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52)
052
“믿을수가없군….”
공전성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호진대의 13번 윤혁과 15번 홍민준. 얼마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던 무명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친선 경기에서 두 명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 깨달았다. 낭중지추라는 옛말처럼 이 둘은 무명으로 있을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한계도 뚜렷했다.
호진대의 백넘버 13번 윤혁. 사실상 호진대의 빌드업을 담당하는 이 선수는 탁월한 축구 지능과 오프 더 볼 능력에 비해 온 더 볼 능력이 아쉬웠고, 반대로 백넘버 15번 홍민준의 경우 리그 수준을 뛰어넘은 온 더 볼 능력에 비해 오프 더 볼이 부족했으니까.
분명 그랬다.
그것이 불과 한달 전.
헌데 지금은 어떤가.
‘윤혁… 성장했다. 여전히 테크닉적 측면에선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지만 탈압박 능력이 몰라보게 성장했어. 그러나 윤혁의 성장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이야. 그에비해 홍민준, 이 녀석은 대체….’
리그 최우수 선수, 최다 득점, 최다 어시스트, MVP, 베스트 11… 상이란 상은 죄다 쓸어가고 있는 홍민준의 모습을 보며 공전성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약점이던 패스와 시야가 무섭게 발전했어. 오프 더 볼 움직임조차도.’
여전히 윤혁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지만 유소년 수준이었던 이전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말이 어울릴터.
‘무엇보다 개인 능력이… 미쳤군.’
거기에 대학 리그 최고 수준이라는 명학대 수비진을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드는 저 압도적인 테크닉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에도 테크닉만 놓고보면 올림픽 대표팀 최고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와일드 카드로 생각하는 유럽파 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아 보이는… 아니, 어쩌면 더욱 뛰어나 보이지 않는가.
환하게 웃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홍민준을 보며 공전성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천재… 저 녀석은 천재다.’
공전성의 시선이 웅성거리는 축협 임원들을 향했다.
“선배님들.”
“음? 공감독? 아직 안 갔나?”
“대표팀 명단. 지금 의논하실까요.”
* * *
공전성이 축협 임원들과 대표팀 명단 논의에 들어간 그 시간.
상이란 상은 싹쓸이하며 일약 대학 리그 왕으로 등극한 홍민준은 잠깐 짬을 내어 옛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3년? 4년만인가?”
귀밑까지 내려오는 똑떨어지는 단발. 고양이같이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특유의 눈물점까지.
과거보다 조금 키가 크고, 가슴이 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지고, 골반과 엉덩이가 볼록해지긴 했지만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은 얼굴은 그대로였다.
“3년만이긴한데, 나한테 차였다고 모른 척 쌩깐거까지 합하면 대충 4년쯤이지.”
“…….”
저 싸가지 없는 성격도 그대로고.
“넌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그게 할 말이냐?”
“친구는 무슨. 난 너같은 친구 모르는데? 차였다고 모른 척 하던 찌질이라면 몰라도.”
캬~ 이 싹퉁바가지 없는년보소.
아주 옛날이랑 똑같구만.
“아 그러셔. 내가 착각했네. 얼굴이 닮아서 친구인 줄 알았더니 거지라 부끄럽다고 소꿉친구를 헌신짝버리듯 버린 사람아냐 이거.”
내 비아냥에 녀석은 팔짱을끼며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거 아냐? 능력없으면 버려야지.”
“말뽄새봐라 진짜.”
무친년.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하긴 그게 이 싸가지없는 소꿉친구년의 매력이긴하지.
“…뭐. 그래도 너한테까지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넌 찌질이처럼 고백 거절했다고 먼저 쌩깠잖아.”
“…….”
쓸데없이 기억력 좋은 것도 여전하고.
예전이었다면 녀석에게 기죽어 아무말도 못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야.”
“뭐.”
“그 얘긴 어디가서 하지마라.”
윤다예는 어린 시절의 친구다.
