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7)
얼굴 천재 배우님-77화(77/200)
얼굴 천재 배우님 077화
첫사랑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지훈에게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한지훈은 그 구멍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영을 만나면서 구멍은 점차 메꿔지고 있었고.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한지훈의 구멍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이별을 그리고 있는 12부 38씬은 이런 점에서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이영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죽은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노력해도 도저히 마음을 열 수 없는 것 같은 느낌.
이것만 해도 한 쌍의 커플이 헤어져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이영은 치열하게 한지훈을 사랑했다.
치열하게 사랑한 만큼 더 고통스럽게 상처를 받은 것이었고.
결국 둘은 12부 38씬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했다.
그리고 <황녀님, 동거합시다>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13부에서부터는 드라마 진행 내내 떡밥으로 등장했던 새로운 인물의 차원 이동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반역을 일으켜 이영을 살해하려고 했던 배신자 김중헌의 등장이었다.
* * *
혼란스럽다.
이영이 차원 이동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원 이동이 아니라면 이영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첫사랑과 꼭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영이라는 사람의 존재.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차원 이동을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가 힘들다.
심지어 그 사람이 하필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연쇄 살인범과 꼭 닮았다니.
-다음 소식입니다. 작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큰 파문을 일으켰던 유주 연쇄 살인범 김중헌의 목격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김중헌이 되살아나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HBC에서 취재했습니다.
매니저와 함께 뉴스를 보던 나는 마음이 다급해지는 걸 느낀다.
곧장 핸드폰을 꺼내서 이영의 이름을 찾는다.
그렇게 내가 몸을 일으키자 매니저가 뒤따르며 묻는다.
“형. 무슨 일이에요?”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지금요? 대표님이랑 약속 잡았잖아요.”
“네가 얘기 좀 잘해 줘. 미안.”
“형! 형!”
역시나 이영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급하게 차를 몰고 이영이 있을 법한 장소로 이동한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지금 이영을 만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는데.
애초에 정말 연쇄 살인범을 닮은 그 사람이 차원 이동을 한 게 맞나.
잠시 이성의 끈이 내 발목을 붙잡지만 소용없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이영의 생각뿐이다.
이영을 만나야 한다.
이영을 만나서 멀쩡한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다.
그사이 내 머릿속에는 이영과 나눴던 김중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영은 그때 벽에 붙어 있던 오래된 수배 전단 속 김중헌의 모습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사람.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이냐?’
‘연쇄 살인범 김중헌? 감옥에서 자살했어.’
‘자살…. 그랬구나. 이곳에서는 살아 있지 않구나.’
‘근데 그건 왜? 설마 김중헌이 네가 살던 곳에서도 연쇄 살인범이었어?’
‘비슷했다. 믿었던 사람을 배신하고 무고한 사람을 여럿 죽였으니까.’
이뿐만이 아니다.
이영은 부용정에서 부용지 가운데 작은 섬을 바라보고 앉아 아련하게 과거의 일을 떠올린 적 있었다.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두렵구나. 그곳에는 내 자리가 없을 텐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 거 아니야. 가족이라든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내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지. 그자의 짓이었다.’
‘그자?’
‘김중헌.’
이영의 말에 따르면 대한제국의 김중헌은 이곳의 연쇄 살인범 못지않다.
이영에게만큼은 연쇄 살인범보다 더한 존재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집, 호텔, 카페, 식당, 편의점, 마트….
이영과 함께했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영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마음이 다급함에 터질 것 같을 때.
문득 한 장소가 떠올라서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던 다산 성곽길.
다행히 그곳에 이영이 있다.
“이영!”
내 목소리를 듣고 이영이 고개를 돌린다.
이영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오른다.
“한지훈?”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영이 무사하다는 사실이니까.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이영을 끌어안는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짓이었고 이제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이영을 사랑한다.
첫사랑을 대신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품에 안고 있는 이영,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
이제 이영이 아니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을 꺼내기 위해서 입을 연다.
“이제 알았어. 난….”
하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다.
푸슉.
차가운 이물감.
내 등을 꿰뚫은 것은 김중헌의 칼이다.
“한지훈!”
* * *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유성효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현장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촬영을 마친 것이 13부 마지막 씬이었으니까.
13부 마지막 씬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한지훈의 감정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중헌의 등장으로 이영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순간.
칼에 찔려 중태에 빠진다는 사실은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황녀님, 동거합시다>의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한지훈의 활약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촬영을 무사히 끝낸 것 같았다.
이걸로 <황녀님, 동거합시다>의 종영까지 한 걸음 더 다가간 셈이었다.
그렇게 내가 13부 마지막 촬영 결과에 만족하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시준 씨! 고생 많았어요!”
