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80)
080
윤희연은 심통맞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입안을 감도는 차갑고 씁쓰레한 맛. 볼이 미어지도록 양 뺨 가득 얼음을 물고있는데 뜬금없이 가슴팍이 시원해진다.
“…? 아씨!”
유리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가슴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휴지줄까?”
“아냐 괜찮아. 냅두면 마르겠지.”
티셔츠 자락을 팔랑거리고 있자니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뭐하는 짓인지 회의감이 든다.
혹시 모른다는 수연 언니의 재촉에 호텔 로비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고 있는 상황. 가뜩이나 어제 민준이 상대한다고 체력이 쭉 빠졌는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이게 뭐람.
“언니.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기다려야 돼?”
“잠깐만 기다려봐. 아직 30분밖에 안 지났잖아.”
“30분밖에라니. 30분이나지.”
“조금만 더 있어보자. 민준이가 그랬잖아. 워낙 부지런한 애라 일찍 일어난다고.”
온 몸으로 못마땅하다는 걸 표현하듯 팔짱을 끼고 소파에 몸을 묻은 윤희연의 입술이 샐쭉 튀어나왔다.
“애초에 너무 무계획적이잖아. 일찍 일어나도 로비에 안 나올수도 있고, 오늘 늦잠잘수도 있는거고.”
“그럼 어쩔 수 없는거지.”
그러면서 웃는 모습에 희연은 입술을 삐죽였다.
“언니는 안 피곤해?”
“피곤해.”
“…근데 어떻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화장까지 했지? 언니야 말로 진짜 대단하다.”
대충 차려입고 나온 희연과 달리 수연은 빈틈없이 정장을 갖춰입고 옅은 화장까지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희를 쫓아갈 수 없잖니. 난 노력이라도 해야지.”
수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민준의 곁에는 좋은 여자가 너무 많다. 외모도, 능력도.
자신도 미모로는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당장 옆에 앉아있는 윤희연만 봐도 자신못지 않다. 아니, 솔직히 더 뛰어나다. 테니스 요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니라는 듯 방금 자다 일어난 부스스 한 모습마저 예쁘다. 새벽부터 풀셋팅을 한 자신과 비견될만큼.
뿐인가.
능력은 어떤가. 기자라지만 언론고시를 통과한 것도 아니고, 메이저 언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말이 기자지 사실상 잡지 에디터 경력이 전부. 그것도 하등 쓸모없는 사상을 추구하는 쓰레기 같은 잡지사에 그마저도 여성할당제로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윤희연은 어떤가.
23살이란 풋풋한 나이에 뛰어난 미모, 한국 여자 테니스계를 이끌어 갈 유망주라고 평가받는 실력까지. 그야말로 자신이 동경하던 외모와 능력을 다 가진 여성의 표본같은 사람 아닌가.
윤희연만해도 이런데 오하린은…
“언니가 어때서! 이번 언론고시 자신있다면서! 게다가 언니는 언론사 사주아냐!”
심성이 착한 애답게 잘난척할만도 한데 자신을 위로해주는 윤희연의 모습에 수연은 슬쩍 웃었다.
“자신이야 있지만 아직 붙은게 아니잖니. 그리고 개나소나 다 하는게 일인 언론산데 사주는 무슨. 그것도 정확히 말하면 하린이가 사주지.”
“아, 아앗…!”
입술을 뻥긋거리던 희연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재빨리 주제를 바꿨다.
“오하린, 그 불여시! 걔 엿먹이는 것만 아니었으면 이런 귀찮은 짓도 안 하는건데. 그치?”
“하린이가 아니어도 했을걸? 민준이 부탁이잖아.”
“몰라. 홍민준이 부탁하든말든.”
애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윤희연을 보며 수연은 샐쭉하게 웃었다.
“왜? 질투나서?”
“…당연하지. 언니는 질투도 안 나? 세상에 사람이 어쩜 그리 무심해. 자기 여자한테 다른 여자 꼬시는 걸 도와달라는게 말이야 방구야.”
“자기 여자가 아니라 정확히는 자기 여자’들’이겠지. 그런 애라는거 잘 알면서 뭘 새삼스레.”
