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1)
011
김하연은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지난번에 한 번 봤던 낡은 건물들.
“아 씨. 여긴 왜 이렇게 교통이 불편해.”
배차 간격이 30분이나 되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지네.
투덜거리며 낡은 건물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며 목적지를 향했다.
처음이라면 헤맬 것이 분명한 복잡한 길이지만 그래도 한 번 왔던 곳이라고 하연은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좁은 건물 사이를 통과하자마자 확 넓어지는 시야에 광활한 필드가 펼쳐졌다.
초록색 잔디로 가득 찬 축구장에선 이미 경기가 시작된 듯 감독과 선수들의 우렁찬 고함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역시 관중이 없네.”
대학 리그가 그렇지 뭐.
지장대 응원단의 일원으로 종종 축구부 경기에 응원을 가곤 했던 하연은 대학 리그라는 것이 얼마나 관심을 못 받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만해도 개막전인데 스탠드에서 지켜보는 관중이라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랑 고작 미녀 하나…
“엥? 저 여잔 뭐지?”
스탠드 구석, 깨진 관중석 틈에서 자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여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꽤나 수상쩍은 차림새.
새까만 볼캡을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 것이…
‘가지가지하네. 지가 뭔 연예인이야?’
코웃음치는 하연이지만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의문의 여자가 상당한 미녀라는 것을.
이곳에 온 목적도 잊고 뭐하는 년인가싶어 슬금슬금 근처로 다가가니 솔솔 부는 바람에 풍겨오는 달큰한 향기.
‘킁킁. 어쭈? 이거 보테가 향수 아냐?’
한 병에 수백 만원이나 하는 값비싼 브랜드 향수.
그 중에서도 하연이 노리던 ‘보테가 넘버8’이란 향수였다.
시향조차 하지 않는 고급 브랜드지만 언젠가 꼭 사고 말거란 집념으로 어찌저찌 향기를 맡아본 덕분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뭐하는 년이지.’
더욱 호기심이 생긴 하연이 살짝 거리를 두고 옆에 앉자 그제야 여자가 흘낏 쳐다본다. 그리고 그걸로 끝.
하연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문의 여자는 꼰 다리 위에 턱을 괴고 경기를 보는데 여념이 없었기에 하연은 안심하고 여자를 힐끔거릴 수 있었다.
잡티하나 없이 윤기가 흐르는 새하얀 피부와 높고 곧은 콧대, 붉고 도톰한 입술.
푹 눌러쓴 볼캡과 짙은 선글라스를 뚫고 뿜어지는 예쁨 아우라가 트루뎀으로 와서 박힌다.
‘미친! 저거 그라이아 모자네? 선글라스는 미느마뇽이고.’
인터넷으로밖에 구경해본 적 없는 브랜드의 향연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대체 뭐하는 년이지?
경악한 하연이 대놓고 쳐다보자 무시하고 있던 여자도 불편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본다. 찔끔한 하연이 모른 척 시선을 돌리니 다시금 축구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여자.
공 하나를 두고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축구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 눈치를 살피던 하연은 몰래 여자의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이년 걸치고 있는 거 아는 사람?
순식간에 숫자가 사라지더니 올라오는 답변들.
—지경 : 얜 남자보러간더니 웬 여자를 도촬하고있네
—수연 : 우리 하연이 금단의 사랑에 눈을 떴구나? 사진만봐도 예쁨이 뚫고나오네 아주
—박아영 : 야 저거 청바지 라우스아님?
—혜진 : 이거 맞는듯?
—혜진 :
미친년들의 헛소리를 씹으며 검색하던 중 맴버 하나가 올린 링크를 타고 들어가보니 옆의 여자가 입은 것과 똑같은 스키니가 나타난다.
“헉!”
“아이 씨.”
“죄, 죄송….”
이게 얼마야.
상상 이상의 가격에 놀라 숨을 들이키니 여자가 짜증을 낸다.
기세에 눌린 하연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어릴적부터 예뻤던데다 본인 역시 외모에 관심이 많아 잘 꾸미고 다니는 하연은 언제나 무리의 중심이었다. 그것이 동성이건 이성이건.
당연히 콧대 높은 하연이 어디가서 쉽게 고개 숙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상대에 따라 다른 법.
이 와중에 눈치없이 단톡방이 자꾸 알림을 울려댄다.
—수연 : 하연하연 누구임? 아는 사람이야?
—혜진 : 와 모자도 핵비싼거네
—박아영 : 알긴 개뿔 어디서 인스타 사진 하나 긁어왔겠지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박아영 이년은 자꾸 신경긁네.
도움이 안 되는 단톡방 알림을 무시하며 하연은 연신 옆에 앉은 여자를 힐끔거렸다.
‘피부결 봐. 얼마나 관리 받으면 저래. 수분크림 뭐 바르지?’
부럽다.
하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화들짝놀랐다.
어딜가나 수컷들의 관심을 독차지할만큼 미모로 꿇려본 적 없는 하연은 난생 처음 만난 더욱 우월한 포식자를 앞에두고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동경.
마치 롤모델을 만난 소녀마냥 여자를 훔쳐보던 하연은 이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씨… 어디서 이런 년이 나타나서는.’
괜히 입술만 삐죽이는데 계속 울리는 핸드폰.
—지경 : 만났어?
지경이의 갠톡이었다.
—아직
—지경 : 오늘 개막전이라니까 분명 있을거야
—지경 : 말했지? 딱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지경 : 잘 찾아봐
아 맞다.
