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63)
163
다음날은 출근하는것부터 난리였다.
새벽부터 집앞에 기자들이 바글거린다 싶더라니, 훈련장 입구까지 따라와서는 소문이 사실이냐, 주먹다짐이 있었냐, 인종차별이 있었냐 아주 벌떼처럼 달려들었으니까.
구단 직원들이 뒤늦게 부랴부랴 뛰쳐나오는 사이 잠깐 고민했다.
그렇다고 할까, 오해라고 할까.
어제 하린이를 통해 내 의사를 구단에 전달하고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연락이 왔는데, 당사자들과 코칭 스탭, 선수단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하니 일단은 내일 기자들이 물어보면 사실무근이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여기서 싸웠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구단과 대놓고 각을 세우는 격이고… 그렇다고 오해라고 하자니 이대로 묻으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법이니 구단의 요청을 무시한 것도 아니요, 그런 일 없었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니까.
“홍민준 선수! 한 마디만 해주세요!”
“인종차별이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구단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훈련장에 도착하니 먼저 나온 동료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음… 낯선 광경이군. 평소엔 언제나 내가 1등으로 출근해서 혼자 훈련하고 있으면 동료들이 뒤늦게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는데.
내가 유럽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팀 단위 정규 훈련을 제외하면 개인 훈련을 하는 선수가 거의, 진짜 정말로 거의 없다는거다.
한국에선 오전, 오후 빡빡하게 팀 훈련하고 저녁까지 개인 훈련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유럽에선 팀 훈련만, 그것도 오전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개인 훈련?
바르셀로나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 1군 선수 중 팀 훈련 끝나고 개인 훈련하는 선수는 1~2명이나 봤나.
역시 예체능은 재능인가.
“요~ 브로! 훈련장에서 살던 친구가 오늘은 웬일이래? 맨날 새벽같이 훈련장에 나와서 훈련하고 있었으면서.”
“뭐? 민준이 지금 왔어? 홀리 쉣! 난 이 친구가 어디 박혀 있길래 안 보이나 했는데, 지금 온거야? 와우, 난 민준이 나보다 늦게 오는거 처음 보는데?”
브루노와 세르게이의 야단법석에 몸을 풀던 선수들이 피식거린다.
어제의 다툼 때문에 팀 분위기가 나빠질까 걱정했는데 그럴 일은 없겠군.
우리 팀의 막내 라인, 치차로와 브루노, 세르게이 같은 녀석들이 워낙 긍정적인 녀석들이라 이럴 땐 좋네.
“좀 피곤해서 늦었어. 내가 기계도 아니고, 나도 가끔은 늦을 수 있지.”
“뭐라고? 민준이 기계가 아니었다고? 난 지금까지 민준이 로봇인 줄 알았잖아. 맨날 새벽부터 훈련, 훈련. 아우~ 지겨워.”
특유의 느끼한 눈을 끔뻑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세르게이의 말에 브루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무슨 일있어? 갑자기 늦고.”
…설마 이것들은 어제 싸운것도 잊어버렸나.
아니면 그정도 다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걸까.
긍정을 넘어 낙천적인 두 친구의 머리 위에 퐁퐁 솟아난 물음표를 보고 있으려니 나만 심각한건가 싶다. 고참들도 별 신경 안 쓰는것 같고.
“피곤해서 늦잠잔데다 훈련장 앞에 기자들이 몰려있어서 늦었지.”
“피곤? 왜? 민준은 피파도 안 하잖아. 다른 게임 하는거 있나? 롤?”
“게임이 아니라 어제 침대에서 힘 좀 썼더니 피곤해서 그래.”
“침대? 설마 여자?”
숨길 것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브루노와 세르게이, 여기에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인 치차로까지 포함해서 프랑크푸르트 4인방으로 묶이는 친구들은 서로의 여자 관계에 대해서도 터놓는 사이다.
뭐, 그렇다고 시시콜콜 터놓는건 아니고… 대충 홈파티할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정도?
“뭐야 민준. 실망인데. 여자 하나 감당못해서 이렇게 퍼진거야? 에이~ 스테미너가 부족하네. 어쩐지 경기장에서 활동량이 적더라니… 민준 지금까지 운동 헛했네.”
허… 이게 지금 무슨 소리래.
세르게이의 도발에 헛웃음이 나왔다.
“뭔 소리야.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거든. 쓰리썸이라고 아냐 너네?”
그것도 그냥 쓰리썸이 아니었다.
무려 오하린과 윤다예하고의 쓰리썸이었지.
후… 서로 얼마나 싫다고 앙탈을 부리던지…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네.
그래도 결국 내 위용에 굴복시켰으니 내 승린가. 몸은 피곤하지만 어제 얻은 포인트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배가 부른 느낌이다.
“주장! 들었어요? 민준이 쓰리썸 했— 읍!”
“아오 이 떠벌이새끼. 조용히 좀 해. 그게 뭐 자랑이라고.”
“뭐야. 홍, 샤이 보이 아니었어?”
