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28)
128
새삼스럽지만 우리 감독님은 인격자다.
인상만 점잖은 노신사가 아니라 실제 성격 역시 신사 그 자체다.
“오늘 경기에서 그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볼 수 없던 연계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계속 지적받아오던 단조로운 공격 패턴에 어떤 변화를 주신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감독님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건 제가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한 것이죠.”
“네? 그렇다는건 첫번째 골의 연계 플레이가 감독님의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인 결과라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저는 경기 시작 전 큰 틀에서의 움직임을 알려줄 뿐, 경기 중 실시간으로 전술에 변화를 주고, 패턴 플레이를 하는 건 선수들입니다. 우리팀엔 영리한 선수가 많으니까요.”
어찌보면 감독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발언일수도 있다.
결국 공격에서의 정교한 부분 전술을 감독이 아닌 선수들 개인 기량에 의지했는 뜻이니까.
감독에 따라 지시하지 않은, 선수들의 자체적인 움직임에 분노할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프란츠 발더 감독님은 오히려 잘했다고, 영리한 플레이었다며 우리를 칭찬했다.
“저는 전술적인 식견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전술을 짤 수 없죠. 그러니 선수 개개인이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빠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게 중요합니다. 우리팀에는 그런 뛰어난 선수가 많고요.”
멋대로 후반전 전술적 움직임을 주도적으로 바꾼 나와, 나와 작당한 맴버들을 향해 불호령은커녕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감독님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선수가 어디있으랴.
“민준. 전술적 교착 상태에서 스스로 해답을 도출해낸 자네의 성장에 감탄했다네. 본래 자네의 전술적 식견을 성장시키는건 내 몫이었건만, 내 도움 없이 훌륭히 성장했군. 잘했네.”
‘우리 감독님 너무 착하다.’
이게 대인배라는건가.
소인배인 나는 진정한 대협의 풍모에 감탄,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내가 도와주겠네. 앞으로 정규 훈련이 끝나면 30분씩 나와 영상 분석을 하세나.”
“…네? 잠깐, 지금 뭐라고—”
“허허. 영상은 내가 준비할테니 자네는 필기구만 챙겨서 오게. 내가 아날로그라 전자기기는 영 익숙하지 않으니 꼭 필기구여야하네. 난 손글씨가 좋거든. 허허허.”
“가, 감독님?”
“어허허허.”
대, 대협…?
* * *
생에 첫 유럽 대항전을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하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날, 나는 곧장 에바를 만났다.
에바는 팀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팀 내 가장 친한 동료 치차로의 홈파티에서 만난 라틴계 미녀.
치차로 녀석의 사촌의 사촌 누나랬나? 뭔가 사돈의 팔촌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친하지 않은 사촌 느낌의 관계같더니, 실제로 지금은 치차로보다 나랑 더 친해졌다.
…하긴, 정기적으로 살을 섞는데 친하지 않은 친척보다야 친하겠지.
치차로의 홈파티에서 처음 본 이후 에바와는 섹파가 됐다.
“듣고 있어?”
“물론이지.”
아니. 섹파보단 친구… 그러니까 섹스 프랜드에 가깝다고 할까.
단순히 파트너라기엔 좀 많이 친해져서인지 종종 만나서 섹스보단 수다를 떠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가 뭐라고 말했는데.”
날카로운년.
분명 눈을 마주하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는데, 딴 생각을 좀 했더니 귀신같이 눈치챈다.
오하린이나 윤다예도 그러더니 이건 뭐 여자 패시브냐.
“네 친구 라니아가 걱정된다고 고민하고 있었잖아.”
“흐응… 뭐야, 딴짓하는것 같더니 잘 듣고 있었네.”
다행히 딴 생각하면서도 귀는 열어두고 있던터라 에바가 쫑알쫑알 떠드는 소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 그래서 걱정이야. 라니아도 벌써 22살이라고. 근데 아직도 남자랑 섹스를 못한다니, 진짜 너무한거 아냐?”
“본인이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 있지.”
“관심은 많아! 라니아가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맨날 나한테 너랑 어땠냐고,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고 그런단 말야. 그놈의 이슬람. 진짜 종교가 뭐라고 순결에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네.”
“흐음. 그렇구나. 그거 안됐네.”
이슬람 교리상 순결을 지킨다는건가?
근데 그건 꼭 이슬람만 그런건 아니잖아. 기독교도 혼전순결을 권장하지 않던가?
실제로 엘레나 집안 역시 독실한 청교도 가문으로 어머니 세대까진 혼전순결을 강요받았다고 했다. 지금도 뭐… 자기가 이러는거 알면 집에서 난리날거라나.
그런걸보면 기독교나 이슬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종교 규율에 충실하냐, 혹은 규율을 강요하느냐가 문제같은데.
건성으로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대꾸하며 언제 방으로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에바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은근하게 물어왔다.
“그래서 말인데… 내 친구 불러도 돼?”
“내가 언제 친구 부르는거 거절한적 있어? 맘껏 불러.”
“그치? 그럼 부른다~?”
기다렸다는 듯 폰을 꺼낸 에바가 신나서 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에바와 섹파, 아니 섹프가 된 이후.
