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08)
108
프란츠 발더 감독님은 전술적 특색이랄게 없다.
축구 좀 본 사람이라면 펩 과르디올라나 위르겐 클롭 혹은 조세 무리뉴 같은 감독을 말할 때 떠오르는 전술적 색채가 있을거다. 보다 심화된 축덕이라면 마르셀로 비엘사나 랄프 랑닉같은 덜 유명하면서도 전술적 특색이 강렬한 감독을 떠올릴수도 있겠지.
당연히 전술적으로 무색무취한 프란츠 발더 감독님은 이러한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이러한 감독은 축구계의 많은 감독 중에서도 극소수.
이런 유형은 성공하면 축구계의 전술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선구자가 되고, 실패하면 되도 않는 전술을 구상하는 괴짜가 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감독이다. 천재적인 재능과 운이 따라줘야 성공하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의 감독들.
그렇다면 보다 많고, 보다 대중적인 유형인 선수에 맞춰 전술을 구성하는 감독 유형에 속할까?
이를테면 카를로 안첼로티나 지네딘 지단 같은.
역시 아니다.
네임벨류를 차지하고서라도 프란츠 발더 감독님은 선수 개개인의 스타일을 고려하여 합을 완성시키는 감독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럴 능력이 안 되는 것 같다.
자기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것도 어렵지만, 11명의 선수 개개인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전술을 선보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가능하니까 카를로 안첼로티고 지네딘 지단이지.
그렇다고 니겔스만이나 투헬처럼 엄청난 전술적 유동성으로 무장한 감독은 더더욱 아니고.
프란츠 발더 감독님은… 그냥 덕장이다.
굳이 따지자면 카를로 안첼로티 유형이랄까.
물론 그 ‘카를로 안첼로티’와 비슷하다고 하면 어딜 삼류 찌끄레기 감독을 위대한 감독과 비비냐고 하겠지만, 굳이 따지면 그러한 유형이라는 거다.
선수단 관리에 일가견 있는 덕장이란 점과 큰 틀에서의 전술은 제시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맡긴다는 면에서 말이다.
대신 감독님에겐 더욱 큰 재능이 있었으니,
“안 되겠어. 라인을 높이고, 미드필더 진영에서 좀 더 횡적으로 움직임을 가져가보자.”
“함부르크가 예상보다 소극적이니 괜찮을 것 같아요. 지나치게 홍을 신경쓰는 것 같으니까, 홍, 이번엔 반대쪽으로 전환해보자.”
바로 선수를 보는 안목.
오랜 지도자 생활 대부분을 코치로 보낸 프란츠 발더가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게 된 이유, 심지어 헤드 코치가 아닌 전반적인 구단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매니저’로 임명된 것엔 바로 그 뛰어난 안목이 있었으니.
자신의 부족한 전술적 능력을 전술적 식견이 탁월한 코치로 보완하고, 축구 지능이 높은 똑똑한 선수를 영입하여 팀을 구성한 것. 덕분에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실시간으로 부분적이나마 전술에 수정을 가할 수 있었다.
“이해했어 홍?”
“Ja.”
지난 3개월 간 열심히 독일어 공부를 했지만 아직 프리토킹은 무리다.
그러나 라인을 높인다거나, 미드필더의 횡적 움직임, 전환 같은 축구 용어에는 익숙해졌끼에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반 20분.
골라인 아웃으로 어수선한 사이 주장을 위시로한 고참 선수들의 짧은 의견 교환 후 경기가 재개됐다.
‘아 답답하네.’
여전히 라인을 깊이 내리고 수비적인 운영을 보여주는 함부르크의 진영을 보니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이 샘솟는다.
아니, 명색이 1부 리그팀이 2부 리그팀을 상대로 버스를 세우는게 말이 돼!?
감독님도, 우리 선수들도 함부르크가 이렇게 나올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 이번 경기를 대비한 우리팀의 컨셉은 선 수비 후 역습.
1부 리그팀을 상대하는 2부 리그팀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전술이었다.
그래서 공격적인 치차로를 대신해 수비적인 히바우두를 투입하고, 평소보다 라인도 내리며 수비력에 신경썼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하니 함부르크가 더 수비적인 상황.
경기 시작 직후, 함부르크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했다.
서로가 잔뜩 웅크린 상황이다보니 전반 20분이 되도록 경기는 지지부진.
점유율은 6:4로 우리가 조금 앞서지만 의미없이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소위 ‘점유율 딸딸이’용이기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번에도 후방에서 천천히 오가던 공이 이쪽으로 향한다.
압박 라인이 낮기에 패스를 받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반대로 상대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아군 진영에 가까운 위치에서 공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상황.
편하게 공을 잡는 대신 위험 지역에서 멀어지다니…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네.
툭, 툭, 가볍게 공을 밀며 다가가자 바짝 긴장한 함부르크 선수들이 자세를 낮춘다.
좀전에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드리블을 시도했는데, 2명까지 어찌저찌 제처냈다. 2명을 제치니 또 2명이 달려드는 바람에 뺏기고 말았지만.
실패로 끝나긴 했어도 좁은 공간에서 순식간에 2명이 돌파당했으니 잔뜩 신경이 곤두섰겠지.
상대 선수를 앞에 두고 짧은 대치가 이어졌다.
