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02)
202
길었던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월드컵마저 끝나고나니 그제야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잘 할거란 자신감은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기에 다음 시즌은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맞이하겠지.
또다시 낯선 나라, 낯선 리그, 낯선 집에서 새로운 1년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문득 내 여자들과의 관계를 공식화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월드컵전부터 이미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나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은 물론이고 멀티인 독일에서조차 슈퍼 스타나 다름없는데 상황.
심지어 시즌 초에 있었던 사생팬 사건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축구에 관심이 많은 유럽과 중남미에서의 인지도도 치솟았으니 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두말할 것도 없겠지.
여기에 단일 종목 최고의 국제 스포츠 대회라는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월드컵 스타로 떠올랐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할까.
아직 유망주라 할 수 있는 21살의 어린 나이에 분데스리가, 유로파 그리고 월드컵마저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약팀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며 세운 기록이니 스토리도 기똥차지 않나.
여기에 ‘동양인’이란 인종적 한계마저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먹어주는 매력적인 마스크로 극복하니, 외려 동양인이란 사실은 내 위대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자칭 정의로운 사람들을 열광케 만드는 플러스 요인에 불과하게 됐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불과 이번 시즌, 단 1년 만에 일어났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앞으로 언제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사실 나야 내 여자들과의 관계가 들켜도 상관없다.
내 팬의 반이 실력에 열광하는 축구팬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축구고 뭐고 그냥 날 좋아하는 여자들.
여기에 일전 한국에서 찍었던 예능으로 졸지에 첫사랑을 못잊고 그리워하는 순정남 이미지까지 생겼으니, 내 여자관계가 밝혀지면 거센 후폭풍이 일겠지.
나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내 여자들 중에서도 하린이나 다예는 무던히 넘기겠지. 이 둘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는데다 항상 나와 붙어 있을 뿐 사회 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엘레나와 희연 누나는 다르다.
두 사람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답게 어마어마한 팬덤을 지닌데다 하린이와 다예와는 다르게 자기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 자부심이 크다.
근데 평범한 남자 친구도 아니고, 여러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는 남자의 여자 친구 중 하나라는걸 팬들이 납득할까?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매력적인 외모로 미국과 한국의 아이돌화 된 두 사람의 팬덤이?
뭐, 여기까진 좋다.
나랑 항상 붙어있는 하린이와 다예와는 달리 두 사람은 자신들의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볼 수 없기에 숨기려면 좀 더 오래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데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는 달리 인기에 대해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조금 아쉽다는 마인드니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자친구 본인들이 아닌 그 가족들.
당장 다예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우리 부모님은?
거의 한 집안처럼 지내온 나와 다예 가족인지라 나 역시 다예 부모님을 우리 부모님처럼 여기는데다가 우리 부모님과 다예 부모님은 이미 서로를 사돈이라 부르며 반쯤 사위, 며느리 놀이에 빠져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진다?
거기에 재벌 총수인 하린이 아버지는 또 어떻고.
재벌이고 나발이고 자기 딸이 남자에 미쳐서 다른 여자와의 관계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데 세상 어느 아버지가 그걸 가만히 놔두겠는가. 하물며 부와 권력이 있는데.
이미 지금까지의 인기만으로 슈퍼 스타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거고 더욱 많은 인기를 얻을거다.
지금까지야 에이전트와 개인 트레이너라는 신분도 있고 어찌저찌 운이 좋아 들키지 않았을 뿐, 매일 붙어다니는데 앞으로도 소문이 안 날거라 자신할 수 있을리 없지.
그래서였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어차피 숨길 수 없는거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것보다야 내가 먼저 부모님들을 찾아뵙고 정식으로 교제를 허락받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하린이와 다예는 동의했고, 엘레나나 희연 누나는 결정을 연기했다. 두 사람 부모님과의 일이 어떻게 풀리는보고 결정하겠다나. 기자 누나는… 뭐, 자기는 곁에 있게만 해주면 만족한다고 했고.
“그럼 하린이하고 다예는 부모님들한테 연락해봐. 사귀고 있는… 에이, 아니다. 그냥 결혼하고 싶은 남자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해.”
단순히 각자의 부모님에게 교제를 허락받는거라 생각한 두 사람은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재벌 회장의 분노는 두렵지 않지만 아무리 나라도 하린이 아버지의 분노는 두려운 법.
악마로 변한 아버님을 보며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때.
“아빠.”
너무 솔직했나 후회하는차, 내 옆에 앉아있던 하린이가 슬그머니 입을 연다.
“으음. 그래, 우리 공주님. 여행은 잘 다녀왔니.”
