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37)
037
과거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은 대학리거였다.
올림픽에는 강제 차출 의무가 없다보니 프로팀들이 선수 차출에 인색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로에 진출한 23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기 때문.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극소수의 어린 선수를 제외하면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가 베테랑 선수를 뛰어넘기란 힘든 일이며, 거기에 성적에 따라 목숨이 오고가는 감독 역시 어린 선수를 기용하는 모험을 하느니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베테랑을 기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던 중 K리그에 도입된 U22룰은 프로 리그에 진출한 어린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강제적으로 22세 이하 선수들의 선발을 규정한 룰에 대한 비판은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올림픽 대표팀 입장에선 엄청난 호재였고, 이를 기반으로 대표팀 주축은 대학 리거에서 프로팀 선수로 넘어가게 되었다.
올림픽에 강제 차출 의무가 없다지만 대한민국 풍토상 어떤 팀이 대표팀 요청을 거절하겠는가. 당연히 대표팀은 적어도 국내 리그에서 뛰는 선수에 한해선 핵심 선수라도 뽑아올 수 있었으니, 지금의 올림픽 대표팀 역시 대부분이 프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소집된 올림픽 대표팀 인원 23명 중 대학 리거는 고작 6명.
“6명이면 그래도 생각보단 많네요.”
“감독이 바뀌었으니까.”
경기 시작을 앞두고 그라운드로 나서던 윤혁 선배의 턱짓을 따라가니 대표팀 감독이 보인다.
“전임 감독이 지병 악화로 급작스레 사임했잖아. 그래서 부랴부랴 지금 감독님이 지휘봉을 잡았고.”
올해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
그러니까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대표팀 선장이 바뀐 셈이다.
성적 부진이나 논란도 아니고, 감독이 병환으로 사임한다는데 어쩔수가 있나.
그렇게 소방수로 갑작스레 부임한 것이 지금의 감독, 공전성이다.
언론이 워낙 떠들썩하다보니 감독이 올해 겨우 40살이란 것, 꽤 오래 유럽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는 것, 그리고 괴짜로 소문났다는 것까지 알려졌다.
이렇게보니… 며칠 밤이라도 샌 듯 피로에 쩐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가 확실히 괴짜 느낌도 나네.
“갑자기 부임했으니 최대한 많은 선수를 확인해보고 싶겠지 뭐. 들어보니 코치진도 싹 바꼈다던데. 아마 전술도 많이 바뀔걸?”
“에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어요. 전술이 거기서 거기지.”
“글쎄… 내 예상이지만 많이 다를걸? 저 감독님, 전술광이래.”
윤혁 선배가 자리로 떠났다.
…묘하게 찝찝하네.
걱정과는 달리 경기는 순탄했다.
현 감독님이 부임하고 이번이 두번째 소집이라는데 의외로 조직력은 괜찮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다 수준이지 빈말로도 좋다할 정도는 아니고.
대표팀이란 것이 클럽팀처럼 매일 모여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이제 2번째 소집에 이 정도 조직력이면 능력은 있나보다.
“반대! 반대쪽으로 열어!!”
우리팀 오른쪽 공격수 이규식 선배와 우측 풀백 하상진 선배가 오른쪽으로 넓게 벌리며 대표팀 선수들을 끌어들이자 윤혁 선배가 지시를 내린다.
“이쪽!”
넓어진 공간을 파고든 윤혁 선배가 패스를 이어받자 압박을 가해오는 대표팀.
재빨리 등지고 버틴 윤혁 선배가 보지도 않고 반대쪽 측면, 내가 달리는 방향을 향해 롱패스를 뿌렸다.
달려가는 공간 앞에 정확히 떨어진 공.
역시 윤혁 선배야.
대표팀 선수들이 다급히 복귀하는 사이, 센터백이 시간을 벌기 위해 거리를 두고 막아선다.
이 선수가 아마… 2부 리그인 경남에서 뛴다는 선수였나? 프로 경력이 있어서인지 제법 노련하게 견제하는 것 같지만—
타탁!
