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08)
208
공식적으로 이적 시장이 개방되는 8월이 코앞인 7월의 끝자락.
쪄죽을 것 같은 무더위에 한국이 익어갈 무렵, 나는 모처럼 오랜만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오전엔 강남 스튜디오. 오후엔 어디라고?”
올림픽 득점왕으로 깜짝 스타덤에 오른 후 나에겐 언제나 광고 문의 쏟아졌다.
그야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먹히는 외모와 눈길을 끄는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압도적인 실력까지 갖췄는데 광고계에서 주목하지 않을리가 있나.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 실패하고 당시 2부였던 프랑크푸르트로 임대 이적을 하던 시절에도 광고 제의가 쏟아졌는데, 하물며 분데스리가부터 유로파, 월드컵에서까지 득점왕에 빛나는 위업을 이룬 지금이야 말해 뭐할까.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쌓이는 광고 제의가 보답받는 일은 없었다.
나는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광고는 물론 그 흔한 협찬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팬들은 말한다.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올랐음에도 단 한 편의 CF에도 출현하지 않은 건 축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오로지 훈련 밖에 모르는, 모든 열정을 축구에 쏟아붓는 프로 중의 프로 선수라고.
틀렸다.
물론 내가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훈련 시간도 길고 열정적이라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훈련만 하는 건 아니잖은가.
그토록 광고주들이 달라붙음에도 그간 단 한 편의 광고도 찍지 않은 건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그저 단순한 이유.
사생활 때문이다.
광고든 협찬이든 그 목적은 결국 대상의 이미지를 이용한 마케팅.
시청자들에게 모델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품으로 이전시키려는 것이 목적일진데, 만약 모델의 이미지가 긍정이 아닌 부정이라면?
기껏 비싼 돈주고 고용한 모델의 이미지가 나락이면 과연 해당 제품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본래 목적인 긍정적인 마케팅 효과가 발휘되기는커녕 되려 비호감 스택만 쌓이겠지.
그렇기에 광고든 협찬이든 계약서에 소위 ‘품위유지’와 같은 조항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지금의 이미지를 믿고 거금을 주는건데, 모종의 이유로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으면 그로 인한 위약금을 지불한다는 것이 요지.
근데 내 사생활이 폭로되면?
무턱대로 광고를 찍었다면 내 사생활이 폭로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계약금의 몇 배에 달하는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거다.
사실 사생활이 밝혀지는게 두렵진 않다.
반쯤은 축구계 아이돌 취급을 받지만 내 정체성은 스포츠 스타. 결국 축구만 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인기를 얻을테니까.
문제는 초반만큼은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막을 수 없다는거다.
광고 좀 찍자고 매달리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정작 광고를 찍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떠안는 격.
이번에 하린이와 다예 부모님에게 관계를 공인 받기 위해 애쓴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코앞에서 날아다니는 돈다발도 못 받아먹는 답답한 상황이다보니 차라리 내가 먼저 스캔들을 터뜨리는게 낫겠다 싶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광고나 협찬에 조심스러웠지만 다예 아버님과의 만남으로 모든게 달라졌다.
“미팅 어땠어? 걔들이 뭐래?”
“…위약금 조항 제외할테니 광고만 찍어달래.”
“…그거 대단하네.”
미팅에 다녀온 하린이의 얼떨떨한 표정에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다.
일전 하린이 아버님과 만났을 때, 아버님은 지참금이라며 하린이에게 축구단을 주겠다고 했다.
마침 스포츠 구단 인수를 통한 마케팅 효과를 분석하던 중, 나와 하린이로 인해 축구단을 인수하겠다는 것.
적당히 비공시 자회사 하나 만들어서, 그 회사로 축구단을 인수한 뒤 온갖 우회와 편법을 동원하여 하린이에게 지분을 넘기겠다는 건데… 실리적으로 생각하면 하린꺼가 내꺼이니 아버님 돈으로 축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지분 하나 없으니 내꺼라는 기분이 안 든달까.
그래서 아버님에게 제안했다.
GT 그룹 광고를 찍어줄테니 축구단 지분으로 달라고.
이래봬도 워낙 인지도도 높고 이미지도 좋은데다 지금껏 단 한편의 광고에도 출연하지 않은 덕분에 이미지 소모도 없는 나다.
당연히 몸값은 천정부지 올라 지금 내 단가면 2부 리그 인수 금액 정도야 상당히 많은 지분으로 받을 수 있겠지.
게다가 하린이의 친정 GT 그룹이다보니, 하린이가 알아서 품위유지 조항이나 위약금 조항을 손보지 않겠는가.
