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19)
219
뉴캐슬의 감독 로렌 보트만은 올해 38살의 젊은이였다.
20대도 아니고 이제 40을 바라보는 30대 후반에게 ‘젊은이’란 표현은 어색하지만 축구 감독이란 직업에서보면 30대 후반은 젊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신체 능력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진 요즘엔 로렌 보트만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 축구 감독계에서 로렌 보트만이 얼마나 신선한 젊은이인지 알 수 있다.
허나 젊은 감독 로렌 보트만의 경력은 결코 짧지 않다.
20대 중반, 23살이란 창창한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로렌 보트만은 26살에 유소년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8년 전인 30살에 뉴캐슬의 유소년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유소년 중심의 리빌딩 정책, 일명 퓨처 프로젝트를 시작한 뉴캐슬에겐 ‘유소년’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 파트.
그런 곳의 감독으로 낙점받았다는건 로렌 보트만이 비루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감독으로서 충분한 재능을 선보였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구단 유소년 팀을 이끌며 뛰어난 육성 능력을 입증받은 로렌 보트만은 이후 2군 감독으로 승격했고, 마침내 3년 전 1군 진입에 성공하였다.
그것이 비록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며 긴급 소방수로 투입된 임시 감독 신세라 할지라도 1군은 1군.
로렌 보트만이 1군 감독으로 부임한 그 시즌 뉴캐슬은 간신히 강등권을 탈출하여 잔류에 성공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강등 경쟁은 뉴캐슬이 1부로 승격한 후 매년 겪는 전쟁이었으니까.
그렇게 간신히 잔류하고나면 감독들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입모아 외쳤다.
“영입!! 좋은 선수의 영입!!”
그러나 뉴캐슬은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고, 언제나 최소한의 영입으로 이적 시장을 마감하곤 했다.
그리고 또다시 강등권을 헤매는 일의 반복.
하지만 로렌 보트만은 달랐다.
긴급 투입된 소방수인 임시 감독에서 1군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지난 시즌.
로렌 보트만은 영입보다 실력 미달의 선수를 방출하는 한편 자신이 유소년 감독 시절부터 키워온 어린 제자들을 대거 콜업하며 선수단을 물갈이했다.
서포터는 물론 전문가들도 걱정한 급격한 리빌딩이었다.
심지어 유소년 중심의 리빌딩을 계획하고 있던 구단 수뇌부에서마저 너무 과격하지 않냐는 의문이 나올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리그 13위라는 성공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리그 13위.
20개의 팀이 경쟁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50%에도 들지 못하는 순위.
명문 구단이라면 처절한 실패로 기록될 순위였지만 언제나 강등권 경쟁을 해오던 뉴캐슬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성공이었다.
하물며 외부 영입이 아닌 구단의 미래를 건 유소년 정책으로 인한 성공이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겠는가.
자신의 능력을 결과로 보여준 로렌 보트만 감독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구단에 단 한 선수의 영입을 적극 요청했는데, 바로 당시 분데스리가 2부에서 우승한 프랑크푸르트의 주역 홍민준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처절한 실패를 겪고 프랑크푸르트로 임대를 떠나있던 이 젊은 선수의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로렌 보트만의 의사에 따라 구단에서도 적극적인 영입에 나섰지만 선수 본인이 프랑크푸르트로의 이적을 결정하며 영입이 불발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 뉴캐슬은 리그 4위를 달성했다.
“민준. 나는 자네를 오랫동안 지켜봤네.”
팬도 전문가도 구단 임원들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선전이었지만… 로렌 보트만은 생각했다.
“자네가 올림픽에서 활약하던 순간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재능을 만개할때까지 말일세.”
만약 지난 시즌 홍민준을 영입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래서 확신하네. 지난 시즌, 자네의 영입에 성공했으면 우리는 4위가 아니라 우승 경쟁… 어쩌면 정말 리그 우승을 달성했을지도 모르지.”
리그 4위를 달성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각해온 자신의 상상.
그것을 처음으로 남에게, 그것도 상상 속 주인공에게 털어놓은 로렌 보트만은 후련한… 아니, 일종의 감정 찌거기가 모두 해소되는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홍민준은—
* * *
‘…뭐지 이 변태새끼는. 스토커야 뭐야.’
포지션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뜬금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자신의 인생썰을 푸는 건 괜찮다. 감독님은 38살, 아저씨 아닌가.
아재라면 누구나 ‘라떼는~’이 기본 탑재되는바, 한국의 유교맨으로서 썰 정도야 들어줄 수 있다.
있지만… 있다지만 지금 이 모습은 좀…
첫휴가 나온 군인이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의 눈빛이 이럴까.
그 소름돋는 불경한 시선에 대경한 나는 휘몰아치는 분노의 일성을 토해냈다.
“이번에 우승하면 되죠!”
“역시!! 역시 내가 선택한 선수답군!!”
“…….”
대체 뭐가.
어쩐지 맛이 간 눈빛의 감독님이 열정적으로 전술판 위를 손가락으로 휘적인다.
