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90)
190
보통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며 통로에 나란히 서있으면 친분있는 선수끼리 잡담도 나누고, 에스코트 키즈와 장난도 치기 마련이다.
프로 생활이라는게 그렇다.
말이 좋아 원클럽맨이니 은퇴 후 코치 연수까지 도와주니 그러지 사실 프로 생활하며 이적을 경험하지 않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상위 리그에서야 4~5년 계약을 깔고가지만 하부 리그로 갈수록 단기 계약, 그것도 채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계약을 맺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직장인이 매년 연봉 협상을 하듯, 선수들도 매년 혹은 일년에도 몇 번씩 구단을 옮겨다니는 생활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로 대표되는 원클럽맨에 대한 낭만이 있지만, 낭만이 괜히 ‘낭만’이니 ‘로망’이니 불리겠는가.
게다가 선수들은 대부분 자기가 뛰는 리그에서 돌고 돈다.
하부 리그에서 상위 리그도 올라가거나, 해외 리그로 이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자기가 뛰는 리그가 자기 수준인 것.
그러다보니 지금 상대팀으로 보는 선수들이 언제 ‘우리팀’이 될지 모르니… 아니, 꼭 그런 계산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동업자로서 경기전 교분을 나누는 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어지간히 사이가 안 좋은 팀이나 강한 라이벌리를 지닌 더비전… 혹은 은원이 없었지만 무언가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말이다.
“…….”
“…….”
그리고 오늘.
별다른 은원이 없던 두 팀, 한국과 이탈리아는 선수 입장 통로에서 대기하는 내내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으며 그야말로 북풍한설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무엇을 숨기랴.
바로 나, 홍민준이 만든 강제 더비전.
…일명 ‘홍민준 더비’의 시작이었다.
* * *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건 아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뷰를 질렀겠는가.
대표팀 동료들의 동기부여를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탈리아 선수나 국민들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 나쁠만하지.
입장 바꿔서 스위스 선수가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을 만나 ‘언제까지 되도 않는 오프 사이드 논란 운운할거냐.’라며 일침을 놓으면 어떨까?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를 떠올려보면 쉽다.
팩트는 팩트이되, 되게 기분이 나쁘겠지.
그리고 이탈리아는 한국보다 축구에 더욱 진심인… 아니, 미친 나라다.
내 발언 이후 이탈리아에선 홍민준을 죽이니 살리니, 아주 난리가 났다는데… 뭐, 솔직히 별 신경도 안 쓴다.
어차피 이탈리아 리그는 생각도 없었으니까.
자본과 인기에서 EPL에 밀리고, 구단 레벨에서도 라 리가의 양대산맥에 밀리는 이탈리아 리그로 굳이 이적할 필요가 있나.
그나마 있으면… 로망?
근데 이것도 내가 이탈리아에 뭔 연고가 있는것도 아니고, 이적해온 동양인 선수가 로망을 이루려면 성적으로 찍어눌러야 하는데 그럴바에 그냥 EPL이나 라 리가에서 하지 뭣하러 세리에로 가겠는가.
내 커리어에… 최소한 다음 이적에 이탈리아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에 맘껏 질렀는데, 이탈리아 선수들 반응이 생각보다 격하다.
나쁜 의미로 격하면 차라리 낫지 조용히 의욕을 불태우는 지금의 모습은…
“야. 우리 좆된거 아니냐?”
“…걱정마요. 제가 있잖아요.”
음… 잘 되겠지…?
우리 팀은 이번에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그간 써오던 전술이 아닌, 월드컵 직전부터 연습하기 시작한 상당히 불완전한 전술이지만 감독님의 결정은 단호했다.
“어차피 못 뚫으면 진다. 월드컵에서 가장 공격력이 좋은 우리의 창이 뚫을 수 있느냐, 가장 수비력이 좋은 이탈리아가 막느냐의 승부야.”
우습게도 지금까지 진행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건 우리 대한민국이요, 가장 단단한 방패를 자랑하는 건 이탈리아다.
최다 득점팀 대 최소 실점팀의 경기.
이탈리아야 카테나치오로 대표되는 단단한 이미지가 있었으니 그렇다쳐도 한국이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 된 건 모두 내 덕분.
그리고 감독님은 날 믿어보기로 했다.
4-4-2의 ‘2’의 자리, 오른쪽 공격수로 출장시켰는데… 사실상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에 마무리 역할까지 부여하며 내 개인 기량에 상당히 의존하는 전술이 된 것.
준비할 때 양 쪽 미드필더 자리는 EPL 듀오의 자리였겠지만 배찬식 선배가 부상으로 이탈한 탓에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 윤혁 선배가 대신 출장했다.
본래라면 중앙에서 부족한 중원 숫자를 혼자 부담하며 팀의 수비를 책임져야겠지만 이탈리아의 전술 성향상 수비력보단 공격력이 필요한 시점.
측면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담당하며 오른쪽 공격수인 나에게 정확한 패스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윤혁 선배와의 호흡이 중요한 전술이었다.
축구 전문가들마저 창과 방패의 대결로 기대를 모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는… 의외로 지루하게 시작됐다.
—아, 생각보다 일방적입니다. 우리 선수들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으며 틈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요.
—이탈리아 선수들 공간 활용이 아주 좋습니다. 공간이 좀 비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함정이에요. 홍민준 선수의 뛰어난 볼키핑 덕분에 뺏기지 않았을 뿐, 좀 더 조심해서 패스해야 해요.
패스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공간이 생겼다 싶으면 함정이었다.
