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7)
얼굴 천재 배우님-177화(177/200)
얼굴 천재 배우님 177화
촬영장에는 솔로 무비 <딜런 조>에 캐스팅된 배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정현이었다.
지정현은 내 쪽으로 곧장 다가왔다.
“내가 네 덕을 다 보는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또 그 얘기를 하시네요.”
“신기해서. 그나저나 박준, 그 녀석도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고?”
“네. 레이크라는 이름의 빌런 역할을 맡을 거예요. 테라실리아 간부죠.”
“녀석한테 딱 어울리는 역할이군.”
오늘도 어김없이 박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지정현이었다.
이쯤 되니 어째서 둘 사이가 틀어졌는지 궁금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정말 좋지 않은 거라면 <딜런 조> 촬영에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캐스팅됐다는 걸 알면서도 별다른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문제가 없는 듯했지만.
‘작품이 겹치는 건 상관하지 않는 눈치인데…. 왜 이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나는 입가에 조소를 띠고 있는 지정현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준이 형이랑은 어쩌다가 사이가 틀어지게 된 거예요?”
지정현이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너무 몰아붙여서 그랬던가? 모르겠군. 그냥 어느 날부터 녀석이 날 슬슬 피해 다녔던 것 같은 기분이야.”
지정현은 정말 왜 이런 관계가 됐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몰아붙였다는 말은 힌트가 됐다.
나 또한 지정현과 함께 연기하며 구석에 몰린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탈출>을 찍을 때였다.
‘준이 형으로서는 선배님의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여전히 어째서 지정현이 박준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몰아붙였다는 것은 박준이 지정현을 싫어하는 이유여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묻자 지정현이 대답했다.
“조금 몰아붙였다고 꽁한 게 그냥 마음에 들지 않더군. 어떻게 그런 녀석이 대한민국 최고 배우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지, 참.”
지정현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박준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충 지정현이 박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애증이구나.’
그리고 그렇다면 지정현과 박준의 관계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애증에는 어쨌든 일말의 애정이 섞여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거라면 촬영에 문제가 될 만한 갈등을 일으킬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창 지정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박준이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준은 나와 지정현을 발견하더니 결심을 굳힌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왔군.”
“네. 왔죠. 선배님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이 영화에 캐스팅이 됐거든요.”
“빌런 역할이라고 들었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네가 딜런 조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지켜보겠군.”
“그보다 더 빠르게 제가 선배님의 가슴에 칼을 꽂을 겁니다. 알고 계시죠? 로버트 조가 저한테 목숨을 잃게 된다는 거?”
“얘길 잘 꺼냈군. 안 그래도 작가와 그 부분에 대해서 상의하고 싶었거든. 로버트 조가 레이크한테 목숨까지 잃는 것은 좀 작위적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지정현이 진심으로 대본의 내용을 바꾸고 싶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냥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러자 박준이 이때다 싶었는지 말을 덧붙였다.
“작위적이라뇨. <딜런 조>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자연스럽게 잘 쓰인 장면인데. 그나저나 좀 실망스럽군요. 선배님이 겨우 연기 따위에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세울 줄….”
하지만 박준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신디와 서명희가 나란히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딜런 조>의 주연급 배우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신디와 서명희 역시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한 작품에서 주연을 너끈히 맡을 만한 배우들이 모두 모이니 든든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두 작품 연속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다 보니 이런 부분이 새삼 기쁘게 와닿았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인 만큼 영어 대사가 많지만 피드백을 한국말로 한다는 것만 해도 어디야.’
게다가 딜런 조의 가족들은 서로 한국말을 쓴다는 설정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사를 편하게 한국말로 칠 수도 있었다.
“자, 그럼 이렇게 모였으니 얼른 고사를 진행하고 첫 씬 촬영에 돌입하기로 하죠.”
주연급 배우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고사 때문이었다.
할리우드에는 이런 전통이 없었지만 이 작품의 감독은 나였고 사고 없이 무사히 <딜런 조>의 촬영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다만 돼지머리는 따로 놓지 않았다.
타임 코믹스에서 파견한 현장 스태프들이 놀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돼지머리는 태블릿 PC로 사진을 띄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향을 피우고, 돈을 올리고, 절을 하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것으로 고사가 빠르게 마무리됐다.
