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4)
024
여긴 어디? 난 누구?
후다닥 저녁만 먹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메뉴 선정부터 난관이었다.
“민준 선수 뭐 드시고 싶으세요?”
“민준아 요 앞에 괜찮은 가게 있는데 거기가자.”
“전 민준 선수한테 물었는데요?”
“민준이도 좋아하는데?”
“아니,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방금 봤잖아. 꼬우면 너도 반말하던가.”
“하! 어이없어 진짜.”
“난 어이있는데.”
“아악! 뭐 이런 년이 다있어!!”
“여기있지롱~”
“…….”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면 안 될까.
왜 여자들 사이에 껴서 이런 유치한 말다툼을 듣고 있어야 하는걸까.
입만 다물고 있었다면 하렘왕이 된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건… 이건 그냥 유치한 말싸움이잖아. 날 구실로 둘이 싸우고 있을 뿐이잖아!
날 좋아해서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거라면 얼마든지 어울려주겠지만 이건 그냥 희연 누나의 일방적인 시비로 시작된 싸움이잖아. 그러고보면 희연 누나는 왜 저러지? 싸움닭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대체 두 사람이 왜 싸우는건지에 대한 현학적 고찰을 하고 있으려니, 입씨름만으로는 승부가 안 난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민준 선수. 아까 양식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레스토랑 갈까요? 제가 아는 괜찮은 레스토랑있는데.”
찰싹 붙은 기자 누나의 봉긋하게 솟은 정장 마이가 닿을 듯 말 듯…!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순간, 반대쪽에서 명확한 뭉클거림이 느껴진다.
“민준아 우리 학교 앞에 스테이스가자~”
희연 누나는 생각보다 가슴이 크구나~
“그렇게 가고싶으면 혼자 가셔도 되는데.”
“내가 민준이랑 갈테니 그쪽이야말로 그 좋아하는 레스토랑 혼자 가시던가요.”
“…….”
양 쪽에서 부벼대는 가슴은 좋은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그냥 빨리 밥먹고 집에 가고 싶은데 양 옆에서는 끊임없이 왈왈거리고.
아무래도 기자 누나는 이번에 보고 끝일 가능성이 높지만 희연 누나는 윤혁 선배도 있고, 같은 학교이니 자주 볼테니까…
“그냥 스테이스가요.”
이러다 날 샐 것 같아 딱 정해줬다.
입술을 삐죽이긴 했지만 기자 누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스테이스로 향했다.
스테이스.
학교 앞에 있는 룸형식의 술집 겸 음식점.
직원의 안내에 따라 룸으로 안내받았는데 4인 좌석이라 누구 한 명은 혼자 앉아야 할 판이다.
내가 혼자 앉아야하나 고민하는데 희연 누나가 대뜸 손을 잡아 끌어서는 자기 옆에 앉히는게 아닌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기자 누나가 한대 맞은 표정을 짓다가 입술을 앙다물며 맞은편에 혼자 앉았다.
“민준 선수. 소주시켜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근데 전 술은 안 마셔서…”
“제가 마시는 건 괜찮죠?”
“그럼요.”
“그쪽은 뭐…”
내 옆에 앉은 희연 누나를 일견한 기자 누나가 피식 비웃자,
“나도 마셔야지. 여기요. 소주 2병 추가해주세요.”
“사장님. 3병으로 해주세요. 한 병을 누구 코에 붙여.”
“언니! 소주 4병이요~”
“5병 갖다주세요.”
“6병.”
“…….”
그냥 다 꺼져줬으면.
가장 쓸데없는게 술부심이라더니 진짜였다. 세상에 이렇게 바보같을수가.
* * *
핸드폰을 보니 벌써 저녁 10시.
집에 언제가냐.
“너 집에 안 가? 밥도 먹었으니까 좀 가라. 응?”
“싫은데~ 왜에? 나 가면 뭐하려구~?”
“아무것도 안 해!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제발 좀 가!!”
