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
얼굴 천재 배우님-3화(3/200)
얼굴 천재 배우님 003화
흰색 반가면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모습은 꼭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팬텀의 가면을 닮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흰색 반가면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생각한 것보다 딱딱한 질감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위에 벨벳 코팅을 한 것처럼 손안에 부드럽게 감겼다.
단순한 형태의 흰색 반가면임에도 제작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내가 이맘때쯤에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나?’
한참 고민해 봤지만 역시 답을 찾지 못했다.
기억 어디에서도 흰색 반가면의 존재는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가면을 개인적으로 소유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렇게 나는 흰색 반가면을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자연스럽게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가면이라면 어떤 것이든 얼굴에 썼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었으니까.
놀랍게도 흰색 반가면은 맞춤 제작을 한 것처럼 얼굴에 딱 들어맞았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더니 세상이 온통 검게 변했다.
가면으로 얼굴이 한쪽만 가려졌는데 눈앞이 전부 검게 변하다니 이상했다.
그것은 꼭 VR 고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통 검게 변한 눈앞으로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소드 마스크 시스템 동기화 중].
.
[메소드 마스크 사용자 확인 중].
.
[메소드 마스크 접속 완료].
.
[작품 분석 노트에서 내용 불러오는 중].
.
[연극 <이방인> 연습 시작]흡사 로딩 화면과 같은 장면을 통해서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흰색 반가면의 정체는 ‘메소드 마스크’인 모양이었다.
하필 많은 것 중에서 메소드라는 단어가 쓰인 게 뭔가 공교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은 작품 분석 노트에서 내용을 불러온다는 문장이 떴을 때처럼 강하지 않았다.
작품 분석 노트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메소드 마스크라는 물건이 나와 강렬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연극 <이방인>이라는 글자를 본 것과 동시에 절정에 달했다.
연극 <이방인>은 이맘때 내가 소속돼 있던 극단 소리샘의 공연 이름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아니. 있을 수 없었다.
내가 회귀를 한 상태라는 게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메소드 마스크는 내가 겪고 있는 기현상의 일부가 확실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메소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연극 <이방인> 연습 시작]이라는 글자와 함께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소설 <이방인>은 뫼르소라는 기이한 인물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사람을 죽이고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이 담겨 있는 실존주의 문학의 역작으로, 소리샘에서는 이 작품을 연극적으로 구성해 소극장에 올렸다.
그리고 내 눈앞으로는 그렇게 구성한 연극적 상황 중 하나가 펼쳐졌다.
형무소에 갇히게 된 뫼르소가 검사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주위의 풍경을 확인하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머리 위로 서서히 핀조명이 켜지며 주변에 밝아지는 동시에 끼익, 소리와 함께 철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정면으로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검사가 앉아 있었고 나는 그보다 꾀죄죄한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수염을 몇 날 며칠이나 깎지 않아서 덥수룩하게 자란 상태였다.
이것은 전부 내가 <이방인> 연극을 위해서 해야 하는 뫼르소의 분장이었다.
그렇게 내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
검사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왔나? 앉게.”
그러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내 입이 저절로 열리며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군요.”
소설 <이방인>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이 문장은 연극 <이방인>의 도입부 역시도 완벽하게 장식했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나의 감정이 너무나도 담담하다는 것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진짜 뫼르소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계속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검사가 내 말을 받으며 줄곧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아. 그 얘기라면 됐어. 이미 여러 번 확인한 이야기니까. 심지어 자네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어제도, 오늘도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5개월 전의 일이지. 그보다 요즘 형무소의 생활은 어떤가? 늘 그랬듯 괴롭고 고통스러운가?”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정욕이 미칠 듯이 끓어올랐고, 그다음으로는 담배가 너무나도 간절했으며, 최근에는 도저히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지만 전부 익숙해졌습니다. 자유를 뺏는 게 형벌의 실체이니까요.”
“그걸 이해한다니 자네는 역시나 이상한 사람이군.”
“이상한가요?”
“대체로 다른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괴로워하지.”
“그렇군요.”
“그럼 이제 형무소에서의 시간이 즐거운 건가?”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그저 대부분 잠을 자고. 깨어 있는 시간을 식사며, 대소변이며, 추억이며, 체코슬라비아 이야기로 보낼 뿐이죠.”
“체코슬라비아? 그곳에서 지낸 적이 있었나? 그런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는데?”
“체코슬라비아에는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우연히 신문 기사를 읽었을 뿐이죠. 제가 사용하는 방의 매트와 침대 판자 사이에 끼어 있더군요.”