그러니까… 아주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이른바 소꿉친구. 솔직히 소꿉친구보단 악우라 부르는게 맞지 않나 싶지만.
녀석과 친해진 계기는 단순했다.
그저, 옆집에 살던 동갑내기였으니까.
나와 윤다예가 살던 곳은 낡은 구식 빌라.
가정형편이 좋지 않던 우리는 달동네 구식 빌라에서 살던 이웃사촌이었다.
시골 촌구석의 달동네.
또래라곤 나와 다예뿐인데다 이웃사촌이다보니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어려운 형편상 유치원은커녕 변변찮은 학원도 다닐 수 없던 우리는 항상 붙어다녔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조차 다예가 평범한 애가 아니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다예야아~ 우리 나가서 놀자~ 응?”
그날은 다예의 9살 생일이었던 것 같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집이나 다예네나 부모님이 맞벌이로 항상 집을 비웠고, 외동인 우리 둘은 서로의 집을 자기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너도 앉아서 공부해.”
그날도 평소처럼 열쇠로 다예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예가 식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아 싫어! 그러지말고오~ 응? 응? 슈퍼 아저씨한테 가면 과자주잖아!”
“필요없어.”
다예는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었다.
외견적으로 어른스럽다는게 아니다.
다예는 무척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어린 내 눈에도 특별하게 보일 정도로.
그래서인지 다예는 함께 거리를 쏘다닐떄면 나는 생전 받아본 적 없는 어른들의 호의를 받곤 했다.
이를테면 지나가는 어른이 귀엽다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슈퍼 아저씨가 과자를 주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면 나는 다예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운이 좋으면 간식거리를 얻거나, 운이 안 좋아도 다예가 받은 걸 나눠먹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얻어먹던 간식거리에 푹 빠져있었다.
“왜? 왜 필요없는데? 난 좋은데.”
“싸구려 동정 따위 필요없어.”
“동정? 그게 뭐야?”
내가 다예를 어른스럽다고 여긴 건,
“너 말야. 평생 이러고 살고싶어?”
“응? 이러고사는게 뭔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냐고.”
“뭐가 구질구질해?”
“계속 이렇게 이 똥통에서 살거냐고 멍청아.”
“난 다예만 있으면 되는데.”
“난 싫어. 지긋지긋해.”
바로 이런 부분.
지금 돌이켜봐도 이제 갓 9살 된 아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예는 어른스러웠다.
“난 성공할거야. 성공해서 여길 벗어날거라고.”
“으응. 그렇구나.”
“그러니까 너도 성공해.”
“나? 나는 왜?”
“난 무능력한 남자는 질색이야. 내 친구라면 뭐가 됐든 나랑 어울려야해.”
어린 아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사고력이 뛰어났으며, 성공을 갈구하는 야심만만한 아이.
“그러니까 이거 한 번 풀어봐.”
닳고 헤진 문제집. 일전에 딸이 다 커서 이제는 쓰지 않는다며 문제집을 버리던 동네 아저씨한테 얻어온 그 문제집이었다.
“모르겠어.”
“…넌 공부는 안 되겠다.”
“아~ 몰라. 공부 재미없어. 다예야~ 다른거 하자. 응?”
“아 진짜.”
내가 조르면 항상 짜증을 내면서도 결국 져주는 것이 또 다예란 녀석이었다.
아직도 녀석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친구라곤 나밖에 없었으니 녀석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럼 잠깐만이다?”
“응응! 뭐하고 놀까?”
“…병원놀이할래?”
“좋아!!”
그리고 또 하나.
녀석이 어른스러웠던 점은,
“의사 선생님 여기가 아파요.”
“음~ 이쪽이요?”
“읏… 으응, 조금 더 위요.”
“여기 뽈록 튀어나온데요?”
“네헤… 맞아요.”
일찍부터 성에 눈을 떴다는 것.
