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67)
167
일주일 뒤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에서 열린 유로파 리그 2차전.
올드 트래퍼드는 바비 찰튼이 꿈의 극장The Theater of Dreams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거대한 축구장이다. 그 규모는 무려 7만 4천석.
잉글랜드에서 가장 크다는 9만석의 웸블리 스타디움 다음가는 규모의 축구 경기장이지만 이보다 더욱 유명한 건 바로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이란 사실.
그러나 이 잉글랜드에서2번째로 크다는 경기장의 규모는 나에게 썩 와닿지 않았다.
크기? 그래, 좀 크긴하네. 근데 그게 뭐.
설혹 잉글랜드 최대 축구 경기장이라는 웸블리 스타디움이라도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할텐데, 어딜 감히 7만석 따리가 말야.
난 무려 10만석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 경기장에서 데뷔전을 치른 사나이잖나.
바로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 캄 노우 말이다.
10만 명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의 데뷔전.
그것도 프로 데뷔전을 캄 노우에서 치뤘을때조차 긴장감보단 어긋난 밸런스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할까 짜증나 있던게 나다.
그런 나에게 고작 7만 따리 경기장에 무슨 감흥이 있을라고.
올드 트래퍼드의 크기나 역사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단 하나.
“여기가 맨유의 홈 구장이구나. 올드 트래퍼드.”
“오, 방금 올드 트래퍼드라고 한 거지? 영어 좀 하나?”
입장 전 통로.
신호를 기다리던 옆자리 맨유 선수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조금.”
“위대한 팀의 위대한 구장이지. 어때, 멋지지? 맨유로 오면 여기서 뛸 수 있다고 친구.”
“음… 내 에이전트. 상의. 오케이?”
“뭐? 으하하. 이거 웃긴놈이네. 그래도 영어 배우는거보니 아주 생각지 없진 않나본데? 그, 왜 맨유에서 뛰었던 너네 나라 선수도 있잖아. 그 누구야.”
요상한 발음의 영어에 대부분 흘려들었지만 맨유에서 뛰었던 선수라는 대목에서 딱 눈치챘다.
그래.
올드 트래퍼드에서 유일하게 감흥을 주는 건 단 하나.
바로 박지성 선배가 뛰던, 전성기를 보내던 공간이라는 것. 그것뿐이다.
“맞아, 생각났어. 카가와? 분명 그런 이름이었던… 어… 표정이 왜 그러냐? …아닌가?”
이런 씹새… 후, 참자.
“그래도 같은 동양인아냐?”
“야이 씨벌놈의 새끼야! 걘 니혼진이고 난 코리안이다 씹새야!”
“어어, 왜 그래? 왜 갑자기 소리는 질러? 영어로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아오 이 쌍노메것!”
“싸노… 뭐? 이거 욕이지? 욕 맞지? 이 새끼가 진짜.”
“으아아앙!”
험악한 분위기에 입장을 위해 손잡고 대기하던 에스코트 키즈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놀랐어요? 장난이었어, 뚝.”
황급히 쪼그려앉아 시선을 맞추고 웃어주니 이내 베시시 웃는 여자아이.
음… 볼따구 꼬집고 싶네.
“우, 울지마. 싸우는거 아니거든? 저기, 꼬마야? 꼬맹아?”
“흐에엥~ 거짓말. 둘이, 흑, 막, 히끅, 싸우자나여.”
말랑말랑 찹쌀떡같은 볼따구를 살짝살짝 꼬집어주니 좋다고 헤벌쭉 웃는 내 에스코트 키즈랑 히히덕거리고 있을 때, 싸가지없는 놈은 아직도 애 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 아니야. 우리 친구, 친구야. 봐봐, 어깨동무도 하잖아.”
나랑 손잡고 있던 에스코트 키즈는 이미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본 녀석이 날 따라하듯 자세를 낮추고는 어깨동무를 해왔다.
그 모습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녀석을 번갈아보던 꼬맹이가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후에에엥!! 거짓말!! 왕자님이랑 괴물이자나!!”
“뭐? 왕자랑 괴물? 누구, 나? 허… 이봐, 꼬맹이. 내가 왜 괴물이냐?”
잔뜩 인상 쓴 녀석의 물음에 히끅, 딸꾹질을 한 아이가 유독 또렷하게 말한다.