“그거 아나? 자네의 페이스는 아게로나 엘링 홀란드보다 뛰어나! 맨시티의 전설 세르히오 아게로와 엘링 홀란드는 EPL 데뷔 시즌, 첫 4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 하지만 자네는 무려 7골이야! 자네에겐 그들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지!!”
고작 4경기로 아게로나 홀란드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하면 미친놈 소리 듣겠지만… 솔직히 내가 그 둘보다 못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게로와 홀란드가 아무리 전설적인 선수고 축구 천재라지만 상태창은 없었을테니까.
“그래! 그 자신감이야!! 자, 다음 상대를 보자. 우리의 다음 상대는 리버풀! 바로 그 리버풀이란 말이야! 자네도 알지?”
“당연히 알죠.”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리버풀의 특징은 강력한 전방 압박이네! 리버풀의 전설적인 명감독 위르겐 클롭의 유산! 바로 게겐프레싱!! 지난 시즌에도 리버풀은 가장 활동량과 압박이 많은 팀 중 하나였어! 그건 올해도 똑같을터, 우릴 상대로도 강력한 압박을 걸어올걸세!”
반박할 말이 없는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저씨 텐션이 왜 이렇게 높아. 따라갈 수 없는 하이텐션을 낮추기 위해 조용조용하게 물었다.
“이해했습니다. 리버풀이 저에게도 조직적인 압박을 가할거란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오히려 압박이 심한 중앙보단 측면으로 빠져야 하는거 아닌가요?”
현대 축구의 주득점원이 중앙 공격수에서 측면 공격수로 옮겨진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압박이 강한 중앙에서 버틸 수 없으니 보다 압박이 약한 측면에서의 플레이로 풀어나가는 것이 현대 축구계의 흐름.
일반적으로 축구 전술은 공격보다 수비의 발전이 빠르다.
그렇기에 치밀하고 조직적인 압박에 더 이상 중앙 공격수의 능력만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 지금의 모습.
이런 의미가 내포된 내 말에 감독님은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압박을 피해 측면으로 옮기거잖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어서 도망친거네.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까. 자네도 그런가? 민준, 자네도 압박을 버틸 수 없나?”
“당연히…”
없다고 해야하는데… ‘정말 못 버티나?’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커리어 초기 정도를 제외하곤 압박에 크게 고생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압박을 역이용하면 했지.
전문가들이 말하는 내 최고의 장점은 좁은 공간에서 상대의 압박을 뚫어내는 탈압박 능력.
속도? 그거야 확 상승한 이번 시즌에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거고.
슛팅? 최근에 많이 개선됐다지만 아직까지 난사왕이란 조롱 섞인 별명이 종종 나올 정도로 초기 난사하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득점왕임에도 불구하고.
상태창을 얻은 후… 아니, 내 축구 인생 전체를 돌이켜봐도 내 최고의 장점은 테크닉.
전반적인 신체 능력의 향상으로 더 이상 몸싸움도 약점이 아니다. 70이란 스탯은 EPL에서도 평균에 가까운 수치에다 밸런스와 민첩성이 뛰어나니 경합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다.
메시나 아자르, 네이마르가 근육질이라 경합을 이겨냈던가?
탁월한 밸런스와 민첩함으로 이겨냈지.
게다가 내 반응속도와 테크닉이 결합되면… 거리를 두고 겹겹히 수비블록을 쌓는 존 디펜스보다 차라리 상대가 압박을 해주는게 고마울 정도.
“…버틸 수 있죠. 충분히.”
“그래! 그거야!! 자네는 내 생각보다 신체 능력이 좋더군! 지난 시즌까지만해도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EPL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경합 능력이 발전했어! 자네는, 홍민준 너는… 압박을 피할 필요가 없는 선수라고!”
“그래서 1.5선으로 뛰라는 말씀인가요? 쉐도우 스트라이커처럼?”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감독님의 손가락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중앙 공격수 자리로 이동하는걸 보면서 1.5선에서 플레이하라는거구나 하는 느낌이 딱 왔으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지. 나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원하는바에 못 미쳐. 내가 원하는 건 자네가 원톱, 센터 포워드로 뛰는거야. 9번과 10번이 조화된 플레이 말이야!”
전통적으로 9번은 중앙 공격수, 10번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의미한다.
즉, 골잡이와 플레이 메이커.
하나라도 제대로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한 선수가 두 역할 모두를 해낼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멀리는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월드컵 우승을 꿈꾸게 만든 마티아스 신델라부터 가깝게는 미카엘 라우드롭과 프란체스코 토티,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호베르투 피루미누까지.
‘펄스 나인’이란 용어가 탄생하기전부터 천재적인 선수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 최고는 두 천재의 결합으로 완성됐지. 바로 리오넬 메시와 펩 과르디올라 말이다.”
“메시….”
“축구계 역대 최고를 꼽는다면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천재적인 선수이기에 가능했던 퍼포먼스다. 하지만 난 그 이상을 원해. 자네는 메시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메시가 가지지 못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않나. 바로 피지컬 말이야.”
감독님은 열정적으로 외쳤다.
“그러니 자네는 펄스 나인을 뛰어넘는, 축구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내야 하네. 현대 축구의 상식을 부수는 새로운 창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