경솔하게 공을 빼앗으려 했다면 돌파했겠지만 섣불리 발을 뻗지 않으니 쉽게 들어갈수도 없다. 이 선수를 제쳐봐야 더 많은 상대 선수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그렇다면 미리 약속한대로 전환을 시도할 수 밖에.
돌파할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기울이자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선수들이 한 발짝 씩 간격을 좁힌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반대쪽에서 치켜들어가는 우리팀 선수들.
적절하게 하프 스페이스를 파고드는 우측 윙 니콜라 스비예츠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은 기회가 열리겠지만 아쉽게 내 패스 실력은 그 정도로 정밀하지 못하다.
이럴 땐,
퉁!
한 번 옆으로 공을 차며 자세를 잡은 뒤, 우측 풀백 치치를 향해 크게 공을 연결했다.
날 지나치게 경계하느라 전반적으로 진영이 좌측으로 쏠려있던 함부르크의 우측면은 텅텅 비어있었다.
터치라인을 따라 무인지경의 우측면을 파고드는 치치를 향해 정확하게 연결되던 공은—
“고!!”
순식간에 나타난 윤혁 선배에게 차단당했다.
치치가 공을 받기 위해 멈춘 순간, 쏜살같이 그 앞에서 공을 컷트해낸 윤혁 선배의 외침.
‘젠장 읽혔나?’
그리고 내가 전환 패스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웅크려있던 함부르크 선수들이 우리 진영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고 있었다.
“치치! 패스 못하게 막아!!”
내 외침이 닿기도 전, 재빨리 압박에 들어가는 치치.
그러나 윤혁 선배는 가뿐하게 압박을 피해내며 오히려 뻥! 롱패스를 보냈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공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아군 진영을 향했지만, 이미 아군 진영엔 쇄도해 들어온 함부르크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상황.
아군 센터백 듀오가 잽싸게 상대 장신 공격수 우베 젤러를 마크했지만, 윤혁 선배가 노린 곳은 중앙이 아니었다.
치치가 나가며 비어있던 우측면. 그리고 그곳을 향해 맹렬히 달라나가는 상대 우측 공격수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정확히 공을 이어받고, 그대로 중앙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호르스트가 공을 받고 크로스를 올리는 그 몇 초, 짧은 시간 성큼성큼 패널티 박스 안으로 뛰어온 우베 젤러가 기다렸다는 듯 높게 뛰어오르고, 정확히 그쪽을 향해 쏘아지는 공.
함부르크의 폭격기가 헤딩을 시도하는 순간, 뒤늦게 쫓던 주장 알렉산더 마이어가 러닝 점프를 뛰었다.
공중에서 거구가 겹치며 퉁, 누구 머리를 맞았는지 모를 공이 패널티 박스 외곽으로 떨어지며 위기를 넘기는가 싶은 순간.
어느새 아군 파이널 써드까지 뛰어온 윤혁 선배가 허공에 뜬 세컨볼을 그대로 걷어찼다.
뻥!
북이 터지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맹렬히 쏘아진 공은 얼어붙은 골키퍼의 옆을 지나 골망을 흔들었다.
“…골! 함부르크의 선제골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팬이 분명한 장내 아나운서의 침울한 선언에 얼어붙은 듯 고요한 경기장 한 켠, 옹기종기 모여있던 원정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1부 리그팀이 수비적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에 야유를 보내던 것이 무색할 커다란 함성이었다.
“이런 씨발.”
* * *
“골!!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아우~ 가슴이 시원해지는 멋진 중거리슛이었습니다. 선제골을 기록한 건 백넘버 17! 윤혁 선수입니다!!”
“네~ 아주 멋진 슛이 나왔죠? 리플레이 화면을 보면… 네, 하프 발리였군요. 아주 정확히 때렸습니다, 윤혁 선수.”
코리안리거가 맞붙는 준결승전이란 타이틀로 시청자는 잔뜩 모았건만, 팥없는 찐빵마냥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기력에 쓸데없는 신변잡기로 시간을 떼우던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포효했다.
노잼인 경기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마법, 선제골이 터졌다.
그것도 한국인 선수가, 멋드러진 하프 발리 중거슛으로!
현지 중계진도 의식했는지 세레머니를 하는 윤혁 선수를 비춘 뒤 교차하듯 한숨을 내쉬고 있는 홍민준을 비춰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요.”
캐스터의 말처럼 단지 그림이 되니까 비쳐줬을지도 모르지만.
“홍민준 선수의 패스가 좋았는데… 윤혁 선수의 움직임이 아주 뛰어났어요. 예상했다는 듯 가로채고, 탈압박 후 바로 롱패스. 그리고 곧장 상대 진영으로 침투해들어가 세컨볼을 골로 연결시키기까지.”
“이야~ 윤혁 선수 대단하네요. 일련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왜 함부르크의 에이스, 중원의 사령관 소리 듣는지 알 수 있는 멋진 선제골이었습니다.”
“홍민준 선수도 공을 기록할 수 있으면… 어, 어어? 홍민준 이거 들어가나요? 들어갑니까!?”
재개된 경기.
선제골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헐거워진 함부르크 진영을 파고드는 홍민준을 향해 정확히 패스가 연결됐다.
“상대가 너무 많— 팬텀! 라 크로케타로 순식간에 두 명을 벗겨내, 슛, 아니 주춤주춤, 슈, 제치고!”
캐스터가 말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연이은 페인팅 끝에,
“슛팅!!!”
패널티 박스 외곽에서 홍민준이 찬 슛팅이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