심지어 이 과정에서 내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며 대화가 쭉, 진행됐다.
그것은 마치 내가 뫼르소의 몸에 빙의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입이 저절로 열리며 대화가 진행될 뿐만 아니라, 내가 느껴야 하는 뫼르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빙의가 됐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뫼르소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분에 전혀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소름이 끼쳐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극 중 인물이 되었어!’
그것은 희열이었다.
극 중 인물이 되어서 실제 삶을 체험하는 것.
이것은 어떤 노력으로도 몸치의 한계를 도저히 넘을 수 없던 나로서는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연스럽게 뫼르소의 감정을 살피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뫼르소의 표정과 몸짓은 감정과 완전히 맞닿아 움직이고 있었다.
‘완벽한 교보재야. 이걸 흡수할 수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뫼르소와 검사의 대화는 1막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운이 좋았군. 그 신문 기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던가?”
“25년 만에 부자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부자가 됐다니. 그의 가족들이 무척이나 좋아했겠군.”
“아니요. 여관을 운영하는 누이와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런…. 하긴 25년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쉽게 알아봤다면 더 믿기지 않았을 거야.”
“그럴지도요. 어쨌든 그는 장난을 칠 요량으로 방을 잡고 누이와 어머니에게 돈을 보였습니다.”
“큰돈을? 누이와 어머니가 무척이나 놀랐겠군. 귀한 손님이라는 걸 단번에 깨달았을 테니까.”
“글쎄요.”
“아닌가?”
“그날 밤 누이와 어머니는 그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돈을 훔친 다음에 시체를 강물 속에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신분이 밝혀졌죠. 결국 어머니는 목을 맸고 누이는 우물에 빠져 죽었다더군요.”
“…무척 비극적인 이야기군. 말문이 막힐 정도야.”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자네는 그 이야기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아닙니다.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담담하게 신음성을 내뱉은 거지?”
“별 이유는 없습니다.”
“설마 어머니가 죽었을 때처럼 이 일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건가?”
검사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고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검사의 분명한 도발이었지만 뫼르소가 된 나의 가슴속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간결하고 명료하게 나의 기분을 전달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죽은 게 기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죽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하는 중이죠.”
* * *
나의 것인지, 뫼르소의 것인지 모를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주변이 어두워졌다.
1막이 끝나고 무대가 암전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그렇게 기묘한 경험의 여운이 한숨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어졌을 때.
다시 검게 변한 공간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아직 연극 <이방인> 1막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그와 동시에 방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속에 설렘이 피어났다.
재도전을 한다면 또 한 번 극 중 인물이 되어 표정, 몸짓,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내가 평생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런데 만약 이 경험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면?
쏴아아아.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쭉, 하고 훑고 지나갔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쁨이 엄습했다.
‘아무리 지독한 몸치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수천, 수만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100번 중 99번은 그것을 해낼 수 있었다.
7년간 끊임없이 연습했음에도 내가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올바른 방법으로 연기를 반복할 수 없었던 탓이다.
표정, 몸짓, 감정.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낼 수도 없었고 혹시 한 번을 해내더라도 다시 반복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답답한 마음에 연기 선생을 찾아가 수업을 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
표정이 괜찮으면 몸짓이 틀어졌고, 몸짓이 자연스러우면 감정이 어색해졌으며, 감정이 달라붙으면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이 연습 방식이라면 올바른 방법으로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곧장 날짜를 가늠해 봤고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건….’
나에게 연습 시간이 이틀이나 남았다는 뜻이었다.
‘이틀간 충분히 연습한 뒤에 극단의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실전에서의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맘때 나는 극단 소리샘에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연기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뫼르소의 역할을 다른 배우한테 빼앗겼지.’
그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4월 중 어느 날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뫼르소의 배역을 빼앗긴 뒤 나는 꽤 오랫동안 대사가 한 줄밖에 없는 교도관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마음 한편으로 내 실력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극단원들에게 치기 어린 앙심을 품은 채….’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소극장을 찾은 캐스팅 매니저의 눈에 띄어 소속을 옮겼고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었다.
몇 번을 다시 돌이켜 봐도 부끄러운 과거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이와 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괜찮은 것은 연습밖에 없었다.
그렇게 과거를 되짚어 보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검은 공간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아직 연극 <이방인> 1막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러자 눈앞이 밝아지며 나는 재차 뫼르소가 될 수 있었다.
얼굴 천재 배우님 3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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