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6)
얼굴 천재 배우님-96화(96/200)
얼굴 천재 배우님 096화
91씬은 <탈출>의 진짜 마지막 씬이 아니었다.
이 이후로도 찍어야 하는 씬이 몇 개 더 있었다.
하지만 91씬을 마지막 촬영으로 미룬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91씬은 어떻게 찍어도 절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집이 완료된 영화상으로도 10분이 넘게 상영이 되는 장면이었다.
다양한 액션 씬이 한 장면에 모두 담겨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 촬영을 아침에 모두 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었다.
화포가 터지는 장면은 CG 처리를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촬영도 따로 진행해야 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91씬 안에서 총 아홉 개의 촬영을 진행했다.
일본군의 진격을 기다리는 장면.
일본군을 스나이퍼로 저격하는 장면.
장애물 뒤에 숨어서 기병대를 상대하는 장면.
기병 중 하나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기수를 저격하는 장면.
장애물이 화포에 의해 박살 나는 걸 지켜보는 장면.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서 빠르게 후퇴를 하는 장면.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군을 상대하는 장면.
휘파람으로 창에게 신호는 주는 장면.
대폭발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장면.
이 모든 것을 전부 따로 찍었다.
도저히 원 테이크로 담아낼 수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또 중간중간 액션 배우가 장면을 대신 연기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촬영이 한없이 길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일주일간 91씬 촬영에만 매진했다.
“오케이! 컷!”
“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이제 다시 보지 마요!”
그랬기 때문일까.
김필성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을 때 현장 스태프들의 환호성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4개월간의 고생이 마무리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마침내 91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한 듯했다.
지정현과 장면을 반으로 나눠서 찍은 나조차도 이렇게 지치는데, 현장 스태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환호성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다만 김필성 감독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왠지 저만 악역이 된 느낌인데요?”
확실히 이 며칠간 김필성 감독은 정말 촬영장의 악당처럼 행동했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촬영을 시키는지 보는 사람이 다 질릴 정도였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정현이 김필성 감독의 말을 받았다.
“악당 맞죠. 저도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실제로 지정현의 얼굴은 평소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흙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곳에서 계속 점프를 하고 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정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얼굴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지정현은 메이크업을 받았기 때문에 조금 멀쩡해 보이는 편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악역은 제가 아니라 이시준 배우님이죠. 같이 고생을 하고도 너무 얼굴이 멀쩡하잖아요.”
김필성 감독이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네? 왜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현장 스태프들 중 몇몇이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너무 잘생겼어.”
“억울해.”
“짜증 나.”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흙으로 세수를 해야 화가 풀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말 세수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정현이 김필성 감독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질문을 던졌다.
“편집은 얼마 정도면 끝날까요?”
“이미 진행 중인 부분도 있고. CG가 많지 않은 작품이라 넉넉하게 두 달을 잡고 있어요.”
“11월에는 개봉을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럴 것 같아요. 이미 배급사 쪽에서 날짜를 확정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즉, 나와 지정현 또한 그쯤에서 홍보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특히 개봉 한 달 전부터는 바쁘게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았다.
지정현이 나를 향해서 물었다.
“딱 한 달 쉬고 다시 열심히 뛰어다녀야겠군. 괜찮겠나?”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 * *
한 달간 나는 광고 촬영을 하며 지냈다.
대본이 꽤 들어와 있었지만 4개월을 쉼 없이 달렸기 때문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탈출>에 투자를 하느라 통장의 잔고가 텅 빈 상태였기 때문에 광고 촬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아무리 돈 욕심이 없더라도 너무 궁하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었다.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라도 통장의 잔고를 반드시 채워야 했다.
또한 센수스의 도움을 받아서 또 한 번에 팬사인회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원래 팬사인회가 아니라 팬미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춤이나 노래 등을 준비하기에는 내 체력이 받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팬사인회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규모는 좀 더 키워서 800명을 추첨해 사인을 해 주는 것으로 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사인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점은 최근 페스타 엔터테인먼트 내에서 시럽을 자처하고 있는 정윤석 대표가 팬사인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촬영에 매진하느라 한동안 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구경모, 양이듬, 임희주, 박준, 신디, 서명희 등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또한 함께 작품을 했던 작가, 감독 등도 따로 만났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체포>의 정수민 작가와 <황녀님, 동거합시다>의 정수진 작가가 자매라는 사실이었다.
‘어쩐지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자매였다니….’
