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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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올림픽 열기가 식지않은 걸 이용하려고 한 건지 바로 며칠 뒤 방송된 아형.
촬영은 6시간이나 했는데 막상 방송 분량은 1시간이 조금 넘는 정도.
방송은 편집놀음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지 쳐낼 건 쳐내고 예능 특유의 자막을 입혀놓으니 훨씬 재밌었다.
—오늘 아형 본 사람?
ㄴ11111
ㄴ22222
ㄴ33333
—홍민준 존잘… 진짜 키스해보고싶다
ㄴ통매음으로신고함
ㄴ아 ㅈㄴ재수없어 진짜 이런걸로 무슨 신고야
—근데 꾸며놓으까 홍민준 엄청 잘생기긴했다;; 내가 빠는 남돌보다 훨 잘생겼네
ㄴㄹㅇ 현타올거가타
—축구력만 높은게 아니었네ㅅㅂ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이적은 어디로 하냐곸ㅋㅋㅋ
—머냐 홍민준 생각보다 순정남이었넼ㅋㅋ
ㄴ홍민준 찬 여자는 지금쯤 존나후회하고있겠지?
ㄴ진심 이해1도 안되네 저 와꾸에 저 축구력에… 대체 왜 거절함?
ㄴ축구는 대학교와서 포텐폭발한걸껄? 고딩때 부진했다자너
ㄴ축구고나발이고 와꾸가 저런데 거절? 미쳤넼ㅋㅋㅋ
ㄴㄹㅇㅋㅋㅋㅋ
—첫사랑이라는 여자애 심정 들어보고싶닼ㅋㅋㅋㅋㅋ
ㄴ존나 잔인하새낔ㅋㅋㅋㅋ
ㄴ캬~ 이게 바로 후회피폐 히로인이라는거냐?ㅋㅋㅋ 맛집이놐ㅋㅋㅋ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훑어보니 의외로 방송 말미에 잠깐 나온 첫사랑에 대한 얘기가 화제였다.
‘후회피폐 히로인? 오.’
낄낄거리며 구경하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에 적힌 후회피폐 히로인이란 말에 묘했던 그날의 윤다예가 떠올랐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처음 보는 표정으로 주저하던 윤다예의 모습.
그날 운전기사 아저씨가 늦게 들어왔다면 과연 녀석은 무슨 말을 했을까.
정말 그날의 거절을 후회하고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문득 녀석이 보고싶어졌다.
보고싶으면 보면 되지 뭐. 간단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펜트하우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
급하게 임대한 임시 사무실은 분주했다. 전문가라는 아저씨들이 서류를 보며 무언가 의논하고, 누구는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언어로 통화하고 있고… 아주 난리도 아니네.
임시 사장실에 들어가니 오하린과 윤다예, 그리고 세 명의 아저씨가 서류를 늘어놓고 회의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돌아보는 기세에 움찔했다.
“어… 나중에 다시 올까?”
…어째 다들 안색이 말이 아니네.
아저씨들 나이도 있어보이는데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은 퀭한게 뭔 움직이는 미라도 아니고. 오하린과 윤다예는 본판이 열일해줘서 그나마 낫다지만 그래도 피곤에 찌들어서 다크서클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냐. 마침 잘 왔어. 들어와 앉아.”
내가 예능을 보면서 낄낄… 아니, 내 촬영 결과물을 모니터링 하는 동안 오하린과 윤다예는 예능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었다. 같은 집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알 수 밖에 없는데, 항상 내가 자고 있을 때 들어와서 일어나보면 이미 나가있는 생활이 벌써 며칠 째.
워낙 바쁘고 피곤해보여 섹스도 못하고있다.
…아쉽네.
“잠깐만. 아, 이제 됐으니 나가보세요.”
오하린의 축객령에 기다렸다는 듯 나가는 아저씨들.
…많이 갈렸나보네.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서류를 요령좋게 모아 분류한 오하린이 한 뭉텅이의 종이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우리가 거를 건 거르고 정리한 제안서야.”
“오. 엄청 많네?”
“어지간한 구단은 다 찔러봤으니까.”
피곤한지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작게 하품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유럽 5대 리그 외의 제안은 거절했어. 유럽 주요 리그에서 온 제안이 별로면 모를까, 생각보다 조건이 좋은데 굳이 변방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 혹시나해서 묻는데 미국이나 남미, 중동, 유럽 군소 리그에서 뛸 생각있어?”
“없어.”
생각할 것도 없는 단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응. 다음으로 1군을 보장해주지 않는 구단 역시 제외했어. 최소한 계약서에 1군 로스터 등록을 명시해 줄 수 있는 구단이 아니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제외했고, 그건 이쪽에 따로 모아뒀어. 관심있어?”
“전혀. 아무리 명문이어도 1군에서 뛸 수 없으면 갈 필요없지.”
당연하다. 축구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면… 아니, 1군 로스터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면 이적하는 이유가 없지.
내가 10대 유망주도 아니고, 한창 경기에 뛰어야 할 나이아닌가.
뭐, 경기를 뛰지 않아도 상태창만 있으면 성장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건 내가 싫다.
애초에 스탯을 찍는 이유가 뭔가. 경기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다.
단적으로 상태창이든 스탯이든 모두 경기장에서 활약하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내가 축구선수인 이유, 그리고 내 꿈을 위해선 단순히 성장만 할 수 있다고 전부가 아니다. 성장이 조금 느려지더라도 난 뛰고 싶다.
