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89)
089
백발의 노신사 프란츠 발더는 감독실에 앉아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낡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서류더미.
[—위 선수는 재계약 협상 진행중이며, 사실상 이적 의사가 없는 것으로…] [이적료에 대한 구단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여…] [선수가 친정팀 복귀를 원하기에…]언뜻언뜻 보이는 글자를 내려다보던 노신사의 인자한 얼굴에 짙은 수심이 드리운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쉰 노신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뚜르르— 단조로운 연결음.
—헤르만입니다.
“날세.”
—발더?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묵직한 목소리에 발더는 곧장 입을 열었다.
“헤르만. 이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보고서는 자네 책상에 있을텐데? 혹시 보고서를 받지 못했나?
엄한 목소리에 발더는 재빨리 부정했다.
보고서가 누락됐다고 착각하면 엄한 직원들만 들볶일테니까.
“보고서는 책상에 잘있네. 내 책상 위보단 쓰레기통이 더 어울려보이지만.”
—미안하네. 할말이없군.
“상관없네. 내가 말한 그 선수만 영입할 수 있다면야.”
—후우….
핸드폰 너머로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이봐, 발더.
“듣고있네.”
—내 솔직하게 말함세. 자네 요청은 들어주기 힘들겠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자네도 알지않나.
“…그 선수가 무명일 때, 내가 강력히 영입을 요청했을 때 착수했으면 충분히 데려올 수 있었어.”
—미안하네.
“우리팀에는 그 선수가 필요해. 마지막 조각이란 말일세.”
—미안하네.
“대체 미안하단 말말고 할 줄 아는게 뭔가!”
노신사의 외침에 헤르만은 침묵했다.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그런가! 나이 60먹도록 기껏해야 코치 경력밖에 없는 경력이 일천한 감독이라, 그래서 보드진이 이적 예산을 내어주지 않는건가! 말을해보게, 헤르만!”
—…그런게 아니네. 이봐, 발더. 그때 그 선수는 변방에서 뛰던 무명의 선수였지. 허나 지금은 어떤가?
헤르만의 말에 발더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그가 발견했던 무명의 선수는 이미 비상을 시작했으니까.
—그 선수는 너무 유명해졌어. 실력, 인기 무엇하나 빠지지 않지. 이미 명문이란 명문은 죄다 영입하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 구단이 무슨 수로 영입한단 말인가? 자네라면 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2부 리그에 올 것 같나?
“내가 영입을 요청했을 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무명의 선수였네.”
—자네에겐 미안할뿐이네. 자네의 안목을 믿지 못한 걸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진심이 담긴 사과에도 발더는 허탈할 뿐이었다.
“그렇군. 이번에도 빅클럽에게 빼앗기겠군. 이번에도 말이야.”
—면목이없네.
“하나만 부탁함세.”
—뭔가? 내가 들어줄 수 있는거면 최대한 들어주지.
“그 선수의 연락처. 알아낼 수 있겠나?”
—직접 통화해보려고?
“그래. 할 수 있는건 해봐야지. 내가 얼마나 그 선수를 원하는지, 우리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활약을 선보일 수 있는지, 그리고 팀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겠네.”
한참 말이 없던 헤르만의 대답이 들려온 것은 다시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좋네. 한 번 알아보지.
삑.
연결이 끊어진 핸드폰을 부여잡은 발터의 시선이 전술판을 향했다.
전술 기호가 어지럽게 그려진 전술판의 가운데, 뻥 뚫려있는 한 자리로.
* * *
『아스날 단장 레오나르도, 홍민준 영입 자신!』
『도르트문트 감독 슐츠의 전화를 받은 홍민준, 독일행 임박?』
『바르셀로나 레전드 챠비, ‘홍민준에겐 바르셀로나 DNA’가 흘러—』
『올림픽 득점왕이 무료? 이런 선수를 영입해야지!』
『관계자에 따르면 홍민준은 세리에를 선호한다 말해.』
스포츠 기사를 훑어보고 있으려니 실소가 나온다.
인터뷰 제의도 다 거절했고, SNS는 하지도 않는데 대체 어디서 소스를 얻는건지 원.
출국하는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단촐한 차림새에 고작해야 작은 캐리어만 갖춘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율은 끝났고, 이제 직접 방문하여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 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단계. 사실상 이적 절차의 마무리 수순이다.
막 집에서 나서려던 순간, 절묘하게 오하린의 핸드폰이 울렸다.
힐끔 액정을 본 오하린이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랑 꼭 통화하고 싶다는 감독이 있는데 어쩔래?”
라고 물어왔다.
“이제와서?”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끝난 상황.
메디컬 테스트에서 큰 문제만 없으면 곧바로 발표할 수 있는 지금와서 통화해봐야 괜히 머리가 복잡해질텐데 뭘.
“고맙지만 됐다고 전해줘.”
몇 마디 주고받던 오하린이 슬쩍 인상을 찌푸린다.
“하. 꼭 통화하고 싶다는데.”
“어딘데?”
“프랑크푸르트.”
“분데스? 근데 거기서도 제안이 왔었나?”
“왔지. 거의 처음으로 제안을 보낸 곳이야.”
“근데 난 왜 제안서를 못봤지?”
한창 의논할 때 제안서는 한 번씩 훑어봤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건 못 봤다.