“얼굴이…”
나와 녀석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반사적으로 위아래를 훑는 눈동자.
“훗…,”
“이런 퍽킹 아시안이—”
“호에에엥! 나도, 나도 왕자님이랑 나갈거야!”
녀석의 위협적인 으르렁거림에 놀란 아이가 나에게 호다닥 달려와 안긴다.
어휴, 이 새끼는 애 하나 못 달래네.
이게 뭐가 어렵다고.
가슴팍에 폭 안겨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여자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이렇게 금방 헤헤거리는데 말이야.
하여간 양놈들은 섬세하지 못하다니까.
“대체… 왜…?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녀석에게 훗, 웃어주었다.
“얼굴 차이 씹새야.”
“비켜! 내 왕자님이야!”
“싫어!! 나도 왕자님이랑 나갈래!!”
“이익! 내 왕자님이라니까!!”
“후에엥!!”
음… 뭐,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거니까.
* * *
사실 내 어린 시절 우상은 박지성 선배보단 손흥민 선배였다.
왜냐하면… 박지성 선배는 내가 막 걸음마하고 있을 때 은퇴하셨거든.
아무리 한국 축구의 영웅, 황금기의 주역, 유럽파의 물꼬를 터주고 기반을 닦아준 선구자, 해외축구 팬의 시발점이라지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할 무렵 활약하던 건 손흥민 선배였으니까.
그럼에도 박지성 선배는 존경할 수 밖에 없다.
아직도 은연중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유럽 축구계인데, 지금보다 아시아 선수가 비주류였을 20여 년 전에 전성기 맨유라는 빅클럽에서 활약했다는 건 대단한거다.
낯설고, 힘들고, 외롭고, 고된 개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실력은 물론이고 프로의 모범이 될 태도로 한국 선수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 척박한 토양을 가꾸었기에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길을 닦지 않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다예와 미드필더로서의 움직임을 스터디하며 과거 박지성 선배가 활약한 경기 영상을 보는데… 와, 정말 그 축구 지능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개인 능력은 분명 내가 훨씬 뛰어나지만 그 영리한 움직임은 본다고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가 아는 한국 선수 중 윤혁 선배랑 비슷한 것 같다.
윤혁 선배도 축구 지능이 어마어마해서, 박지성 선배 경기를 보다보면 꼭 윤혁 선배가 떠오르니까.
존경스럽고, 친근감도 들고, 배울점도 많은 우리 전설의 레전드 박지성 선배를 모욕한… 아니, 한국의 모든 해외파 축구 선수를 모욕한 원수놈.
내가 기필코 복수해주마!
졌다. 씨바.
아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긴건가?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유로파 리그 16강 2차전.
1차전 4:0 대승을 거둔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맨유 원정에서 라인을 잔뜩 끌어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섰다.
자기네들 홈구장,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프랑크푸르크 따위가… 그것도 4:0으로 앞서가는 팀이 적극적으로 공격할거라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한 틈에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맨유 선수들의 거센 공격에 전반전이 끝났을 땐 3실점이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과연 EPL 상위권 팀의 클레스는 달랐다.
1차전에서 맞붙었던 2군과는 격이 다른 퀼리티를 보여주는 맨유 선수들은 1차전에 이어 홈에서 선제골을 먹힌 분노로 도핑이라도 한 듯 미친듯 뛰었고, 나조차 쉽사리 볼을 전진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EPL의 압박을 보여주었다.
맨유의 미친듯한 압박에서 볼을 지킬 수 있는 선수는 오직 나뿐.
공격적으로 나섰건만 볼을 받기 무섭게 백패스에 급급한 아군의 행태에 나 홀로 고군분투, 어떻게든 볼을 전개시키고 전진시키기 위해 날뛰었지만… 아무리 나라도 맨유 주전을 상대로 무쌍을 찍을 순 없는 노릇.
간신히, 정말 간신히 1~2명을 제쳐봐야 뭐하나.
압박을 풀어내고 공간을 만들어줘도 아군이 제대로 공을 못 받고, 받아도 압박에 금방 빼앗기니 나 혼자 날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섣불리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전반에만 3실점을 하며 호되게 혼난 우리팀은 후반 시작부터 안티풋볼을 시전했다.
