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191)
191
정신력, 투쟁심, 위닝 멘탈리티, 간절함… 이름은 다양하지만 소위 ‘정신론’이라 여겨지는 무언가는 스포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과학적 접근법이 대세가 된 지금, 객관적으로 수치화 할 수 없는 정신론은 ‘올드 스쿨’를 대표하는 방식이 되어버렸음에도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온갖 첨단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젊은 감독들조차 위닝 멘탈리티니 투쟁심이니 간절함이니 하는 정신 무장을 강조하기 마련.
그러나 반대로 정신론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랬다면 정신론이 ‘올드 스쿨’이 되었을리 없겠지.
“밀어붙여!!”
실점 직후 감독님은 적극적인 공격을 요구했다.
“측면으로 풀어가! 저 새끼들 저거 중앙에 빡빡하게 몰려있는거 풀어야 돼! 넓게 벌려!”
이탈리아의 스타팅 포메이션은 4-3-3이지만 정작 수비시엔 전형적인 4-4-2 형태를 띈다.
두 줄 수비 라인을 통해 중앙을 철저히 틀어막는 전략에 맞선 감독님의 선택은 적극적인 측면 공략.
이를 위해 2명의 공격수 중 내가 자주 측면으로 빠져 플레이 메이킹을 시도했다.
나와 짝을 이룬 공격수 최슬찬 선배는 활동량과 연계, 포스트 플레이에 모두 능하지만 개인기와 탈압박이 부족한 선수답게 측면에서 공을 잡아도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적었고, 결정적으로 나는 포스트 플레이가 전혀 안 되는 선수였으니까.
“올려! 바로 크로스 올려!”
4-4-2 형태의 수비 블록을 형성한 이탈리아는 중앙은 철저하게 막을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측면이 부실했다.
좌우 폭을 넓게 쓰는 우리를 견제하겠다고 따라 나왔다면 빈 공간이 생겼을테지만, 이탈리아의 선택은 더욱 중앙에 집중하는 것.
측면을 포기하다시피 방치하는 수비 전략 덕분에 우리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연달아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좋아!! 계속 붙여!!”
좌우를 활발히 오가며 연계에 집중하는 나와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한 윤혁 선배가 끊임없이 이탈리아의 패널티 박스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패싱력이 좋아진 나는 물론이고 롱패스라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윤혁 선배가 별다른 방해없이 크로스를 올리는 상황.
어지간한 프로 선수라면 상대의 압박과 방해가 없는데 좋은 찬스를 만들지 못하는게 이상할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때 누구나 메수트 외질이 되는 법이니, 나와 윤혁 선배는 연달아 위협적인 크로스를 연결했다.
—아~ 좋은 크로스였는데… 아쉽게 벗어납니다.
—헤딩!! 멀리 벗어나는 공. 그러나 좋은 시도였어요.
날카로운 크로스가 쏟아졌지만 월드컵 최고의 세트피스 기록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겐 역부족이었다.
포스트 플레이에 장점이 있는 최슬찬 선배는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패널티 박스까지 침투해 들어가 헤딩 경합에 참가하는 중앙 미드필더 선배들까지, 그 누구도 이탈리아의 벽을 넘을 수 없었으니까.
—아… 좋아요. 우리 선수들 다 좋은데… 패턴이 너무 단순합니다. 상대의 패널티 박스까진 잘 연결시키는데, 이게… 너무 실속이 없어요.
—홍민준 선수와 윤혁 선수가 측면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하지만 크로스로는 한계가 있어요. 제공권이 좋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헤딩 경합을 시도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크로스란게 꼭 높은 크로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라인을 바짝 내린 이탈리아를 상대로 낮은 크로스를 보낼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앙에서 풀어나가기엔 지나치게 중앙에 집중된 이탈리아의 수비 블록이 문제.
측면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며 중앙만 틀어막는 이탈리아의 수비 행태에 우리는 무의미한 크로스만 반복했다.
한 번의 요행을 바라면서.
—전반전도 10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우리 대표팀의 공격이 계속 이어집니다. 볼 점유율은 71:29로 대한민국이 압도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패스를 이어가는 우리 선수들!
—최태식으로부터 유민기, 설요한, 다시 유만기. 홍민준이 받습니다. 홍민준입니다. 좁은 공간, 잘 빠져나오는 홍민준. 반대 방향으로 크게 넘깁니다. 윤혁.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열심히 좌우 번갈아가며 이탈리아의 진영을 흔들어보지만 견고하기 그지없는 이탈리아 선수들.
—길게 크로스! 최슬찬 떴습니다! 헤딩 경합! 아, 한 발 앞서 걷어내는 알베르토 선수. 그러나 공은 다시 대한민국에게 이어집니다. 유만기, 다시 측면으로! 홍민준 공 잡고! 크로스! 어…?
답답함에 억지로 크로스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제공권 다툼에서 이긴 이탈리아 수비수가 길게 걷어낸 공이 빈 공간에 떨어진다. 제공권 다툼에 가담하기 위해 패널티 박스로 몰려간 아군 선수들이 텅 빈 자리, 순식간에 공을 잡은 이탈리아의 공격수가 그대로 길게 측면을 향해 내지르고,
—어어, 역습, 역습입니다! 빨리 복귀해야 해요! 우리 선수들 빨리 복귀해야 합니다!
