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0)
20
내가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
아마 2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실력있는 축구부로 꽤 유명했는데, 그 때문인지 축구부에 속해 있던 애들은 하나같이 콧대가 높았다.
그중에서도 나대기로는 탑 오브 탑, 유독 잘난척하는 진상이 우리반에 있었고.
당시엔 오고가며 축구부 훈련하는 걸 봤는데 뭐… 썩 대단해보이지 않더라.
축구부가 뭐가 그리 잘났는지 이해할 수 없던 나는 마침 축구에 대해 배우는 체육 시간에 평소에도 짜증을 유발하던 녀석을 축구로 탈탈 털어버렸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축구를 배웠다는 놈이 하는 건 영 어설퍼서는 취미로 깔짝거리던 나한테 몇 번이나 농락당하고는 애새끼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아, 하긴 그때는 애새끼 맞았지.
어쨌든, 그게 소문이 났는지 축구부 코치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연습 경기 한 번 해보라길래 했다.
그러곤 경기가 끝나자마자 감독과 코치가 축구는 배워봤냐, 그럼 평소에 연습하냐, 축구 좋아하냐 등 꼬치꼬치 캐묻고는 무슨 세기의 천재니 국내 최고 재능이니 사탕발림을 하는데… 솔직히 그딴 말엔 시큰둥했지만 축구 잘하면 여자애들이 좋아한다는 말에 뻑가서는 입부했더랬지.
내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소꿉친구년도 처음엔 멋있다는 둥, 나한테 시집와도 되겠다는 둥 뻔지르르하게 말하더니 나이 좀 먹으니 공부가 어떻고, 프로가 어떻고, 얼굴이 어떻고… 용기를 내 중학생 때 고백했더니 경멸의 표정으로 시원하게 걷어찼었지 그 썅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어쨌든, 축구부 생활을 하며 하나 확신하게 된 건 세상 어떤 일이든 ‘재능’이란 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거다.
축구도 그렇다.
초등학교 2학년. 그것도 반 학기가 지나서야 축구부에 들어와 처음으로 축구를 배운 내가 그 해가 가기전 난다긴다 깝치던 애들을 제치고 에이스가 되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도내 최고 유망주까지 올라갔으니까.
무게 중심이 어떻고, 균형이 어떻고, 시선 처리가 어떻고… 남들은 블라블라 떠들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그냥 하니까 되더라 식으로 해버리니 경쟁이 될리가 있나.
내가 특히 잘하던 것은 돌파.
당시에도 나름 준수한 가속력과 신체 밸런스에 공을 다루는 기술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런 건 나랑 비슷한 수준인 녀석들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압도적일 수 있던 이유.
그건 바로 ‘감’이었다.
아, 이 녀석 지금 달려들겠구나
왼쪽으로 치고나가면 못 따라오겠는데?
당황해서 굳었네.
여기서 패스하는 척 살짝 페이크하면 되겠는데.
배우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던 것들.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
난 단지 그것만으로 유소년 최고 유망주가 되어있었고,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초등학생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메시’소리를 들으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당연히 이런 활약을 하는 테크니션을 상대하는 팀의 대응은 수비를 집중하는 것.
방법은 다양했다.
선수 하나를 졸졸 쫓아다니게 만들거나, 아예 내려앉아 공간을 주지 않거나, 패스 경로를 끊어 고립시키거나 심지어 두 명의 마크맨을 붙이기까지.
그리고 그 중 가장 흔하며 자주 쓰던 방식이 바로 밀착마크.
수비력이 좋은 선수 하나가 밀착마크하며 방해하던 것이야말로 초, 중학교 시절 내내 시달리던 수비 방식이었다.
…뭐, 그것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부진에 빠지며 사라졌지만.
‘마지막으로 당해본 게 벌써 2년 전인가.’
적의 공을 탈취한 아군 수비수의 패스를 건네받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5번, 정효기의 모습에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난다.
한창 잘 나갈때 날 상대하던 수비수는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너무 긴장해서 몸이 굳어 있는 것. 다른 하나는 과한 의욕을 불태우며 지나친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
몇 몇 특출난 선수를 제외한 녀석들의 반응은 이 두 가지.
그러나 정효기는 그 무엇도 아니다.
이 녀석은…
‘그렇게 방심하고 있으면… 농락하고 싶어지잖아.’
날 단순한 1학년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없이 발을 뻗지.
느려지는 시야로 정효기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들어온다.
비웃는 듯 휘어지는 눈매가 공에 고정되고, 비죽 치솟는 입꼬리.
어쭈? 웃어?
녀석의 무게 중심이 뒷발에 실리고, 몸이 앞으로 쏠린다. 꿈틀거리는 허벅지 근육.
그 모든 것이 공을 향해 발을 뻗는다고 알려주는 신호들.
그리고 날 상대로 방심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언제나—
“아, 알까기!?”
섣불리 발을 뻗은 정효기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 달린다.
느려졌던 시간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헛숨을 들이키는 정효기를 지나치자 경악하는 외마디 외침에 등골이 짜릿해지는 흥분감이 치솟았다.
‘이대로 가자.’
이 녀석들, 대체 얼마나 정효기를 믿고 있던 걸까.