쉽게말해 골문 앞에 버스 2대를 주차시켜놓은 것.
전반적 맨유의 주 득점 루트는 양 측면.
누가 맨유 아니랄까봐 퀼리티 좋은 선수단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양 쪽 측면 공격수를 앞세운 막강한 공격력은 마치 윙어처럼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측면 수비수와 결합되어 엄청난 시너지를 낳았다.
측면 수비수가 윙어처럼 높게 올라와 양 측면을 넓게 벌리면, 1on1 상황에 강점을 보이는 측면 공격수들의 호시탐탐 하프스페이스를 넘나들며 위협한다.
그걸 막겠다고 한쪽으로 쏠리면 미드필더가 반대쪽으로 전환해서 또다시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이걸 막겠다고 또 반대로 진영이 쏠리면 다시 반대쪽 전환.
좌우로 정신없이 반복되는 전환에 진영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파고들어 득점.
이걸 막기 위해 우리는 5백을 세우고, 그 앞에 4명의 선수를 위치시켰다.
맨유의 좌우 전환 흔들기에 맞서 기존 4백에서 5백으로 수비를 늘리니 측면을 넓게 쓰는 맨유의 공격에서도 공간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앞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며 수비 블록을 세우며 육탄방어를 하는 사이 맨유 선수들이 지쳤다.
1차전과 2차전 사이의 일주일 사이에 리그 경기가 있었다.
우리팀도, 맨유도.
그러나 대처는 정 반대였는데 한 팀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고, 다른 한 팀은 한 마리라도 잡기 위해 한쪽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욕심쟁이가 맨유요, 현명한자가 프랑크푸르트이니… 한 마디로 맨유는 리그에서도 주전을 소모했고, 우리는 리그 경기를 버렸다.
이는 팀의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는데, 우리 팀은 나름 3위로 우승 레이스에 참가 중이라지만 1위 뮌헨과 승점이 8점이나 나는 상황. 선수단 퀼리티나 스쿼드 두께나 ‘그 뮌헨’이 연달아 삐끗할리 없으니 사실상 우승은 물 건너간 셈.
이미 포칼컵도 떨어졌겠다, 리그 우승도 물 건너갔겠다, 우리 팀의 목표는 유로파로 집중됐다.
리그에선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만 확보하면 된다는 마인드인데… 4위인 라이프치히와 승점차가 6점이니 아직 널널하니까.
반면 맨유는 유로파보다 리그가 중요하다.
그도 그럴것이 유로파 리그 상금보다 EPL 상금이 훨씬 큰데 당연하지. 게다가 챔피언스 진출권이란 훨씬 중요한 상품이 걸려있지 않나.
유로파에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려면 우승해야 하는데, 토너먼트란 변수가 많은 방식상 우승을 보고 올인하기엔 불안하지.
그러니 챔스 진출권이 주어지는 리그 4위 안에 들려고 아등바등거리는거고.
지금 맨유가 4위와 승점 1점 차이로 5위를 마크중이니 애가 타 죽을 지경일거다.
그렇다고 프랑크푸르트 같은 갓 승격한 팀한테 4:0으로 발렸는데, 맨유 자존심에 홈경기에서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이런 상황이니 맨유는 리그에서도 거의 풀전력… 이른바 1.3군 같은 풀전력도 아니요, 로테이션도 아닌 애매한 전력으로 경기를 치루고 우리와 경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으니.
초반의 기세가 무색하게 후반으로 갈수록 맨유 선수단의 활동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선수단을 월드클래스로 도배해봐야 뛰지 못하면 2부 리그한테도 질 수 있는게 축구다.
어쩐지 전반전 너무 많이 뛰더라니, 가뜩이나 체력 상황도 좋지 않던 맨유 선수단은 후반 중반 이후 완전 방전이 되어 퍼졌다.
이틈에 공격을 하고 싶었으나 호되게 데여 화들짝 놀랐는지 감독님이 수비를 굳히라는 지시에 심술이나 부릴겸 우월한 볼키핑 능력을 살려 맨유 선수 틈에서 혼자 요리조리 장기자랑을 하며 놀다 파울 당하길 여러번.
경기는 1:3으로 끝났다.
1, 2차전 합계 프랑크푸르트 5:3 맨유.
졌지만 이겼다.
…복수한 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