팬들 앞에서, 관중들 앞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관종이라면 관종이지만 애초에 축구선수는 팬이 없으면 그저 공놀이하는 사람 아닌가?
“좋아. 이게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야. 5대 리그 다 있으니, 가고싶은 팀이나 리그가 있으면 말해봐.”
오오… 그정도라고?
“아무데나 상관없어?”
“상관있지. 그래도 네 의사가 우선이니 고려해보겠다는거지.”
맨 위에 놓인 제안서부터 하나씩 살펴봤다.
음.
…음, 그렇군.
……음.
“쟤 저렇게 줘봐야 몰라. 우리가 설명해줘야지.”
“존댓말.”
“…설명해도 될까요.”
“그래.”
잘들노네.
팔짱을 낀 오하린이 코웃음치며 턱짓하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윤다예가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가장 선호하는 EPL의 경우엔 규정이 빡빡해.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사실상 네 조건에선 불가능하지.”
“뭐야. 그럼 EPL은 생각할 것도 없잖아?”
실망스럽네.
어릴적부터 EPL에서 뛰고 싶었는데.
“실망하지말고. 아예 불가능하단 건 아니니까.”
“높은 이적료나 주급 말하는거지? 그건 나도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같은데.”
EPL 특유의 빡빡한 규정 취업비자(워크퍼밋 Work Permit)를 발급받기 위한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각 조건마다 심사점수가 부여되어 있다.
이 심사점수가 4점 이상이어야 FA에서 비자 발급을 ‘권장’할 수 있는 것이다.
4점이 넘는다고 무조건 발급도 아니고, 이 무슨 까다로운 조건.
조건은 2년 간 국가대표 출전 비율(그것도 FIFA랭킹에 따라 차별적인)과 이적료, 연봉에 대한 점수가 가장 높고 그외에도 상위 리그의 출장비율이나 유럽 대륙대회 출장비율 등도 적지만 점수가 부여되어 있다.
내 경우는 FA, 자유계약이기에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연봉이 높다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상황.
다만, 그 높다는 조건이 이적하려는 구단에서 상위 25%이내에 들어야 심사점수 3점을 얻을 수 있으니 사실상 불가능하고 볼 수 밖에.
평균 임금이 가장 높다는 EPL에서 첫 프로계약 선수가 구단 연봉 상위 25% 안에 들기는 아무래도 무리지.
“설마 우리가 그것도 모를까. 예외조항을 이용하면 돼.”
“…그런 게 있나?”
“있어. 3인 이상 저명한 인사의 추천을 받는다면 까다로운 규정을 우회해서 워크퍼밋 발급이 가능해.”
그러면서 윤다예는 실제 한국 선수들에게 적용된 사례를 알려주었다.
한국의 레전드 박지성 선수같은 경우에는 맨유 이적을 위해 히딩크,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의 추천서를 통해 워크퍼밋을 발급받았고, EPL은 아니지만 같은 영국 노동부의 취업 비자를 요구하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로 이적하려던 차미네이터, 차두리 선수는 아빠 친구인 독일 레전드 프란츠 베켄바워한테 추천서를 받았다고.
“이거 가능한거냐. 내 인맥에 저명 인사는 없는데.”
그껏해야 공전성 감독님이지만… 그 분의 추천서는 도움이 안 될테지.
“에이전시 인맥이 있다면 활용했겠지만, 아쉽게 우리는 신생이라.”
윤다예의 말에 오하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비꼬지말고 제대로 설명이나 해.”
“네~ 네~ 그러죠 뭐.”
“너 진—”
“우리 힘으로 안 되면 구단의 힘을 빌려야지. 구단 차원에서 팀 레전드나 보드진 혹은 영국 저명 인사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는 방법이야. 어떤 면에선 구단이 얼마나 널 원하는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 이렇게 영입한 선수를 벤치자원으로 쓸리는 없잖아?”
종이뭉터기를 뒤적인 윤다예가 몇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맨유와 첼시, 아스날, 토트넘 정도가 이에 해당하는 구단이야. 여기서 첼시는 1군 스쿼드에 자리가 없으니 한 시즌 임대보내주겠다는 입장이고.”
언제 이렇게까지 조율해놨지?
어쩐지 오하린이랑 윤다예는 물론이고 에이전시에 영입한 전문가라는 아저씨들도 반쯤 죽어가더니, 성능 확실하구만.
“임대갈바엔 다른 구단 가는게 낫지. 첼시는 거르자. 남은 건, 맨유랑 아스날, 토트넘인가.”
하나같이 쟁쟁한 네임벨류의 팀이다.
어릴적 선망하던 팀들이 등장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네.
“아쉽게 각 구단의 내밀한 속사정까진 파악하지 못했어. 신생 에이전시이다보니 정보력이나 인맥에서 한계가 있어서.”
그러면서 힐끔 오하린을 쳐다본다.
“그 시선 뭐야. 이게 내 탓이란거야?”
“설마요. 그냥 그렇다는거죠.”
“흥. 별꼴이야 진짜. 그래서 지원해줬잖아. 뭘 더 바래?”
“그럼요. 돈도 엄청 투자하고, 전문가도 마구잡이로 쓸어오고, 다른 에이전시랑 협력까지 추진하고. 다 해주셨죠.”
“야! 너 말 조심해.”
“네? 제가 뭘요?”
“이게 진짜!”
“무슨 잘못이라도?”
음. 음.
많이 친해졌군.
역시 같이 고생하다보면 동료의식이 싹트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