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2)
얼굴 천재 배우님-92화(92/200)
얼굴 천재 배우님 092화
29씬.
나는 윤우성과 함께 산에 오른 상태다.
어쩔 수 없다.
일본군이 평양 시내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해가 떨어질 때 평양 시내에 진입할 생각이다.
그래야만 임시 정부의 공작원과 접촉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직 우리는 임시 정부로부터 상해로 돌아와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그런 까닭에 나와 윤우성은 몸을 숨긴 채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문제는 지금 우리가 며칠째 쫄쫄 굶은 상태라는 것이다.
경성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은 뒤 밥 한술 뜨지 못한 상태다.
꼬르륵.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 온다.
윤우성이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린다.
“뭐라도 먹을까?”
“뭘 먹나. 이런 산골짜기에서.”
그때 또 한 번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린다.
꼬르르르륵.
민망하다.
“움직이지. 흙이라도 파먹게.”
“그러다 일본군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그냥 숨어 있어도 걸릴 것 같은데?”
확실히 배곯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윤우성을 따라서 걸음을 옮긴다.
윤우성은 어디론가 훌쩍, 움직이더니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뭔가를 파내기 시작한다.
“진짜 흙이라도 먹이려고?”
“먹을 텐데?”
“사양하겠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나물이나 약초 이름이라면 빠삭하니. 이것은 눈개승마라는 놈이고. 또 이것은 광대나물이네. 그리고 이건….”
나는 길게 이어지는 윤우성의 설명을 듣는다.
그러다가 툭, 하고 한마디 말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나물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맛있는가?”
그러자 한창 나물을 캐던 윤우성의 손이 멈춘다.
그러더니 한심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한다.
“그냥 흙을 퍼먹는 것보다는 맛있겠지.”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다시 한번 윤우성의 나물 강의가 시작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나물인데 윤우성은 정확히 나물들을 구별해낸다.
“이건 세발이고. 또 이건 가시오가피순이고. 또또 이건 부지깽이고. 또또또….”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중얼거린다.
“못 먹는 게 없네.”
그러면서 바닥에 자라 있는 아무 풀이나 뜯어서 입에 집어넣는다.
그러자 윤우성이 내 쪽을 올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그건 동의나물…. 독초네.”
나는 그 말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씹고 있던 풀을 꿀꺽, 삼킨다.
그러자 윤우성이 벌떡 일어나 내 입을 억지로 벌리며 소리친다.
“뱉어!”
* * *
“컷! 오케이!”
마침내 김필성 감독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장면의 촬영을 십수 차례 반복해 얻어낸 성과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현장 스태프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려보니 모두 표정이 밝았다.
그냥 표정만 밝은 게 아니었다.
다들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으로 어째서 김필성 감독이 이번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침내 가장 웃긴 장면을 찍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김필성 감독이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동의나물을 뱉는 것보다 삼켜 버리는 게 확실히 웃기네요! 마지막 지정현 배우님이 억지로 입을 벌리며 소리를 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29씬은 거의 지정현과 나의 애드리브로 구성된 장면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김성연이 연속으로 꼬르륵 소리를 내 나물을 캐러 간다는 것만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지정현이 윤우성에게 나물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캐릭터성을 부여했고.
나는 그 얘기를 못마땅하게 들으며 결국 부주의하게 아무 풀이나 뜯어 먹는 김성연을 연기했다.
결국 이 부분의 대사가 전부 애드리브였던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황이 여러 갈래로 갈렸다.
윤우성의 이야기를 듣고 동의나물을 뱉을 건지, 아니면 먹을 건지.
또 이러한 김성연의 행동에 윤우성이 어떻게 반응을 할 건지.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 다양한 버전의 장면이 연출됐다.
나는 어느 순간엔 작가가 되어, 감독이 되어.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 되어 이 장면의 빈 공간을 어떻게 하면 채워 넣을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생각해 냈다.
‘내가 <탈출>을 제작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써놓고 노트를 빼곡하게 채워 넣었던 것.
