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27)
127
새삼스럽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던게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의 팀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하는 플레이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주인공이었다.
어느 팀이나 돌파력이 좋은 선수는 드물다. 발이 빨라야하고 개인기가 좋아야하며, 트래핑 능력이나 반응속도도 뛰어나야 한다.
이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도 실제 경기에서 드리블 돌파를 성공시키는게 어려운데, 매 경기 1~2명의 선수를 밥먹듯 제쳐내는 선수라면 어떨까.
감독이라면 누구나 이런 선수를 활용하고 싶어지기 마련.
특히 성적에 자리가 걸린 성적지상주의의 한국 초중고 축구부 감독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당장 공격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수를 위주로 팀을 구성할 수 밖에 없다.
상태창을 얻은 대학교에서도,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심지어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난 주인공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고등학생 시절이나 바르셀로나 시절 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하는 팀에서 뛰어왔다.
지금만해도 그렇다.
내가 왜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했던가.
후반기 임대를 통해 2부 리그를 압도하며 많은 구단에서 이적 제의를 받았다.
그 중에는 프랑크푸르트보다 훨씬 네임벨류가 높은 팀도,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도 있었지만 내 선택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내가 전술에 맞추는 것이 아닌, 팀 전술이 나에게 맞춰지는 것.
그것이 가능한 팀이 프랑크푸르트였으니까.
우리팀의 공격시 전술은 간단하다.
좌측 풀백이 측면 공격수처럼 높게 전진해서 좌측면을 맡아주고, 중앙 공격수 도날드 쿡은 상대 센터백 사이에서 경합하며 시선을 끌어준다.
반대편인 오른쪽에선 알베르토 몬디가 최대한 넓게 벌리며 수비 간격을 벌리고, 치차로가 특유의 탈압박 능력을 살린 드리블을 통해 볼을 운반하여 하프 스페이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기회를 노리는 내게 공을 전달해주는 것.
쉽게말해 나를 향한 압박을 분산시키고 최대한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주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어그로를 끌어주는 거다.
동료들의 전술적 움직임 하에서 나는 보다 자유롭게, 보다 압박에서 벗어나 1:1 혹은 1:2 상황을 조성하여 특유의 돌파력으로 공격 기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팀의 공격 패턴.
나는 오로지 ‘나’에게 맞춰진 전술에 익숙해져 축구의 기본을 망각하고 있던거다.
‘이건 뭐… 거의 날강두급이었네.’
보다 화려하고, 보다 돌파력이 좋다는 것만 빼면 ‘탐욕’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플레이 아닌가.
뒤늦게 깨달았다.
꼭 내가 골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걸.
골을 넣는 선수가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걸.
물론 공은 중요하다.
골이야 말로 축구의 꽃.
괜히 공격수가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게 아니고, 괜히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게 아니다.
그러나 매 경기 골을 넣는것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골을 넣는 선수만이 축구의 주인공이라면 케빈 더 브라위너나 메수트 외질, 디 마리아, 지네딘 지단, 피를로, 알론소 같은 선수가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심지어 파올로 말디니, 잔루이지 부폰, 카푸, 알레산드로 네스타 같은 수비 포지션의 선수는 어떻게 주인공급 대우를 받았겠는가.
공격 포인트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맞지만, 다른 중요한 요소도 많다.
‘중요한 건… 영향력이야.’
매 경기 골을 넣지 않아도 누구보다 빛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경기에서 주인공일 필요는 없어.’
어차피 잘하면 자연스레 주인공이 되어 있을테니까.
그라운드에 나서며 도날드 쿡과 알베르토 몬디에게 말했다.
“적극적으로 패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해서 골을 노려. 내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공간을 만들어줄게.”
거구의 흑인과 잘생긴 이탈리안이 미소를 짓는다.
공격수인 도날드 쿡은 말할것도 없고 알베르토 몬디 역시 프리 시즌, 내 위주의 전술에 불만을 표할만큼 주인공 기질이 있는 선수.
그리고 재개된 후반전.
이번에도 패스를 받는 내게 황소처럼 몸을 들이미는 알렉스 리차드를 피해내며 오버래핑해온 좌측 풀백 브루노에게 공을 보낸다.
전반전처럼 드리블 돌파를 고집할거라 예상했는지 움찔한 녀석이 재빨리 뒤따라오지만,
“리턴!”
달려오던 관성이 있는데 날 따라잡을 순 없지.
브루노와의 2:1 패스로 가볍게 마크에서 벗어나자 곧장 공간을 좁히는 모나코 선수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예상과 다른 플레이를 선보였다.
드리블 돌파할 것처럼 잔발을 치며 모나코 선수들의 어그로를 끈 뒤,
퉁!
패스를 주고 좌측면을 계속 파고들어가던 브루노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퍼스트 터치로 차기 좋게 공을 잡아둔 브루노는 깊게 발을 디딛고는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날카롭게 휘어지며 모나코 패널티 박스 안을 향하는 공을 향해 거구의 흑인이 몸을 날린다.
