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54)
154
RB 라이프치히Leipzig.
독일 작센 주의 라이프치히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으로 음료 제조업체 레드불이 2009년 당시 5부 리그에 속해 있던 SSV 마르크란슈테트Markranstädt를 인수하며 탄생했다.
전신인 마르크란슈테드의 역사가 어쨌든 지금의 모습으로 재창단된 건 2009년이니 고작해야 20살이 살짝 넘은 젊은 구단이지만 그 성장세는 유수의 구단을 뛰어넘으니, 현재에 이르러선 분데스리가의 절대강자 뮌헨의 몇 안 되는 대항마로 꼽힐 정도.
역사가 100년이 넘는 프랑크푸르트에 비하면 그야말로 고조부와 고손자, 조상과 갓난쟁이뻘이지만… 축구판에서 성적은 역사와 비례하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가 1부와 2부를 오가며 승격과 강등을 반복할 때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거머쥐며 승승장구, 지금은 분데스리가의 3강으로 꼽히는 팀이 되었으니까.
오랜 역사의 팀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갓난쟁이 응애라 할 수 있는 라이프치히가 이런 급격한 성장을 보여 줄 수 있었던 배경은 단 하나. 첼시를 시작으로 맨시티, PSG까지 급부상한 여타 신흥 구단이 그러하듯 유서 깊은 수단.
바로 돈질이었다.
모회사 레드불의 빵빵한 지원 아래 분데스리가 특유의 로컬룰 50+1 규정까지 온갖 편법으로 우회하는 돈질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어쨌든 돈질의 위력은 막강하여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올라섰으니 결과만 보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지.
물론 졸부의 등장을 싫어하는 수많은 분데스리가의 팬들을 안티로 만들었지만 그거야 잘나가면 어련히 따라붙는 시기아니겠는가.
대신 그 반대급부로 독일 동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90년대까지만해도 공산권에 속했기에 독일 통일 후 강팀이 씨가 마른 동부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잘나가는 구단이기 때문.
지금의 라이프치히는 도르트문트와 함께 분데스리가에서 뮌헨과 정면승부를 벌일 수 있는 유이한 팀이 됐다.
최근 몇 년간 뮌헨, 도르트문트, 라이프치히가 나란히 우승을 나눠먹으며(물론 한쪽의 비율이 많이 높긴 해도) 분데스리가를 지배하는 3강을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굳이 한 팀을 더 낀다면 샬케04 정도.
프랑크푸르트?
2부에서 아등바등하다 이제 갓 1부에 입성한 승격따리 팀을 어디에 비비겠는가. …상식적으로 그래야 하는데, 올 시즌 프랑크푸르트는 무서웠다.
시즌 첫 경기에 그 뮌헨마저 무너뜨리며 돌풍을 일으키는 동시에 뜬금없이 하위권 팀에게 져주는 그야말로 도깨비팀.
“그러나 중원의 핵심 치차로의 부상 이후 내리 3연패를 하며 스몰 마켓의 한계를 보여주었지. 그러니 쫄 것 없어. 오늘! 전반기 패배를 설욕한다.”
19/20 시즌 갓 30살을 넘긴 젊은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Julian Nagelsmann 이후 라이프치히 역사상 두번째 30대 초반의 감독으로 부임한 그로키 뷔젠은 열정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최고참보다 어린 나이지만 작년 라이프치히를 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이 뛰어난 전술가는 젊은 나이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내였다.
“승리의 핵심은 상대의 키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는지에 달렸다. 백넘버 8, 홍민준! 이 한국인이 편하게 날뛰지 못하게 막아야 해. 연패하는 와중에도 득점은 꾸준히 이어졌는데, 모두 한 선수의 발끝에서 볼운반부터 골까지 이루어졌다. 바로 이 녀석 말이야. 하지만 걱정할거 없다.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도 볼배급이 안 되면 무력해지기 마련이니까. 최대한 낮은 위치에서 공을 받을 수 있게 라인을 올리고, 적극적으로 압박해라!”