“아 진짜. 언니는 내 편이야 그 불여시 편이야.”
“민준이편 할게.”
장난스럽게 웃는 수연을 보며 희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만 나쁜년이지. 아~ 몰라. 한다했으니 이번엔 도와줘야지 뭐.”
“착하네 우리 희연이.”
“나 애 아니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로 그 다예인지 다혜인지 하는 애가 오하린 한 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하린이한테 까칠해?”
“그럼 언니는 걔 얄밉지도 않아?”
“얄미워? 뭐가?”
수연의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잖아! 태도부터가 글러먹었어. 지가 재벌 3세면 다야? 아주 본처가 따로없어. 우리가 뭐 진짜 첩도 아니고! 그리고 그 괴상한 제안은 뭐야.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진짜 어이없어.”
“왜 그래. 너도 승낙했으면서.”
“…….”
여상한 대꾸에 희연은 말문이 막혔다.
하긴 그렇다.
황당하든 어처구니없든 결국 오하린의 제안을 승낙한 건 자신.
“…언니 미워.”
할말이 없어진 희연은 입술만 뻐끔거리다 간신히 그 말만 내뱉었다.
“하린이도 나름 우릴 생각해서 그런 제안을 한 걸거야.”
“에엥~?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우릴 생각한 제안이야!”
희연은 한달 전, 오하린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건 홍민준이 막 대표팀에 차출되어 떠났을 무렵.
힘든 해외투어를 마치고 한국에서 쉬고있던 희연에게 오하린이 연락을 해왔다. 수연을 통해서.
내용은 그저 한 번 보자는 것.
희연은 익히 오하린을 알고 있었다.
일전, 수연 언니가 보내준 영상에서 민준과 같이 3p를 하며 뒹굴던 것을 봤으니까.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랑 뒹군다는 게 마음에 안 들긴했지만 동시에 수연 언니도 있는데 뭐가 어떻냐는 생각도 들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처럼 괴상한 성벽의 소유자인 희연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성적으론 무척 흥분했다. 동시에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분노도 샘솟고.
모순적인 감정에 시달리던 중 온 연락에 희연은 오하린을 만나보기로 했다.
직접 만나봐야, 그래야 이 모순적인 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 작은 실마리라도 잡힐 것 같았으니까.
영상보면서도 느꼈지만 처음으로 본 오하린은 예뻤다.
그리고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영상에서처럼 변태도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었다.
재벌 3세. 무려 재벌가의 아가씨.
게다가,
“내 밑으로 와. 다 해줄게. 조건은 여기, 이 여자가 설명해줄거야.”
라며 수연 언니를 통해 해괴한 제안까지 했다.
내용은 능력있는 남자에겐 여자가 따르는 법이니, 여자들끼리 분란일으키지 말라는 것. 더불어 맨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며 자신이 에이젼시 회사를 만들었으니 들어오란다.
지금이 조선도 아니고 일부일처인 한국에서 뭔 소리냐고 했더니 자기 아버지도 그런다는 말에 희연은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사생아라고 밝히는 뻔뻔한 태도에 오히려 내가 이상한건가 싶었으니까.
게다가 오하린의 에이전시 조건이 엄청 좋았다.
대외적으로는 업계 평균보다 약간 후한 조건이지만 실제 계약서는 사실상 에이전시 수수료가 없는 수준. 그러면서 선수 생활 전반에 대한 빵빵한 지원까지.
한국이 테니스 불모지라는 것, 그것도 더욱 열악한 여자 테니스계의 현실을 떠올려볼때 오하린의 에이전시는 돈을 버는게 아니라 선수 지원비용으로 막대한 손해만 볼 것이 뻔했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거냐는 물음에,
“그야 내가 본처니까. 첩 관리는 정실의 기본이야.”
라며 의기양양하게 웃기까지했다.
“참고로 옆에 여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 기자라며? 어차피 스포츠 선수라면 우호적인 언론사는 있어야하니까 맡기기로 했지. 누구와는 다르게 주제를 잘 알더라고.”
그때를 떠올린 희연이 심통맞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어이가없어서. 누가 정실이고, 누가 첩이야. 아주 잘나셨어.”