193cm의 신장과 90kg가 넘는 거구에도 흑인 특유의 탄력적인 신체로 들러붙는 센터백과 경합하며 크로스에 머리를 맞춘 도날드 쿡의 헤딩 패스가 반대쪽 패널티 박스로 흐르고,
“반대쪽!!”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알베르토 몬디가 강하게 공을 걷어찼다.
* * *
“골!! 골입니다!! 유로파 리그에서 팀의 소중한 첫골이자 만회골을 기록하는 알베르토 몬디!!”
“방금은 팀적인 움직임이 아주 좋았네요. 하프 타임때 프란츠 발더 감독이 재정비를 아주 잘 한 것 같죠?”
“그렇습니다. 홍민준 선수가 기존과 다른 패턴을 보이며 좋은 기점 플레이를 보여주네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번 골에 홍민준의 역할이 컸다는 건 축구 좀 본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모든 팬이 축구에 빠삭한 건 아니다.
해설진의 역할은 이럴때 누구나 알기 쉽도록 풀어 설명해주는 것.
곧 이어지는 리플레이 화면을 보며 해설위원이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보세요. 홍민준 선수가 공을 잡자마자 알렉스 리차드가 곧장 붙으려고 하는데, 전반과는 다르게 영리한 2:1 패스로 압박에서 벗어났어요. 리턴 패스를 받아 돌파할 것처럼 모나코 선수들을 끌어들인 뒤, 좌측면 자유로운 상태인 브루노 선수에게 패스해서 오픈 찬스를 만들어주죠.”
“아~ 그렇군요. 홍민준 선수가 기회를 만들어준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좋은 크로스. 여기에 도날드 쿡 선수의 판단도 좋았습니다. 철벽으로 불리는 몬타나 알바로 선수와의 헤딩 경합 장면입니다. 공중에서의 자세를 보면 기울었죠? 도날드 쿡 선수가 욕심을 냈으면 아마 빗나갔을텐데, 영리하게 옆으로 흘려준 덕분에 침투해 들어온 알베르토 몬디 선수가 프리하게 찬스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적인 플레이였네요! 팀적인 합이 좋아진 것 같은데… 그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볼 수 없던 패턴 플레이죠?”
“그간 프랑크푸르트의 단점으로 지적받던 부분이 지나치게 홍민준 선수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었는데, 오늘 유로파 경기를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해온 모습입니다. 이번 시즌 처음 보는 부분 전술인데요. 중요한 건 우리 홍민준 선수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플레이도 가능하다고 증명해냈군요.”
* * *
이어진 경기, 나는 연계에 집중했다.
공을 받으면 항상 드리블 돌파를 즐기던, 좋게보면 개인 능력으로 공격 찬스를 만드는거고 나쁘게보면 공을 끄는 플레이를 해오던 나다.
오랫동안 볼을 소유하는 플레이를 즐겨하는 날 대비했던 모나코 선수들은 원터치로 패스를 연결하는 내 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연신 위협적인 기회를 내주었고,
“치차로!”
후반전 시작 무렵, 공격진과 작당했던대로 후반 15분이 지나는 순간 다시금 경기 운영에 변주를 주었다.
민첩하게 상대의 압박에서 빠져나온 치차로의 패스가 짝을 이룬 중앙 미드필더 세르게이를 거쳐 아래로 내려온 도날드 쿡, 그리고 다시 치차로를 향한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움직임에 일순 모나코 선수들이 마크맨을 잃고 공간이 벌어진 틈을 파고드는 내 앞으로 정확히 배달되는 공.
내가 공을 잡자 곧장 달려들것같던 알렉스 리차드가 순간 움찔거린다.
내려와서 연계에 참여했던 도날드 쿡이 그 거대한 덩치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녀석의 옆을 스쳐지나가고 있으니, 이번에도 내가 패스할까 걱정되겠지.
그러나 이번엔 아니다.
녀석이 나와 도날드 쿡 사이에서 아주 잠깐 움찔한 사이, 내 발은 전력으로 그라운드를 박차고 있었다.
뒤늦게 패스가 아닌 돌파임을 깨달은 알렉스 리차드가 달려들지만,
“헉!”
별다른 기교도 필요없다.
녀석이 어깨를 앞세우고 달려들 때, 그저 공을 길게차고 순간속도로 녀석을 제쳤을 뿐.
녀석이 1초만 빨리 출발했어도.
아니,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주저하지만 않았어도 녀석을 제칠 탄력을 받지 못했겠지. 그러나 녀석은 패스를 염두에두고 작은 틈을 보였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슛이다!!”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눈치챈 알렉스 리차드가 재빨리 모나코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확실히 나에 대해 꽤 분석하고 나왔잖아? 평소라면 어떻게든 슛팅으로 연결했겠지.
툭.
슛을 할 것처럼 깊게 디딤발을 박자 모나코 수비진이 몸을 날린다.
슛팅 코스를 절묘하게 막아서는 필사적인 몸부림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
그리고 그곳에는,
펑!
나와 도날드 쿡의 어그로에 텅 빈 패널티 박스 정면으로 달려온 치차로가 있었다.
삑, 삐익!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끝났다.
2:1.
D조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 모나코 원정에서 거둔 갚진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