실질적으로 내 돈 한 푼 쓰지않고 축구단을 얻는 것이니 괜찮은 거래였다 만족했는데, 이게 요상하게 흘러갔다.
“계약 내용 유출이 이렇게 돌아오네….”
어처구니없다는 다예의 말처럼 GT 그룹과의 광고 계약 내용이 유출되어 버린 것.
처음엔 악재라 생각했지만—
“흐음. 이정도 체급이 되니까 이런 계약서도 받을 수 있구나.”
오히려 엄청난 호재로 돌아왔다.
그간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응하지 않던 내가 GT 그룹의 광고를 수락했다는 소식에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조건이길래 수락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퍼졌다.
그리고 집요한 언론의 추적 끝에 계약 내용이 유출되었고, 위약금 조항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며 광고주들이 위약금 조항을 대폭 하향하거나 아예 삭제해서 제의하기 시작한 것.
광고주들에게 있어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위약금 조항인지라 어지간해선 이런 조건으로 광고 찍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난 생각보다 뜨거운 감자였다.
말석이나마 한국의 10대 재벌이라는 GT 그룹이었지만 날 원하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에 비하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었으니… ‘이 정도 기업의 조건을 수락했으면 우리도 가능할지도!?’라는 심보인지 한국을 물론 세계의 수위를 다투는 기업들까지 몰려드니 그야말로 피터지는 경쟁이 벌어졌다.
과도한 출혈 경쟁 끝에 광고주들은 안전장치고 나발이고 일단 광고만 찍어달라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나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들이밀기에 이르렀다.
“어휴, 진짜 미친 듯이 쏟아지네.”
덕분에 에이전트인 하린이와 다예가 바빠졌다.
끝없는 미팅과 검토가 이어지고,
“축구화 협찬은 어디가 좋아? 퓨마? 리복? 조건은 280~300만 달러 정도로 비슷해.”
“어디든 상관없어. 조건 좋은데로 해.”
“그럼 퓨—”
“잠깐만. 아디다스랑 나이키에서도 제안이 들어왔어.”
“…글로벌 대기업도 어쩔 수 없나보네.”
* * *
광고니 협찬이니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정작 이적은 뒷전이었다.
그러나 이건 가외수입에 정신이 팔렸다거나 이적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닌,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
『홍민준에 대해 결단을 내린 프랑크푸르트!』
「현지 시각으로 저녁 9시까지 이어진 마라톤 회의 끝에 프랑크푸르트 이사회는 공식적으로 홍민준의 이적을 허락했다.
테크니컬 디렉터 암허스트 이사는 “홍민준은 구단의 장기 계획에 있어 중요한 핵심 선수이지만 재정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공식적으로 1억 유로의 이적료를 발표했다. 한화로 무려 13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금.
아무리 심심찮게 빅 사이닝이 일어나는 이적 시장이라지만 1억 유로는 어지간한 빅클럽도 망설일 수 밖에 없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러나 축구계 관계자들은 “홍민준에게 매겨진 1억 유로는 결코 과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 축구계에 정통한 에이전트 A씨는 “프랑크푸르트가 재정적으로 셀링 클럽에 가까운 구단이라는 점, 계약 기간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 시즌 중반에 있던 보드진과의 갈등 등이 겹쳐서 그럴 뿐, 홍민준의 실제 이적료가 훨씬 높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1억 유로라는 거금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홍민준의 영입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 가장 앞서 있는 건 EPL의 맨체스터 형제, 맨유와 맨시티로 알려졌으며 이외에도 복수의 EPL 구단과 라 리가, 세리에A, 분데스리가의 구단마저 홍민준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한편, 홍민준은 월드컵 이후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광고 촬영을 위한 메이크업을 받으며 스포츠 기사를 살피니 과연 내 기사로 도배되어 있다.
그리고 내용도 의외로 정확하고.
일찌감치 하린이를 통해 구단에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한 덕일까.
모처럼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게 된 구단인지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경우도 생각했는데, 의외로 쿨하게 이적에 동의해줬다.
그간의 공로에 대한 예우라나 뭐라나.
내 생각엔 그것보다 보드진과 붙어 날려버리는 내 성깔과 2년 남은 계약 기간, 월드컵 특수로 인한 치솟은 몸값 등이 주요 이유인 것 같은데… 뭐, 50억도 안 되는 이적료로 와서 1300억이 넘는 이적료를 안겨주고 떠나는거니 미안할 건 없지.
고작 1년 반만에 무려 거의 30배에 가까운 이적료를 남겨주는거 아닌가.
더불어 성적까지 챙겨줬는데 구단이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8월초까지 적당히 광고 마무리하고 이적에 집중해야겠다.’
고민이네.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