여기에 온 이유를 상기하며 하연은 그제야 경기에 시선을 주었다.
‘어디보자.’
우리 귀요미가 어디에 있나.
1학년이랬으니까… 벤치를 훑어봤지만 웬 감자투성이들밖에 없다.
‘이쪽 팀이 아닌가?’
반대편 벤치를 훑어도 감자돌이 투성이.
하연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응원단 경력 2년.
축구에 하나도 관심없지만 운동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응원단 노릇하며 축구부 돌아가는 사정쯤은 훤하다.
‘분명 1학년 신입생이랬는데… 아예 명단제외? 아니면 설마…?’
설마하는 심정으로 필드를 살폈다.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빨빨 뛰어다니는 남자들의 모습. 하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가 그리 재밌다는건지.
이해할 순 없지만 하연은 잘 안다.
남자애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에 대해 여자가 조금 아는 척하면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특히 운동부 남자들.
운동만해서 단순한 녀석들이라 꼬시는 것도 쉽다. 그냥 축구 좀 아는 척 해주고, 경기에서 멋있었다, 패스가 좋았다, 드리블이 대단했다 같이 칭찬 좀 해주면 금방 헤벌레해지니까.
선수들을 살피던 하연은 금방 지경이 말한 남자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새하얀 피부에 잘생김이 뿜어져나오는 선수가 있었으니까.
‘와… 역시 잘생겼다.’
일주일전, 지장대 응원단으로 왔을때도 봤지만 다시봐도 진짜 잘생겼다.
지경이 중간에 낚아채가지만 않았어도 자기꺼였는데. 하연은 빠득빠득 이를 갈며 잘생긴 남자애를 구경했다.
‘확실히 실력은 있나보네. 신입이 개막전 선발로도 뛰고.’
공을 잡고 연거푸 드리블을 성공시키는 모습.
축구를 잘 모르는 하연이 보기에도 화려한 발재간이 뭔가 달라보인다.
‘잘 생긴 애가 뛰기도 잘 뛰네. 체력 좋은거봐.’
경기장 위의 모든 선수가 활발하게 뛰고 있건만 하연의 눈에는 오직 한 명밖에 안 보였다.
‘역시 지경이 말대로 축구 선수라 스테미너가 쩌나보다.’
땀 흘리는 미소년의 모습을 보니 친구의 말이 떠올라 벌써부터 밑에가 움찔움찔거린다.
하연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짐승… 진짜 괴물이야. 밑에 빠지는 줄 알았어.’
자신이 찜해놨던 어린애를 뺏어먹은 이후, 친구는 무슨 일이 있는지 살이 쪽 빠지고 다클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다.
대체 뭔가 싶어 물어보니 처음엔 대답을 피하더니만 나중엔 못 버티겠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진실을 실토하는 게 아닌가.
‘쟤가 그렇게 절륜하다니.’
생긴 건 호리호리한 미소년인데… 누구보다 친구의 남성편력을 잘 아는 하연이기에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정작 본인이 그 모양 그 꼴이되서 그러는데 믿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직접 확인하러 왔다.
‘도와줘, 하연아.’
‘미친년아. 그렇게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너무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서 문제야.’
‘그렇게 좋은데 뭐가 문젠데?’
‘힘들어.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 그만해야 하는데… 걔가 하자그러면 벌써 밑에서 줄줄 흐르고, 미칠 것 같아.’
난교에도 끄덕없던 친구의 애원.
땀을 흘리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미소년을 보는 하연의 얼굴이 벌써부터 흥분으로 발갛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 옆.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그런 모습을 힐끔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뭔데 옆에서 헥헥거리지. 미친년인가.’
* * *
경기 시작 전, 감독님은 말했다.
“오늘 경기에서 볼운반은 홍민준이가 맡는다. 공 잡으면 밀어줘.”
빠르고 테크닉 좋은 선수가 역습의 첨병을 맡는 건 어딜가나 똑같다.
그리고 호진대에서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나라는 것은 코칭 스탭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인정하는 바, 시작부터 공을 몰아받을 수 있었다.
대학 리그 중위권 전력이라는 지장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는데, 그보다 전력이 처지는 개막전 상대인 하고대라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때보다 스탯도 딸리고, 체력도 생각해야 돼.’
전반전만 뛰고 교체될 생각이 아니라면 체력 분배에도 신경써야 한다.
스탯도 낮아졌는데 체력 안배까지 신경쓰다보니 생각만큼 돌파를 시도할 수 없었다.
공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무의미하게 볼을 돌리던 선수들이 나를 향해 패스를 돌렸다.
공격의 물꼬를 터달란 의미겠지만 역습 상황도 아니고 진형이 잘 잡힌 적진을 돌파하긴 어렵고, 체력도 고려해야하니 얌전히 뒤로 공을 돌렸다.
그렇게 몇 번 반복되고 어쩔 수 없이 패스 플레이를 통해 적의 파이널써드까지 진입했다가 볼을 탈취당한다.
개막전이라 그런지 소극적인 상대는 수비에 집중할 뿐이라 좀처럼 역습 기회가 나지 않았고, 답답함에 마음에 두어 번 드리블 돌파를 시도한 것이 전부.
물론 그 두 번 모두 드리블 돌파에 성공했지만 수비 진영이 잘 잡혀있던 탓에 결정적인 찬스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리고 맞이한 하프타임.
감독님은 전술판을 내리쳤다.
“홍민준이! 제대로 안 해!! 경기뛰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