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77)
177
시즌이 끝났다.
처음으로 풀타임을 경험한 시즌이라 그런가 마지막 경기가 끝난지도 한참인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새벽같이 눈을 뜨면 훈련에 나가야 할 것 같고, 오후엔 상대팀 분석이나 움직임 분석에 참석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몽롱한 내 상태에 하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후유증도 아니고 왜 이래? 아직도 실감 안 나? 우리 귀국까지 했는데도?”
하린이의 말처럼… 그래, 이건 후유증이다.
지난 1년간 전력으로 달려온 시즌에 대한 후유증—
“냅둬.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도 환영식을 못 잊어서저래. 카퍼레이드 할때부터 좋아죽으려더만, 아직도 이러네.”
“카퍼레이드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고? 그냥 도시에서 축제 열어준 것 뿐이잖아?”
“저거 사람들이 지 이름 연호해서 그 뽕에 취한거야. 냅둬.”
…그래.
솔직히 말해서 시즌이고 나발이고 유로파 우승컵을 들고 프랑크푸르트로 귀환했을 때 보여준 도시의 어마어마한 환영뽕에 취했다.
카퍼레이드하는데 진짜 온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어 내 이름을 연호하는 그 장면은… 어우, 다시 생각해봐도 콧구멍이 벌렁이고 똥꼬가 움찔거리고 등골이 다 짜릿하네.
살면서 처음 느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지.
하지만 모양 빠지게 이런 사실을 밝힐 순 없는 노릇.
확실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코웃음치고 있는 윤다예를 향해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시즌을 복기하면서 부족한 점을 곱씹고 있는거야. 다음 시즌엔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웃기네. 내가 너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솔직히 말해봐. 도시 사람들이 막 홍민준홍민준 외치던 뽕이 아직도 안 빠진거지?”
“…아닌데?”
“지랄. 너랑 평생 붙어있었는데, 내가 널 모를까.”
“…….”
하여간 윤다예 싸가지없는년.
남자라면 무릇 영웅 심리가 있기 마련이다.
1980년 이후 무려 54년 만에 이뤄낸 유로파 리그 우승. 당연히 프랑크푸르트 도시 전체가 들썩이며 축제가 열렸고, 그 위업을 이룬 선수단의 귀국에 맞춰 대대적인 환영식이 개최되었다.
개선행진이 이럴까 싶은 카퍼레이드까지 준비된 본격적인 환영식.
그리고 그 중 가장 많은 환호와 열광적인 챈트를 받은 건 주장 알렉산더 마이어와 팀의 에이스, 우승을 이끈 핵심 중의 핵심 바로 나 홍민준이었다.
도시 전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열광하는데 그럼 뽕이 안찰수가 있나.
수천, 수만, 수십만이 내 이름을 목놓아 외치는데… 당시에 얼마나 전율이 흐르던지.
“얘들아. 나 프랑크푸르트에서 1년만 더 뛸까? 리그 우승이랑 챔스 우승시켜주면 카퍼레이드 또 해주겠지?”
당시의 기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몽롱하게 중얼거리자,
“거봐. 내가 뭐랬어.”
“흥. 쓸데없이 달라붙어 있던 시간만 길어서는.”
“너같은 얄팍한 관계랑은 다르지.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왔으니까. 저 멍청이가 바지가 오줌지린것도 갈아입혀주고, 초등학교 들어가도록 못떼던 한글도 손수 가르쳐줬어. 알겠어? 너랑은 차원이 달라.”
“흐응~ 그래? 근데 어쩌나. 정작 진짜 어른이 될 무렵엔 항상 내가 옆에 있었는데.”
…저기 얘들아?
내 말 들리니? 나, 계약 1년 연장할까 생각중이라니까?
‘…그냥 조용히있자.’
멍멍왈왈 시끄럽게 싸우기 시작한 두 여편네를 보고있자니 현실감이 팍팍 든다.
그래. 1년 연장은 무슨.
리그 우승이랑 챔스 우승?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음 시즌전까지 최대한 포인트를 모아 스탯을 투자한다고 가정해보면—
‘불가능.’
역시 안 되겠다.
후반기들어 여실히 느낀건데 강팀이 왜 강팀인지 깨달았다.
여기서 1년 더 뛴다? 글쎄… 물론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순 있겠지.
그러나 내 개인 성적이나 팀 성적이 올해보다 좋을거라 자신할 순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해서 얼른 빅클럽으로 이적… 가만, 지금이 몇 시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잡생각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정오.
이제 슬슬 출발해야겠네.
“그만싸우고 빨리가자. 오늘 소집일이야.”
파주 NFC 이후 한국 축구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천안 NFC로 가는 길.
하린이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스마트폰으로 커뮤니티에 들어가봤다.
‘훗. 역시.’
이거 커뮤니티 지분율이 70~80%는 되겠는데?
축구 관련 커뮤니티 어딜가나 내 이름 가득하다.
흐뭇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글을 보던 중, 요즘 유행하는 밈인지 비슷한 내용으로 유독 자주 보이는 댓글들이 있었다.
홍민준 누구누구랑 결혼 기원이란 댓글이었다.
중간에 다양한 사람… 혹은 인종이 들어갔는데, 이를테면 ‘홍민준 브라질녀랑 결혼 기원. 11명만 낳으면 한국 국대로 월드컵 우승 가능’과 같은 내용의 도배글들.
