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349)
349
어두침침한 방 안, 유일한 광원인 모니터 앞에 앉은 남자의 손이 타닥타닥 키보드 위를 노닐고 있었다.
타다다닥. 딸깍.
경쾌한 엔터와 함께 모니터 속 화면이 변한다.
이내 떠오른 것은 길쭉했던 스크롤바가 순식간에 쪼그라들 정도로 스압(스크롤 압박)을 자랑하는 문서.
뽀오위키 — 홍민준
바로 홍민준에 대한 뽀오위키였다.
드르륵.
마우스 휠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내려가는 스크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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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접기]❰홍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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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바르셀로나 2032—2033
프랑크푸르트 2032—2033, 2033—2034
뉴캐슬 2034—2038
레알 마드리드 2038—2042
AC 밀란 2042—2044
PSG 2044—2046
[국가대표]대한민국 2032—2045
[기타]플레이 스타일
기록
별명
vs 호르헤 가르시아
사진
논란 및 사건 사고
관련 언사
복잡한 여자관계
❰홍민준의 역임 직책❱
▽
❰홍민준의 수상 이력❱
▽
❰홍민준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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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한 스크롤 속도에 맞춰 천천히 내려가던 마우스 포인트가 한 부분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딸깍 소리를 낸다.
다시 한 번 촤르륵 펼쳐지는 압박적인 분량.
❰홍민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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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발롱도르 — 2037, 2038, 2039, 2040, 2041, 2042, 2043, 2044, 2045, 2046, 2047
FIFA 올해의 선수 — 2035, 2037, 2038, 2039, 2040, 2041, 2042, 2043, 2044, 2045, 2046, 2047
UEFA 올해의 선수 — 36-37, 37-38, 38-39, 39-40, 40-41, 41-42, 42-43, 43-44, 44-45, 45-46, 46-47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 2037, 2038, 2039, 2040, 2041, 2042, 2043, 2044, 2045, 2046, 2047
옹즈도르 — 2037, 2038, 2039, 2040, 2041, 2042, 2043, 2044, 2045, 2046, 2047
분데스리가 득점왕 — 33-34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 34-35, 35-36, 36-37, 37-38
라 리가 득점왕 — 38-39, 39-40, 40-41, 41-42, 42-43, 42-43
세리에 득점왕 — 43-44, 44-45
리게앙 득점왕 — 45-46, 46-47
UCL 득점왕 — 36-37, 37-38, 38-39, 39-40, 40-41, 41-42, 42-43, 43-44, 44-45, 45-46, 46-47
유로피언 골든슈…
FIFA 월드컵 골든볼…
FIFA 월드컵 골든부트…
FIFA FIFPro 11…
UEFA 올해의 팀…
UCL 시즌의 스쿼드…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발롱도르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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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나열된 수상기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바로 기네스였다.
Guinness World Records Most football goals scored in a calendar year
(1년 동안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
홍민준
152골
대한민국
2047년 12월 25일
“음.”
만족이란 감정이 듬뿍 담긴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가 올리고, 어두운 방은 다시금 마우스 휠 굴러가는 나직한 소리만이 울렸다.
드륵, 드륵.
❰목차❱
1. 개요
2. 생애
2.1. 유년기
2.2. 클럽 경력
2.3.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평가
5. 기록
6. 별명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복잡한 여자관계
8. 관련 언사
9. 근황
10. 기타
10.1. 개인사 및 사생활
10.2. 대인관계
10.3. 대중문화 속의 홍민준
10.4. 대한민국에서의 위상
10.5. 여담
11. 같이 보기
【홍민준】
본명 — 홍민준
별명 — 홍좆[1], 좆민준, 좆민좆, 좆좆좆, 좆3, 이터널 중2[2], 축신 쿠보[3]…
출생 — 2012년 7월 11일
국적 — 대한민국[4]
신체 — 183cm / 76kg
포지션 —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골키퍼[5]
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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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62경기 201골 (대한민국 2032~2045)[6]
통산 득점 — 1152골[7]
가족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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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시 나오지 않을 최고의 선수. GOAT.
축구 역사상 최다 골, 최다 어시스트,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자이며 클럽과 국가대표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달성한 전무후무한 기록의 소유자.
3연속 월드컵 우승, 3연속 월드컵 골든볼 및 골든부츠 수상, 대륙컵 우승, 대륙컵 MVP 수상, 올림픽 우승, 유럽 챔피언스 리그 8회 우승, 10년 연속 리그 우승 및 15년 연속 득점왕, 유럽 5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컵 및 득점왕 달성, 쿼드러플 및 트레블, FIFA 올해의 선수상 12회, UEFA 올해의 선수상 등을 수상.
축구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발롱도르의 11연속 위너라는 것만으로도 그 위엄을 알 수 있다.
2. 생애▼
2.1. 유년기
2012년 7월 11일 대한민국 인천에서 태어났다.
택시 운전사인 아버지와 파트타임 알바를 전전하던 어머니라는 유복하지 못 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처음 축구를 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이유는 소꿉친구이자 현 둘째 부인 윤다예[8]에게 멋져보이기 위해서 혹은 윤다예의 권유 덕분이라고 한다[9].