“감독님.”
“지난 전술 훈련에서 연습한대로 두 명의 선수가 끊임없이 압박과 백업을 하며, 주변 선수들은 언제든지 커버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상대의 센터 포워드는 둔하고 느리니 신경 쓸 것 없고, 반대쪽의 이탈리안은 컷인 플레이에 미숙하니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 감독님.”
“이 선수! 프랑크푸르트의 8번만 막으면 우리의 승리다!”
“감독님!!”
“어? 어, 그래. 벌써 간식 시간인가?”
주먹으로 전술판을 쾅쾅 쳐대며 열변을 토해내던 뷔젠은 코치 연수를 온 사내의 부름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괴짜라는 소문다운 반응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건넸다.
“…간식은 10분 전에 드셨고요, 상대 스타팅 라인업이 나와서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래! 어디 볼까. 프란츠 발더라면 똑같은 명단으로… 으응?”
종이를 들고 눈만 껌뻑이는 감독의 모습에 바나나를 우물거리던 골키퍼가 물었다.
“그 8번 녀석이 골키퍼로 나온답니까?”
“아니.”
와하하 웃는 선수단을 향해 말했다.
“중앙 미드필더로 나온다는군.”
* * *
“여기도 아는 얼굴, 저기도 아는 얼굴, 저 끝에도 아는 얼굴… 아주 난리가 났군.”
빅터 쇼웰은 콜라를 쭉 빨아 마시며 투덜거렸다.
채 넘어가지 않은 콜라가 도로 튀어나와 앞좌석 남자의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는 광경을 점잖게 외면하며 캐시 록벨라는 선배에게 물었다.
“의외로 발이 아주 넓으시네요 선배.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다 있고.”
“당연하지! 스카우터란 직업은 발이 넓어야해. 휴먼 리소스 몰라?”
“휴먼 리소스가 아니라 빚쟁이들이겠죠. 솔직히 말해봐요. 저 사람들한텐 얼마나 빌렸어요?”
“어허! 빚은 무슨!”
그래 놓곤,
“…얼마 안 돼. 3000유로 정도?”
라며 뻔뻔스럽게 웃는다.
캐시 록벨라는 한숨을 삼켰다.
“그러면 제 돈은 언제 갚으실건데요.”
“그거 얼마나 된다고! 고작 500유로도 안 되잖아. 금방 갚을거야, 금방!”
여기저기서 돈이나 빌리고 다니는 주제에 용케 자기한테 빌린 돈, 그것도 정확한 액수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랄지, 고맙달지.
벌써 2달째 갚는다는 말뿐이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영 믿음이 가지 않는 호언장담이지만 설마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고작’ 500유로를 떼먹진 않겠지. …아마도.
이 추레한 남자가 ‘보석발굴가’란 이명까지 가진 그 유명한 스카우터 빅터 쇼웰이라고 누가 믿을까.
“쳇. 벌써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오랜만에 찾은 숨겨진 보석이었는데, 망할 하이에나 자식들. 감히 내 보석을 넘봐?”
평소처럼 연신 투덜거리며 낡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들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빅터의 모습에 13인치 노트북을 꺼내 무릎에 올려 둔 캐시가 참지 못하고 또다시 한소리를 했다.
“선배. 이제 노트북 좀 쓰면 안 돼요? 아니면 패드나 테블릿pc라도. 요즘 누가 스카우팅 리포트를 수기로 적어요.”
“시끄러워. 난 전자기기 따위 믿지 않아.”
“그럼 제발 글씨라도 제대로 써줘요. 선배의 그 괴악한 글자를 해석해 양식에 맞춰 리포트로 만들어주는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래프 그릴거면 좀 일관성있게 만들어요 좀! 매번 스탯이 바뀌잖아!!”
잔소리가 끝내 호통으로 이어지자 빅터는 슬그머니 볼펜을 쥔 손가락에 힘을 더했다.
‘음…’
그러나 여전히 괴악한 글씨.
이건 어쩔 수 없어. 자기합리화를 마치곤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며 캐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삼켰다.
