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8)
18
왠지 모르게 혼자 불타오른 윤혁 선배는 그날 이후, 정규 훈련이 끝나고 남아서 함께 자율 훈련을 했다.
아니지. 솔직히 말하면 자율 훈련을 하려는 내 옆에 붙어서 계속 전술 지도랄지, 노하우 방출이랄지 자기 경험이나 플레이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에 가깝달까.
‘뭐지. 이 선배 왜 이렇게 의욕적이냐.’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면 선배는 웃으며,
“그래. 아직 부족하다 이거지? 좋아. 최선을 다해 알려주마.”
라며 흐뭇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게 아닌가.
대체 뭘까.
쓸데없이 성취감을 불태우는 선배가 귀찮긴했지만 의외로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아 의아할 정도.
“홍민준이! 그렇지! 그렇게 움직이면 되잖아!!”
연습 경기에서 항상 호통만치던 감독님의 칭찬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아쉬운 건 그날 이후 스탯이 오르진 않았다는거다. 딱 스탯만 올라주면 최고였을텐데. 그래도 뭐, 내 노력 여하로 올릴 수 있단 걸 확인했으니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4일.
낮에는 팀 일정에 맞춘 정규 훈련, 저녁엔 윤혁 선배와 함꼐 자율 훈련 그리고 밤에는 지경 누나 괴롭히기라는 충실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2번째 경기날이 다가왔다.
“빨리빨리 움직여! 장비 잘 챙기고, 버스에서 자지마라. 성실대까지 금방이야. 괜히 잠들어서 바이오리듬 망가뜨리지 말고 음악이라도 들어. 알겠어?”
감독님의 재촉을 받으며 학교에서 지원해준 관광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리그 2번째 경기이자 첫 원정 경기.
상대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성실대였다.
* * *
강수연은 핸드폰을 옮겨 잡았다.
“펴, 편집장님… 그게… 서, 성실대 여총회도 폐쇄했다고…”
—야!!
대비를 했음에도 손을 뚫고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순간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야아아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씨부려!? 거기 여자총학생회 간부 누구야! 간부랑 연락해서 어떻게 되살릴지 들어야 할 거 아냐!!
“하, 학생 투표로 폐쇄된거라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없, 없다는데…”
—이, 이익… 이이익…!!
폰 너머로 들려오는 씨근덕거리는 돼지소리에 강수연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씨이. 내가 울고 싶다. 학생 투표로 폐쇄된 걸 나보고 어쩌라고!!’
밀려오는 억울함에 울컥 눈물이 고이지만 여자 상사에겐 여자의 필승 무기, 선즙필승도 통하지 않는 법. 수연은 잠자코 처분을 기다렸다. 부디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기만을 바라면서.
—오, 오또케, 오또케… 당장 다음주 인쇄들어가야 하는데, 한 꼭지, 한 꼭지라도 따와! 알겠어!? 어떻게든 불안해하는 우리 독자님들 기 살려줄 수 있는 기사 한 꼭지거리라도 따오라고!!
“편, 편집장님! 여총회 폐쇄되었다는데 이 촌구석 어디에서 기사를 구해요.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서 구해볼게요.”
강수연의 간절한 애원에도 편집장은 꿀꿀…이 아니라, 씨근덕거림을 멈추지 않더니 꽤엑 소리를 내지른다.
—지방 특집인데 서울 기사 실어서 뭐할건데에에에!! 안 돼. 어떻게든 거기서 한 꼭지 따와!!
“편집장님!!”
—아 몰랑! 이게 내일이야? 아무튼 해결해! 내일까지 안 보내면 데스크 뺄 줄 알아!!
오또케오또케하는 소리가 멀어지더니 이내 삑, 통화가 끊긴다.
강수연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 액정을 망연히 내려다봤다.
‘이 씨발년… 이거 니 일 맞잖아….’
바로 다음주부터 인쇄들어가야 하는 잡지에 빵꾸나게 생겼는데 편집장의 일이 아닐리가 있나. 그럼 편집장 왜 달고 있는데. 사장 조카라서? …맞네. 그거네.
수연은 억울했다.
바로 어제. 기사거리가 있다고,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한 건 편집장 아니었던가.
불같이 닥달하는 기세에 아무 준비도 없이 덜컥 내려왔더니 기사거리는 무슨. 여총학생회가 아예 폐쇄됐다는데 뭔 놈의 기사거리가 있겠나.
아. 있긴 있겠네.
어찌저찌 간부 하나 찾아서 ‘이 지역 마지막 남은 여총회도 폐쇄되었답니다~ 압도적인 학생 투표 결과라 부활 가능성도 없어요~’하는 인터뷰 말이다.
물론 잡지에 싣는 순간 폭발한다.
게시판이나, 홈페이지나, 회사 전화기나… 아무튼 사방에서 꿀꿀거리는 소리에 여러모로 다 폭발할거다.
회사도, 수연도.
아니 회사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연의 데스크가 전국의 여총회처럼 폐쇄될거란 건 자명한 일.
강수연은 어둡게 변한 스마트폰 액정을 망연히 쳐다보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기껏 준비한 대포 카메라와 캠코더, 녹음기가 든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빠질 듯 아려왔다.
끼릭.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중고차팔이하던 전남친에게 사기당— 아니, 구입했던 낡은 구형 모닝의 문은 오늘도 역시나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진짜 되는게 없네.”
