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36)
236
숨가빴던 10월도 끝나고 11월이 찾아왔다.
10월에 비해 무려 2경기나 적은 11월 일정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훈련장에 들어서니 먼저 출근해 있던 선수들이 주인을 본 강아지마냥 부리나케 달려오는 게 아닌가.
“홍! 언제오나 기다리고 있었어!!”
“어련히올까, 뭘 기다리기까지.”
“요즘 출근 시간이 좀 늦어지지 않았어? 벌써 9시가 넘었다고.”
“난 어제 거의 풀타임이었다고. 오늘 일정이래 봐야 회복 훈련만 있잖아. 좀 봐줘라.”
“헤이헤이, 너 오길 아까부터 기다렸다고. 저번에 알려 줬던 잔발스텝, 그거 호흡법이랑 같이 하면—”
…그만해 새끼들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선수도 있었지만 이게 뉴캐슬 선수단의 평범한 모습이 된 건 불과 얼마 전.
내가 처음 뉴캐슬로 이적해왔을 때부터 팬이니 롤모델이니 졸졸 쫓아다니던 루크라는 녀석이 있다.
키는 190cm이 넘고, 덩치는 산만한 게 순박한 눈망울로 예쁘게 볼을 차는… 그런 언밸런스 한 친구.
평소 팀의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수비적인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곤 하는 녀석으로 나와는 영 플레이 스타일 다른 데도 부득부득 내가 하는 훈련을 따라 하고, 똘마니처럼 굴길래 몇 마디 조언해줬을뿐인데 이 녀석이 요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게 아닌가.
“오… 뭐야, 로크. 너 요즘 기록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홍 따라다니면서 같이 훈련하더니 그 덕분인가?”
“친구. 난 로크가 아니라 루크야.”
“뭐? 무슨 소리야, 네 이름은 로크잖아.”
“아니. 민준이 루크라고 부르니 이제부턴 날 루크라고 불러줘.”
“이런 병—”
안 그래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내 경기력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근덕거리던 녀석들이 루크의 성장세에 혹하고 말았다.
원래부터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이제는 알아서 날 리더급으로 대우해주니 이거야 원, 별다른 노력없이 순식간에 팀 리더급 위상을 갖춘 건 좋은데…
‘씨발. 난 진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날 따라한다고 실력이 늘겠냐!
물론 내 훈련량이 많은 편이긴 하다.
근데 그거야 원래 유럽애들 훈련량이 적은 거고.
무슨 하루 훈련 시간이 2~3시간이냐. 상식적으로 너무 적지 않아?
팀 정규 훈련이 일찍 끝나면 좀 개인 훈련도 하고 그래야지, 이것들은 대체로 팀 훈련이 끝나면 그대로 퇴근이다.
개인 훈련?
없진 않지. 하는 선수는 한다. 그러나 개인 훈련이란 뜻처럼 자유롭다 보니 정말 향상심이 강하거나, 상황이 급한 선수나하지 보통은 안 한다.
뭐, 이해는 한다.
유럽은 강도 높은 훈련이 당연한 한국과 문화가 다른데다 시즌 중에는 워낙 경기만으로 힘들지 않나. 나 역시 융통성있게 경기 이튿날에는 회복 훈련만하고 퇴근한다거나, 경기 일정이 촉박하면 개인 훈련을 생략하거나,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적당히 짧게 하거나 한다.
사람이 철인도 아니고, 악으로 깡으로 무리하게 훈련하면 아무리 나라도 몸이 못 버티지.
그래도 일정이 좀 널널하거나 주전이 아니라 체력이 남으면 당연히 개인 훈련에 매진해야 하지 않나?
내가 한국인이라 유럽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가 생각해봤지만 역시 이상한 건 유럽애들이다.
발전하려면 훈련에 더 투자하는 게 맞지. 무리하게 하라는 게 아니고 체력이 남으면 놀지 말고 당연히 훈련해야 하는 거 아닐까. 프로 선수잖아.
그나마 바르셀로나나 프랑크푸르트에 비하면 뉴캐슬이 훨씬 낫긴 하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바르셀로나 선수들이나 대체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던 프랑크푸르트 선수단은 머리가 굵을대로 굵어서 내가 남아서 혼자 훈련을 하든 말든 ‘넌 니할거해라~ 난 나대로 간다~’ 였다.
그에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어린 뉴캐슬 선수단은 그래도 내가 정규 훈련 끝나고 남아서 훈련하고 있으면 ‘어? 쟤도 남아서 훈련하는데 나도 해야 하나?’하며 눈치를 보며 가끔 남아서 훈련을 하더라.
그리고 몇몇 선수들은 아예 내가 처음 뉴캐슬에 왔을 때부터 나하는 걸 따라 항상 개인 훈련하는 선수가 있어는데… 그 중 하나가 루크다.
처음엔 그러려니하던 선수들도 루크의 성장세가 눈으로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자 혹하게 된 것.
그래서인지 요즘엔 나를 따라서 개인 훈련하는 선수가 많아졌는데… 그래, 그건 좋다. 프로 의식 투철한 분위기는 좋다 이거야.
근데 왜 자꾸 나한테 들러붙는거냐고.
나도 선순데 내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어떤 훈련하는게 좋겠냐느니, 지금 방식은 어떠냐느니, 잘못된 걸 지적해 달라느니….