신디가 내 쪽으로 다가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신디는 방금 이영을 연기하며 눈물을 흘린 사람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신디의 미소는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다소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변화.
나로서는 이제 신디의 이러한 모습이 익숙했다.
벌써 함께한 시간이 꽤 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배역의 감정에서 너무 쉽게 빠져나오는 신디를 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방금 목놓아 울었던 사람이 촬영장을 누비며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다소 기괴하게 느껴졌으니까.
한편으로는 신디의 이러한 모습에 존경심을 느꼈다.
신디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배역과 자신을 가장 잘 분리하는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감정을 크게 소모하지 않고 다양한 장면을 비교적 손쉽게 연기함은 물론, 현장에서 늘 밝은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많은 배우가 작품이 끝난 뒤 우울증 등의 병을 앓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굉장한 장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가까운 곳에서 신디를 관찰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한 장점을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아마 신디가 수월하게 가수와 배우의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참 부러운 능력이야.’
최근 점점 더 배역의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렇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신디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다행히 지금은 나 또한 한지훈의 감정에서 어렵지 않게 벗어난 상태였다.
“선배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뇨. 수고는 시준 씨가 가장 많이 했죠. 13부는 한지훈 중심이었잖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제 저는 병석에 누워서 선배님의 활약을 지켜보겠습니다.”
익숙해진 것은 신디의 감정 변화만이 아니었다.
신디와 인간적으로도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식의 농담을 할 수 있었다.
신디 역시도 내 농담을 알아듣고 얼른 대답했다.
“아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누가 들으면 시준 씨가 정말 아픈 줄 알겠다. 후훗.”
나와 신디의 대화에서 대략 유추가 가능하듯이.
나는 14부의 3분의 2지점까지 중태에 빠져 누워 있을 예정이었다.
13부에서 내가 활약한 것처럼 이제 신디가 활약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지훈이 의식을 잃은 뒤 이영이 분노해 김중헌과 대결을 벌이는 게 14부의 주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은 지금껏 김중헌과의 대결을 회피한 느낌이 강했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존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영은 한지훈까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해 김중헌과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피의 사슬을 끊어 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중헌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력한 존재였다.
살육을 반복하며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거의 괴물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벼랑 위에서 이영은 위기에 놓이게 되고 그때 정신을 차린 한지훈이 등장했다.
그리고 김중헌은 한지훈을 보고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될 예정이었다.
자신이 처음 목숨을 빼앗은 친동생의 얼굴과 한지훈의 얼굴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중헌이 한지훈을 중태에 빠뜨릴 때는 등 뒤에서 칼을 휘두르고 달아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죄책감에 휩싸인 김중헌이 스스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14부가 마무리됐다.
결국 14부는 후반부까지 내가 등장할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14부의 대략적인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신디가 질문했다.
“그래서 14부 초‧중반부를 촬영하는 동안에는 뭘 하고 있을 거예요?”
나는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우선 종종 촬영장에 나와서 선배님 연기를 구경할 생각입니다.”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권위적인 선배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제가 좋아서 나오는 건데요, 뭐. 14부 내용을 알아야 15부 연습도 가능하고요.”
“그렇죠. 대본만으로는 14부 내용을 전부 안다고 할 수 없으니까. 그럼 그냥 평소처럼 촬영장에 오고 연습을 하고 그럴 거예요?”
“하루나 이틀 정도는 다른 스케줄을 소화할 것 같네요.”
“오! 좋네요! 무슨 스케줄이에요? 화보? 인터뷰? 설마 예능에 나가는 건 아니죠?”
“예능이요?”
“<어메이징 선데이>의 출연으로 예능의 참맛을 알았다든가, 그런 거.”
“아아. 예능에는 안 나갑니다.”
내가 이번에 시간을 내서 소화해야 할 스케줄은 화보도, 인터뷰도 아니었다.
“그럼 무슨 스케줄?”
“광고를 찍게 됐습니다.”
“광고! 그렇죠! 시간이 날 때는 돈을 벌어야죠!”
“선배님도 이번에 광고를 몇 개 찍은 걸로 아는데….”
“13부 때는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니까. 많이 찍은 건 아니었어요. 한 세 개?”
“세 개…. 역시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제 하나가 들어왔는데.”
“세 개보다 괜찮은 하나일 수도 있죠. 어떤 광고예요?”
나는 며칠 전 김보미에게 연락을 받고 놀랐던 일을 떠올렸다.
여전히 정말 내가 이 광고를 찍는 게 맞는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러한 기분을 감추며 신디의 말에 대답했다.
“KC 카드의 광고를 찍게 됐어요.”
얼굴 천재 배우님 77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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