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294)
294
오하린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부터 일어나 각종 보충제와 영양소가 들어간 쉐이크를 마신다.
그 뒤 직접 내린 원두 커피를 마시며 한국과 영국, 미국의 주요 일간지를 훑고 미리 짜둔 하루 일과를 조정하면 어느덧 동이 틀 무렵.
요일을 확인하고 주 3회 P.T를 받는 날인지, 주 2회 필라테스를 받는 날인지 확인하여 그에 맞는 복장을 갖추고 나오면 꼴보기 싫은 애가 기다리고 있다.
윤다예.
그녀의 남편과 어린 시절을 공유한, 짜증나는 계집애지만 한편으론 또 이만한 동지가 없다보니 붙어다니게 된… 애증의 관계랄까.
자신만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애답게 칼같이 시간을 맞춰 준비하고 있는 것이 독해도 여간 독한게 아니다.
어쩜 저렇게 한 번을 빠지거나 늦질 않을까.
단, 그이한테 시달린 다음날만 빼면.
그렇게 얄미운애와 같이 운동을 하다보면 경쟁이 안 붙을래야 안 붙을수가 없지.
은연중 경쟁이 붙고, 경쟁심에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나면 그 효과는 혼자할때의 2배 이상.
싫지만 또 완전 싫지도 않고, 좋아한다고 하긴 애매하지만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같은 운명으로 묶인 두 사람이 찾은 공생법 중 하나였다.
효율적인 두 사람은 좋든 싫든 함께해야 하는 이상 이왕이면 서로 윈윈해야 함을 인지한 이후 이렇게 조금씩 서로를 인정하고 또 이용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 운동이 끝나면 가벼운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업무에 나선다.
최근 오하린이 집중하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이 맡긴 구단 경영.
‘세종 GT’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축구단을 운영하고,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것이 요 근래 오하린이 집중하는 업무였다.
“재계약 명단은 이대로 진행하세요. SNS와 연동한 서포터즈 모집은 어떻게 됐죠?”
“구장 내 매장 퀼리티 개선책은?”
“일부 좌석에 대한 리모델링 성과는 어떻습니까.”
“재정적으로 자립하려는 의지는 좋지만 지금은 투자할 시기입니다. 유소년 시설 확충에 집중하세요.”
극도로 상업화 된 현대 축구계에서 축구 구단의 경영이란 단순히 코칭 스탭과 선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경영하듯 인사, 재정, 관리, 마케팅 다양한 분야가 얽힌 것이 구단 경영.
물론 아무리 그렇다한들 규모가 규모다보니 여타 기업들과 비교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필요한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겪어본다는 것에 있어서는 훌륭한 ‘경영 수업’이라 할 수 있었다.
경영 수업.
그래, 딱 경영 수업의 일환이었다. 적어도 오하린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그리고 이를 위한 것이—
“아가씨. 급하게 졸속으로 처리하기보단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확장의 시기가 아닙니다.”
“제가 스포츠 구단 경영은 잘 모르지만, 무릇 기업이란 초장에 뼈대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가씨가 원하는 구단의 철학과 같은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졸속보단 안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GT 그룹에서 넘어온 임원들.
구단 보드진을 채운 인사 대부분이 그녀의 아버지가 붙여준 특급 교사나 마찬가지였다.
오하린이 아무리 똑똑한다고한들 고작해야 20대 중반의 여자애.
부쩍 성장한 MH 에이전시의 사장이자 능력있는 에이전트로 이름을 떨쳤다지만 아무래도 무게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를 채워주고, 그녀에게 ‘조언’해주는 역할이 바로 이들이었고, 오하린과 함께 구단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바로 윤다예.
“유스 감독과 면담 결과야. 유스팀을 연령별로 좀 더 세분화하고, 추가적인 훈련 구장을 요청했어.”
두 여자는 머리를 맞대고 경영 수업을 빙자한 구단 개혁에 전념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한참을 더 일하다 오후 4시쯤이 되면 두 사람은 또다른 업무를 준비한다.
남들에겐 퇴근으로 보이겠지만, 두 사람의 진짜 ‘일’은 이때부터.
MH 에이전시 사물실 용도로 쓰는 임대 오피스텔에 도착하면,
“어제는 누구였지?”
“티나 로트랑 에밀리아.”
“에밀리아? 설마 또?”
“새 여자야.”
가정 환경도, 성장 배경도, 성격도…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훨씬 많아 본래라면 마주칠 일도, 마주쳐도 친구보단 적이 되었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건 모두 이 남자 때문이었다.
홍민준.
오하린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밉고, 여전히 설레이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만드는 그 이름을 입에서 굴렸다.
그녀는 문란한 남자에 익숙했다.
그녀 자신은 남자 경험이 없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문란한 남자의 표본이었기에.
재벌 3세란 배경에 남자답게 생긴 외모, 여기에 열정적인 사업가다운 호색함까지 갖춘 남자가 여자 한 명으로 만족할리가 있나.
오하린은 그런 아버지의 외도로 탄생한 결실이었다.
사생아.
하지만 오하린은 사생아란 사실에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인정하고, 아껴주었으니까.
공식적으로 입적시켜주진 않았지만 그 부채감 때문인지 본처 소생의 아들들보다도 훨씬 사랑을 베풀었다.
그래서 오하린은 남자에 대해, 아니, 능력있는 남자들의 문란함에 익숙했다.
익숙함을 넘어 능력있는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도를 넘었다.
아무리 문란하다해도 그렇지, 어찌 본처와 첩을 동등하게 대하는가.
아니.