“그야 홍은 스스로 증명했잖아! 그 말도 안 되는 성장세! 거기다 갑자기 키가 확 큰 것도 잘 이겨냈고, 요즘 웨이트해서 근육량이 늘었는데도 스피드랑 민첩성, 밸런스가 나빠지지도 않고.”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게 보이겠지.
근데 어쩌냐. 난 상태창빨인데.
훈련?
물론 훈련으로도 스탯을 상승시키긴 했다.
그러나 내 훈련의 가장 큰 이유는 ‘선수로서 그게 당연해서’지, 내 실력 향상의 주된 요인이 아니다.
당연히 선수들에게 어떤 훈련이 알맞고, 효율이 좋은지 따위는 모른다. 내가 뭐 전문적인 코치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루크한테 말해준 것도 기본 중의 기본이었을 뿐이고, 녀석의 성장세는 그냥 어린 나이에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다 보니 재능이 터진 것이겠지. 아니면 우리 코칭 스탭의 육성법이 잘 먹혔거나.
“민준, 나도 도와줘. 요즘 분석당했는지 경기에서 다 잘 막히는 느낌이야.”
“미안한데… 그런 건 코치님한테 요청해야지 나도 잘 몰라.”
“넌 천재잖아! 축구 천재! 부탁할게.”
“음… 그렇지, 난 천재지.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에이 모르겠다.
그냥 기본적인 부분만 짚어 주지 뭐.
“얘들아, 홍이 할말있대! 다들 모여!!”
“오오…! 나도, 나도 민준한테 조언들을거야!”
…괜찮겠지?
* * *
새삼스럽지만 뉴캐슬은 평균 연령이 가장 어린팀이다.
1군 로스터 25인의 평균부터 주전 스타팅 라인업 11명의 평균 연령까지 모두 프리미어 리그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어린 스쿼드.
이는 뉴캐슬이 두바이에 인수되던 8년 전부터 유소년 중심의 리빌딩을 진행한 결과로 1군 스쿼드의 반 이상이 그간 열심히 긁어모은 유망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보면 잘 드러난다.
사실상 베테랑이라 할만한 30대 선수는 주장인 바움 요한과 로테이션 멤버인 아킨소와 뿐이니, 겉으로만 보면 젊고 유능한 선수단답게 앞으로 계속 발전하기만 할 거라 예상하기 쉽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
구단이나 감독들이 괜히 베테랑을 중시하는 게 아니다.
베테랑이 없다 보니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없고, 어린 선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줄 선수도 없다.
감독이나 코치가 있다지만 코칭 스탭과 노련한 선배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고, 현역으로 뛰며 상대해 본 선수들의 특징과 장단점,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 다르니까.
그렇기에 지금까지 뉴캐슬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게 말해 독립적이었고, 나쁘게 말해 고립적이었다.
호세 가야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보석발굴가’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빅터 쇼웰 스카우트 팀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6살의 나이에 뉴캐슬에 합류하여 유소년 팀에서 2군, 그리고 마침내 1군까지.
진성 뉴캐슬 성골…까진 아니어도 ‘뉴캐슬 출신 유소년’ 딱지가 붙은 진골은 되는 호세 가야는 팀에서 가장 기대하던 대형 유망주로 성장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보이며 각지에서 쓸어온 유망주가 모인 유소년 팀에서도, 재능없는 퇴물 노땅만 가득하던 2군에서도, 심지어 18살이란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1군 무대에 데뷔하고도 호세 가야는 팀의 에이스로 대우받았다.
뉴캐슬이 애지중지하는, 세계가 주목하는 대형 유망주이자 어리지만 팀 내 핵심 선수.
팀 주축인 어린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많은 선수들 심지어 주장 바움 요한조차 자신에겐 슬슬 져줬는데…
“흐음… 너도 알다시피 스피드란 타고나는 거야. 훈련으로 향상시킬 순 있지만 그 폭은 엄청 작겠지. 그래도 괜찮겠어?”
“하지만 민준 너는 훈련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잖아. 예전의 너는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다고 들었어.”
“물론이지. 타고난 재능은 중요하지만 결국 노력,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건 없어. 날 보면 알 수 있잖아? 난 이렇게 빠르지도, 민첩하지도, 밸런스가 좋지도 못 했어. 하지만 노력, 오직 노오오오력만으로 이렇게 성장했지.”
“대단하다! 역시 민준이야!”
“후… 말하자면… 인.간.승.리…랄까?”
“오오오!!”
“…….”
스트레칭을 하던 호세 가야의 얼굴이 팍 썩어들어갔다.
‘미친새끼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 축구는 재능이야. 노력같은 소리하네.’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호세 가야가 그런 바보는 아니었다.
노력?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
하지만 노력은 재능의 한계치까지 실력을 끌어올려줄 뿐, 결국 한계치는 재능으로 결정되는것 아닌가.
“너네는 저딴 말 믿지마. 노오력같은 소리하네. …만프레도?”
자신을 따르는 따까리… 아니, 부하…가 아니라 동료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호세 가야의 시선에 멍청이 무리 사이에 끼어 ‘노오오오오력’을 외치는 만프레도의 모습이 들어왔다.
“…….”
“어이 호세! 너도 와서 같이 훈련하자! 노력해야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만프레도의 꼬락서니를 본 호세 가야의 얼굴이 또다시 썩어들어갔다.
왜 이렇게 좆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