기막힌 인연이었다.
참고로 두 사람 중 정수진 작가가 언니였다.
두 사람은 나와 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같은 업종에서 가족이 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마침내 나와 지정현은 본격적으로 영화 홍보에 돌입했다.
우리 두 사람의 첫 번째 스케줄은 당연히 제작 발표회였다.
“<탈출>의 감독님과 두 배우님을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박규림의 소개 멘트와 함께 우리 세 사람이 무대 위로 올랐다.
오전에 기자 및 평론가의 시사회를 마치고 바로 진행하는 제작 발표회였기 때문에 조금 긴장이 됐다.
제작 발표회가 처음인 김필성 감독이 유난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에 비해 제작 발표회 경험이 있는 나와 지정현은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나는 <사랑을 캐스팅하겠습니다>와 <황녀님, 동거합시다>를 통해 제작 발표회를 두 차례 경험한 적 있었다.
지정현은 워낙 제작 발표회를 많이 해서 꼽을 수도 없었고.
‘응?’
긴장을 많이 한 탓일까.
맨 앞에서 걷고 있던 김필성 감독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어색했다.
그리고 곧 김필성 감독의 신발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뭐지?’
수상한 검은 물체.
뭔가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키 높이 깔창이었다.
뒤이어 걷던 지정현 또한 키 높이 깔창을 발견한 듯했다.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가 고개를 돌리며 애써 모른 척했다.
깔창을 발견한 건 무대 위에 있던 우리만이 아니었다.
무대 아래 기자석에서 약간의 웅성임과 함께 셔터가 터지고 있었다.
카메라가 평소보다 아래쪽으로 향한 것이 김필성 감독이 흘리고 간 깔창을 찍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원래는 나도 지정현처럼 모른 척하고 지나려고 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걸 보니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키 높이 깔창을 주웠다.
그런 뒤 자연스럽게 수트 안주머니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다소 경직돼 있던 제작 발표회 현장이 갑자기 웃음바다가 됐다.
괜히 주운 건가, 그냥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키 높이 깔창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았다.
김필성 감독은 사람들이 왜 웃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나와 지정현은 김필성 감독을 뒤따라서 침착하게 지정석에 착석했다.
그런데 진행을 해야 하는 박규림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아하하!”
박규림이 간신히 웃음을 참고 마이크에 입을 댔다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지정현도 참지 못하고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웃었다.
오로지 나와 김필성 감독만이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미치겠네….’
사실 나도 마음 편안히 웃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웃어도 되는 일인지 몰라서 참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서 웃는다면 김필성 감독이 너무 민망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후.
박규림이 두어 차례 심호흡하더니 다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진지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규림은 아예 다른 이야기로 제작 발표회를 시작했다.
“저기요. 이시준 배우님?”
나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뒤늦게 마이크를 켜고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아까 들어오면서 주운 게 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박규림의 질문에 또 한 번 기자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모든 사람의 관심이 내 품에 감춰져 있는 키 높이 깔창에 쏠려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키 높이 깔창이요.”
“아하하. 아니. 그걸 도대체 왜 주웠어요? 그게 누구 건지 알고 있는 거예요?”
“네. 알고 있죠.”
“누구 건데요?”
“김필성 감독님이요.”
그제야 김필성 감독이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신발을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또 한 번 제작 발표회 현장이 뒤집혔다.
김필성 감독이 자신의 신발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김필성 감독이 얼른 마이크를 쥐더니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시준 배우님. 얼른 돌려주세요. 그거 제 자존심이에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말을 하는 김필성 감독의 목소리에는 민망함이 묻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김필성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걸로 제작 발표회의 이슈를 만들 생각이구나.’
4개월간 밤늦게까지 회식하며 토론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척하면 척, 김필성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정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정현이 마이크를 손에 쥐더니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요. 시준 씨. 어서 감독님께 자존심을 돌려드리세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품에서 키 높이 깔창을 꺼냈고 김필성 감독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지갑인 줄 알고.”
회심의 애드리브였고 이번에 제작 발표회 현장은 도저히 다시 시작하는 게 힘들 정도로 난리가 났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얼굴 천재 배우님 96화
저 자│빌리언맨
발 행 인│원스토어 주식회사
펴 낸 곳│원스토어 주식회사
출판등록│제 2016-000040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146번길 20, 원스토어 주식회사
ISBN│979-11-6795-057-4
정가│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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