이를 통해서 얘기를 들으신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아직 소속이 없어요.”
사실 침착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종일 다른 매니저들과도 소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한 씬을 끝내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마다 칭찬의 파도를 뚫고 여러 소속사의 매니저가 한 명씩 접근해 왔다.
그러더니 아직 소속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명함을 건네주고 떠나갔다.
다행히 보는 눈이 많은 탓에 부담스럽게 접근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양이듬의 담당 매니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재촬영이 한창이니 너무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나중에 소속과 관련해 가볍게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거니까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나는 양이듬 담당 매니저의 명함을 받아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명함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재촬영이 끝나면 곧장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접근한 소속사 중에는 꽤 이름 있는 곳도 있었다.
양이듬의 소속사만 해도 최근 업계에서 잘나가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 소속사들의 조건을 받아 보지 않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조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 봤겠지만 때가 일렀다.
<체포>의 흥행 결과에 따라서 내 몸값이 조금 더 올라갈 만한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연기가 반드시….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체포>의 방영 후 조건을 받아도 늦지 않았다.
혹시 내 연기가 나쁜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조건이 나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소속사 없이 신한재 고등학생 역을 따냈다는 것은 중요한 커리어가 될 테니까.’
서명희 또한 <체포>의 방영 이후 소속사를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체포>의 연기에 집중할 때고.’
그렇게 나는 양이듬의 담당 매니저와 담소를 몇 마디 더 나눴다.
계약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평범한 소재의 대화였다.
잠시 후.
“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쯤 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양이듬의 담당 매니저가 제자리를 찾아서 떠났다.
그제야 나는 한숨을 돌리며 오늘의 마지막 씬 연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과 동시에 사전에 연습한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뭐야?”
“어머. 뻔뻔해라.”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스케줄을 헷갈린 거 아닐까?”
나는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안명현의 담당 매니저가 서 있었다.
뚜벅, 뚜벅.
“안녕하세요. 배우님.”
“아…. 네. 오랜만이네요.”
“시간을 맞춰서 온다고 왔는데 아직 촬영이 남아 있는 모양이네요.”
“1부 24씬. 딱 한 씬이 남았습니다.”
“그렇군요…. 너무 오래 배우님의 휴식을 방해하면 안 될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네?”
“오늘 스케줄을 마치고 잠시 저한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염치 불고하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얼굴 천재 배우님 16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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