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32)
132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대비해 만들어진 파주 NFC는 시간이 흐르며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각종 지도자 교육부터 연령별 대표팀 훈련까지, 더 이상 파주 NFC만으로 스케쥴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지한 축구협회는 2017년 새로운 축구종합센터 계획을 발표했다.
각종 논의와 난관 끝에 2022년 4월 천안에서 착공에 들어간 시설은 2024년 완공되며 새로운 축구종합센터의 시대를 열었으니, 바로 천안 NFC(National Football Center)였다.
한국의 축구 꿈나무라면 누구나 입성하길 꿈꾸다는 국가대표팀의 성지.
지난 올림픽 대표팀 시절엔 아쉽게 파주 NFC를 이용하며 이곳에 입성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며 처음으로 천안에 입성하게 됐다.
입구부터 쫙 몰려든 십여 명의 기자들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며 천안 NFC에 입성하니… 와, 시설의 때깔부터 다르네.
“후… 이것이 국대의 냄새군.”
“이 촌놈은 뭔 헛소리를 하고 있어.”
젠장, 이 능글맞은 목소리는…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표식 선배가 서있었다.
아니… 근데 이 괴상한 차림새는 또 뭐야.
“표식 선배. 그… 옷은 뭐에요?”
“옷? 옷이 왜?”
머리를 쓸어넘기려던 표식 선배의 손이 멈칫하더니 그냥 내려온다.
누가봐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셋팅된 머리. 거기에 고급진 클래식한 정장과 광이 번쩍거리는 구두까지.
“어디 면접가세요?”
“면접은 무슨. 그냥 평소대로 입은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선배 평소에 이렇게 입고 다닌다고요?”
세상 어느 운동 선수가 정장을 쫙 빼입고 다녀!
내 표정을 본 표식 선배가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역시 이상하냐?”
“완전.”
세상에.
국가대표 소집일에 누가 이렇게 입고와.
밖에 기자들이 어떤 표정으로 쳐다봤을지 상상하니 아찔… 아니 잠깐. 기자?
설마…이 형…?
“선배. 혹시나해서 물어보는건데, 기자들 보여주려고 이렇게 입은 거… 아니죠?”
“…….”
“헐….”
그래. 이게 오표식 선배지.
이 선배는 여전하구나. 한결같아서 참 보기좋다.
“선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옷은 아닌것같아요. 그냥 저처럼 편하게 입고 오지 그랬어요.”
내 진심을 담은 충고에,
“아이씨! 넌 그지같이 입어도 그림이 되니까 그런 소리 할 수 있지!! 내가 너처럼 입고 왔으면 댓글 곱창난다고!!”
“아…”
이렇게 슬픈 이유가 숨어 있었다니!
차마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래도 선배, 정장은 오바에요. 빨리 환복하고 와요.”
“…그럴까?”
“네. 제발요.”
환복하러 멀어지는 표식 선배의 축쳐진 등을 보며 생각했다.
잘생겨서 다행이야.
표식 선배 이후로 줄줄이 소집 명단에 오른 선수들이 입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소집된 홍민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어어. 그래. 네가 민준이구나? 반갑다야. 근데 너무 그렇게 군기 잡고 있지 말고. 요즘 국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거든.”
“넵! 편하게 선배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선배는 무슨, 형이라고 불러.”
이걸 위해 가장 먼저 입소했지.
일찌감치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선배가 들어올때마다 재깍재깍 허리부터 숙였다.
어딜가나 신입의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건 인사성이다.
나보다 먼저 국대에 소집됐던 윤혁 선배에게 들어 국대에 똥군기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편하게 대하다가 잘나가서 거만하다느니, 선배를 우습게 안다느니, 유럽물 먹어서 빠졌다느니 개소리 듣는 것보단 처음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깎듯한 모습을 보여주면 나중이 편해지는 법이다.
첫날 허리 좀 숙여주는걸로 이미지를 챙길 수 있으면 수지 남는 장사아닐까.
“이야… 홍민준 너 이 새끼…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깍듯했다고 폴더 인사를 하고 있냐.”
“에이~ 저야 항상 예의바른 후배 아니겠습니까.”
“와 나, 어이가없네, 어이가없어.”
“윤혁 선배님도 안녕하심까!”
“징그러우니까 저리 꺼져!”
막내 라인답게 일찍 등장한 윤혁 선배가 그런 내 모습에 식겁했지만… 뭐, 이게 다 이미지 메이킹이지.
하… 너무 잘나가니 피곤하다, 피곤해.
* * *
올림픽 대표팀 일원으로 같이 예능에도 출연했던 윤혁 선배와 오표식 선배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국대 선배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국대에 똥군기나 심각한 악폐습이 사라진지도 오래된데다, 팀 내 분위기는 고참과 에이스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대체로 사람들이 순둥순둥해서 그런지 참 화기애애하네.
이러면 나야 좋지.
눈치껏 귀여운 막둥이 포지션으로 선배들에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으니 코칭 스탭이 우르르 등장했다.
“다들 모였나? 어디, 우리 신입! 나와봐라.”
3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귀종 감독님의 손짓.
어휴… 여기서도 신고식이냐.
이번에도 우렁차게 자기소개를 하며 넙죽 허리를 숙인 뒤, 신고식이라고 노래 한 곡 뽑았다.
“…와. 뭐야. 노래 존나 잘하네.”
“너 무슨 아이돌 연습생이었냐?”