그러한 노력은 내가 촬영 현장에서도 마음껏 상상하고 연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김성연이 동의나물을 삼키고 윤우성이 그것을 뱉으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장면이 픽스됐다.
현장 스태프들의 반응도 그랬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게 가장 재밌는 버전이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촬영이 마무리돼서 다행이네요.”
내 말에 지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네가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면 해가 떨어졌을 수도 있겠군. 내일 또 29씬을 찍을 뻔했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지정현의 칭찬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내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자 지정현이 내 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는 자네가 이렇게 쉽게 답을 찾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네.”
“선배님이 어떻게 다른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는지 고민해 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나도 이런 식으로 작품에 관여하는 게 처음이라 내 연기가 발전한 것에 놀랐네.”
그 뒤로 지정현은 다음 씬 촬영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지정현의 이야기는 내 추측을 확신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특히 지정현이 나와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변화를 깨달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지정현이 15씬 촬영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그런 연기를 펼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지정현이 15씬 촬영에 너무 무심해 보였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정현은 원래도 촬영 전 크게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제작에 관여한 게 아닌데도 이런 식의 해답을 찾아내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군.”
“선배님이 꾸준히 힌트를 주셨기 때문이죠. 전부 덕분입니다.”
“확실히 내 힌트가 생각보다 도움이 된 것 같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놓고 답을 알려 줄 걸 그랬어.”
“그냥 대놓고 말했다면 더 헤맸을지도 모르죠. 제작자의 눈으로 자신의 연기를 바라보라는 게 딱 와닿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런가? 어쨌든 이 정도면 자네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사실 전부터 자네에게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네?”
내가 이렇게 반문하자 지정현이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네를 나의 후계자로 임명하겠네. 어딜 가서 ‘리틀 지정현’이라는 이름을 써도 좋아.”
나는 지정현의 말을 듣고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네? 리틀 지정현이요?” 하고 되물을 뻔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목소리를 높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냥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 *
29씬 촬영 이후.
<탈출>의 촬영은 한층 더 열띤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나, 지정현, 김필성 감독이 연일 토론을 벌이며 각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상의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확실히 제작자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니 생각할 것이 많았다.
또한 단순히 내 역할만 제대로 해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했다.
하나만 어긋나도 작품의 수준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의를 통해 기존의 장면이 삭제되고 새로운 장면이 생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촬영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있는 날마다 회식을 하며 밤늦게까지 토론을 이어 나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없는 게 아니야.’
오히려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탈출>의 시나리오가 점점 더 발전한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김필성 감독이 촬영 후 회식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식의 토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단순히 시나리오의 수준만이 높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의 연기력은 물론, 지정현의 연기력도 좋아졌고 우리 두 사람의 호흡도 한층 더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 박준과 호흡을 맞췄을 때처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짜릿함에 중독돼 김성연이라는 배역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원래도 김성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속 인물이었고, 그런 까닭에 더욱더 몰입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지정현은 나의 이러한 상태를 눈치챈 듯 조언했다.
“연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좋지만 계속 그러면 나중에 힘들어질 수밖에 없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지. 배역과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자네가 없으면 그 배역도 없는 거니까.”
나는 지정현의 조언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김성연 역할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배역과 거리를 두다가도 혹시 이러다 김성역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기우였다.
나는 언제나 김성연 역에 몰입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탈출>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회귀 전 내가 본 것보다 더 훌륭한 <탈출>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탈출>의 찐팬이었기 때문에 미래의 일이 조금 더 기대됐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이전의 촬영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29씬을 찍기 전 연기했던 촬영분이 성에 차지 않는 문제가 아니었다.
뒷부분의 내용이 새로운 촬영 방식을 조금씩 바뀌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이러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촬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왠지 계속 묘하게 뭔가가 거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김필성 감독에게 부탁해 지금까지의 촬영분을 받았고, 마침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씬부터 29씬까지.
그사이에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이 하나 존재했다.
심지어 그것은 그냥 편집으로 뭉개고 갈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김필성 감독은 연일 촬영 중이라 아직 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아…. 이걸 다시 찍자고 말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탈출>의 재촬영을 요구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얼굴 천재 배우님 92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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