그렇게 고사상을 정리하고 우리는 마침내 첫 촬영에 돌입했다.
오늘 촬영을 계획하고 있는 장면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딜런 조와 안나 조가 아버지의 문제로 갈등을 빚는 장면이었다.
이 시점에서 딜런 조는 아직 로버트 조가 어떤 목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딜런 조는 로버트 조를 겁쟁이 취급했고 결정적으로 로버트 조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정부의 요원을 쫓아내는 장면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로버트 조에 실망해 집을 뛰쳐나가는 딜런 조.
그런 딜런 조의 뒤를 쫓아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안나 조.
하지만 딜런 조는 끝내 로버트 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안나 조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가문의 이야기를 들려 줬던 안나 조가 로버트 조를 지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딜런 조는 아버지의 연구 결과를 직접 훔쳐내기로 마음먹고 연구실에 잠입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연구 중인 고대 유물을 만지며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능력을 얻는 장면은 오늘 촬영할 분량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은 로버트 조가 레이크에게 목숨을 잃는 장면이었다.
고대 유물을 노리고 있는 레이크는 끝까지 고대 유물을 사수하고자 하는 로버트 조를 사상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 딜런 조가 고대 유물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연구실을 찾았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로버트 조에게 사건을 전말을 전해 듣는 것까지가 이 씬의 촬영 분량이었다.
마지막은 로버트 조의 죽음 이후 몇 년간 복수를 다짐하며 훈련을 받아 온 딜런 조를 레아가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천재 해커인 레아는 정부 자료를 뒤져 테라실리아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아낸 상태.
본격적으로 딜런 조와 테라실리아의 싸움이 시작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이렇게 세 장면의 촬영을 계획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왕 모두가 촬영장에 도착하게 된 만큼 적어도 한 번은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이 세 장면을 모두 촬영하면 누구 한 사람 빠지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가능했다.
“그럼 17씬부터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나는 촬영이 준비되는 걸 확인한 뒤 <딜런 조>의 조감독 역할을 맡게 된 ‘윤하랑’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윤하랑은 페스타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직원이었다.
세 작품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딜런 조> 촬영이 끝나는 대로 입봉할 예정인 인물이었다.
원래라면 신입 직원을 조감독으로 붙여 달라고 부탁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워낙 <딜런 조>가 큰 작품이었고 내가 배우로서 연기할 때 감독 역할을 맡아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한테 메가폰을 넘겨받은 윤하랑은 내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17씬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큐!”
* * *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물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한때는 아버지의 신중한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정말 겁쟁이에 불과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그 사실을 증명했다.
‘히어로즈와 관련된 일이었어…. 히어로즈와 관련된 일이었다고….’
아버지가 슈퍼 영웅이 되어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슈퍼 영웅의 발목을 잡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한편 아버지의 연구가 세상에 이바지하는 일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부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게 내가 빗속을 헤치며 뛰어가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쫓아왔다.
“딜런! 딜런!”
어머니 역시도 비에 쫄딱, 젖은 상태였다.
그 모습이 가엾어야 하건만 가슴속의 분노가 이러한 감정마저 불태웠다.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분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팔목을 잡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날 놔줘요! 제발 나한테 아버지를 이해하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고요!”
나는 어머니마저도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한테 가문의 이야기를 들려 줬던 어머니까지 아버지의 편에 선다면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러한 내 마음을 모르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딜런. 아버지를 이해해야 해. 너는 가문의 아이잖니.”
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맺음과 동시에 나를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이 툭, 하고 끊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야를 가리고 온몸을 적시고 있는 빗물이 꼭 눈물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어머니가….”
“딜런.”
“내 이름 부르지 마! 겁쟁이의 입으로 내 이름을 담지 말라고!”
“…가여운 나의 아이.”
도대체 무엇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이민자라는 약점? 재미 교포 3세의 아이를 나무랄 데 없이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남들의 행복보다 나의 행복이 먼저라는 이기심?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잠식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는 점차 명확한 목적으로 바뀌었다.
세상을 구하는 데 써야 한다고 해도 끝끝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꽁꽁 감추고 있는 연구 자료.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훔쳐서 히어로즈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그렇게 내 발걸음은 아버지의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빗발이 거셌다.
“컷! 오케이!”
얼굴 천재 배우님 177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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