“내가 생각하는게 뭔데~? 응? 뭔데뭔데?”
잘근잘근 입술을 짓씹던 기자 누나가 갑자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안 따먹는다고! 안 따먹으니까 제발 가라고!!”
제발 그만해 이 주정뱅이들아!!
정신나갈것같애!!
“응 싫어~ 안 갈거지롱~”
“왜! 대체 왜!!”
“우리 작고 귀엽고 소중한 민준이 잡아먹히면 어뜨케. 안 돼 안 돼. 못 가.”
“아니라고!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거짓말. 안 믿어. 우리 민준이 따먹으려 그러는거 다 알지롱~”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두 사람은 내 존재를 잊은 것 같다.
아니지. 잊은 건 내가 아니라 수치구나. 부끄러움을 잊은 여자들이란 얼마나 추한가.
얄밉게 웃던 희연 누나가 순간 정색했다.
“가줄까?”
“어! 응! 네! 제발!”
“이거 대답해주면 가주지.”
“뭔데! 다 대답해줄게. 응? 그러니까 제발 좀 가라.”
반쯤 울먹이다시피 애원하는 기자 누나를 향해 희연 누나가 차갑게 말했다.
“나 왜 깠어?”
“……??”
이 와중에 반쯤 풀린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 누나는 꽤 귀여웠다.
“몰라? 하! 피해자는 못 잊어도 가해자는 잊는다더니.”
핸드폰을 꺼낸 희연 누나가 무언가 사진을 띄우더니 턱,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액정에 떠있는 것은 아까봤던 잡지, 기자 누나가 근무하는 ‘우먼 파워 매거진’이었다,
“이게 뭐?”
“넘겨봐.”
기자 누나의 손가락에 맞춰 넘어가는 사진들.
뭐야 이건.
제목도 그러더니 내용도 여자 테니스 선수 옷차림이 너무 선정적이다, 성상품화다, 실력이 아닌 노출도 승부한다 같은 것뿐이다.
무엇보다…
—강수연 에디터
중간중간 끼어있는 기자 누나의 이름.
“보여? 이건 아주 보란듯이 내 사진 걸어놨더라? 뭐라더라. 실력보단 노출, 부끄러움 모르는 성상품화의 상징 호진대 A선수. 아주 저격을 했네. 그냥 이름을 쓰지 뭐하러 익명이야.”
“어… 이, 이건. 그게…”
당황해서 손을 내젓는 기자 누나를 향해 희연 누나가 시니컬하게 웃는다.
“내가 너무 분해서 다 캡쳐까지해서 가지고 다니거든? 덕분에 이 악물고 연습해서 성적도 더 좋아졌어. 근데 있지. 난 이렇게 기억하는데 정작 넌 기억도 못 하네?”
“죄, 죄송해요. 그게… 고의가 아니고…”
“고의가 아니긴. 너네 대표 페미 잡지잖아. 안 그래?”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댄 희연 누나의 시선이 날 향했다.
“민준아. 오늘 인터뷰한거 기사화하지 말라고 해. 얘네 극성 페미거든? 너 인터뷰한 거 어떻게 나갈지 몰라. 걍 제공 취소한다고 해버려.”
설마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우먼 파워 매거진을 검색해보니… 와. 이건 좀.
“아, 안 돼요! 그것만은 제발!”
“됐고. 잘 먹고 갑니다~ 가자 민준아.”
애원하는 기자 누나가 좀 불쌍하긴 했지만 순수히 팔목을 잡아끄는 희연 누나를 따라 일어났다.
“아. 사장님 잘 먹고갑니다~ 계산은 뒤에 나오는 아줌마가 해줄거에요.”
이 와중에 계산 떠넘기기까지.
무섭다, 희연 누나.
희연 누나한테 팔목이 잡혀가는데 허둥지둥 계산을 마친 기자 누나가 뒤따라오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희연 선수! 제가 사과할게요. 죄송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됐거든요~”
“어… 저기. 우리 너무 시선끌거든요? 일단 시선 없는데로 좀.”
