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01)
201
대한민국 10대 재벌.
거대 기업의 총수.
그리고 하린이의 아버지.
오상재 회장을 만난 건 귀국 당일 저녁이었다.
* * *
귀국하는 날.
나는 선수단과 함께 움직여야 했으니 미리 두 사람 먼저 귀국시키고, 환영식과 기자회견 그리고 마침내 해단식까지 마치고보니 하린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너무 빠른 거 아냐? 나 아직 아무런 준비도 못 했는데.”
분명 우리 부모님과 다예 부모님과의 만남이 먼저라 생각하고 그쪽 시뮬레이션만 돌렸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하린이네 아빠 먼저 만난다고?
아니 대기업, 재벌 회장이 왜 이리 한가한데!
만나고 싶어도 스케쥴이 밀려있어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부모님에게 교제를 허락받자 의논하고 결정한게 바로 2일전이었다.
하린이랑 다예가 선수단과 귀국하는 나보다 한 발 앞서 한국에 들어왔다지만 그것도 역시 불과 하루 차이.
근데 귀국하자마자, 그것도 당일 저녁에 보자고?
이거 맞아?
당황한 나에게 생수병을 건네준 하린이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걱정할거 없으니까 몸만 가면 돼.”
아니 이 양반아.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여자 친구 부모님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러 가는 길 아닌가.
“후우. 모르겠다. 그래, 가자.”
하린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TV에서나보던 집사인지 시종인지 잘 차려입은 중년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응접실.
저택부터 정원, 가구까지 뭐든 큼직한 재벌집답지 않게 4~6인 가족이 쓸법한 작은(?) 식탁이 새초롬이 놓여있다.
식탁 위엔 방금 준비를 끝냈는지 따끈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고… 그리고 그 앞에 유일하게 앉아있는 노인.
‘저 사람이… 오상재.’
새하얗게 센 머리가 무색하게 얼굴은 붉으스레하니 혈색 좋고 몸은 얼마나 열심히 관리를 하는지 뱃살 하나 나오지 않은건 물론 되려 옷 너머로도 근육질임을 알 수 있는 건장한 체형의 노인이 홀로 앉아 신물을 보고 있었다.
인사에 앞서 찬찬히 얼굴을 살피고 있으려니 집사 양반이 귀신마냥 소리도 없이 스르륵 움직여 맞은편 의자를 빼준다.
“감사—”
“아가씨 자리입니다.”
“아, 예. 죄송.”
“손님께선 이쪽으로.”
거, 사람 민망하게 팔로 막을 건 또 뭐야.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기품있는지 팔로 내 앞을 막는 순간까지 무슨 특별한 예의인 줄 알았다.
하린이가 앉은 옆자리, 역시 집사 양반이 빼준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도 아버님은 일절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오직 신문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이 꼭 이쪽을 보고싶지 않단 투정같아 먼저 인사를 건네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홍민준이라고 합니다.”
“…….”
무반응.
들려오는 소리라곤 집사 양반이 우아한 동작으로 찻잔에 물인지 차인지 모를 액체를 따라주면서 나는 작은 소음뿐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대가 인사를 건넸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보니 절로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재벌은 뭘먹나 차려진 음식을 살펴봤다.
‘그냥 집밥이네.’
뭔가 삐까번쩍한걸 먹을 줄 알았더니 그냥 백반이네.
뭐, 비주얼부터가 고급지긴 했으나 뭔가 평소에 못 보는 음식일거라 기대했는데 말이지…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실화냐.
그렇게 회장이 입을 열길 기다리길 잠시.
“음.”
기사를 읽던 노인이 고집스레 입매를 비틀며 툭, 테이블 위로 신문을 던져놓는다.
“그래. 내 자네를 한 번 보고싶었지.”
드디어 마주한 재벌 총수의 눈빛은—
“홍민준 선수. 날 보자했다고.”
세상 끔찍한 무언가를 본, 불구대천의 원수를 마주한, 지옥에서 올라오는 마귀를 발견한 듯 한 시선이었다.
…씨발, 이게 대체 뭔 시선이야.
그 말을 끝으로 날 빤히 쳐다보는 집요한 시선에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긴장된다.
긴장돼 미치겠다.
겁없고 긴장 안 하는 걸로 누구보다 자신있는 나다.
그럼에도 나는 저택에 들어선 순간부터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극심한 긴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젠장. 올림픽 결승전에서도, 첫 프로 계약에 서명할때도, 캄 노우에서 데뷔할때도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는데.’
하린이네 본가가 땅값 비싼 서울이라곤 믿을 수 없는 넓은 부지에 위로 3층 아래로 2층이나 되는 무지막지한 호화 저택이라서?
산책도 할 수 있는 잘 관리된 넓은 정원과 최소 억 단위의 삐까번쩍한 외제차가 10대도 넘게 주차되어 있는 차고가 있어서?
눈앞의 상대가 한국에서 10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재벌 총수라서?
그런 건 긴장되지 않는다. 하나도. 전혀.