당시 순수했던 나는 몰랐지만 다예 녀석이 병원놀이랍시고 만지작거리게 했던 것은 클리토리스였다.
뭐, 실제로 삽입을 하거나 안까지 손가락을 넣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건 명백히 애무였다고 생각한다.
다예는 수시로 병원놀이를 통해 나한테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게 했으니까.
그래서였다.
그래서 착각했었다.
“야. 윤다예.”
“응?”
“나 좀 보자.”
“바빠.”
“바쁘긴 뭐가 바빠.”
“인강보잖아.”
“일시정지하면 되지.”
중학교 2학년 때.
어렸던 나도 성에 눈을 떴을 무렵.
당시까지 나와 다예의 비밀스러운 병원놀이는 계속되고 있었고, 여전히 삽입만 없는채로 우리는 서로의 성기를 애무해주곤 했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그린 라이트로 생각했다.
“내가 공부할 때 말걸지 말랬지. 뭔데? 또 시덥잖은 얘기면 진짜 화낼거야.”
“시덥잖은 거 아니거든. 빨리 나와봐.”
“하아.”
EBS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인강을 듣던 다예가 특유의 단발을 신경질적으로 흐트러뜨리며 일어났다.
나는 녀석을 인적 드문 곳으로 데리고갔고,
“야. 슬슬 밝히는게 어때?”
“밝혀? 뭘?”
“우리 관계.”
“하? 뭔 관계?”
“올~ 윤다예~ 모른 척 하는거? 어제도 병원놀이하는 거 찍었잖아.”
“미친놈. 진짜 돌았구나? 그걸 얘들한테 말하자고?”
“뭔 소리야. 우리 사귀는거 말야.”
“…뭐?”
쓸데없이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말았다.
“우리 서로 좋아하는거 얘들한테 말하자고. 맨날 물어보잖아 안 사귀는 거 맞냐고. 소꿉친구라고 변명하기도 지친다 진짜.”
어제 하루종일 거울을 보며 연습한 45도 얼짱 각도로 훗, 웃으며 말하는 날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윤다예는 툭 말을 던졌다.
“그러니까 아예 이참에 사귄다고 정식으로—”
“야.”
“어? 어, 왜?”
감정없는 그 표정에 이상함을 느낀 내가 버벅이며 대답하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던 녀석은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난 성공할거라고.”
“…어. 그치?”
“넌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주, 주다니? 뭘?”
“난 나한테 도움이 될 남자를 만날거야. 연애? 관심없어. 네가 성공할거라 확신이 들면 얼마든지 사귈 수 있어. 근데 없잖아. 너한테 무슨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데?”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되게 서운하다?”
“하아. 민준아. 홍민준. 내가 몇 번이나, 몇 십, 몇 백 번이나 기회를 줬잖아. 그 기회를 놓친 건 너야.”
“또 무슨 이상한 소리야. 뭔 기회?”
“…됐어. 방금은 못 들은걸로 할게.”
붙잡으면 안 될거란 직감을 무시하고 차갑게 돌아서는 윤다예를 붙잡았다.
당시의 나는 고작해야 중학교 2학년, 첫 고백에 떨던 남자애였다.
“야! 윤다예! 나, 너 좋아한다니까?”
“근데?”
“너도 나 좋아하잖아!”
“그래서?”
“아 진짜. 사귀자고!”
“홍민준.”
윤다예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능력없는 남자랑은 안 사겨. 나랑 사귀고 싶으면 성공해서와.”
* * *
“기억나? 내가 고백했을 때 뭐라고 했는지.”
빙글빙글 웃는 내 얼굴을 쳐다보던 윤다예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 누구랑은 다르게 기억력이 좋거든.”
“…….”
싹퉁바가지 없는 년.
머리좋다고 잘난척은.
“그래서. 잘 봤냐? 나 성공한 거?”
“흐음.”
“근데 어쩌나. 난 이제 너한테 관심없는데.”
캬~ 윤다예의 묘한 표정에 희열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