처든 첩이든 정도가 있어야지, 대체 주변에 있는 여자가 몇이요, 나날이 새로 늘어나는 여자는 또 몇이던가.
재벌가 사생아 출신답게 능력있는 남자의 외도를 막기란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오하린조차 그녀의 남편의 문란함에는 질릴 정도였다.
“하아… 또야? 피임은 잘했대?”
“티나 로트 말로는 콘돔썼다는데 모르지. 내쪽에서 연락해볼게.”
지긋지긋한 남편의 여성편력에 질릴만도 하건만… 아니, 질려야 정상이건만 두 사람은 한숨을 푹푹 내쉴 뿐.
하지만 질리지 않는 건… 오히려 매일매일이 새롭고, 불쑥불쑥 보고싶고, 언제나 가슴이 설레며, 생각만해도 쾌감에 익숙해진 몸이 움찔거리는 건 그 남자가 특별한 사람이라 그렇겠지.
“비밀을 알아챌 확률은?”
“낮겠지. 한 두번으로도 체감 효과는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그걸 정액과 연결시키는 여자는 없을테니까.”
“혹시 모르니까 티나 로트한테 주의시켜. 콘돔 꼭 쓰게하라고. 주변에서 자꾸 말해주지 않으면 걘 그냥 할수도 있어.”
“내가 그걸 모를까.”
“쯧. 말 하나하나가.”
혀를 차며 오하린은 서류 한 장을 팔랑팔랑 들어올렸다.
일전에 분석을 의뢰한 남편의 정액에 대한 조사 보고서.
“하긴…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니 알려질 일은 없겠지.”
일반적인 정액과 별다를바 없는 결과를 보여주는 분석 보고서가 세절기로 향한다.
이 ‘사실’을 아는 여자는 5명 뿐.
오하린 자신을 포함해 윤다예, 윤희연, 엘레나 그리고 강수연.
이 중 강수연은 스스로 아내 후보에서 물러났으니, 결국 이 4명이야말로 진정한 ‘동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남자를 공유하는 4여자의 은밀한 카르텔… 아니, 일종의 비밀 결사라 불러도 무방한 단체는 그렇게 ‘비밀’을 모르는 여자들을 관리해오고 있었다.
서로가 너무나 다른 그녀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사랑.
당연히 서로에 대한 사랑은 아니었다. 오히려 4명은 서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그나마 윤다예와는 매일같이 붙어다니다보니 미운 정이라도 들었지, 윤희연과 엘레나는 훈련이니 경기니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서로에게 호감이 적은 4명이 이렇듯 끈끈하고 긴밀하게 맺어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오직 한 남자에 대한 사랑뿐이었으니.
한 명의 남자를 향한 4명의 여자의 애정이란 너무나도 불안정한 끈이지만… 동시에 ‘애정’이 식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강력한 족쇄였다.
사랑이란, 특히 열렬히 불타는 사랑이란 결코 이성적이지 않음으니, 사랑에 빠진 여자란 얼마나 눈 먼 장님이던가.
4명의 여자는 자신들이 남자를 향한 사랑이 결코 식지 않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한편, 역설적으로 4명의 동지를 누구보다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였다.
“그러고보니 곧 시상식이네. TV 켜봐.”
“재벌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스스로 하지 그래?”
“거기서 더 가까우니까.”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발롱도르 시상식을 지켜봤다.
가운데 팝콘을 놓고,
“펩시?”
“어.”
“나 펩시 따윈 안 마신다고 했을텐데.”
“제로칼로리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냥 쳐마셔.”
“쯧.”
제로 칼로리 펩—시 콜라를 마시면서.
3위가 발표되고 발롱도르 위너 발표를 앞둔 긴장되는 순간.
시상식을 지켜보는 전 국민…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전 세계 홍민준의 팬이 긴장 가득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아작아작, 긴장감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소파 앞 테이블에 떡하니 다리까지 올린 방만한 자세로.
“아삭. 탈까?”
“아삭아삭. 몰라.”
“아삭아삭아삭. 못 타면 징징거릴텐데.”
“아삭아삭아삭아삭. 어차피 내년이면 타겠지.”
두 사람은… 아니, 비밀을 공유하는 4명은 얼추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들의 남편이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그도 그럴것이 매번 ‘큭큭, 어쩔 수 없군. 오늘 쌓아둔 포인트를 방출한다.’, ‘내 안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순간이왔군!’ 따위를 지껄일때마다 경기력이 말도 안 되게 휙휙 상승하는데 모를리가 있나.
참 남자는 커서도 애라는 격언처럼, 주둥이를 나불거릴때마다 한심하기 짝이없었지만 어쩌랴.
얼굴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휘청이고, 마음이 사르륵 녹는 것을.
사랑이란 참으로 여자를 눈 멀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확실했다.
와작
“탔네.”
와작와작
“그러게.”
남편이 그리도 바라던 발롱도르였지만 두 사람은 너무도 담담하게 팝콘을 우물거리며 TV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와작
“눈이 허공을 훑는걸보니 또 뭔가 하는 모양이야.”
와작와작
“무슨 말을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네.”
그리고 잠시 후.
아니나다를까 모두를 뒤집어지게 만든 전설의 수상 소감이 흘러나오고—
와작
“역시.”
와작와작
“저 악마의 주둥이 진짜.”
두 사람은 태평하게 팝콘만 씹었다.
와작
“소꿉친구라면서 공부 좀 시키고, 책 좀 읽히지.”
와작와작
“다해봤어.”
와작와작와작
“근데 저래?”
와작와작와작와작
“저건 지능 문제가 아냐. 성격 문제지.”
아.
팝콘을 씹던 오하린은 깨달음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