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9)
얼굴 천재 배우님-89화(89/200)
얼굴 천재 배우님 089화
지정현의 연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분명 차이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15씬의 느낌이 확 달라졌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닌 듯 김필성 감독이 뒤쪽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김필성 감독은 NG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NG 사인을 보내기에는 미묘해.’
그랬다.
지정현의 연기는 시나리오에 쓰여 있던 15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주 미묘하게 달랐을 뿐.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전봇대 뒤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정현이 자리에 서서 내가 있는 곳을 응시하며 눈매를 좁히거나.
당연히 정체를 숨기기 위해 총을 감추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정현이 나를 겨냥한 채 먼저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심지어 그 행동이 김필성 감독의 디렉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필성 감독이 설명한 윤우성이라는 인물의 감정은 전부 연기에 녹아 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어떤 부분은 지정현의 연기 덕분에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윤우성은 저런 인물이야.’
영화 속 윤우성은 태생부터 강한 신념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선생이 일본어로 “나는 일본인입니다.”라는 문장을 시켰는데 짝꿍이 그것을 따라 하려고 하자 발을 세게 밟았을 정도였다.
또한 만주사변 이후 죽을 자리가 사라졌다며 임시 정부의 김구를 찾아간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큰 뜻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인물.
확실히 이런 인물이라면 전봇대에 숨기보다는 적을 사살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총을 감추기보다는 적 방향을 향해 먼저 겨눌 테니까.
그렇게 나는 지정현의 연기가 내가 분석한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NG 사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나는 천천히 돌담의 그림자를 벗어나며 메소드 마스크를 통해 경험한 것과 사뭇 다른 지정현을 마주했다.
디테일이 조금 달랐을 뿐 거의 모든 게 그대로였기 때문에 연기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소화해야 하는 배역은 윤우성이 아니라 김성연이었다.
“정의의 사도 노릇을 하는 협잡꾼이냐?”
내가 양손에 권총을 든 채 이렇게 묻자 지정현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총 드는 폼이 그럴듯하군. 쌍권총이라는 게 좀 웃기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표적을 맞추기에 더 용이하거든.”
“표적은 내 총에 맞아서 쓰러진 것 같은데.”
“나도 맞췄어. 한발 늦게. 가슴이랑 어깨에 두 방.”
“두 방이면 두 발 늦은 거 아니고?”
“…….”
“…재미없었나?”
“응. 많이.”
그렇게 나와 지정현이 손잡이를 세게 쥐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고 있을 때.
탕, 탕!
그때 멀지 않은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나와 지정현은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급하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컷! 오케이!”
* * *
15씬 촬영 후.
16, 17씬을 연달아 찍었다.
16씬은 총을 무명천에 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윤우성과 김성연이 함께 국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언제라도 총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긴장감이 넘쳤다.
17씬은 윤우성이 한눈을 파는 사이 일본 순사가 국밥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김성연이 먼저 몰래 빠져나가는 장면이었다.
윤우성은 국밥값을 계산하는 척 일본 순사를 속여서 자리를 떴다.
그러다 문득 김성연의 국밥값까지 자신이 계산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탈출>은 기본적으로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중간중간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부분이 <탈출>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캐릭터에 더 빠르게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세 개의 씬을 촬영 후.
나와 지정현이 각각 나오는 씬을 하나씩 찍었다.
NG 한 번 없이 세 개의 씬을 찍은 덕에 생각한 것보다 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김필성 감독은 예전에도 촬영을 하는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배우, 스태프들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물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특별히 회식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도대체 촬영 기간 내내 회식을 ‘매일’ 하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긴 했다.
‘오늘이 1일 차 도전인 건가.’
후반부로 가면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칠 것이다.
도전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 다 오늘 촬영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필성 감독은 밝은 표정으로 술잔을 돌리며 말했다.
첫 촬영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항한 것에 만족한 모양이었다.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네요. 정말.”
“막 씬을 다섯 개씩 찍고요?”
“오늘 고사를 안 지냈으면 여섯 개도 찍었을 겁니다.”
“그랬겠네요. 하지만 쉽지 않겠죠. 총격전을 찍어야 할 테니까.”
확실히 총격전은 편하게 찍을 수 없었다.