“하린이가 재벌 3세라지만 사생아잖니. 드라마처럼 딸로 인정하지 않고 그런 건 아닌것 같지만… 그래도 설움이 없진 않았겠지. 그래서 본처나 정실에 집착하는거겠지. 우리가 이해해야지.”
“언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니.’
수연은 말을 삼켰다.
미모, 능력 어느것하나 부족하지 않은 당당한 두 여자에 비해 자신은 모든 것이 부족했으니까. 심지어 처음을 준 두 사람과 다르게 자신은 처음마저 주지 못했다.
애초부터 자신의 자리는 옆이 아닌 뒤.
그렇기에 수연은 희연과 달리 빠르게 오하린에게 굴복했다. 차라리 본처의 관용 아래 첩의 자리라도 얻기 위해서.
‘나와 너는 다르니까.’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죽이는 윤희연과 자신은 다르다.
당당할 수 있는, 본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여자와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렇다고 민준이를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다 같이 잘 지내야지. 괜히 분란일으키지 말고.”
“흥. 오하린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지금은 넘어갈게.”
“그래그래. 아. 저기 나왔다. 이름이 윤다예 맞았지?”
* * *
“안녕하세요.”
돌아보는 검은 단발의 여자의 무던한 시선이 두 사람의 얼굴을 훑는다.
희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 씨. 얜 또 왜 이렇게 예뻐.’
어제 봐서 예쁘다는 건 알고있었지만 워낙 혼란스러워 자세히 살피진 못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정면에서 마주하니 새삼스럽게 그 미모가 눈에 띈다.
똑떨어지는 단발에 큼직한 눈망울.
그야말로 이지적인 미녀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여자였다.
“아. 어제 민준이 여…친이랑 같이 오신 분들.”
미묘한 어조에 희연과 수연이 서로를 돌아봤다.
시선에 깃든 확신.
‘확실하네. 얘, 홍민준 좋아하네.’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였기에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맞아요. 민준이 여친… 크흠, 따라온 윤희연이라고 해요.”
“네. 윤혁 선수 누나분이시죠?”
“어? 아시네요. 혁이 누나보단 테니스 선수 윤희연이라고 해주세요.”
선수의 자부심으로 남동생의 누나이기보단 테니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 그리 말하니 윤다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 테니스 선수셨구나.”
“…설마 몰랐어요?”
“네. 죄송해요.”
“아니… 윤혁이 누나인 건 아니는데 테니스 선수인 걸 몰랐다고요? 테니스 요정인 나를? 한국 테니스계의 미래인 나를?”
“네. 사과드릴게요.”
“…….”
말은 죄송하다면서 어조가 너무 무던해서 전혀 미안한 느낌이 안 든다.
“어제도 인사드렸죠? 전 강소연이라고 해요. 민준 선수 전담 기자에요.”
“네. 우먼 파워 매거진의 강소연 에디터님이시죠?”
“…그, 그쵸? 지금은 퇴사했지만요.”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잽싸게 끼어들었던 수연 역시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우먼 파워 매거진이야 비호감 잡지사로 유명하니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거기 에디터가 누군지 일일히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 퇴사하셨구나.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는 윤다예의 모습에 수연은 문득 깨달았다.
‘이 느낌 익숙한데.’
잡지사에서 일하며 몇 번 느껴본 감각.
그래. 이건 마치…
‘…스토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잘못걸린거 같은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홍민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것. 수연은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며 준비된 대사를 시작했다.
“민준 선수가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고 나서 생활패턴이 불안한 것 같아 걱정이에요.”
“……아, 아, 맞다아. 동생한테 들었는데 밥도 맨날 인스턴트 사먹고 다닌댔나. 그, 왜, 정크푸드, 정크푸드. 햄버거, 피자, 콜라~ 이런거.”
뒤늦게 발연기를 시작하는 희연을 보며 수연은 순간 눈을 질끈감았다.
‘틀렸다. 딱봐도 눈치 빨라 보이는데… 게다가 스토커 기질까지 있는 여자가 이런 허접한 수법에 넘어갈 일은…’
“지금 그거. 자세히 말해보세요. 홍민준이 뭘 먹고 다닌다고요?”
‘…넘어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