순간적인 페인트에 넘어간 센터백의 균형이 무너진 틈에 치고 나간다.
센터백을 제치자 시야를 가득 채우는 골대.
달려나오는 골키퍼마저 한 바퀴 빙글, 마르세유 턴으로 가볍게 제치고 유유히 빈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다.
삑, 삐익!!
득점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선배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힐끔 벤치를 바라보니 방방 뛰는 감독님과 아리송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는 대표팀 감독님이 한 눈에 들어온다.
‘뭐야. 표정이 왜 저래?’
내 화려한 드리블 돌파를 보고도 표정이 영 이상하네.
* * *
“흐음.”
공전성은 꺼칠꺼칠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지 이제 겨우 한달 하고 보름.
다행히 전임 감독이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시킨 뒤 사임한터라 한 숨 놓았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당장 본선이 코앞인데 선수 분석부터 해야하는 상황.
남들은 엔트리를 확정하고 조직력을 맞출 시간에 아직도 옥석가리기나 하고 있으니. 그래서 이번에도 23명이나 되는 선수를 소집하지 않았나.
“왜 그러십니까 감독님?”
수석 코치 한지훈의 물음에 공전성은 고개만 까닥거렸다.
“수코님이 이 팀과 경기를 잡은 이유를 알 듯 하네요.”
전임 감독이 사임할 땐 멀쩡하더니 자신이 선임되자 코치진이 단체로 사임했다.
이유가 뻔하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감독이 사임했으니 수석 코치가 감독직을 이어받을거라 기대했겠지. 그러나 협회의 선택은 수석 코치가 아닌 부외자였던 자신.
그렇게 코치진마저 떠나니 공전성은 코칭 스탭부터 새롭게 구해야 하는 환장할 상황에 직면했다.
뭐, 덕분에 전임자의 그림자는 일소했지만… 부작용이라면 기존에 구축해 둔 데이터도 증발했다는 점일까.
문서로서의 데이터는 남았지만 그걸 믿느니 자신이 직접 하나씩 살피기로 결심한 공전성은 우선 스탭부터 충원했다.
수석 코치로는 유럽에서 코치 생활 할 때 알게된 한지훈.
과연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는지 부임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좋은 선수를 물어오지 않았나.
“수코님의 안목은 대단하군요. 대학 리그… 그것도 이런 소외된 지역의 대학 리그에 보석이 숨어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행이군요. 감독님 눈에 안 찰까 걱정했는데. 역시 저기 저…”
15번 선수 괜찮지요? 라고 말하려던 한지훈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요. 저 13번 선수. 이름이… 윤혁? 이 친구 대단하네요.”
“하, 하하. 그쵸! 13번 윤혁 선수! 아주 일품이죠. 그리고 저 15번 선수도 괜찮지 않습니까?”
한지훈은 한숨을 삼켰다.
이놈의 딸내미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딸의 영업에 넘어가 호진대와의 친선 경기를 잡았다.
뭐, 말은 이래도 영상으로나마 철저히 분석했고, 감독의 마음에 드는 선수를 찾아야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본 15번은 과연, 눈높은 딸내미가 추천할만했다.
“흐음… 15번이라. 홍민준 선수군요.”
그러나 감독은 무엇이 불만인지 고개만 갸웃거리더니,
“어디. 한 번 시험해볼까요.”
하며 선수들을 향해 손짓을 한다.
약속된 지시에 선수 하나가 15번 옆에 찰싹 붙어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밀착마크?’
한지훈은 슬쩍 감독의 얼굴을 살폈다.
밀착마크는 딱히 어려운 전술이 아니다. 그냥 위협적인 상대 선수에게 아군 선수 하나를 붙여 전담시키는 것 뿐이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아군 선수 역시 상대 선수에게 묶이는 것.
전술이 정교할수록 선수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밀착마크를 붙여버리면 톱니바퀴 하나가 뻥 뚫리는거다.