정효기를 돌파하자 뻥뚫린 필드. 그 사이를 거침없이 파고들어간다.
축구화 발등으론 부드럽게 공을 밀어내며 쭉쭉 전진하니 당황한 상대 수비수들이 무질서하게 압박을 가해온다.
당황해서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수비수는 돌파당하기 딱 좋은 먹이감이지만…
“흡!”
크게 디딤발을 박아넣으며 정확하게 인사이드로 공을 밀어찼다.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공이 크게 휘며 수비수들이 달려나와 텅 빈 공간, 그리고 그곳으로 질주하는 선수에게 이어지고…
삑, 삐이익—!!
공을 받자마자 강력한 슛팅으로 연결한 윤혁 선배의 선취골이 터져나왔다.
“우와, 우와아악!! 이게, 이게 진짜 되네!!”
선발 출전에도 무덤덤하던 윤혁 선배가 잔뜩 고무된 표정으로 달려와 얼싸 안으며 하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당연하죠. 검증된 방법인데.”
“검증? 뭔 검증?”
“이야아아! 이 새끼들 뭐 시작하자마자 한 건 올리냐!”
“윤혁 이새끼 약빨았냐! 갑자기 뭐야!!”
윤혁 선배의 의문에 대답해 줄 새도 없이 밀려든 팀원들의 축하 세례.
골을 넣은 윤혁 선배도, 그리고 결정적인 찬스를 제공해준 나도 팀원들의 흥분 세례에 휩쓸려 정신없이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다시 아군 진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역시 잘 먹히네.’
윤혁 선배한테 말한 검증된 방식이란 건 별 거 아니다.
나 중학생 때 곧장 써먹던 방식이란거지.
날 마크하는 선수의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팀에서 신뢰하는 선수이기 마련. 그런 선수를 제치고 달려들면, 그것도 시작하자마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백이면 백 수비수들은 패닉에 빠져 허둥지둥 달려나오기 마련이다.
상대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서너 번 써먹었더니 소문이 나서 그 이후 써먹지 못했지만… 벌써 그게 몇 년전이랴. 게다가 고등학교 진학 후엔 부진에 빠지며 몰락했으니 고등 리그에선 써먹어보지도 못했고.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중등 리그 시절이었으니 대학 리그에선 좀 다를까 했는데 뭐 여기도 마찬가지네.
“꺄아아악!! 15번 화이팅!!”
“존나 멋있어어억!!”
“15번! 여기 봐줘! 여기여기!!”
주말이라 그런가.
관중석에 이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들 몇 명이 꺄꺄 괴성을 질러대길래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응?”
그리고 시야 구석, 철제 기둥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선글라스에 볼캡을 푹 눌러 쓴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쓰읍… 뭐지. 어째 낯설지가 않은데. 어디서 봤더라.
“야, 야! 저기 사진 찍는다!”
그러나 생각도 잠시.
여자들의 관심집중에 슬쩍 내 옆에서 서성이던 선배 하나가 호들갑을 떨길래 보니 대포 카메라를 든 여자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
“훗.”
저 정도 카메라라면 찍혀줄만하지.
시크하게 웃어줬다.
* * *
“미, 미친.”
오상태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 밖에.
정효기가 누군가.
나름 대학 리그 중위권 전력이라 평가받는 성실대의 주장이자 에이스.
1학년때부터 준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4학년인 지금에 와서는 졸업과 동시에 K리그 진출이 유력시되는 선수아니던가!
자신이 성실대에 부임하고 1학년때부터 떡잎을 알아보고 애지중지 키워온 자랑이 고작 1학년 핏덩이에게 농락당할 줄이야.
머리가 띵해진 오상태가 입술만 벙긋거리며 저도 모르게 호진대 벤치로 시선을 돌렸을 때,
“흐흐.”
이쪽을 보며 히쭉 웃는 호진대 감독 나건성을 볼 수 있었다.
“이, 이익… 저 새끼가…!”
현역 시절부터 고만고만하니 비슷한 커리어를 밟았고, 지도자 연수도, 코치 생활도 그리고 심지어 감독 커리어마저 비슷하게 밟아온 경쟁자.
이렇게되면 자존심 상 죽어도 질 수 없다.
“정효기!! 야 이새꺄! 정신 안차려!!”
“…면목없습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애제자의 눈빛을 확인 한 오상태가 나직하게 말했다.
“방심하지마라. 저 새끼 뽈차는거보니 한따가리 하는 놈이다.”
“물론입니다. 더 이상, 방심하지 않습니다”
“좋아. 가서 죠져버려.”
애제자의 등을 팡! 쳐준 오상태는 버럭 소리쳤다.
“레프리!! 셀레브레이션 언제까지 냅둘거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심판이 경기 속행을 지시하는 걸 보고 몸을 돌려 벤치로 다가가던 오상태는 요란한 소리에 미간을 팍 찌푸렸다.
“세상에! 세상에세상에! 어쩜 얼굴도 멋진데 실력도 좋네!! 아우, 이뻐. 이런 보물이 어디 숨어있었지. 이건 찍어야 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오두방정을 떨며 연신 찰칵거리는 젊은 여자.
오상태는 끌끌 혀를 찼다.
“대포 카메라? 지가 기자야 뭐야. 아주 가지가지하네 진짜. 에이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