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61)
061
경기 직후 기자 회견장의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승자인 한국측 기자 회견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우선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오늘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는데. 감독님께선 오늘의 승리를 예상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우리팀 선수들을 믿었습니다.”
“공 감독님! 저번 경기와 선발명단에 차이가 없던데 다음 경기도 주전 맴버로 나서실 생각이십니까?”
“스포츠 매거진입니다! 오늘 감독님은 평소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선보였는데, 강팀 스페인을 맞아 공격적인 전술을 택한 것은 어떠한 이유—”
벌떼처럼 손을 흔들며 정신없이 질문을 던져대는 기자들의 모습은 아귀같아 좀 무서웠지만 감독님은 아무렇지 않은… 아니, 오히려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연신 대답하기 바빴다.
나는 오늘 경기의 수훈 선수로 뽑혀 감독님과 함께 기자 회견에 참석하고 있었다.
하긴. 무려 스페인을 상대로 헤트트릭을 기록한 내가 아니면 누가 수훈 선수겠어.
무슨 말을 해야하나 진중한 표정으로 앉아 생각하고 있으니 이번엔 나에게 기자들의 하이에나 같은 눈빛이 집중된다.
“홍민준 선수!”
“민준 선수!”
“오늘 헤트트릭은…”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한 분씩 질문을 받겠습니다. 거기 안경 쓴 기자분.”
“스카이 스포츠의 김영진입니다. 오늘 경기 헤트트릭 축하드립니다 홍민준 선수.”
“네 감사합니다.”
“저번 경기와는 다르게 오늘 경기에선 적극적인 드리블 돌파를 선보였는데요. 온두라스전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을 대비해 드리블 실력을 숨긴 건가요?”
“그건 어디까지나 감독님의 지시사항을—”
10분이 넘도록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던 중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홍 선수. KBS 공자영입니다. 혹시 어제 페르난도 선수의 사전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셨나요?”
왔다!
이걸 기다렸다!
그러나 점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못 들었습니다.”
“어제 사전 인터뷰에서 페르난도 선수는 홍민준 선수를 향해 ‘경기장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발언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흐음.”
씰룩씰룩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으며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선배들은 대충 흘려넘기라고 했지만… 저 얘기 듣고 얼마나 짜증났는데 그냥 넘길 순 없지. 뭐라고 말해야 열받아서 미치고 팔짝 뛸지 고민했다.
“페르난도 선수에게 승자의 품격에 걸맞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지워진 건 너다, 애송이.’”
“…아. 네에.”
“좋은 대답이 되었나요?”
“…….”
캬~ 완벽했다.
반면 스페인의 기자 회견장은 청문회장을 방불케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포포투의 올슨 우드맨입니다. 우나이 감독님. 경기 전 자신만만했는데 결과는 대패로 끝났습니다. 결과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하루만에 폭삭 늙은것처럼 보이는 우나이 시몬은 꺼끌꺼끌한 턱을 쓰다듬으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떤 말로도 패배를 가릴 순 없습니다. 우리는 졌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하지만 오늘의 패배는 어디까지나 저, 우나이 시몬의 패배입니다.”
기자는 말을 끓은 감독을 향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감독님의 패배라는 건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그것이 팀의 패배와 무엇이 다른가요.”
“다르죠. 아주 다릅니다. 이 패배는 전적으로 제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일 뿐,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최고입니다. 당연히 한국팀보다 뛰어나고요.”
“모든 스포츠는 결과로 말해주는 것 아닌가요? 감독님의 주장은 스포츠 정신에 맞지 않는 것 같군요.”
“아닙니다. 저는 패배를 겸허히 인정합니다. 제 패배를요. 하지만 단 한 번의 경기만으로 모든 걸 평가할 순 없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보다 우월합니다. 기술, 판단력, 위치 선정 그 어떤 것도요.”
우나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든다.
“감독님! 그 말씀은 마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의미입니까?”
“마르카의 몬토야입니다! 오늘 판정에 있어 스페인에 불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의 주심은 일본인으로 같은 동양 국가인 한국에 유리한 판정을 남발했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몇 몇 기자들이 혀를 찼다.
“마르카면 스페인의 유려 일간지잖아? 쯧, 언론인이라는 사람이 양심도 없구만.”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사냥개답군. 눈이 있다면 오늘 판정은 나쁘지 않았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감독이나 기자나 똑같군. 하여간 에스파냐 놈들은.”
옆에서 스페인측 기자 회견을 지켜보던 나 역시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짜증이 치밀었다. 논란이 될만한 판정도 없었구만 패배를 심판탓으로 돌려?