이지적으로 생긴 미녀 커리어우먼이 화려한 금발의 미녀에게 매달리는 광경에 시선 집중이다. 그 와중에 둘 사이에 멀뚱히 서있는 나를 향해 ‘쟨 뭐지?’하는 시선까지.
여전히 팔목을 잡고 있는 희연 누나를 끌고 사람 없는 곳으로 가니, 연신 사과하며 따라오던 기자 누나가 이번엔 날 향해 애원한다.
“민준 선수. 부탁드려요. 인터뷰 취소만큼은 제발…”
“아무래도 페미는 좀…”
“아니에요! 정말, 진짜로 그런 게 아니라 민준 선수가 워낙 잘생겨서! 그리고 실력! 실력도 좋고! 그래서 인터뷰 한 거에요!”
기자 누나의 애원에 마음이 약해질라하니 희연 누나가 팔목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꽉준다.
“속지마. 저거 아주 음흉한 여자야. 지금도 내가 안 따라왔으면 너 술먹이고 잡아먹었을 걸.”
…그건 괜찮은데.
희연 누나의 쓸데없는 배려가 감동스러워 눈물이 다 나네.
“아니라니까요!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그냥… 그냥 사진이 필요해서…”
“사진은 인터뷰 할 때 많이 찍… 아항~ 이거 아주 무서운 여자였네.”
“네?”
“작고 소중한 우리 민준이 따먹고 사진 찍으려고 그랬지!!”
“아니라고!! 그냥 손 모양 사진— 헉!”
“…손 모양?”
잠시 생각하던 희연 누나가 화들짝 놀라더니,
“설마 이거?”
하면서 핸드폰으로 무언가 검색해 보여준다.
헉! 이런 미친!
누굴 죽이려고!
저 손 모양 사진 찍히면 사회적으로 매장이다.
난 남페미가 아니야!!
“와~ 너 진짜 악질이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거든요. 진짜, 저도 싫은데… 저도 진짜 싫은데 편집장님이 꼭 찍어오라고 해서… 으허헝.”
우물쭈물 변명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기자 누나.
너무 서럽게 울길래 살짝 등을 토닥여주며 희연 누나의 눈치를 살피니, 기자 누나의 우는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게 아닌가.
“와~ 운다 울어!”
이 사람은 천성 S인가.
깔깔거리며 좋아하던 희연 누나가 선심쓰듯 말한다.
“그러며언~ 한 번 봐줄까?”
“네! 부탁드려요! 저 이제 페미같은 거 안 하거든요? 봐봐요! 머리도 다시 기르고 있고, 화장도 하고, 향수도 뿌렸어요!”
희연 누나한테 매달려 울먹이는 기자 누나의 모습은 진짜 애처로웠다.
불쌍해라. 이게 직장인의 비애구나.
“음~ 어쩔까아~”
“제발요. 저 짤릴지도 몰라요. 네에?”
“그럼 내가 하라는대로 다 할거야?”
“네! 다 할게요!”
그 대답에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어둠속에서도 반짝이는 희연 누나의 눈동자.
어휴 무섭다 무서워. 여자의 원한이란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음~ 음~ 그럼 어떤 걸~”
기묘한 콧노래를 부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희연 누나의 시선이 딱 멈춘 곳은…
“저기 들어가보자!”
“네! 어디든 좋— 히익! 저, 저긴 왜요?”
모텔이었다.
“왜긴. 넌 이제부터 내 노예야! 히힛!”
희연 누나와 기자 누나의 보빔이라… 이거 귀하군.
상상하니 꼴린다.
빨리 집에가서 지경 누나라도 불러야지.
“넌 어디가?”
“네? 전 이제 집에…”
“가긴 어딜가. 못 가. 너도 따라와! 히히힛.”
기자 누나가 간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음… 역시 나까지 있는 건 부끄럽—
“제, 제발 같이 가주세요. 저 여자랑 둘만 있기 싫어요!”
흠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따라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