엘리트 축구 선수치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축구에 입문하였지만 처음부터 두각을 보이며 축구를 접한지 불과 4년 만에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될 정도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중학생 시절까지 국내 수위를 다투는 유망주로 평가받았으나 고등학교 입학 후 슬럼프에 빠지며 연령별 대표팀에서 멀어지는 건 물론이고 팀 내 로테이션 맴버로 밀려나기까지 했다.[10]
프로 진출에 실패한 후 호진대로 진학, 대학 리그에 입성하자마자 부활에 성공하고 올림픽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
올림픽에서의 엄청난 활약에 다수의 유럽 구단이 경쟁적으로 프로 계약을 제시하였으며, 그 결과 홍민준의 첫 프로 계약은 무려 바르셀로나가 되었다.
“음.”
어두컴컴한 방, 유일한 광원인 모니터 불빛에 어른어른 드러나는 매끈한 턱선 너머로 흡족함을 가득 담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내 다시금 천천히 내려가는 스크롤.
2.2.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홍민준/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홍민준/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홍민준/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글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느릿하게 내려가던 마우스 포인트가 푸른색 하이퍼링크 위에서 멈춘다.
클럽 경력에서 1~2초, 국가대표 경력에서 다시 1~2초,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 위에서 무려 10여 초 머물며 고민의 흔적을 남기던 마우스 포인트는,
“…일단 나머지부터 확인해보고.”
이내 다시 아래로 향했다.
4. 평가▼
커리어 초반부터 이미 세계 최고 재능으로 인정받았으며[1], 커리어 중반부에 들어설 무렵엔 현역 최고, 중후반부엔 현역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 반열에 올라섰으며, 커리어 후반부엔 자타공인 누구나 인정하는 명실상부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선수라 인정받았다.
그야말로 축구계 최고존엄, 역대 최고, GOAT.
홍민준은 본인이 선수로서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해봤으며,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을 모두 섭렵하였다.
특히 커리어 초중반기에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에서 ‘선수 1명이 어디까지 캐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고, 커리어 중후반기에는 전력이 강한 팀에서 ‘선수 1명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마디로 약팀에서의 원맨캐리의 끝과 강팀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모두 보여준 셈.
그러나 의외로 홍민준의 프로 데뷔는 꽤 늦게 이루어졌다.
고등학생 시절 극심한 슬럼프로 프로 진출에 실패하며 한국의 아마추어 리그인 대학 리그에 진학, 호진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던 중 마침 올림픽을 앞두고 친선 경기 상대를 구하던 올림픽 대표팀과 스파링 일정이 잡힌다. 일설에는 당시 올림픽 대표팀 수석코치 한지훈의 딸이자 현 세계 최대 축구 채널 ‘풋볼인러브’의 운영자 한소영이 홍민준을 알아보고 추천했다고 하는데[11], 이는 직접 방송에 출연한 홍민준과 한지훈의 증언으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후 올림픽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끝에 윤혁[12]과 함께 깜짝 승선에 성공, 이 결정은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은메달이란 성과로 돌아온다.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가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는 FA(자유계약) 선수라는 걸 깨달은 유럽 구단이 경쟁적으로 영입 제의를 하였으나 승자는 ‘1군 경기 출장’ 옵션까지 포함한 바르셀로나.
대학 리거에서 단번에 바르셀로나 1군 로스터가 된 홍민준은 승승장구할 것 같았으나, 하필 뒤늦게 키가 크는 바람에[13]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며 극도의 부진에 빠지게 된다.
첫 프로 계약이 해외 진출인데다 당시 인종차별 논란이 있던 감독이 버티던 바르셀로나였던 것[14]은 바르셀로나 입장에서 불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결정으로 바르셀로나는 다시 찾아올 수 있었던 ‘황금기’를 스스로 내던진 꼴이 되었으며, 하필 그걸 주워간 것이 영원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였으니까.
이후 2.분데스리가에서 승격 경쟁을 벌이던 프랑크푸르트로 임대된 홍민준은 2부 리그라지만 프로 계약 첫해, 불과 반시즌만 뛰고도 2.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승격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프랑크푸르트로 완전 이적, 연이어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거머쥔 뒤 월드컵에서 엄청난 캐리력을 선보이며 2002 한일 월드컵 신화 이후 최초로 4강 진출을 이끌며 월드컵 득점왕에 올랐다.
월드컵이 끝나고 무수한 이적설 끝에 뉴캐슬에 입단하며 EPL에 입성한 홍민준은 첫해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또다시 득점왕에 오르는 동시에 발롱도르 포디움에 선정된다.
이렇듯 홍민준은 커리어 초중반, 2부 리그에서 승격 경쟁이나 하던 프랑크푸르트에게 승격과 컵대회 우승, 승격 직후 곧바로 우승 경쟁 및 유로피 리그 우승을 안겨주었고, 긴 역사에 비해 변변찮은 우승컵이 없던 뉴캐슬에게 리그와 컵대회 우승을 비롯해 유럽 대항전 최상위 리그인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역사적인 쿼드러플을 선사하며 선수 1명이 어디까지 팀을 캐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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