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7)
얼굴 천재 배우님-87화(87/200)
얼굴 천재 배우님 087화
단 하루 만에 온 거리가 지옥이다.
빗방울이 바늘처럼 내 살갗을 때리고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젓는다.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소정아.”
그렇게 얼마나 서 있을까.
나는 낮게 읊조린 뒤 익숙한 몸뚱어리를 향해서 미친 듯이 뛴다.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아직 살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내가 안아 든 것은 싸늘한 소정이의 시체.
그리고 소정이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또 한 명의 불쌍한 아이 소윤이.
이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늘은 싸늘한 시체에 비까지 퍼붓는 것인가.
“소정아…. 안 돼. 소정아. 소정아.”
나는 소정이의 몸을 흔든다.
그리고 소윤이를 향해서 손을 뻗는다.
소정이를 향해 있던 소윤이를 손을 잡고 흔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야….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나야…. 나 왔다고. 여기 있다고.”
보채도 대답이 없고 애원해도 대답이 없다.
나는 진흙탕에 철퍼덕 주저앉고 두 사람의 몸을 끌어안는다.
이것은 시체다.
이런 생각이 들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내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며 계속 현실을 부정한다.
“안 돼…. 안 되는데…. 왜….”
나는 이제 소리 내 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죽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이 이렇게 울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뿐이다.
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가까운 천막 쪽으로 이동한다.
천막 안쪽에는 총을 맞은 또 다른 시체가 보인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총 맞은 부위를 손으로 누르지만 소용없다.
그렇게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천막 쪽으로 간다.
비와 내 눈물이 목구멍을 몇 번이나 막아 숨이 차지만 계속 움직인다.
두 아이의 시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몇 번이나 힘을 주고 바닥을 긴다.
이제 온몸이 흙투성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를 하나씩 천막으로 옮긴다면 훨씬 간단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이 중 하나를 비 오는 바닥에 그냥 둘 수 없다.
그때 비가 더 거세어지고 나는 비를 막기 위해 두 아이를 다시 한번 끌어안는다.
그리고 맹세한다.
“아저씨가 다 죽여 줄게.”
아이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한 번 더 맹세한다.
“아저씨가…. 다 죽일게.”
* * *
아무것도 없는 영화 제작사의 회의실이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메소드 마스크를 쓴 것처럼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흘렸고 진흙탕을 기었으며 두 아이에게 맹세했다.
다 죽이겠다고.
다 죽이고 말겠다고.
나는 그대로 89씬에 갇혔다.
감정이 도저히 깨어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90씬 윤복기의 대사였다.
나는 윤복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내 어깨를 짚은 것은 윤복기가 아니었다.
“…감독님?”
“네. 김필성입니다. 이제 깨어나세요. 이시준 배우님.”
그제야 나는 점차 감정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눈물이 내 얼굴을 적시고 있었지만 착 가라앉았던 느낌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여기 휴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김필성에게 휴지를 받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기는 연기를 하느라 옷이 엉망이었다.
사복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찬받은 옷을 이 꼴로 만들었으면 송진아가 울상을 지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감정을 모두 추슬렀다.
김필성은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뭐지? 내 연기가 좀 별로였나?’
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89씬이 김성연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는 걸 깨닫고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 왔기 때문이다.
<황녀님, 동거합시다>의 촬영이 끝나고 가장 오래 연습에 매진한 장면도 89씬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직 완성도가 100%가 아니었음에도 오디션을 합격할 정도의 연기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너무 몰입해서 감정을 과잉시켰어. 확실히 김필성 감독이라면 이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김필성 감독은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아무리 슬픈 장면이라도 무작정 감정이 과잉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장면은 감정이 과잉되지 않을 때 더 슬픈 느낌을 주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방금 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쩌면 김필성 감독으로부터 혹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필성 감독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더욱더 이런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역시 김필성 감독이랑은 인연이 아닌 걸까.’
과거에서는 거의 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좌절감이 아직 가슴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김필성 감독과 작업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김필성 감독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나는 서둘러 김필성 감독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아아. 옷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사복이니까.”
“제가 사과를 드린 것은 옷 때문이 아닙니다.”
“설마 제가 운 것 때문에 그런 건가요? 아아. 이것도 괜찮아요. 우는 게 당연한 장면이었잖아요. 딱히 메이크업을 해서 화장이 번진 것도 아니고.”
“화장이 번졌을까 봐 사과를 하는 것도…. 잠깐만요. 정말 메이크업을 안 하신 거예요? 그럼 지금 쌩얼?”
“네. 뭐. 오늘은 이 이후로도 딱히 스케줄이 없어서 메이크업은 안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얼굴이…. 아. 어쨌든 제가 사과를 드린 것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연기 때문입니다.”