세트를 준비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한 낮이면 해가 지기 전에, 밤이면 해가 뜨기 전에 촬영을 끝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촬영이 며칠씩 늘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또 <탈출>의 경우에는 산을 넘는다든가, 강을 건넌다든가 하는 씬이 꽤 많았다.
이런 촬영의 경우에는 적당한 장소를 먼저 물색해야 했다.
거기에 장소를 물색해 놨다고 해도 변수가 많았다.
허가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날씨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두 시간이 넘지 않은 영화를 촬영하는 데 몇 달씩 걸리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을 잘 넘겼으니 다른 촬영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야죠. 그럼 첫 잔은 건배를 할까요? 감독님이 한마디 해 주시죠.”
“좋습니다. 함께 외쳐 주세요! <탈출> 성공을 위하여!”
모두 “위하여!” 하고 외친 뒤 술잔을 비웠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잔을 비웠는데 소주가 평소보다 좀 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술이 잘 안 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안주를 집어 먹으려고 할 때 지정현이 말을 걸었다.
“좀 어땠나? 오늘 촬영?”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지정현의 물음에 답했다.
“재밌었습니다. 배울 점도 많고요.”
“꽤 인상적이더군. 김성연 역할을 잘 준비해 왔어.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김필성 감독이 신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렴요. 저번에 실례를 범했을 때도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완벽하더라고요. 딱 제가 상상한 김성연이었습니다.”
나도 내 연기가 꽤 만족스러웠다.
메소드 마스크로 연습한 대로 연기가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갈증 같은 것을 느꼈다.
분명 연기를 잘했지만 지정현은 더 좋은 연기를 보여 줬다.
심지어 어떻게 그런 연기를 보여 줄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탈출>의 대본을 안일하게 분석했던 걸까?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
작품 분석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회귀 전에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실전에 약했을 뿐.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체포>, <사랑을 캐스팅하겠습니다>, <황녀님, 동거합시다>에 출연하면 작품 분석 능력을 인정받았다.
회귀 후 지금껏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정현은 내가 생각한 것을 훨씬 뛰어넘었어.’
단순히 15씬만이 아니었다.
16, 17씬에서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연기를 해냈다.
분석한 내용은 비슷했는데 결과가 다르게 도출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날 수 있는 거지? 내가 너무 오만했던 걸까?’
내가 김필성 감독의 칭찬을 들으며 한창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지정현이 갑자기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김필성 감독을 향해 물었다.
“오늘 제 연기는 어땠습니까?”
“지정현 배우님이요?”
“네. 궁금하네요. 감독님이 제 연기를 어떻게 봤을지.”
“그야….”
김필성 감독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나를 칭찬할 때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훌륭했죠. 솔직히 얘기하자면 제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부분까지 연기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게 좀 별로였을까요?”
“아뇨. 오늘 연기한 부분은 전부 좋았습니다.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을 드릴 테니 계속 지금처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김필성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지정현이 연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만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었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탈출>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김필성 감독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랬다.
지정현은 원작자의 생각을 뛰어넘는 연기를 펼친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지정현이 <탈출>에 투자를 하면서 작품의 이해도를 높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역의 존재감이 흐릿하게 느껴지는 뛰어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작품의 이해도 측면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정현은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는 것을 넘어 윤우성이라는 인물을 재창조하고 있었다.
심지어 원작자가 창조한 것보다 더 완벽한 모습으로.
상식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정현은 이 일을 해냈고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회귀 전 김성연 역할을 맡은 배우처럼 내 존재감이 희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은 연기를 펼치고 있으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하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한 마음은 회식을 무사히 끝내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걸까.’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면서도 계속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은 계속됐다.
알코올 기운이 도는 데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이마가 다 뜨끈뜨끈했다.
‘어떻게 하면….’
메소드 가면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
* * *
<탈출>의 촬영은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직 나 자신만이 문제였다.
‘지금도 좋아. 잘하고 있어. 하지만 김성연이라는 인물이 여기에 그쳐선 안 돼.’
그러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내 한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나는 마침내 지정현이 어떻게 윤우성이라는 인물을 재창조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바로 그거구나!’
얼굴 천재 배우님 89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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