재밌는건 인종보다 특정한 사람들이 자주 거론됐는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은—
—홍민준 엘레나랑 결혼 기원
—홍민준 윤희연이랑 결혼 기원
희연 누나랑 엘레나였다.
하긴.
‘테니스 여제’ 희연 누나는 지금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10위권에 안착하며 큰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바로 얼마전있었던 프랑스 오픈,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에서 무려 준우승에 오르며 남녀 통틀어 한국 테니스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지 않았나.
지금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스포츠 스타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나와 희연 누나일 정도로 나 못지 않게 잘 나가는 중이다.
한국 역대 최고의 테니스 재능이란 실력만해도 그럴진데, 안 그래도 뛰어났던 미모가 요즘 들어 물이 올랐다.
어느 정도냐면 대체 뭘 먹고 다니는건지 점점 예뻐지던 미모가 이젠 TV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
운동 능력에 비쥬얼까지, 그야말로 나와 잘 어울리는 한쌍이지 않나.
나와의 가상 커플링에서 한국 여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게 희연 누나라면 한국 외 여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건 단연 엘레나였다.
미국의 국민 여동생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던 엘레나는 내 찐팬 인증으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네티즌이 만든 나와의 가상 커플링에서 희연 누나와 더불어 투탑의 인기를 자랑하는 중이다.
운동 능력과 비쥬얼을 모두 갖춘 두 사람과 애를 낳아 한국 축구를 부흥시켜달라는 우스갯소리에 혼자 낄낄 웃다 다예에게 보여주니,
“잘 하고 있네.”
라며 시크한 반응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어? 잘 하고 있어? 뭐가?
“야. 설마해서 묻는건데… 이거 너네가 댓글 도배한거 아니지?”
“그럴리가. 오해야.”
대답은 운전중이던 하린에게서 나왔다.
휴, 그렇겠지. 내가 너무 황당한 생각을—
“강수연시켜서 여러 경로 거쳐 조선족한테 하청했으니 걸리지 않아.”
“그래. 내가 직접 쓴 댓글은 반응이 없어서 묻혔으니까 걱정할 필요없어.”
…그렇구나.
그랬구나.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창밖으로 입소식을 촬영하기 위해 바글바글 몰려있는 기자들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내려서 혼자가. 기자들한테 단독샷 기회주기로 했으니까 들어가기전에 2~3분 정도 멈춰서 웃어주고.”
“가장 오른쪽 기자들이 중요하니까 그쪽 중심으로 자리잡아. 너무 정면말고 살짝 틀어서.”
열심히 떠들어대는 두 여자를 보는 마음이 찹착했다.
이 착한 애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걱정스럽다.
* * *
밖에서 들려오는 익룡 소리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오지제와 수석 코치 심기철은 서로를 돌아봤다.
“뭐야? 아이돌이라도 왔어? 왜 이리 시끄러워?”
“아이돌은 아이돌이죠.”
“아아. 홍민준이 왔구나.”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천안 NFC 입구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기자와 팬들(대부분이 여자)이 난리부르스를 떠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홍민준이 대단하긴 대단해. 저거 이 땡볕에서 홍민준 한 번 보겠다고 기다리던거 아냐. 저게 다 몇 명이야.”
“그거 아세요 감독님? 이럴줄알고 홍민준 입소 날짜 비밀로 했는데, 오늘따라 기자들 많은걸 본 보초들이 연락돌려서 몰려들었답니다. 이건 뭐 군대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입구에 보초세워두는게 말이 되나 원.”
“나도 딸자식 키우지만 요즘 여자애들 너무 극성이야.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냥 테레비로 보면 될 걸.”
“그러게 말입니다. 제 딸이 저랬으면 다리 몽둥이를 그냥… 응?”
“왜 그래 심코?”
“어… 저기… 왜, 우리 딸이…?”
“뭐? 자네 딸? 어디… 으응? 우리 미연이잖아!?”
경비를 통해 입소를 재촉한 후, 두 사람은 전술판을 보며 하고있던 고민을 이어갔다.
“음… 어렵네요. 홍민준을 어디에 배치한담.”
“흐으음…”
월드컵의 준비 기간은 4년.
지난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감독에 오른 오지제와 4년간 그를 보좌해온 수석 코치 심기철은 지난 시간 대표팀의 얼개 구상을 끝내놨다.
예전 누군가의 말처럼 월드컵이란 성장하는 무대가 아닌 증명하는 무대.
한국이 어디 스페인이나 브라질,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같은 축구 강국도 아니고 인재풀이야 뻔할 뻔자다.
4년 동안 새롭게 대두된 선수도 있고, 져버린 선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주목받던 유망주가 올라오고, 나이가 들어 져물었을 뿐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졌던 기존의 얼굴들.
그러나 작년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바로 홍민준과 윤혁의 등장.
이 두 선수는 축구 관계자들의 눈에서도 벗어나 있던,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뉴페이스’였다.
홍민준이야 중학생 시절까지 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연령별 대표팀에도 뽑혔다지만 그거야 중학생 시절 이야기.
유망주에게 3년은 잊혀지기 충분한 시간이었으니, 고등학생 이후 대표팀과 멀어진 홍민준은 여느 유망주처럼 잊혀졌고 윤혁은 한술더떠 연령별 대표팀 경험도 없던 그야말로 무명의 대학 리거였다.
그렇다고 인맥이 출중한 것도 아니니, 두 사람의 대두는 정말 서프라이즈일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