허탈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니,
페에에에에미미미미미미—
페에에에미미미미미미미——
시동음만 요란하게 울릴 뿐.
그녀의 오래된 애마는 더 이상 일하기 싫다는 듯 평소보다 끈질기에 태업을 이어간다.
“이… 이익, 역시 한남이 만든 똥차! 걸려라, 좀 걸려라!”
이를 악물며 키를 돌리길 몇 번.
페에에에미미미미미이익—!
가뜩이나 눈물 날 것 같건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걸릴 듯 말 듯 걸리지 않는 시동에 울컥하는데,
“오빠오빠. 저거 봐. 차 고장났나봐. 어쩜 좋아.”
“와. 저건 언제적 모닝이야. 진짜 오래됐…”
앞을 지나던 커플이 요란한 시동음에 이쪽을 기웃거리는 게 아닌가.
수연은 순간 이쪽을 기웃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흠흠. 제,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오빠!?”
수연의 얼굴을 본 남자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과장된 친절을 베풀려고 했지만.
“끄읍… 피, 필요없어요.”
“네? 뭐라구요?”
“소추한남 따위 필요없다구우우우우!!!”
눈물이 터진 수연이 그대로 핸들에 머리를 쳐박으며 울부짖었다.
빠아아아아앙——!!
“꺄악! 미친년 아냐 저거! 오빠 우리 빨리 가자.”
“그, 그래도. 우는 것 같은…”
“야! 너 똑바로 말해! 나야 쟤야!”
“다, 당연히—”
끝내 미련을 못 버린 남자가 힐끔 수연을 쳐다보지만 여전히 핸들에 얼굴을 쳐묻고 있는 모습에 재빠른 판단을 내린다.
“당연히 울 애긔징~”
빠아아아아앙—!!
“꺄아아악! 정신 나갈 것 같애!! 오빠 빨리 가자!”
한 쌍의 바퀴벌레를 퇴치한 수연은 그제야 핸들에서 얼굴을 떼어내며 해탈한 미소를 머금었다.
“…씨발. 인생 좆같다.”
수연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을까.
강수연.
방년 (만)29살.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 모인다는 한국(여)대 출신의 엘리트.
뭔가 중간중간 불필요한 글자가 하나씩 들어가있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다. 팩트.
“이딴 회사 들어오는게 아니었어.”
수연은 한탄했다.
어딜가나 주목받는 예쁜 얼굴, 타고난 몸매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오던 강수연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의 직장, 우먼 파워 매거진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수연이 다니는 회사는 신문과 잡지 발행을 주력으로 하는 곳으로, 창립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여성을 위한 회사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여성우대정책을 쏟아내던 지지난 정권 하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지난 정권의 여성정책 선봉장이자 핵심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것 같던 회사는 정권이 바뀌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제대로 역풍을 맞는 중이었다. 이제는 폐간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스펙이 쪼금… 아주 쪼~오금 부족했던 수연은 회사가 최고조를 달리던 시기, 여성할당제를 통해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가 몰락해가는 지금와서는 해고 1순위로 꼽히는 중이고.
사실 수연의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애초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곤 건실한 스펙을 갖춘 소수의 남직원들 뿐.
회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자들은 여성할당제로 입사한 수연과 또이또이… 아니, 오히려 수연보다 못 한 이들이 한 트럭이다.
그럼에도 수연이 퇴사 1순위에 올라온 이유는…
“에미 좆같은 페미. 내 더러워서 안 한다.”
단순히 예뻤기 때문.
수연은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페미에 부정적이었다.
타고나길 예쁘게 태어나 남자들의 떠받듦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뭔 놈의 페미인가.
그러나 여자는 공감하는 동물이라고, 회사에서 한남한남거리는 동료들과 지내다보니 ‘아! 한남이 나쁜 것들이었구나!’하는 대오각성… 이라기보단, 음습한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미 코스프레를 해왔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소용없을 상황까지 몰렸으니.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는 구형 모닝에서 내린 수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하니 맑은 하늘.
“나도 이제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정처없이 터덜터덜 걷길 한참.
아예 퇴사할 각오를 하고나니 오랜만에 머리가 맑고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래.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
나도 이제 연애도 다시 하고, 꾸밈노동… 아니, 화장도 제대로 하고… 그렇게 한참 걷던 수연의 시야가 확 트이며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스트레칭 확실히 해!”
“대충 몸풀다 부상당하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해라.”
아니. 그곳은 광장이 아니었다.
“…축구장?”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축구장이었다.
멍하니 축구장을 내려다보던 수연은 문뜩 눈길을 사로잡는 광경을 발견했다.
옆에 있는 훈훈한 한남과 웃고 떠들며 장난치고 있는 미소년을.
“자, 잘생겼다.”
어찌나 잘생겼는지 얼굴에 빛이날 지경.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매고있던 대포 카메라를 들어 찰칵, 사진을 찍었다.
“헉! 내, 내가 뭘 한거지? 이 아까운 사진을 양남이 아니라 한남 따위에—”
카메라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니,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던 수연은,
“…근데 양남보다 낫네. 아우, 쟨 뭘 먹고 컸길래 저리 잘생겼대. 힐링된다아~”
매력 95의 위력으로 비로소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역시 한국 여자는 한국 남자지.”
헤~ 웃으며 다시 카메라를 들어 찰칵찰칵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홍민준의 독점 인터뷰를 제공하는 전담 기자 강수연이 홍민준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