김필성 감독의 대답을 듣고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 때문이라니.
사과를 할 만큼 내 연기가 그렇게 형편이 없었던 걸까.
메소드 마스크의 도움을 받으며 연기력에 꽤 자신감이 붙었는데.
내 착각인 모양이었다.
“아…. 그럼 불합격.”
“네? 불합격이라뇨?”
“방금 연기 때문에 사과를 한 거라고….”
“아. 아뇨. 배우님의 연기가 안 좋아서 사과를 한 게 아니에요. 너무 좋아서 사과를 드린 거였어요.”
“네?”
“정말입니다. 사실 제가 배우님을 오해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잘생긴 분이라 연기력이 조금 부족할 거라고. 하지만 방금 연기를 보며 제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대충 어떤 오해를 하고 있었는진 알 것 같았다.
흔히들 하는 오해였다.
그런데도 김필성 감독은 석고대죄라도 할 기세였다.
김필성 감독이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완벽한 김성연이었어요. 그냥 연기만 완벽한 게 아니었어요. 모든 게 실감이 나서 정말 이곳에 비가 내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랬나요?”
“심지어 시체가 놓여 있는 위치까지 모든 게 정교했어요. 나중에 연출하면 지금의 위치를 기억해서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랬군요.”
“그러다 보니 배우님께 너무 죄송하더군요. 이렇게 빈틈없이 김성연을 연기할 수 있는 분을 의심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원한다면 무릎이라도 꿇겠습니다.”
석고대죄를 할 기세가 아니라 정말로 할 모양이었다.
“…무릎은 됐고 이 손부터 놔주시겠어요?”
그제야 김필성 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잠시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침묵을 깨기 위해서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 뒤 입을 열었다.
“어쨌든 칭찬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제 연기가 너무 감정 과잉이 아닐까 걱정했거든요.”
“감정 과잉이라뇨.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감정이 고조되는 느낌을 잘 살렸죠.”
“그럼 저는 김성연 역으로 <탈출>에 합류하는 걸까요?”
“네. 물론이죠. 그나저나 부끄럽네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배우님의 연기를 의심하다니.”
김필성 감독은 그 이후로 계속 혼자서 떠들었다.
지정현한테 처음 추천을 받았을 때 <체포>나 <사랑을 캐스팅하겠습니다>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후 <황녀님, 동거합시다>가 고공행진을 할 때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실례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어제 오디션으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너튜브 영상을 찾아봤다면 이런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았을 텐데.
거의 뼈를 깎는 듯한 후회의 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필성 감독의 후회가 절절히 느껴졌다.
‘연기를… 많이 못 할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네.’
하지만 나는 김필성 감독의 이런 반응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김필성 감독이 나를 이 정도로 인정해 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김필성 감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탈출>의 캐스팅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서류 작업은 소속사를 통해 진행하기로 하고 나는 김필성 감독과 헤어졌다.
김필성 감독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사과를 했다.
내 연기력을 의심해 오디션을 본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어? 배우님? 얼굴이 왜 그러세요?”
여경찬이 이렇게 물었을 때도 나는 뒷좌석에 앉으며 대충 둘러댔다.
“아아. 그냥 좀 피곤해서요.”
연기를 하느라 울었다고 말할 것까진 없을 듯했다.
그러자 여경찬이 감탄했다.
“와. 우리 배우님은 피곤하니까 뭔가 더 얼굴이 청초해지는 느낌이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꽤 얘기가 길어지는 거 같던데. 무슨 일 없었죠?”
“네. 별문제 없이 캐스팅 확정했어요. 김보미 팀장님께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출발할게요.”
여경찬이 차에 시동을 걸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해외 화보 촬영이 나갔다는 지정현이었다.
“선배님. 전화 받았습니다.”
-그래. 감독님 잘 만났나?
“네. 잘 만났고 캐스팅 확정했습니다.”
-연기하느라 고생 많았겠군.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감독님이 자네 실력을 의심하는 거 같은데 나 때문에 말을 못 하더라고.
“아아. 낌새가 있었구나. 설마…. 그래서 해외 화보 촬영 핑계를 대신 거예요?”
-해외 화보 촬영은 진짜야. 방금 나리타 국제공항에 내렸고. 어쨌든 <탈출>의 합류를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국에 돌아가면 전화할 테니 그때 한번 보는 것으로 하지.
“네. 전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촬영 힘내세요.”
그렇게 지정현과의 통화를 마쳤고 그제야 <탈출>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기분이었다.
함께 연기할 지정현이야 걱정할 것 없었다.
‘김필성 감독도 나를 신뢰하는 듯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졌다.
이때만 해도 나는 <탈출>의 촬영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얼굴 천재 배우님 87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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