“아니오. 오늘 경기 판정은 공정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스페인 감독은 쿨하게 판정 시비를 부인했다.
“그렇다면 패배를 인정한다는 겁니까?”
“아니요.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최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인 제 문제였지, 우리 선수들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 보여드리겠습니다. 본선 무대, 한국을 만났을 때. 우리는 압도할 것입니다.”
“감독님!”
“감독님! 한 말씀만 더—”
“잠깐, 아직 질문이—”
동시에 끝까지 뻔뻔하기도 하고.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질문을 받기 싫다는 듯 기자 회견장을 나가버리는 감독의 뒷모습을 보니 어느정도는 이해가 된다.
오늘 경기는 소위 말하는 ‘납득하기 힘든 패배’였으니까.
결과는 3:0 압승이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그렇게까지 압승이라 할 수 없다. 스페인 선수들의 멘탈이 터진 후반 20분 이후부터는 경기력도 압살이었지만, 그전까진 세부지표적으로 대등, 아니 스페인이 우세했을 정도.
축구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세계 최고라 불리는 선수가 부진할수도 있고, 득점왕이 헛발질을 할수도 있으며, 베테랑 수비수가 실책을 저지를수도 있다.
오늘 스페인이 그랬다.
젊은 선수 중 최고라 평가받는 호르헤는 어딘지 나사빠진 플레이를 반복했으며, 바르셀로나 출신의 촉망받는 수비수 페르난도는 일찌감치 한 선수에게 탈탈 털리더니 멘탈이 승천하며 실책을 남발했다.
그뿐이랴.
와일드 카드로 뽑힌 믿음직스러운 주장 마르틴 수비멘디는 평소와 달리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주긴커녕 본인 플레이에도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또다른 와일드 카드이자 수비 라인의 지주인 골키퍼 알바로 페르난데스는 거미손이란 별명에 걸맞는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운도 안 따랐다.
아무리 부진해도 클레스가 어디가는 건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한국 수비를 위협하던 호르헤의 슛팅이 3번이나 골대를 맞추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으니까.
한국이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던 것은… 아니, 이길 수 있던 것은 ‘운’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골대만 3번을 맞춘 호르헤 슛팅 중 하나라도 들어갔다면. 특히 스페인 선수들의 멘탈이 터지기 전에 골을 넣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스페인의 변명이 변명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더해서,
‘하긴. 오늘 스페인은 전력이 아니었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스페인 대표팀은 잘 해봐야 1.5군.
몇 몇 핵심적인 선수, 이를테면 호르헤 같은 대형 유망주를 빼면 사실상 2군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에 우리와의 경기에선 로테이션을 돌린다고 주전 맴버를 대거 빼지 않았던가.
스페인 대표팀 주장이자 와일드 카드인 마르틴 수비멘디가 본래 포지션인 공격 2선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을 정도로 스페인은 풀전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전 선수 개개인보다 개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스페인의 무서운 점이지.
“호르헤 선수! 오늘 경기에서 부진했는데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컨디션이 나빴나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부진한 활약을 한 호르헤는 침울한 표정으로 퇴장하던 중,
“잠깐만요! 호르헤 선수! 호르헤 선수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친 홍민준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급히 따라붙으며 소리치는 기자의 말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기자의 가슴팍에 붙은 KBS라는 명찰.
과연 국영방송! 국뽕의 기회를 놓치지 않지!
“홍민준?”
침묵하던 호르헤가 처음으로 입을 열자, 일말의 가능성을 본 기자가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네! 백넘버7! 오늘 헤트트릭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압니다. 7번 홍민준.”
의외로 정확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말한 호르헤는 말했다.
“그는 대단했습니다. 아주 멋졌죠. 환상적이었어요.”
“그, 그렇습니까!? 세계 최고의 젊은 선수 호르헤 선수마저 극찬하는 한국의 기린아!! 홍민준 선수의 실력이 당신보다 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까!?”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눈살을 찌푸린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러붙는 기자를 향해 호르헤는 부드럽게 웃었다.
“최고의 선수? 오우, 그것이 날 말하는거라면 맞아요. 전 최고죠. 그러나 오늘만큼은 미스터 홍이 최고였어요. 그는… 그는 정말 아름다웠죠. 한 폭의 그림같은 선수에요. 그 우아한 트래핑, 믿을 수 없는 순간 페인팅, 뛰어난 기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와 촉촉한 눈망울, 도톰한 입술… 그는 땀 냄새마저 달콤해요.”
“…….”
처음엔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던 기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걸음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