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40)
140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출국장을 나서자마자 플랜 카드를 들고 있던 여자들이 롤링 어택을 가해왔다. 이 무슨 뜬금없는 봉변….
공항 경비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빠져나와 이유를 알아보니 소영 누나의 방송에서 밝힌 여자친구 기사가 그 사이 물건너 독일까지 진출했단다.
…무섭다 글로벌 시대. 빠르기도 하지.
더 무서운건 한국식 사생팬 문화에 물든 독일 여자들이었다.
그날 프랑크푸르트 집에 돌아와 잠들땐까진 괜찮았다.
아자디 스타디움이란 극한의 환경에서의 풀타임과 장시간 비행, 거기에 전날 오하린, 윤희연, 엘레나, 기자 누나의 극한의 로테이션이 쥐어짜인 체력은 귀가하자마자 방전나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으니까.
문제는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설때였다.
집앞에서 수십 명의 여자들이 옹기종기모여 저마다 플랜 카드를 내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씨구?
독일어도 아니고 한글로 된 피켓이네?
뭐라고 쓰여있나 봤더니,
—우린 오빠 믿읍니다
—오빠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요
—홍민준 여자친구 여기에요
허…
요즘 독일 여자애들은 한글도 배우는구나. 애매한 오타가 귀엽기도 하고.
살다보니 독일 여자애들한테 오빠 소리를 다 듣네.
그날은 허허 웃고 넘어갔다.
“야.”
윤다예가 차려준 아침을 먹던 중 오하린이 까칠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저거 어쩔거야.”
“뭐가.”
“밖에 있는 저것들. 어쩔거냐고.”
“어쩌긴 뭘 어째. 냅둬, 저러다 말겠지.”
귀국 후 3일이 지났다.
집밖에는 여전히 수십 명의 여자애들이 시위라도하듯 피켓을 치켜들고 무한대기 중.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지거나 심지어 시끄럽게 굴지도 않는 조용한 시위이긴 했지만 여자애들이 집앞에 진을 치고있는데 오하린과 윤다예가 편할리가 없다.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큰 저택이기도 했고, 에이전트와 개인 트레이너라는 신분도 있고해서 동거 사실을 딱히 비밀로 하진 않았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라면 오고가며 봤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내 여자친구 문제로 수십 명이 모여 시위하는데 대놓고 동거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도 없는 일.
긁어부스럼이라고 시위대를 자극할 순 없으니 오하린과 윤다예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 뒷문으로 몰래몰래 오갈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며칠째 숨어지내는데 스트레스겠지.
“내가 여자 많은거 조금씩 밝히기로 다 같이 합의한거잖아. 초반에 힘들거 예상도 했고. 불편하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쟤들도 저러다 지치면 해산하겠지.”
“…이런 일이 있을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는데.”
다시 며칠이 지났다.
푸석한 얼굴의 오하린과 윤다예가 말했다.
“우리 그냥 호텔에 가있을게.”
“야! 나 버리고 너네만 빠져나간다고?”
“그럼 어쩔거야. 저거 지쳐서 나가떨어지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데.”
윤다예의 힘없는 말에 할말이 없다.
아직도 집앞에는 무언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저러다 지쳐서 말겠지 했는데 착각이었다.
매번 얼굴이 바껴서 지친 애들은 떨어지고 새로운 애들이 유입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수백 명이 자체적인 로테이션 스케쥴을 짜서 인원을 돌리고 있던거였다.
이게 무슨 위병 교대도 아니고, 너네 군인이냐.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무려 독일 신문에서 이 쇼킹한 사태에 취재를 나섰기 때문.
정치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축구 선수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인터뷰에 수백 명의 여자애들이 집앞에서 시위를 해? 그것도 단발성이 아니라 수백 명이 스케쥴까지 짜서?
상상을 초월하는 문화충격에 독일 언론도 황당하다는 반응.
이쯤되니 차라리 경찰에 신고할까하는 마음에 법률 자문한테 물어보니,
“어렵겠는데요. 모욕을 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무단으로 침입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집앞에 모여서 피켓을 들고 있는 정도로는 신고해도 별 효과가 없을겁니다. 게다가 대부분이 10~20대 여자들 아닙니까. 심지어 미성년자 여자애들까지. 신고해봐야 여론만 나빠질거에요.”
차라리 욕을 하면 편하지, 이건 뭐 침묵의 시위도 아니고 피켓만 흔들어대니 답이 없다.
“휴… 내가 할말이 없다. 조금만 더 참아주라.”
오하린과 윤다예도 그렇지만 나도 힘들다.
까칠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니 두 사람도 할말이 없는지 묵묵히 신문을 펼치는데,
“잠깐. 그거 뭐야?”
“이거? FAZ잖아.”
FAZ.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은 독일에서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유력 일간지.
이름처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발행되는 유서깊고 대중적인 일간지로 우리나라의 조중동이라 볼 수 있는 이 신문 1면에 왜… 내 얼굴이 박혀있지?
“뭐야. 이거 너잖아.”
“…헐.”
살다살다 독일 신문 1면에 내 얼굴이 다 나오네.
씨발.
내용을 보니 참 가관이다.