단 2명의 공격수가 펼치는 위협적인 역습에 순식간에 진영이 뚫린다.
공격에 참가하느라 가뜩이나 적은 수비 숫자.
이탈리아 선수들 중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빠르고 민첩한 두 명의 공격수가 너무도 여유롭게 툭 툭 공을 주고받으며 압박을 벗어난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역습에 어느새 최종 수비인 2명의 센터백만 남겨진 상황.
공격과 수비 2:2 동률이 되자 공격을 지체시키기 위해 연신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유지하는 아군 센터백들.
그러나 인간의 신체구조상 뒷걸음질치는 것보다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유리하기 마련이다.
—아아 뚫렸습니다!!
페이크에 속아 발이 꼬인 최후의 저지선이 무너지고, 이탈리아 공격수 앞에 골키퍼만 남은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걸 무시하며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내 눈앞으로 슛팅 자세를 잡는 이탈리아 선수가 들어왔다.
‘안 돼!’
슛팅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날린다.
촤아악!!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먼 거리에서부터 슬라이딩 태클에 가까운 형태로 그라운드를 쓸며 공을 쳐낸다.
‘됐—’
공을 쳐냈다는 안도도 잠시.
축구화가 점점 가까워진다.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커지는 축구화가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순간,
빠아악!!
* * *
—와 씨발 경기 존나 더럽다
—이탈리아 심판 매수한거아님? 왜 우리한테만 지랄임?
—진짜 열받네
—이거 진짜 피파에 제소해야 하는거아님? 완전 편파쩌는데?
—응 편파아냐ㅋ 국뽕드리킹하던 너거들 눈에만 편파임ㅋ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지도 않았건만 한소영의 얼굴은 이미 분노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거 진짜 너무한거에요! 완전 편파 판정아냐!! 뭔데 진짜!!”
욱하는 심정에 빼액 소리를 지르는 사이, 진행되던 경기 양상이 급변했다.
“어, 어어? 위험, 위험한데! 으아, 으아아… 아? 어, 홍민준!! 아악!! 뭐야! 뭐야뭐야!!”
한소영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순식간에 올라가는 채팅창.
—뺏겼다
—아 ㅅㅂ 역습
—제발제발제발
—좆됌;
—와 이걸 막네
—미쳤다리 상대 패널티부터 우리 패널티까지 지렸다
—헐 미친;; 홍민준 얼굴까임
—방금 소리 설마 홍민준 맞아서 난 소리임? 뭐 깨지는 소리 들렸는데?
슛팅하던 파워 그대로 홍민준을 걷어찬 이탈리아 선수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얼굴을 부여잡고 그라운드에 쓰러진 홍민준 위에 엎어졌던 이탈리아 선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고, 심판이 휘슬을 불며 달려오는 사이 그라운드에 흩뿌려지는 붉은 액체.
“피, 피!! 피가…!!”
경기가 멈추고 긴급하게 투입된 의료팀이 그라운드에 엎드려 버둥거리는 홍민준을 뒤집는 와중. 주심이 쓰러져있는 홍민준을 향해 옐로 카드를 들어올렸다.
“헐… 아니… 이게… 이게…”
그 모습에 말문이 턱 막힌 한소영이 어버버 말끝을 흐리고,
—씨발 저새끼 진짜 뭐 받아쳐먹어나?
—피나고 있는데 미친놈아님?
—아니 저게 왜 카든데?? 진짜 어이없네
채팅창이 폭발했다.
* * *
일순 눈앞이 번쩍이고, 이어 정신이 멍해지다가 뒤늦게 고통이 치민다.
얼굴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데굴데굴 그라운드를 구르고 있으니 소란스러운 주변 소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게 어떻게 카드야!!”
“이새끼 완전 꼴통아냐! 씨팔놈아 너 얼마나 받아 쳐먹었어!!”
“카드? 카드? 저거 안 보여? 안 보이냐고 씨발!”
고통에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저러다 선배들이 경고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게, 참 이 와중에도 경기 생각이라니… 내가 이렇게 열정적이었나?
“민준아! 홍민준! 내 말 들려?”
“으으… 드, 들려요…”
“손, 손 내리고… 음…”
간신히 눈을 뜨니 보이는 의료진의 다급한 표정.
“서, 선배.”
“말하지마. 가만히 있어.”
“선배. 선배 좀 불러줘요.”
“여기! 아무나 와봐! 민준이가 불러!”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도 경기가 걱정되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뭐야. 너 괜찮아? 피 존나 나는데…?”
“쿨럭. 경고, 항의하다 경고 받지마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말하지마! 너 자꾸 피나잖아!”
들것에 실려 나오는 와중에 내가 카드를 받았다는걸 알았다.
웃기게도 옐로 카드를 받았단 소리에 그 순간 새어나오는 웃음.
‘흐흐. 씨팔 진짜 존나 꼴받네. 상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