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83)
183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4일후 열리는 스위스와의 조별예선 2차전.
올림픽보단 낫다지만 월드컵 역시 조별예선부터 결승전까지 불과 1달 사이 후다닥 끝나는 짧은 일정인지라 경기 텀이 짧은 편이다.
엔트리가 26명으로 늘어 로테이션 인원수는 문제없다지만 사실 축구란게 어디 교체 인원이 없어서 문제였던가.
축구계 일정, 체력 문제는 거의 대부분이 ‘풀전력으로 쓸 주전의 체력이 부족하다’는거지 로테이션 맴버가 없다는게 아니다.
즉, 최대한 온전한 상태의 주전으로만 경기를 치루고 싶다는 것.
물론 그러다 중간에 주전들이 퍼지면 문제니, 무릇 능력있는 감독이라면 적절히 주전과 비주전을 섞어 경기력과 체력을 동시에 잡아내겠지.
그러나 그런 능력있는 감독이라면 왜 아직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노릇을 하고 있겠는가? 어디 이름난 빅클럽에서 감독 노릇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감독님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기보단 한 마리라도 확실히 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번 경기 라인업은 지난번과 똑같다. 어설프게 로테이션 돌리느니 확실하게 스위스잡고! 3차전 다 바꿔보자고. 선발! 너네 몸 갈아가며 3차전도 뛰고 싶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번 경기 기필코 잡아라. 그래야 후보 애들도 원없이 뛰고, 주전 너네도 16강 대비해서 푹 쉴 수 있지. 안 그래?”
“예!!”
“맞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월드컵은 전 세계의 스카우터가 주목하는 거대한 쇼케이스 무대다.”
우렁찬 대답에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감독님이 뜬금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네 이대로 고만고만하게 커리어 끝내고 싶어? 아니잖아. 축구계 가장 큰 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잖아. 안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을 둘러본 감독님이 전술판을 손바닥으로 팡팡 내려친다.
“너네 가장 아쉬운게 뭔지 알아? 가장 큰 무대를 눈앞에 두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과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거야. 주전. 너네 체력 후달려서 월드컵 무대에서 제 실력 보여주지 못하면 어떻겠어? 후보, 너네도 월드컵 무대에서 뛰어야지. 후반 교체가 아니라 전후반 풀타임으로 뛰면서 보여줘야지. 안 그래?”
음… 우리 감독님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네.
그래도 과거의 정신론보단 낫다.
정신론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축구… 아니, 어느 스포츠든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야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순 없겠지.
괜히 위닝 멘탈리티니 헝그리 정신이니 투쟁심이니 승부욕이니 하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정신론은 구닥다리 이론이 아니라, 지금도 미래에도 충분히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과거의 고루한 정신론은 문제다.
정신론도 중요한거지 정신론만 강조하면 그게 먹히나.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의 결정은 나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번 경기 기필코 잡아야한다. 얘들아, 꼭 좀 이겨서 우리 경우의 수 따지지 말고 16강 좀 가보자. 응?”
나쁘지… 않겠지…?
뭐, 이러나저러나 결과에 따라 감독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겠지.
어쨌든 감독은 결과를 내는 자리고, 로테이션을 돌렸든 안 돌렸든 결과에 따라 끼워맞추기가 되니까.
* * *
그라운드에서 기본적인 몸풀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와, 오늘 1차전보다 팬들 많던데.”
“열기 장난 아니더라.”
“지면 역적되는 각?”
삼삼오오 떠들며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을 때, 유난히 큰 우람한 아들녀석 때문에 시선받기 싫어 후다닥 갈아입고 문득 옆을 돌아봤을 때였다.
“어…? 선배 몸 왜 그래요?”
“아 이거?”
내 옆 라커룸을 쓰는 윤혁 선배 몸이 푸르딩딩 부어있는게 아닌가.
“저번 경기에서 후반가니까 아르헨티나 애들이 좀 격해지더라고. 승리의 흔적이지 뭐.”
유니폼으로 가려져 있던 상체 곳곳이 파랗게 멍들어 있고, 심지어 군데군데 할퀸 자국 위에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무엇보다 정강이에 아주 시퍼렇고 큰 멍은 보기만해도 아파보일 정도.
“선배 이거 괜찮겠어요? 존나 아파보이는데.”
“안 괜찮으면 안 뛸거냐. 그냥 참고 뛰는거지.”
어… 음… 하긴.
그냥 리그 경기도 아니고 월드컵 아닌가. 나라도 아픈거 참고 뛰겠네.
차후 커리어에 큰 문제를 일으킬 부상이어도 ‘월드컵’이라 뛰는 선수도 많다. 이를테면 페르난도 토레스는 월드컵을 위해 부상을 참고 뛰다가 훅 갔지만 훗날 인터뷰에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정도.
게다가 보이는 것과 달리 멍과 스크레치는 참고 뛴다고 후유증이 남는 것도 아닌지라 어찌보면 사소한 부상이지만… 확실히 경합이 가장 치열한 중앙에서 뛰는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닫게 된다.
머리론 알고 있었다.
경기를 뛰면서 실제 얼마나 치열한지 보기도 했으니 모를리없지.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나서야 얼마나 힘든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심판 몰래 때리고, 꼬집고, 할퀴고 아주 별 지랄이 다 일어나는 곳이라는걸. 물론 측면이라고 이런게 없는건 아니지만… 중앙은 특히 심하다.
축구에선 적절한 손장난은 실력이다.
