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76)
076
옛날에 공자란 분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정말 옳은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일본인 중 가장 존경하는 위인 현자 지보로 센세의 ‘人間五人も集まるとな…必ず一人クズがいる인간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반드시 한 명 쓰레기가 있다’라는 명언과 더불어 동양의 위대한 명언 양대산맥이라 생각한다.
역시 배운 사람들은 달라.
참으로 고대부터 위인으로 칭송받는 유학자다운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지보로 센세도 유학자던가?
아무튼, 망가를 볼 때 종종… 아니, 뻔질나게 등장하는 클리셰 중 하나가 여자를 쥬지로 굴복시키는 것.
고백하자면 이런 클리셰가 나올때면 의심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여자가 쥬지에 굴복해서 헤으응 거린다? 아무리 섹스의 쾌락이 대단해도 그게 가능한건가? 가능했다.
인정하자.
나는 똥멍청이었다.
‘과연… 망가 작가들의 자료 조사와 디테일은 대단하군.’
단지 준비물이 조금 필요했지만.
여자가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얼굴 말이다.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침대에 드러누워 한숨만 푹푹 내쉬던 엘레나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마주한다.
피곤이 묻어있는 파란 눈동자에 비치는 내 얼굴.
“이미 늦었어. 넌 내꺼니까 순순히 받아들여 엘레나.”
“…너랑 만나기 전이었다면 이런 소릴 듣고 가만있지 않았을거야.”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최근들어 확신하게 된 건데, 여자들은 솔직하지 못하다. 정말 싫었으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겠지.
다시 엘레나의 얼굴을 잡아 내쪽으로 돌렸다.
내 손가락에 눌려 뾰로통해진 입술에 쪽, 가벼운 키스를 하며 물었다.
“그럼 날 만난 지금은?”
손을 떼자 뾰로통하니 튀어나왔던 입술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진짜 이건 반칙이야.”
“그래서 대답은?”
“…어쩌겠어, 이런 남자한테 빠져버린걸.”
새삼스럽지만 나는 꽤 양심적인 사람이다.
조금… 아주 조금 양심 삼각형의 모서리가 닳아있긴 해도, 이 정도는 누구나 그렇잖아?
엘레나가 내 쥬지에 굴복했다지만 그것이 내 미안함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었다.
나도 내가 이기적인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내 여자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건 절대 용납 못하지.’
물론 난 다른 여자 만날거지만.
그러니 이번 기회가 중요했다.
엘레나는 예쁘다. 그것도 엄청. 그리고 능력이 뛰어나다. 체육쪽으로는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정도이고, 공부쪽으로도 미국의 유명 명문대에 재학중이라고 한다.
예쁜데다 능력있는 여자. 당연히 엘레나는 바쁘다. 바쁠 수 밖에 없다.
본인 스스로도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나 성취욕이 대단하기에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성향이기도 하고.
언제나 할 일과 일정으로 가득찬 엘레나가 올림픽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만나기 힘들어지겠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은가.
물론 엘레나와의 관계가 오래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쉬운 여자라는 건 아니다. 그녀처럼 매력적인 여자라면 주변의 유혹이 엄청났을텐데, 23살까지 순결을 유지했으니까.
그러나 반대로 그간 지켜오던 순결을 잃은 이상, 그녀가 보다 남자에 관심을 가질수도 혹은 보다 개방적이 되었을수도 있잖은가.
그러니까 이번 올림픽 기간, 바쁜 엘레나가 아무런 일정이 없는 이 시간동안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놓기로 결심했다.
나나 엘레나나 참가한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 및 폐회식만 기다리는 상황,
고작 2일에 불과하지만 엘레나에게 아무런 일정이 없는 이 시간이 핵심.
2일이란 짧은 시간동안 나는 그녀만을 위한 남자친구가 되어 최선을 다했다.
엘레나가 어떻게 느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 시상식과 폐회식이 있기 전날.
지금까진 자유로웠지만 시상식과 폐회식이 끝나고 귀국하여 해단식까지 공식 일정이 빡빡하게 잡힌 선수단 상황상 엘레나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
최선을 다해 그녀를 녹이고, 끊임없이 내꺼라고 속삭여주던 나에게 엘레나가 웃으며 물어왔다.
“민준. 왜 이렇게 불안해 해?”
“불안? 내가?”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불안에 떠는 아이같은걸? 귀엽네.”
라며 시원하게 웃었다.
“하! 불안은 무슨. 아니거든.”
“정말?”
“…사실은 좀 불안하긴 해.”
“왜? 내가 잘못한 거 있어?”
“전혀. 잘못은 내가 했지.”
“민준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길래 솔직하게 대답했다.
“엘레나는 인기많지?”
“응. 엄~청 많지.”
“역시. 불안해서 그래.”
“왓? 민준이 불안하다고? 와이??”
“그야… 이제 멀어지잖아. 만나기 힘들어지고. 게다가 난 한국에 여친도 있으니까.”
내 솔직한 심경에 엘레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와우. 난 지금까지 민준이 자신감 덩어린 줄 알았어. 이런 모습이 있는줄 이제 알았네.”