“아 이거 SNS 각인데.”
나름 가수 못지 않는 실력이라 자부한다.
기깔나는 신고식을 마치고 곧장 훈련 세션이 진행됐다.
처음은 몸 상태 점검.
국대는 클럽과 다르게 여기저기서 선수를 차출해서 운영된다.
자연히 어떤 선수는 나처럼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있고, K리그를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도 있으며, 저 멀리 미국이나 중동에서 뛰는 선수도 있기 마련.
그러다보니 어떤 선수는 이제 막 시즌이 시작하고, 어떤 선수는 시즌이 끝나가는 상태이니 몸 상태가 너무나 제각각일 수 밖에.
게다가 국대는 항상 소집되는 것이 아닌, 가끔 소집되기에 코칭 스탭이 선수들 상태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를 위해 첫날 세션은 메디컬 팀의 도움을 받아 몸 상태와 체력 측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번 소집에서 코칭 스탭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선수는 다름아닌 나였다.
“더! 더! 더! 그만! 이제 10초 쉬고. …다시, 고! 더 빨리!”
“준비… 고!!”
“불 들어오는 곳으로 정확히 차넣어.”
“기울어진다, 균형잡아!”
메디컬 팀에게서 건강 상태를 확인받고, 체력 코치의 주도하에 각종 측정을 하다보니 금방 체력이 바닥난다.
‘헉, 헉… 아우씨, 진짜 힘들어 죽겠네.’
데이터가 있는 기존 선수들보다 빡세게 체력 측정을 받고 있으려니, 먼저 측정을 끝낸 선배들이 낄낄거리며 지켜보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오 빡쳐!
“다들 모여. 몸이 풀렸으니 가볍게 연습 게임 한 번 가자.”
‘몸이 풀린게 아니라 다리가 풀렸는데요!’
“홍민준! 우리 귀여운 막둥이. 한 게임 뛸 수 있지?”
“물론입니다!!”
“좋아!! 기세 좋다!!”
…숨 넘어가겠네.
* * *
“어때?”
대표팀 감독 김귀종의 질문에 팔랑팔랑 측정 결과를 종합한 보고서를 넘겨보던 코치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군요. 속도도 빠른데다 밸런스도 좋아요.”
“상당히 민첩한데요. 반응속도도 빠르고.”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모이는 국가대표팀.
당연히 국대의 기록은 어지간한 선수들의 평균을 훌쩍 웃돌지만, 홍민준의 측정 기록은 그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근데 생각보단 빠르지 않은데요. 최고속도가 34.3km면 우리팀에서 3번째네. 경기볼땐 더 빨라보였는데.”
“얜 그냥 뛰는 속도랑 공 가지고 뛰는 속도가 비슷해서 그럴거에요. 드리블하면서도 최고 속도가 거의 비슷하던데요.”
“아~ 역시 테크닉이 좋으니 그럴수도 있나.”
“문제는 힘이 딸려서 중앙 경합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뇨아뇨, 밸런스가 워낙 좋아서 잘 버틸겁니다. 아까 연습 경기에서도 위험할것 같으면서도 소유권을 지켜내는거 보세요.”
코치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걸 가만히 지켜보며 무언가 끄적이던 김귀종 감독이 탕탕 책상을 쳤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감독의 물음에 눈짓을 주고받던 코치 중 체력 코치가 흠흠, 입을 열었다.
“예상대롭니다.”
“그게 끝이야?”
“그리고 생각보다 메이킹 실력이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전술 코치의 후술에 감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의외로 연계에 능숙하단 말이지. 이상하다.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감독님. 이왕 이렇게 된 거, 플랜 B로 가보시죠?”
“아냐. 그건 너무 위험해. 평소대로가도 충분해.”
“상대가 중국인데요?”
“…그럼 그럴까?”
하나씩 착착 전술 준비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어! 감독님! 최창복 기술 이사님 전화입니다.”
“아이씨! 또 뭐야! 줘봐! 네, 김귀종입니다.”
—어, 김 감독. 나 최창복인데. 이번 중국전 어쩔거야?
“네? 뭘 어쩝니까, 이겨야지.”
—그건 당연한거고. 시원하게 이겨야지, 이 사람아.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그래도 이번에 상암에서 하는거니 좀 공격적으로 나갈 볼 생각입니다.”
—자네, 저번 중국한테 진 거 기억하지?
뼈아픈 기억에 김귀종은 입을 닫았다.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이 거둔 5승 1무 2패의 2패 중 하나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그의 치욕이었으니까.
—거, 중국애들이 지금 입털고 난리가 났어. 이거 기사나면 여론 난리난다. 김 감독, 이번에 상암에서 크게 이겨야 해. 뭔 말인지 알지?
“걱정마십쇼. 2골차 이상으로 이깁니다.”
—오케이! 나 김 감독만 믿어요.
뚝.
우렁우렁 울리는 스피커폰이 소리가 끊기고, 코치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고 있을 때.
“들었지? 플랜 C로 간다.”
“…네? 쓰리백으로요?”
“뭘 놀래. 지난 오만전에서도 썼던 전술이구만. 이번 중국전, 3-5-2로 간다.”
“그거… 오만 상대로도 제대로 작동 안되서 고전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이 자리 누구 세우시려고요?”
코치의 손가락이 전술판의 한 부분을 짚자, 김귀종이 기다렸다는 듯 곧장 대답했다.
“홍민준. 이 녀석 한 번 넣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