전반 8분만에 그렇게 2번의 함정에 빠져 소유권을 뺏길 뻔 했지만 한 번은 발끝으로 백패스를 건네고, 다른 한 번은 추하게 손까지 사용하며 네 발로 기어 라인 밖으로 공을 내보내며 역습 상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나였으니 가능한 묘기였을 뿐.
—아, 뺏겼어요! 최슬찬 뺏겼어요! 빨리 복귀해야죠!!
—수비, 수비 빠르게 복귀해야… 아, 최태식 태클!! 잘 막았… 어? 지금 무슨 상황이죠? 심판이… 찍었습니다!!
나에 대한 견제가 심하자 공격 방향을 바꾼 것이 독이 됐다.
최슬찬 선배가 공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둘러싼 이탈리아 선수들이 볼을 탈취하고 곧바로 이어진 역습.
상대가 슛팅을 하려던 마지막 순간, 주장 최태식 선배의 좋은 태클이 들어갔지만 심판이 패널티를 선언한 것.
“레프리!! 헤이 레프리!! 와이!? 와이 패널티!!”
흥분한 동료들이 심판을 향해 외쳤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패널티를 선언한다.
“씨발! 정확히 공만 건드렸다고! 제대로 닿지도 않았는데 뭔 패널티야!!”
“눈깔 똑바로 떠, 씨팔놈아!”
감독님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던 주심이 인이어에 손을 올리고 잠시 서있더니 손가락으로 직사각형을 그린다. VAR팀에서 판독 요청이 들어온 것.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 간절한 표정의 선수들을 향해 심판이 다시 손짓을 했다. 이번엔 방향을 바꿔서.
—아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우리 선수들!
—최태식 선수의 발을 맞고 나갔다는 판정입니다. 코너킥. 어우, 정말… 리플레이를 보면… 정확히 들어간 태클입니다. 명백히 패널티가 아니죠.
—그러나 우리 선수들. 집중해야되요. 이탈리아는 세트피스에서 강점이 있는 팀이거든요?
수비로 명망높은 이탈리아지만 수비만 잘해선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결국 축구는 골이 있어야 이기는 스포츠.
이탈리아가 최소 실점이란 단단한 수비 축구를 하면서도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훌륭한 역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트피스 공격이 뛰어난 팀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이번 월드컵 세트피스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팀이었으니까.
—신중하게 코너킥을 준비하는 로렌초.
다행히 패널티를 피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탓일까.
코너킥 상황.
장신 선수들은 방해하면서도 정작 뒤에서 달려오는 단신의 이탈리아 선수를 막는 선수가 없었다.
—어? 어어? 크리그비흐! 크리그비흐… 아… 골이에요.
—우리 선수들, 너무 장신 선수만 신경썼습니다. 뒤에서 달려오던 크리그비흐를 못 봤네요. 아쉽습니다.
전반 15분.
이탈리아의 선제골이 터졌다.
가뜩이나 최소 실점에 빛나는 수비력 좋은 팀이 선제골까지 넣었으니, 그 다음 수순은 뻔했다.
—아~ 이탈리아 수비벽이 너무 단단해요.
—잔뜩 웅크린 이탈리아를 뚫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 힘을 내야 해요.
거의 쓰리톱처럼 올라온 윤혁 선배와 몸으로 스크럼을 펼치며 등지고 딱딱을 보여주는 최슬찬 선배의 활약으로 몇 차례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도,
삑!!
—뭐죠? 이번에도 파울 선언이 나옵니다!
—이건 아니죠!! 오히려 이탈리아에 파울을 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명백히 공이 지나가고 진로를 막았는데, 홍민준 선수의 파울이라뇨!!
그때마다 심팜이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리며 번번히 결정적인 기회를 끊어냈다.
참다 못한 주장 최태식 선배가 거칠게 항의하자 기다렸다는 듯 옐로 카드까지.
“…환장하겠네.”
넘어졌던 몸을 일으키니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심과 씨근덕거리는 최태식 선배를 뒤로 끌며 애써 진정시키는 동료들.
힘들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심판마저 이럴줄이야.
아프리카계 주심이지만 또 모르지. 이탈리아 서포터즈라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수도. 아니면 동양인을 싫어하나? 같은 유색인종이라지만 의외로 유색인종간에 유대감은 없으니까 그럴수도 있겠네.
하… 이대로 패배하면 언론에서 아주 난리나겠네.
건방지다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이기면, 결과만 좋으면 적당히 묻고 넘어갔을 내 인터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거다.
월드컵 끝나고 그냥 귀국하지 말까.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야. 답지 않게 왜 이래?”
“…윤혁 선배?”
“정신차려 이새끼야. 경기 아직 안 끝났어.”
“그쵸. 안 끝났죠.”
애써 몸에 힘을 주며 진영으로 돌아가는데 윤혁 선배가 어깨를 붙잡았다.
“민준아. 다른 선수가 포기해도 너만은 포기하면 안 돼. 알겠어? 넌 대표팀 에이스야. 에이스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뻔뻔해야 된다. 그래야 선수들이 널 보며 희망을 얻어. 그러니까 새끼야, 언제나처럼 가서 한 골 넣고와. 네가 잘하는거 있잖아. 말도 안 되는, 미친 플레이말야.”
미친 플레이라…
“선배. 그럼 저한테 공 몰아줄 수 있어요?”
내 말에 윤혁 선배는 새삼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까지 몰아받던 새끼가 뭔 개소리야. 골이나 넣고와 씹새야.”
“…그러죠 뭐.”
하긴.
이런 상황에서 한 건 해내는게 또 슈퍼스타의 자질 아니겠어.
얄미운 표정으로 경기 재개를 알리는 주심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어디까지 방해하나 한 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