주장을 비롯한 고참 라인의 놀림을 받고 있을 때 감독님이 니콜라 스비예츠를 이끌고 나타났다.
선수단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시키려는 건가 싶었는데…
“흥.”
날 노려보며 코웃음치곤 선수단 사이로 들어가는 녀석을 보니 그것도 아닌가보다.
근데 웃기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은 지가 했으면서 왜 나한테 성을 내고 지랄이야.
황당해서 헛웃음만 짓고 있는데 감독님이 초췌한 안색으로 훈련 세션을 진행시킨다.
평소와 같은 훈련 세션이 끝나고 감독님의 부름에 가보니 아니나다를까 화해를 종용한다.
“민준. 난 팀의 분란을 원치 않네. 우리는 하나의 팀이야. 승리를 위해 다같이 노력해도 부족한데, 내 선수들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고싶진 않네. 자네가 먼저 사과해줄 수 없겠나?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자네가 양보해줄 수 없겠나?”
인자한 노신사 그 자체인 감독님은 하루 사이 퍽 초췌해졌다.
실패한 유망주였던 날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날 위주로 전술까지 맞춰주며 밀어준 감독님인지라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감독님. 제가 유럽 생활을 하면서 느낀게 뭔지 아십니까?”
역시 이건 아니다.
“동양인이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스페인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처음 배운 단어 중 하나는 인종차별에 대한 욕설이다.
그만큼 아직까지 유럽에서 인종차별은 없어지지 않았고, 축구계에서 동양인은 여전히 비주류다.
“양보와 겸손, 배려는 동양의 아름다운 미덕이지만 유럽에서는 미덕이 아니더군요. 여기는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겨야 미덕인 곳 아니겠습니까? 자기 실력와 위상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가 먼저 사과하라는 건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되네요.”
난 이 팀의 에이스다.
기록으로보나 활약으로보나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반면 니콜라 스비예츠는?
한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대하던 유망주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내 백업 맴버, 벤치따리일 뿐이잖나.
근데 팀 내 핵심을 선수를 벤치따리가 공격해? 그래놓고 뻗대고 있다고?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미안하네. 내가 생각이 짧아구만.”
얼굴을 쓸어내리는 감독님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녀석이 먼저 사과하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겠지.
* * *
새삼스럽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스쿼드가 얇은 구단이다.
얼마나 부실하냐면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로테이션 맴버의 퀼리티가 떨어지는 구단 3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이런 상황이다보니 팀 내 불화가 있어도 선발 명단을 쉽사리 변경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핵심 선수의 이탈 후 간신히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여전히 니콜라 스비예츠랑은 인사도, 말도 안 하며 서로를 무시하는 상황이지만 구단 사정으로 나란히 선발 출장하여 경기를 뛰다가… 깨달았다.
마음이 맞지 않는 선수랑 뛰는게 이렇게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 좋은 패스였는데 살짝 늦었죠?”
“네. 아슬아슬하게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쳤습니다. 리플레이로 다시 보면… 아, 정말 아쉬운데요. 아주 조금만 빨랐으면 좋은 찬스가 생겼을텐데, 프랑크푸르트 너무 아쉽습니다.”
심판이 VAR을 확인하고 있지만 안 봐도 알 수 있다.
조금 늦었다는걸.
상대의 패스가 끊기고, 순식간에 공수전환 되는 과정.
얄미운 니콜라 스비예츠보단 알베르토 몬디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오른쪽을 노렸는데, 하필이면 적극적으로 수비가담에 참여했던 몬디의 복귀가 늦었다.
다음으로 도날드 쿡을 봤지만 우리의 덩치 친구는 여전히 뒤뚱뒤뚱 뛰어가는 중.
마지막으로 왼쪽 측면을 봤을 때, 니콜라 스비예츠가 수비 뒷공간을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곧바로 패스를 건넸으면, 그랬으면 혹시 모르지만… 저 새끼 골 넣는 꼴을 보기 싫어 살짝 망설이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아주 짧은, 순간적인 망설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망설임이었지만 그것으로 상대의 오프사이드 라인에 갇혔다.
입술을 깨물고 자책했지만 이후로도 기왕이면 니콜라 스비예츠보다 다른 선수를 선택하는 내 플레이가 유기적인 팀 플레이에서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다.
내 개인의 활약상만 놓고 보면 좋다.
녀석과의 갈등으로 조금 스트레스를 받긴 했으나 그 정도로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경기력에 지장이 올 정도로 섬세한 사람은 아니니까.
아니, 설혹 섬세한 성격이라 해도 니콜라 스비예츠 따위는 내 안중에도 없는 녀석이니 사이가 좋든 나쁘든 별 신경 쓰지 않았을거다.
그렇기에 중앙에서 공을 지키고, 연계하고, 전진시키는 활약에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유독 측면, 그것도 왼쪽 측면과의 연계 플레이가 삐꺽거릴 뿐.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둔 프랑크푸르트!』
『후반기 부진할거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독수리 군단의 돌풍.』
『오른쪽 공격 비중이 증가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