애인이 아니지만 몸을 섞는, 그렇다고 단순히 몸만 섞는 건 또 아니고 어느정도 교감도 나누는 이상한 관계가 된 이후 우리는 여러 부분에서 꽤 독특한 관계로 발전했다.
애인 미만 섹파 이상의 미묘한 관계.
그래서 그런가, 오하린에게도 말할 수 없는 민망한 부분도 에바와는 오픈하는 관계가 됐는데… 그건 에바도 똑같은지 자신의 성적 취향을 마음껏 공개해왔다.
이를테면 자기 친구를 불러들여서 같이 뒹구는 3p같은.
그래서 에바가 친구를 부르는건 낯설지 않다. 바로 전에 만났을때도 에바가 부른 친구까지 3명이서 질리도록 섹스를 했으니까.
‘음… 이렇게보니 에바가 여자 물어오는 포주같네.’
신나서 통화하던 에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손을 흔든다.
“여기! 여기야 라니아!”
라니아?
아까 그 이슬람 혼전순결 고민하던 친구?
이런.
설마 오늘은 섹스보다 진짜 수다떨려는건가.
에바와는 섹스를 하는 관계기도 하지만 나름 친구기도해서 가끔은 만나서 섹스없이 수다만 떨다 헤어지는 날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엔 높은 확률로 에바의 생리 기간이지만.
‘하. 오늘은 포인트 모으려고 만난건데… 어쩔 수 없나.’
내가 섹스에 미친놈도 아니고, 어떻게든 한 번 따먹어보겠다고 껄떡거릴 정도로 여자가 고픈 것도 아니다.
프랑크푸르트로 완전 이적한 이후로 주기적으로 에바와 몸을 섞어왔으니, 오늘은 생각이 없을수도 있지.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친구나 사귀자고 편하게 생각할 무렵, 에바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히잡을 뒤집어 쓴 얼굴과는 달리 블라우스에 바지라는 꽤 세련된 차림새를 한 언밸런스한 복장
‘…음!?’
이 얼굴은…?
히잡을 쓰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자르르르르—
내 안의 무언가 반응하고 있었다.
자르르르르—
음… 확실하군.
자침판이 반응하는걸로보아 미녀가 확실하다.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홍민준이라고 합니다.”
열렬히 돌아가는 자침판은 자침판이고, 겉으론 옅게 웃으며 이젠 꽤 익숙해진 독일어로 차분하게 인사를 건네자 라니아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품이 넉넉한 루즈핏 블라우스 소매 사이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귀여웠다.
“하읏!”
“……??”
꼬물거리는 손가락을 부드럽게 잡자 뜬금없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손을 빼는 라니아.
뭐야. 내가 괴물도 아니고 왜 저렇게 흠칫거려.
“아, 내가 말 안했나. 라니아가 네 팬이야. 그것도 엄청난 빅팬.”
“그랬어? 미리 말해주지.”
하… 이놈의 인기.
“프랑크푸르트에서 뛰고있는 홍민준입니다. 제 팬이시라고요?”
“네, 네에… 라니아 벤쉐그라에요.”
소심한 성격인듯 작은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소개를 마친 라니아가 에바 옆에 앉았다.
에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간간히 라니아에게도 말을 건넸지만 어찌나 낯을 가리는지 모기만한 목소리로 네, 아니오만 반복한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술을 홀짝이던 에바가 다 마셨다면서 새로 가져온다고 룸을 나서니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내가 여자를 대하기 어려워하거나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무슨 말을 해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단답만 하는 사람과 신나게 떠들 정도의 달변은 아니다.
테이블 너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라니아를 멀뚱히 보고 있을 때, 기다리던 에바가 돌아왔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어서와. 빨리 앉아, 빨리.”
“뭔데. 너넨 술도 안 마시잖아.”
“에이~ 에바가 보고싶어서 그러지.”
라니아 옆에 에바가 털썩 앉자, 기다렸다는 듯 라니아가 툭툭 에바의 옆구리를 친다.
“응? 아, 맞다. 알았어, 알았어.”
뭐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고개를 푹 숙이는 라니아와 짖궂게 웃는 에바를 보며 고개만 갸웃뚱거리고 있을 때.
“야, 홍. 내가 아까 말했지? 라니아가 순결하긴해도 남자에 관심이 많다고.”
“…….”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할까.
초면의, 그것도 여사친의 친구같은 포지션의 소심한 여자애 앞에서 다짜고짜 이런 말을 하면…
“라니아가 남자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좋아하는 건 아냐. 얘 은근히 눈이 높거든. 얘가 요즘 너한테 푹 빠진 것 같아서 놀려주려고 너랑 섹스한 얘기 해줬단 말이지. 근데 라니아가 부탁하더라고.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어때? 생각있어?”
“…네?”
이게 뭔 병신같은 상황?
실화냐?
어처구니없어 쳐다보니 귀끝까지 빨개져서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라니아가 내 눈치를 살피려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
구릿빛 피부도 빨개질 수 있구나.
아주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허둥지둥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는 라니아였지만 아니라는 말은 안 한다.
“흠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
“아. 근데 앞은 안 돼.”
“…어?”
“뒤는 된다고 했는데… 음… 네 크기면… 안 되겠다. 그냥 쑤시는 건 나한테 해.”
“……??”
“가자! 둘 다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