시작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 번진 충격적인 문화라며 집앞에서 위병 교대를 하고 계신 내 팬분들의 행태를 알리는 것으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내 프로필과 경력을 나열하고 외모와 실력으로 최근 젊은 독일 여성들 사이에서 K-POP 아이돌과 같은 역할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배경으로 내 인터뷰를 꼽고는,
“여기 내 사진도 있는데?”
“나도 있네.”
유력한 내 여자친구 후보랍시고 여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려 독일을 홀린 한국에서 온 슈퍼스타의 여자들이란 제목으로. …이거 제목만 보면 난봉꾼 같잖아. 사실이지만.
「—본지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유력한 후보로는 미국의 육상 스타 엘레나 L스튜어트(24), 홍민준의 에이전트 오하린(21), 의문의 개인 트레이너 윤다예(21), 한국의 떠오르는 테니스 스타 윤희연(23)이 꼽힌다.」
와… 정확하게 맞췄네.
근데 그 중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내 여자친구라는건 모르겠지?
“한국에서도 기사떴어.”
신문을 보고있으려니 오하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여준다.
「조사한바에 따르면 홍민준 선수가 대학 시절 만나던 이성으로 지장대 응원부에 소속되어 있던… — 데일리스포츠」
「홍민준 선수의 여자친구 찾기 열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 매일신문」
「—인터뷰를 맡던 기자가 돌연 사표를 쓰고 홍민준 선수의 전담 인터뷰어가 되었다는 점에서… — 우먼파워데일리」
한 두개가 아니잖아?
아 짜증나네.
“일단 우리가 대책을 생각해볼테니까 넌 출근해. 훈련 늦겠다.”
그렇게 나오는데 집앞에 옹기종기 모여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애들이 보인다.
…못참겠네.
“야.”
“네!”
싸늘한 부름에도 드디어 알아봐준다고 해맑게 대답하는 여자애들.
으, 으음….
“그래서. 여자친구 있는 난 싫어?”
너무 해맑은 반응에 살짝 주춤했다.
“아뇨! 조, 좋아요오…”
으음… 처음엔 욕이라도 퍼부으려고 했는데 반응이 이래서야…
“그래? 그럼 됐고. 난 또, 여자친구 있다고 싫어진 줄 알았잖아.”
“헉…!”
“아. 그리고 집앞에서 이러는 건 자제해줘. 짜증날 것 같으니까.”
그래도 한 마디는 해야겠다 마음먹고 질렀는데… 반응이 왜 이래.
그날 막 오전 훈련을 끝내고 쉬면서 폰을 확인하는데 오하린에게서 톡이 와있었다.
—어떻게 해결한거야?? 여자애들 자진해산했어
…뭐지?
* * *
—그래? 그럼 됐고. 난 또, 여자친구 있다고 싫어진 줄 알았잖아.
헉!
허헉!
여기저기서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떡해… 너무 요망해! 하으으 심장 아파…”
“오빠!! 절대 오빠를 싫어할리 없어요!!”
“흐아… 나한테 직접 말해줬으면…”
처음엔 진짜 시위였다.
홍민준 정도의 남자가 여자친구가 없다는건 말도 안 된다는걸 알지만, 그래도 모두의 홍민준을 얼굴도 모르는 도둑년에게 빼앗긴 기분에 팬클럽 맴버들은 얼굴이라도 알자는 심정으로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팬클럽의 목적은 변질됐다.
그래. 홍민준 정도의 남자라면 여자친구가 있는게 당연하지. 적어도 뜬소문으로 돌던 게이설이 틀렸다는것만 해도 어디야.
그렇게 홍민준의 출퇴근 하는 모습을 직찍하는 모임으로 변질된 시위.
그날도 날것 그대로의 홍민준 모습을 촬영하던 시위대의 폰과 카메라에 찍힌 것은 평소와는 달리 시크하고 요망한 홍민준의 모습이었다.
적당히 편집된 영상이 팬클럽에 올라가고, 맴버들은 자진해산했다.
「인기 급상승 중인 홍민준 동영상!」
ㄴ우와… 진짜 존잘이다;
ㄴㅗㅜㅑ 존나 요망해
ㄴ이건 뭔데 갑자기 인기급상승임?
ㄴ홍민준 팬들 또 어디서 좌표찍었냐;;
ㄴ이거 그거네 홍민준 팬들 악질짓하다 퇴마당한거
ㄴ씹ㅋㅋㅋ 퇴마는뭐냨ㅋㅋ
* * *
뭔지 모르게 팬클럽 시위가 해결된 이후, 우리팀은 리그 테이블 상위권을 꿋꿋이 지켜나갔다.
9월에 이어 10월, 11월… 그리고 12월 초반까지.
그간 분데스리가 16라운드까지 치뤘고, 포칼 64강과 32강에 유로파 리그 4경기, 거기에 9월에 이어 10월과 11월에 진행된 A매치 평가전까지.
월드컵을 대비해 평소보다 일찍 시작된 시즌임에도 처음 겪는 풀타임에 유럽 대항전에 국가대표까지 일정이 더해지니 컨디션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체력이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회복력이 좋아 시즌을 치루는데 문제가 없을거라 자신하던 나마저 체력 부족에 허덕일 정도.
부족한 뎁스에도 꾸역꾸역 경기를 치뤄나가며 유럽 4대 리그 중 가장 긴 겨울 휴식기만 기다리는 우리 앞에 마지막 난관이 나타났다.
12월 9일.
유로파 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 모나코와의 6차전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