뭔데.
이 목소리 뭔데.
방금까진 재벌 회장님의 포스가 느껴지는 중후하고 단단한 음성은 어디가고 어디서 이런 간드러진 소리가…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내 남편한테 찻잔을 던져?”
“남편이라니! 하린아, 아빠는 허락하지 않았어요. 누구 마음대로 남편—”
허둥지둥 말을 잇던 아버님이 하린이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입을 딱 다문다.
“내가 선택한 남자잖아. 아빠, 허락해줄거지?”
“…….”
“응? 아빠아~ 응? 응, 응?”
처음 들어보는 하린이의 콧소리 가득한 애교에 휘둥그레 옆을 바라봤다.
아무리 하린이라도 역시 아버지 앞에서는 딸이라는걸까.
“결혼은 그리 간단한게 아니에요. 우리 공주님은 아직 어리고, 또 연애도 처음이잖니. 아빠가 말했지? 감정은 일시적이라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연애… 그래, 연애까진 아빠가 간섭하지 않으마. 하지만 결혼은—”
“할래. 결혼.”
“하린아.”
“할거야. 응? 아빠~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응?”
한동안 이어지던 실랑이는,
“후우우.”
끝내 딸의 간청을 이기지 못 한 아버님이 긴 한숨과 함께 끝났다.
근데 왜 불똥이 이쪽으로 튀냐.
날 노려보는 아버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보—
“자네의 이성관계가 꽤나 난잡하다는 사실은 내 익히 들었지.”
—지 못하고 피했다.
으, 음… 이건 아무리 나라도 죄송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는 여자의 부모 앞에서 다른 여자도 사랑한다 외치는 미치광이가 있을 줄이야. 그러고도 하린이를, 내 딸을 달라는건가?”
“죄송합니다, 장인 어른.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하린이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도.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 하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둘 다 가지겠다?”
…둘이 아니지만, 일단 둘이라고 해두자.
분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아버님의 입매가 꿈틀거릴 때,
“아빠. 난 이 남자 아니면 안 돼. 제발. 응?”
처음 들어보는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는 하린이의 모습에 아버님은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허탈한 표정으로 힘없이 의자에 몸을 기댄 아버님은 방금까지 정정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나이에 걸맞는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딸 앞에선 평범한 아버지가 될 뿐.
“…업보구나.”
깊은 한숨.
“그래. 내가 자네에게 뭐라할 처지는 아니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하린이의 친모를 비롯해 수많은 첩을 거느렸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하린아.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겠니? 내 이 친구랑 할 말이 있구나.”
머뭇거리던 하린이가 자리를 뜨고, 한참을 날 빤히 바라보던 아버님이 다시 입을 연 건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자네도 알겠지? 저 아이… 내 딸, 하린이는 평범하지 않아.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고장나 있는 아이야. 저 아이가 어렸을 때, 난 형제들과 싸운다고 하린이를 돌보지 못했네. 내 약점이 될까, 귀중한 보물처럼 집에만 꽁꽁 숨겨뒀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는 죄인처럼.
“하린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때도 난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네. 학교에 가고싶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 했을때도 난 강아지를 사줬을 뿐이었지. 하린이가 무척 오랜만에 전화를 해왔을 때… 생일 선물로 아빠가 보고싶다 했을때도 난 곁에 있어주지 못했네.”
오랜 시간 묻어뒀던 원죄를 고백하는 죄인처럼.
“그거 아나? 저 아이의 친모가 죽은 날은 하린이의 생일이었네. 그날은 각고의 노력으로 가장 큰 경쟁자였던 둘째를 몰아낼 절회의 기회인 주주총회 날이었지. 생일 선물로 아빠를 보고싶다던 하린이에게 난 전화로 어미의 죽음을 말해줄 수 밖에 없었네.”
아버님은 힘겨운 표정으로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더 이상 숨어살지 않아도 됐을 때, 하린이는 이미 어딘가 망가져 있었지. 물질적인 풍요는 주었을지언정 정서적으로 누구보다 빈곤하게 큰 아이네. 그 아이가…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될 줄이야.”
마라톤 완주를 한 선수처럼, 땀을 쏟으며 힘겹게 말을 잇던 아버님은 비틀비틀 걸어와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딸아이가 자네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일 때. 그 눈동자를 본 순간… 어쩌면 그때부터 이렇게 될거라 예상했는지도 모르지. 부탁하네.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게. 저 아이가 원할때까지, 언제고 자네의 옆자리를 내어주게나. 못난 아비가 이렇게 부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