‘우리 구단 이대로 괜찮을까.’
와아아!
두 사람이 각자 스타일에 맞게 스카우팅 준비를 마쳤을 무렵, 관중들이 일제히 환성을 내지른다.
“라인업이 떴구만. 어디보자… 응?”
“왜요. 똑같구만.”
“달라. 8번의 위치가… 중앙이잖아.”
빅터는 라인업이 표시된 전광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중앙… 중앙이라. 가능한가? 볼키핑은 통과. 압박이 심한 중앙에서도 볼을 뺏기지 않을 테크닉을 지녔어. 탈압박에도 능하고. 하지만 빈약한 경합 능력과 없다시피 한 제공권, 볼호그 기질은 어쩔셈이지? …흥미롭군.”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알파벳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무언가를 낡은 수첩에 갈겨대는 광인같은 모습을 지켜보며 캐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모르겠다.’
그래도 선배의 중얼거림을 헛투로 흘려듣지 않은 캐시는 거기에 나름대로의 생각을 섞어 구단에 보낼 스카우팅 리포트를 꾸몄다. 선배가 보면 예쁜 쓰레기라고 매도할 것이 분명했지만… 이왕이면 보기도 좋은게 낫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고, 가볍게 공을 주고받는다.
그 모습을 관찰하며 선수들 컨디션을 추측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가득 들어찬 관중들이 장내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에 맞춰 챈트를 부르기 시작한다.
‘벌써 1시간이 지났네.’
힐끔 옆을 보니 1시간 동안 쉴새없이 무언갈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던 선배도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수염이 꺼칠한 턱을 쓰다듬으며 매섭게 그라운드를 노려보고 있다.
“그거 아나?”
“응? 저요?”
“유망주는 복권이야. 긁지 않은 복권.”
“선배 저한테 말하는거에요?”
“사람들은 1등을 기대하며 복권을 사지. 하지만 그 중 1등에 당첨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다들 알아. 당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걸. 그럼에도 복권을 사는건 당첨될거란 소망과 기대감이지.”
“뭐라는거야 진짜.”
“복권값은… 그러니까 희망이야. 사람들은 희망값을 지불하는거지. 유망주라는 복권도 똑같아. 세계의 그 많은 유망주 중에서 누가 당첨될지 모르잖아. 좀 더 당첨 확률이 높아보이는 복권을 긁어보는것뿐이지.”
또 혼잣말이야.
이런게 한두번도 아니고, 캐시는 시큰둥하게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 시작된 경기.
선배와 그녀가 오늘 관찰해야 할 선수, 백넘버 8의 동양인이 능숙하게 볼을 돌리고 있었다.
‘우와 얼굴에서 빛이 나네. 실물이 훨씬 잘생겼어.’
정신없이 얼굴을 감상하면서도 스카우터답게 플레이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캐시는 숙력된 직장인답게 선배를 향해 한쪽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선배의 의미심장한 말을 놓치지 않은 것은.
“근데 왤까. 이번 복권은 1등 당첨이 확실할 것 같은 느낌이야.”
‘복권… 복권이나 사볼까.’
뜬금없는 생각을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캐시의 도톰한 입술이 헤 벌어지기 시작한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양 쪽에서 달라붙는 상대 선수들을 귀찮다는듯 가볍게 제쳐낸 8번이 반대쪽을 향해 긴 패스를 보낸 뒤 엄청난 속도로 하프 스페이스를 파고든다.
이어 다시 연결된 공을 잡마자마 우아한 턴으로 압박을 무력화시키곤 공격수와의 2:1 패스로 최종 수비라인 바로 앞까지 전진한 뒤, 앞을 가로막는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가볍게 빼낸 공이 데굴데굴 굴러 헐레벌떡 뛰어온 선수에게 닿는다.
“우와아…”
그 유려하면서도 우아한 플레이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던 캐시의 귀로 선배의 중얼거림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당첨이군.”
곧 시끄러운 함성 소리에 묻혀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