며칠 전인데 설마 까먹은 건 아닐테고.
“2부 리그라서 내가 뺐어.”
“…2부?”
허 참.
아무리 그래도 2부는 아니지.
단호히 거절하려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감독이 유명한 사람인가?”
“아니. 프란츠 발더라고 나이는 많은데 감독 경력은 이제 2년차에 불과해.”
이쯤되니 오히려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날 영입하려고 하는걸까.
“한 번 받아볼게. 아, 난 독일어 못하는데.”
“괜찮아. 저쪽에서 통역 준비했대.”
오하린이 내 번호를 불러주고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홍민준 선수 맞으신가요?
“네. 홍민준입니다.”
—반갑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감독 프란츠 발더입니다.
저쪽도 스피커 모드인지 중후한 목소리가 무언가 말하면 젊은 목소리가 한국어로 번역해준다.
—무례인 줄 알지만, 꼭 홍민준 선수와 통화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리고 저희 구단은 진심으로 홍민준 선수를 영입하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구단에 합류하신다면 저는 홍민준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할 생각입니다. 홍민준 선수는 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에서 빛나는 선수입니다. 어느 팀으로 갈지 모르겠지만 어린데다 동양인, 아 저는 더러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유럽 리그의 중심은 유럽계와 님미계가 꽉쥐고 있으니까.
—어쨌든, 첫 프로계약인 선수인 당신에게 전술을 맞춰주기보단 당신이 전술에 맞춰뛰어야 할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뛰어난 가능성을 절반만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급하기도 하지.
나를 확인하자마자 감독인 듯 한 중후한 목소리가 기관총처럼 떠들어댔고, 통역가는 이쪽에서 느껴질 정도로 힘겨워하며 통역을 전달했다.
—하지만 나는 다릅니다. 홍민준 선수를 중심에 두고, 홍민준 선수가 최고로 활약할 수 있는 전술를 사용할 겁니다. 홍민준 선수는 우리팀에서 그 어느 구단보다 배려받으며, 핵심 선수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첫 유럽 진출인만큼 차근차근 적응해나가…
“잠시만요.”
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내뱉는 말에 질려 중간에 끊었다.
“절 위해 직접 전화해주고,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렇다면 저희 구단이랑…? 대, 대우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구단에는 레전드 차붐이 머물렀던 곳인만큼 그뒤를 이어…
어우, 무슨 말을 못하겠네.
어찌나 말이 많은지 듣고 있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죄송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미 메디컬 테스트만 남겨둔 상태입니다.”
계약이 마무리된 건 아니니 드리프트를 할 수도 있다.
서류상으론 아직 자유계약 신분이니까.
그러나 여기까지와서 드리프트 한다는 것은 2011년 박주영 선수가 릴과 계약하기로 해놓고 아스날로 급선회한 것과 똑같은 행동이겠지.
공식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비공식적으론 계약파기에 준하는 무례라는 뜻.
“무엇보다 저는 제 실력에 자신이 있습니다. 전술에 맞추라면, 당연히 맞춰야죠. 아직 프로에서 증명한 게 없으니까. 전술적 제약 아래서도 충분히 활약할 자신이 있습니다. 감독님의 전화는 감사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 합류하긴 힘들겠네요.”
솔직히 하나도 혹하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긴 개뿔.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2부 리그는 선 넘었지.
그래도 사회 생활이란 적을 만들지 않는것이니, 좋게좋게 립서비스를 해주고 끝냈다.
‘…흠. 그래도 한국인 레전드가 있는 팀에서 또다른 레전드가 되는 건 좀 혹하네.’
아주 조금.
비행기에 내리니 넓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확연하게 느껴지닌 이국적인 풍경.
구단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엘프라트 공항을 벗어났다.
차가 로스피탈레트데요브레가트L’Hospitalet de Llobregat로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거대한 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무려 99,354석의 좌석을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전용 경기장.
캄 노우Camp Nou가.
* * *
홍민준이 메디컬 테스트를 보고 있을 무렵, 언론이 조금씩 행선지를 좁혀나가고 있었다.
『좁혀지는 행선지! 홍민준의 최종 선택은?』
[올림픽이 끝난 후 이적설에 휩싸인 홍민준(20, 호진대)의 소식이 화제다. 아마추어 신분인 홍민준은 이적료없이 영입이 가능한 자원으로 이미 유럽 각 구단의 최우선 타겟이 되어—]『특종! 극비리에 런던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홍민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9일, 홍민준의 계약은 마무리 수순이며 도장찍는 것만 남았다고—]『호르헤로는 부족하다! 아직 배고픈 레알 마드리드!』
[홍민준과 강하게 연결되고 있는 스페인 라 리가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는 이미 호르헤 가르시아(20)라는 대어를 영입하였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 홍민준을 향한 구애가—]『조용하게 강하다! 영입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유벤투스?』
[세리에의 강자 유벤투스가 조용히 홍민준 영입전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는 소문이다. 본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맨체스터 시티는 호드리구 대신 홍민준을 영입했어야지”… 英 매체의 비판』
[영국 현지 매체가 잉글랜드 명문 구단 맨체스터 스티가 호드리구(22) 대신 홍민준(20)을 영입했어야 한다는 주장을—]『(단독)바르셀로나에서 목격된 홍민준?』
[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인 축구 선수를 봤다는 목격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