반칙? 그거야 걸렸을때가 문제고. 프로 기준에선 얼마나 치사하고 교묘하게 손장난을 하느냐도 실력이다. 파울이나 반칙조차 적절하게 구사하는게 능력인데 뭐.
내가 빈약한 몸싸움 능력에도 비교적 빨리 중앙의 경합에 적응한 것도 다 이 손장난 덕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경합 능력을 메우기 위해 교묘하고 치사한 방법도 가리지 않았으니까. 대표적으로 심판 몰래하는 손장난과 헐리우드 액션은 중학 리그 내 트레이드 마크였지.
포지션 변경할 당시 팬들은 내 경합 능력과 성향만 보고 중앙 미드필더 적응에 가장 어려움을 겪을 요인으로 치열함 경합을 꼽았다.
같은 축구 선수라도 중앙에서 뛰는 선수와 측면에서 뛰는 선수는 몸 만드는 것부터 차이가 있으니까. 특히 상체 근육은 몸싸움을 위해선 키워야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속도와 방향전환, 바디 밸런스, 스프린트에 불리해진다.
그렇기에 선수라면 자신의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몸을 만들기 마련.
상하체의 밸런스와 경합의 적극성, 플레이 방식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게 축구 선수의 몸이다.
즉, 몸싸움이 약하다고 무턱대고 근육을 늘리는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
이런 의미에서 내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괜히 잘하던 플레이마저 무너지는게 아니냐고 팬들이 걱정했지만, 난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적응이 빨랐다.
눈치가 빨라서 적절한 손장난과 파울을 이용해 먹었으니까.
정작 내가 가장 적응에 애를 먹고 어려워했던 건 바로 플레이 방식이었다.
보통 측면 공격수로 내가 마주하는 상대 선수는 수비수.
수비수들은 기본적으로 달려들기보다 간격을 둔 수비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최종 수비라인에 가까울수록, 드리블러를 상대할수록 이는 당연한 수비 방식이 되는데 중앙에서는 아니었다. 일단 공을 보면 달려드는 미친개처럼 달라붙는다.
하지만 이조차 괜찮았다.
측면에서도 내 약한 경합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라붙는 선수도 많았고, 애초 처음 시작하는 자리가 측면이지 내 플레이 스타일 상 중앙에서 플레이하는 비중도 높았으니 이런 적극적인 수비에도 꽤 익숙했다.
허나 내가 수비할때가 문제였다.
측면 공격수로 내가 하는 수비란 적당히 상대의 패스 경로를 제한하고, 방해하는 정도.
그러나 중앙 미드필더로서 나는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때 큰 도움을 주었던게 윤혁 선배였다.
중앙 미드필더에서의 움직임, 노하우, 수비 방식, 위치 선정… 물론 구단에서 배운 게 더 많지만, 구단이야 당연히 코칭해줘야 하는거고.
윤혁 선배는 순수히 나에게 자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대방출해준 셈이니, 고마운걸로 따지면 이쪽이 압도적이지.
아니지. 생각해보니 구단이 요청해서 포지션 변경한거고… 애초에 구단 코칭 스탭이 해야 할 일을 한거잖아.
“선배. 오늘은 걱정마십쇼. 고생하지 않게 제가 아주 박살을 낼게요!”
“어… 그래.”
“스위스 새끼들 다 죽었다. 우리 윤혁 선배 오늘 아주 편하게 뛰게 제가 다 정리해놓겠습니다!!”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윤혁 선배.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이 선배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플레이할게뻔해.
“몸 아끼십쇼 선배! 오늘 설렁설렁. 알죠 뭔 말이지?”
“야 이새꺄. 너 MOM받으려고 이러는거지?”
“에이~ 무슨 소리심까. 전 순수하게 선배 걱정—”
“지랄을 한다. 저번 경기 내가 MOM받은게 그렇게 배알 꼴렸냐? 이새끼 아주 안 되겠네. 은혜를 원수로 갚아?”
들켰네.
* * *
평소 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축구란 골대 안에 공을 집어넣기 위해 용쓰는 스포츠에 불과할 것이다.
국가대표 경기만 챙겨보는 FC코리아에겐 수비와 미드필더끼리 열심히 공을 돌리지만 정작 실속은 없는 ‘이상하게 경기는 주도하는 것 같은데 실속은 없네’일테고.
그러다 가끔은 공을 뺏겨 오히려 눈에 차지않는 아시아권 팀에게 위험한 기회만 내주는, 뭔가 점유율 높고 주도하는 것 같지만 간신히 우당탕탕 한골 넣어 이기는 그런 축구를 떠올리겠지.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지금 월드컵을, 한국의 경기를 시청하는 FC코리아라면 ‘축구가 이렇게 재밌다고!?’하며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팀이 보는 눈이 즐겨운 공격 축구를, 그것도 정말 일방적으로 상대를 때리는데 재밌지 않을 수 있나. 게다가 상대는 바로 그 ‘2006년의 원수, 오심으로 이긴 상대’ 바로 그 스위스아닌가!
이런데도 재미없다면 그 사람은 구기 종목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스위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스위스인일 것이 분명했다.
“골!! 골!!! 벌써 3번째 골입니다!!!”
“이야~~!! 정말 대단한 선수의 대단한 골이 터졌네요!! 홍민준 선수 오늘 폭주하는데요!!”
“후반 3분! 1골 1어시스트로 대한민국의 3번째 골을 만드는 홍민준!!”
압도당하던 전반전이 끝나고 간신히 멘탈을 추스르고 나온 스위스 선수들의 고개가 바닥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