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04)
204
하린이를 다시 집으로 보내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초조해 죽겠는데 마침 얼굴을 알아본 택시 기사님이 자꾸만 말을 걸어 애써 웃으며 받아주고 마지막엔 싸인까지 해주고서야 보낼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 하린이가 사다준 볼캡에 선글라스까지 썼는데 용케도 알아봤네.
…하긴, 내 얼굴이 좀 인상적이어야지.
한 번 보면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미남이 또 나 아닌가.
그렇잖아도 요즘 월드컵 때문에 하루종일, 어느 채널을 틀어도 내 얼굴만 주구장창 나왔을텐데 몰라볼수가 없겠지.
이것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선배들이 말하던 ‘인기’인가.
“어서와라. 늦었구나. 저녁은?”
“먹었어. 엄마는?”
“너 기다리다 지쳐서 우리 먼저 먹었지.”
잡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서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아빠, 엄마와 다예 그리고 다예 부모님.
식후 간식인지 과일을 먹고 있는 어른들에게 잽싸게 인사를 드리고 앉으니 다예가 예쁘게 과일을 깎아 건넨다.
“고맙.”
근데 넌 왜 거기 앉아있냐.
지네 부모님 옆도 아니고 왜 하필 우리 부모님 사이에…?
“아이고 예뻐라. 민준이 챙기는 건 역시 다예 밖에 없네.”
“아니에요 어머님.”
“그래그래. 자기 서방은 자기가 챙겨야지.”
“…….”
호들갑을 떠는 엄마와 흐뭇하게 웃는 다예네 아줌마.
거기에 참한 며느리 코스프레 중인 다예까지.
이거 어쩌냐.
울 부모님이랑 다예네 부모님 모두 나랑 다예 사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데… 우리 없을 땐 서로 사돈이라 부르며 사돈놀이에 심취해 계신 부모님들께 사실을 말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 이미 하린이 아버님의 승낙까지 받고 왔는데 물러설 순 없는 노릇이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해봐라.”
에라이 씨팔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다 끝내버리자.
“저희 사귀고 있습니다.”
“으응. 그래? 그거 참 잘됐구나.”
아삭아삭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양가 부모님 중 그나마 나한테 시선을 주는 건 다예 어머님 뿐이었다.
“그래도 저들끼리 쑥덕거리고 마는게 아니라 우리한테도 알려주고 얼마나 예뻐요. 그치 민준 엄마?”
크윽…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뿐인가.
“알려주긴 이미 뜸은 다 들어 쌀이 된 후에야 알려주는거지. 저것들이 언제 우리한테 허락받고 연애했겠어. 이미 실컷 연애질하고 말하는거지.”
“그래. 전에도 전화로 얘기하긴 했지만 이렇게 얼굴보고 말하니 얼마나 좋은가.”
“당연한 걸 뭐저리 진지하게 얘기하는지 원.”
…너무 당연하다는 반응에 잠깐 망설였지만.
“그리고 저… 또 사귀고 있는 여자있습니다.”
“으응. 그래. 또 사귀는… 뭐? 또 사귀는 여자?”
이번에도 시큰둥하니 대꾸를 해주다 화들짝 놀라는 아버지.
어찌나 놀랐는지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날 돌아본다.
“너 그게 무슨 헛소리—“
“어험. 민준이가 말실수를 했나보구나.”
다예 아버지의 말에 울 아빠가 금방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 그렇구만. 그런거구만. 무슨 말을 하든 똑바로 말해야지! 나이가 몇인데 얘가 아직도 어버버해.”
“우리 애가 저래. 칠칠맞지 못해서 불안하다니까. 다예 아니면 어쩔뻔했어 진짜. 다예야, 똑똑한 니가 민준이 잘 돌봐줘야 한다. 저게 뽈 찰 줄만 알지 애가 영 맹탕이야.”
…우리 엄마아빠는 대체 누구 편일까.
평소 내 인식이 얼마나 나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음해를 당해야하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한국어도 제대로 못할리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저 또 사귀는 여자있어요.”
정겹게 투닥거리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는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뭐가 어째?”
“죄송합니다.”
“아이고~ 이 배은망덕한 놈이 좀 성공했다고 조강지처를 버려? 내가 널 그렇게 키웠냐! 안 돼. 절대 안 돼! 엄마는 다예 편이다.”
“버리긴 누가 버려요. 제가 다예를 왜 버린다고… 다예랑 잘 사귀고 있거든요?”
뭔가 착각한 것 같다.
여자가 ‘또’ 있다는건데, 다예 버리고 다른 여자랑 사귀는거라 여기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런 쓰레기는 아니지.
…더 심한 쓰레긴가.
“그럼 지금 한 말은 무슨 소리야!!”
버럭 호통치는 아버지에게 간신히 대꾸했다.
“동시에 사귀고 있어요.”
“이, 이런 난봉꾼 같은 녀석! 여기가 무슨 조선이야!? 어디 할짓이 없어 첩질이야, 첩질이! 지금 그게 부모랑 장인장모 앞에서 할 소리냐!!”
“죄송합니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으니 씨근덕거리던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엄마의 한숨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무거운 건…
“사귄다는 여자가 전에 그 여자애냐. 하린이랬던가.”
“…네.”
더 있지만 대표는 하린이니까, 일단 하린이라고 하자.