집이 어떻고, 돈이 어떻고 하는 건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야 재벌 중의 재벌, 찐부자인 엘레나네 별장도 봤는데 뭘.
오랜 세월 미국 정재계에서 활약해온 명문 스튜어트가의 별장은 그야말로 한 지역을 통째로 사유지로 쓰는 ‘천조국 클라스’였다.
본가도 아닌 별장만해도 이 저택과 비교도 안 되는데, 미국에서 정재계를 아우르는 찐명문가와 비교하면 한국의 재벌이야 뭐… 하물며 간신히 10손가락 끄트머리에 꼽히는 재벌 정도에 내가 신경이나 쓸까.
허나 상대가 여자 친구의 아버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담대함으로 따지면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라 자부하는 나조차 여자 친구의 아버지… 그러니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한 장인 어른과의 첫만남은 떨리기 마련인데, 하물며 저렇게 부모님의 원수를 보는듯한 뜨거운 시선을 보내온다면야…
‘좌불안석이 따로없네 씨바.’
그냥 평범하게 결혼 승낙을 받으러 왔다면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을텐데.
하필 내 상황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으로 머리통이 터질 것 같다.
‘생각하자. 생각해보자. 이 양반 성격이 어땠더라.’
하린이와 관계가 깊어지며 나름 조사한 것도 있고, 하린이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잽싸게 검색한 보람이 있어 여러가지 정보가 떠오른다.
오상재.
GT 그룹의 총수.
하린이의 친부…지만 공식적으론 남남.
공식적으로 오상재의 자식은 아내 소실의 2명의 아들 뿐.
하린이는 이른바 첩의 소생… 사생아다.
이 때문에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의외로 하린이는 이 사실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아버지와의 관계로 의외로 매우 양호한 듯 했다.
가끔 통화하는 걸 들어보면 하린이를 딸로 인정하는 건 물론이고 여느 딸바보 아버지 못지 않게 각별히 아끼는 듯 한 인상을 받았으니까.
대한민국 10대 재벌을 꼽으면 말석에나 간신히 이름을 올리기에 규모에 비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몇 년 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GT 그룹을 주시하던 사건이 있었다.
현대판 왕자의 난이라 불리던 GT 그룹 승계 전쟁.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학창 시절의 나조차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대 사건.
4형제의 장장 6여 년에 걸친 오랜 상속 다툼 끝에 장남인 오상재가 승리한 떠들썩한 경영권 다툼이었다.
‘경영권 다툼에서 진 형제들에게서 지주회사 지분을 모두 넘겨받는 것으로 용서했다는 기사가 있었지. 또 경쟁에서 진 형제들에게 경영을 맡기기도 하고, 조카들도 적극 기용한다는 기사도 있고.’
언론을 통해 그리고 하린이와 대화하며 은연 중 알게 된 모습을 통해 유추해보면 꽤나 호남형 경영인 같다.
남자답고 호탕한 스타일.
그렇다면… 여기선 이리저리 재는 모습보다 호쾌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호감을 사기 쉽겠지?
순식간에 계산을 끝내고 외쳤다.
“따님을 주십쇼, 장인 어른!!”
내 다이렉트 발언에 놀랐는지 흡, 옆에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 깨작이던 하린이가 휙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난 오로지 아버님을 주시할 뿐!
아버님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묵직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과연 재벌 총수…!
“안 돼. 돌아가.”
“아버님!! 따님을, 하린이를 주십쇼!!”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고, 혈색 좋은 이마에 빠득 핏줄이 선다.
눈빛과는 달리 평온했던 안색마저 순식간에 악귀같이 변해서는 손에 쥔 밥그릇을 던지려는—
“아빠.”
악마가 다시 인간이 됐다.
잠시 숨을 고르던 아버님이 아까의 악귀 같은 형상은 거짓이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너무 급하군. 젊은이다운 패기지만 틀렸네. 장소를 가리지 않는 패기는 객기일 뿐. 이번엔 객기부릴 상대를 잘못 골랐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
“아빠.”
“…정말 내 딸을 사랑하나?”
과연 재벌 총수.
말 바꾸는 것도 순식간이군.
“물론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다 문득 갈등에 휩쌓였다.
말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말해야 하나?
차라리 거짓말을 할까?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냥 적당히 입바른 소리나 하는게 낫지 않나?
…아니, 그럴 순 없지.
배에 힘을 꽉 주고, 말을 잇는다.
“—여자 중 하나입니다!”
“여자 중 하나?”
고집스런 입매가 꿈틀거린다.
그래. 무엇을 숨기랴.
난 평범하게 여자 친구 아버지를 뵈러 온 것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허락받으러 온 동시에… 여자 친구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양다리를 허락받으러 온 참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하린이는 제가 사랑하는 여자 중 한 명입니다.”
“자네 미쳤나?”
쨍그랑!!
순식간에 얼굴 옆을 스치고 지나가 벽에 부딪쳐 박살나는 찻잔.
아버님이 어느새 악귀가 되어 있었다.
…미치고 싶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