상황에 따른 압박도 아니고 밀착마크라니.
어지간히 상대 선수가 위협적이지 않으면 쓰지 않는 방법인데, 고작 전반 5분만에?
‘벌써 15번의 개인기량을 눈치챘나.’
딸내미의 성화에 영상 분석을 한 결과 15번의 개인기량은 정신나간 수준이다. 감독의 지시가 없었다면 조금 더 지켜보다 슬그머니 건의할 생각이었는데 과연 날카롭군.
그러나 자신이 파악한 15번이라면… 저 정도 선수의 밀착마크로 막을 수 없을거다.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는 15번을 보며 한지훈은 느긋하게 감독의 표정을 살폈다.
전반 13분.
이번에도 백넘버 13번, 윤혁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상대의 패스 경로를 읽어낸 윤혁이 가볍게 볼을 탈취, 단번에 반대쪽으로 크게 벌렸다.
윤혁이 패스를 커트하자마자 달리기 시작한 15번, 홍민준을 향해서.
꽤 받기 힘든 공이었음에도 부드럽게 트래핑에 성공한 15번은 가벼운 상체 페인팅으로 밀착마크하던 선수를 제쳐내고는 굉장한 속도로 진영을 파고들었다.
수비가 빽빽한 좁은 공간을 향해 달려드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무리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15번이 발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순식간에 양 발 인사이를 오가는 공. 믿기지 않는 라 크로케타로 두 명의 수비를 돌파한 15번의 슛팅이 아쉽게 허공으로 떴지만, 누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했다.
“패, 팬텀 드리블? 실전에서?”
벤치에서 지켜보던 선수들의 중얼거림에 한지훈은 슬그머니 웃었다.
역시 딸내미, 아니,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애써 웃음을 지우며 감독을 살폈다.
‘…응?’
입이 떡 벌어지는 건 아니어도 놀란 표정은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늘 오산이었다.
감독은 태연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게 아닌가.
“역시.”
무슨 생각인지 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던 감독이 다시금 손짓을 한다.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플레이에 넋이 빠져있던 대표팀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감독의 지시에 맞춰 다시금 진형을 맞추니,
‘이번엔 13번을 밀착마크?’
방금 전 엄청난 돌파를 보인 15번을 놔두고 13번에게 밀착마크를 붙이는 것이 아닌가.
한지훈은 이번에야말로 깜짝놀랐다.
‘단번에 파악했다고?’
자신도 몇 경기를 돌려본 끝에 알아낸 사실.
화려한 드리블 돌파에 가려져 있던 핵심.
엄청난 임펙트를 보여주는 15번에 숨겨져 있던 부분을 단번에 파악했으니까.
밀착마크의 대상이 바뀐 후, 전반전 남은 20여 분 간 호진대는 침묵했다.
15번의 화려한 드리블 돌파도 13번의 조력이 없으니 힘을 잃었고, 사실상 호진대 공격의 핵인 두 사람이 침묵하니 호진대 경기력 자체가 가라앉아버린 것.
감독은 또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13번은 재능이 있군. 탈압박 능력만 보완하면 유럽에서도 통할거야.”
“15번은 어떻습니까?”
“반쪽짜리야.”
감독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언했다.
“전형적인 자신에게 맞는 전술에서만 활약할 수 있는 선수.”
“그럼…?”
한지훈의 물음에 감독은 시선을 들었다.
후반 시작을 위해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
“단점 투성이. 클럽팀이라면 모를까 내 대표팀에서 저 선수를 위한 자리는 없어. 혹시 모르지. 후반전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후반이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경기장을 지켜보던 한지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으응? 움직임이 달라졌네?”
“흐음.”
턱을 쓰다듬으며 지켜보던 감독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전반과는 다른 사람이라 해도 될 변화를 보여주는 15번 홍민준을 보며, 한지훈은 감독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저놈은… 천잰가…?”
“헐.”
“아니. 천재. 천재가 분명해!”
‘…….’
어찌된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딸아이 소원은 성취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