“말했잖아, 나 그렇게 능숙한 남자아니라니까.”
“으음~ 좋아. 그 거짓말 믿어주겠어.”
아니, 애초에 거짓말 아닌데.
내 투덜거림을 무시한 엘레나는 양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시선을 맞췄다.
“역시 너무 짧아. 너를 알아가기엔.”
가볍게 입술을 맞대고 엘레나는 속삭였다.
“걱정하지마. 난 여전히 널 알아가고 싶고, 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게 기뻐. 잠시 떨어져 있어도 항상 널 생각할거야. 날 바라보는 네 눈빛도, 마주하고 있는 입술의 온기도 항상 그리워할거야. 그리고 다시 만나길 기대하겠지. 그러니까 민준. 걱정하지마. 난 네 여자야.”
* * *
축구 대표팀의 일정은 빡빡했다.
시상식에 참석해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스페인놈들이 금메달 받을 때 병풍처럼 뒤에서 박수를 쳐줘야했고, 폐막식에도 참석해야 했으며, 귀국해서는 기자 회견이니 해단식이니 아주 할 게 많다.
참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난 맞았다.
“보통 이렇게까진 안 하지. 우리가 특별한거야.”
“왜요?”
귀국하는 비행기 안, 옆좌석에 앉은 윤혁 선배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야 인기가 많으니까 그렇지.”
“…인기요? 성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에이~ 무슨 소리야 이 선배는.
농담인가 싶었지만 의외로 진지했다.
“진짜야 임마. 성적? 야, 우리보다 성적 좋은 선수는 널렸다. 당장 봐라. 우리 메달색이 뭐냐? 은색이지?”
“그쵸?”
“우리나라 금메달 몇 개 땄을까요?”
“어… 몇개더라? 몇개에요 선배?”
“나도 몰라.”
“…….”
“근데 확실한 건 0개는 아니라는거지. 한창 올림픽 중에 11개까진 확인했는데 그뒤는 모르겠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보다 성적 좋은 선수는 널렸어.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성적이 좋은 건 아니잖아?”
“…그렇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나라 종합 순위가 6위랬나 7위랬나? 아니지, 9위랬나…? 아무튼, 금메달을 꽤 딴 걸로 알고있는데… 그 선수들도 이렇게 요란한 환영식을 받았던가?
“결국 인기야. 행운도 있고. 우리가 메달을 딴 종목이 메이저 중의 메이저인 축구라는 것부터, 최종 명단 논란으로 잔뜩 끌어들인 어그로가 아무도 기대못한 선전과 합쳐져 뻥 터진거지. 게다가…”
힐끔.
윤혁 선배의 시선이 날 향한다.
“너도 있고.”
“하… 그쵸. 제가 또 한 인기하죠.”
“…짜증나지만 너 요즘 국민남동생이니 뭐니 불리더라?”
“후우. 이놈의 인기 진짜. 피곤하다, 피곤해.”
“아오, 국민들이 이새끼 이런거 알아야하는데.”
“그러면 소탈하다고 더 좋아할걸요?”
티격태격하며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감독님이 우리를 불러모았다.
“자, 주목해라.”
경기에 나서기 직전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모인 우리를 향해 감독님은 말했다.
“내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 대표팀이 출국장을 나가면 날계란이 날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땐 우리가 존나 못했거든.”
오, 오우씨.
상상하니까 무서운데.
“은퇴하고는 그런 걱정없었는데, 올림픽 시작할 때 문득 떠오르더라고. 현역 때도 날계단 맞았는데, 이거 지도자되고 나서도 날계단 맞는게 아닐까하고. 근데 아니더라. 오늘은 계란 대신 꽃가루가 휘날릴거란다.”
감독님의 농담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휴, 다 큰 어른들이 목에는 은메달을 메달고 헤벌쭉 웃고 있으니 바보들이 따로없네. 난 예외다. 잘생기면 빙구처럼 웃어도 멋있는 법이니까.
“모두들 고생많았다. 하나의 팀이 되어, 최선을 다해 준 것에 대해 코칭 스탭을 대신해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들, 부족한 감독을 믿고 따라줘서 너무 고마웠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감독님을 향해 박수가 쏟아졌다.
“저희야말로 고맙습니다 감독님!”
“맞아요!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감독님!!”
“합법적 병역브로커 공전성 최고다! 개멋있다~!”
“저도 감사합니다 감독님!!”
선수들의 환호성이 울리는 가운데 고개를 든 감독님이 말했다.
“반말한 놈 누구야. 나와.”
“…….”
“농담이다.”
씁, 진짠 줄 알고 손들뻔했네.
“국민들에게 환영받을 준비됐나 친구들? 듣기론 공항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고 하는데.”
우리를 돌아본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우와아아!!”
“나가자!!”
기세등등하게 출국장 출입구를 향하던 우리는,
와아아아!!
휘이익!
공전성 최고다!
홍민준!! 민준아!!
대~한민국!!
한국의 영웅!!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오는 거센 함성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의 함성에 땅이 흔들린다는 것이 이런거였구나.
열린 문 너머,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물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