일전 올림픽이 끝나고 하린이와 만났던 부모님을 통해 소식을 전해들었는지 다예 아버지가 침착하게 물어왔다.
“그래. 젊은 애들이 연애한다는데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근데 다예랑 사귄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고.”
“다예랑도 사귀고 있습니다.”
“…양다리라는거냐?”
차마 문어다리라고 할 순 없어 입술만 꾹 닫고 있으니 그제야 다예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넌 이거 알고있고?”
“응. 알아.”
“대체 너네 어쩌자고… 후우.”
“괜찮아 엄마.”
마음이 무겁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왔다.
다예네 부모님은 단순히 이웃집 어른이 아닌, 또 하나의 부모님 같은 분들. 죄책감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으려니 다예가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 나 믿어?”
“…믿지.”
“우리 딸, 누구보다 믿고 있지.”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던 다예.
변변찮은 사교육 하나 없이 언제나 학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엇나가지도 않았다.
항상 자랑스러운 딸, 모범적인 딸이었던 다예를 믿지 않을 부모가 어디있을까.
“그럼 이번에도 믿어줘. 내가 선택한거야.”
그럼에도 두 분은 차마 믿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 아버지가 자리에 앉는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 믿어주세요. 민준이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에요. 저도, 민준이도, 다른 사람도 모두가 함께 결정한 길이에요.”
“…내가 너에게 면목이 없구나. 어쩌다 우리 집에서 이런 난봉꾼이 나왔는지.”
“미안하다, 다예야.”
차마 고개를 못 드는 부모님과,
“허허. 요즘 세태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한다지 않나. 또 뭐라했지. 자유연애? 오픈메리지? 젊은 애들 감성이 그렇다는데 우리가 이해해야지. 요즘 애들은 우리랑 다르잖나.”
애써 우리를 두둔하는 다예네 아버지였지만 본심은 아닌 듯 창백한 안색에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나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어른들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불쑥 일어난 다예가 집을 나섰다.
얼어붙을 듯 싸늘하게 굳은 분위기 속,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다예가 돌아왔다. 양 손에 무언가 가득 들어 볼록한 검은색 비닐 봉투를 들고.
“술 사왔어요.”
“술…?”
“네.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다들 드세요.”
졸지에 시작된 술자리.
엄마와 다예 어머니가 괜시리 분주히 움직이며 안주를 내오고, 아버지들은 기다렸다는 듯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붓기 시작한다.
“너도 마셔.”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잔 가득 소주를 따라주는 다예.
내가 은퇴하기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걸 얘가 모를리도 없고… 일부러겠지?
그러나 차마 거절할 순 없었다.
눈을 딱 감고 생전 처음으로 소주를 입에 머금으니—
‘우웩 씨팔 이게 뭔맛이야.’
존나 맛없다.
오만상을 쓰며 간신히 꿀떡 목구멍으로 넘기자 화끈해지는 뱃속.
기다렸다는 듯 다예가 안주를 입에 넣어준다.
“거 참.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아빠한텐 생전 해주지도 않던 걸 지 남자한텐 해주는거봐.”
벌써 술에 취하셨는지 불콰해진 얼굴의 다예네 아저씨가 평소의 점잖은 모습과는 달리 건들거리며 웃는다.
“부모 속도 모르고 지들끼린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여보, 우리도 해볼까? 아~ 해봐.”
“에그머니 이 사람이 징그럽게 왜 이런데.”
“어허 어서.”
“흠흠. 아, 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의 다예네 부모님의 너스레에 그제야 분위기가 풀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부모님도.
다예네 부모님도.
나도.
“이놈의 자식. 너 정말 그러는거 아니다. 다예가 널 얼마나 챙기는데, 니가 그러면 안 되지. 응? 내 아들이지만 진짜 나쁜놈이야 아주.”
“으응. 나 나쁜놈 맞는데 그래도 다예 사랑한다니까? 다예도 나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리 다예 많이 사랑해줘라. 아껴주고. 아저씨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오~ 다예가 최고죠. 정실! 조강지처! 당연한거 아니에요?”
“어릴때부터 둘이 맨날 손잡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더니 결국 이어지네. 아이고~ 우리 다예 아까워서 어쩌나. 아줌마 아들이 못났어도 다예가 잘 돌봐줄거지? 응?”
“엄마! 내가 뭐 어떻다고 자꾸 못났대! 내가 다예 돌봐주는거거든?”
* * *
끄응.
오늘 왜 이러지?
깨질 듯 지끈거리는 머리, 더부룩한 속, 빙글빙글보는 눈 앞.
영 컨디션이 안 좋아 침대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보드라운 손이 이마를 매만진다.
“괜찮아?”
“…윤다예?”
옆에 누워있던 다예의 얼굴을 본 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억.
“…좆됐다.”
“뭐가?”
“나… 어제 실수한 거 없지?”
“글쎄.”
얄상하게 웃은 다예가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다.
일찌감치 일어났는지 샤워까지 끝난 깔끔한 모습.
그러고보니 어제 다예는 술 안 마셨지.
“크흠. 일어났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님.”
“그래. 크흠. 크흐흠.”
밖에서 들려오는 어색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맥이 탁 풀렸다.
‘아 몰라. 어쨌든 잘 끝났으니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