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96)
096
음… 뭔가 변했나?
극적인 변화가 없다보니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오하린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단 건 알겠다.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 오해 말이다.
오하린의 말을 종합해보면 에이전시 대표로 이적을 추진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인 것에 대한 책임감과 날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내로서의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
솔직히 별로 스트레스도 아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어봐야 어차피 내가 잘하면 금방 바뀔테고, 난 더욱 잘해질 자신이 있었으니까.
바르셀로나 이적? 그것도 내가 밀어붙인 것일 뿐, 오하린과 윤다예는 처음부터 탐탁치 않아했다. 그러니 미안할 것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데… 아니, 잠깐만.
그보다 아내라니.
이 와중에 자연스럽게 아내 포지션 점유한 거 실화냐?
뭐, 어쨌든.
그래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날 위해 가장 잘 아는 소꿉친구인 윤다예를 불렀다는건가.
‘근데 얘는 왜 이래.’
눈물 범벅으로 곤히 잠든 윤다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무슨 꿈을 꾸는지 입술을 오물거리는게 귀엽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윤다예는 왜 우는거야?”
“그건…”
힐끔 윤다예를 쳐다본 오하린이 착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본인한테 직접 듣는게 낫겠네.”
뭐길래 그러는지 몰라도 저런 표정의 오하린을 설득하기란 힘들다.
윤다예가 일어나길 기다려야겠네.
곤히 잠든 윤다예를 조심스럽게 안고있는데 가만히 지켜보던 오하린이 돌연 발을 굴렀다.
“아 진짜 못봐주겠네! 그냥 소파에 눕혀!”
“…그럴까.”
묘한 아쉬움을 털어내며 윤다예를 눕히고오니 오하린이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쟤 깰동안 이거나 살펴봐.”
“이건 뭐야?”
“임대를 원하는 팀 목록.”
뭐지?
프로 게약 이후 부진하기만 했는데 오히려 이적때보다 서류가 훨씬 두꺼운데?
예상외의 어마어마한 양에 슬렁슬렁 넘겨보는데 확실히 네임벨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유명한 구단은 다 떨어져 나갔네. 거기에 러시아, 터키, 포르투칼, 네덜란드… 리그도 다양하고.”
음… 역시나 이렇게되나.
괜찮다. 난 아직 20살.
유망주로 분류될 나이에다 밸런스 조정도 끝났으니 어딜가든 활약할 수 있을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보자.
“혹시해서 묻는데 바르셀로나에 미련있어?”
“딱히. 알잖아, 난 딱히 좋아하는 구단 없는거.”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는 구단은 많지만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구단이 없다.
꼭 이 구단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은 없다는 뜻.
바르셀로나? 물론 좋지.
그러나 애정은 없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수 있다면 바로 갈거다.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임대 계약에 완전이적 조항을 요구했어.”
“응? 구단에서 그걸 들어줬어?”
“다행히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짧게 잡은데다 선발출장 옵션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야. 당장 다음 시즌엔 7경기나 선발로 내보내야 하는데다 계약 기간도 1년 밖에 남지 않으니, 이적료라도 챙기려면 어쩔 수 없겠지.”
서류를 들춰보니 완전이적시 지급해야 되는 이적료도 꽤 낮게 설정되어 있다.
“생각보다 잘 풀렸네. 고마워 하린아.”
“이거라도 해줄 수 있으니 다행이야.”
시선이 마주쳤다.
일순 형성되는 묘한 분위기.
거의 매일 여자를 안았는데 훈련소에 입소하고 3주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쌓일대로 쌓인 욕구가 터지듯 샘솟는다.
눈만 마주쳐도 불타는 나이에, 강제로 3주의 금욕 생활을 했는데 눈앞에 오하린이 있다? 아 이건 못참지.
“꺅!”
곧장 허리를 휘감아 무릎 위에 앉혔다.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휘감아오는 다리.
끌어안은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오하린만의 체향, 그리고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얄상한 허리의 감촉.
익숙함을 만끽하며 정신없이 키스를 나누던 중, 반개하고 있던 오하린의 눈이 흠칫 커졌다.
안고 있던 몸으로 움찔거림이 느껴져 시선을 따라가니 내가 덮어준 담요를 코끝까지 올린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윤다예와 눈이 마주쳤다.
“아… 그… 미안, 나, 난 신경쓰지 말고 하던거 계속해.”
그러곤 휙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 쓴다.
…장난하냐.
“야. 일어났으면 기척 좀 내라.”
“…미안. 난 괜찮으니까 계속해도 되는데.”
“됐어. 일루와봐, 얘기나 하자.”
“으, 응? 얘기? 아, 얘기.”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 앉은 윤다예는 여전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여전히 다리로 허리를 휘감고 있는 오하린의 엉덩이를 두드려주자 그제야 칫, 낮게 혀를 차며 몸을 일으킨다.
“그래서. 왜 울었어?”
“…….”
담요를 잡고 꼬물꼬물거리던 윤다예가 힐끔 얼굴을 쳐다보곤,
“미안해서.”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갑자기? 뭔가 미안한데?”
설마 얘도 오하린처럼 바르셀로나 이적이 자기 탓이라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나 때문에… 또, 사, 상처받았잖아. 미안해.”
상처?
이번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인상을 찌푸리자 무슨 오해를 하는건지 금새 코끝이 빨개진다.
“흑… 고등학생때도, 나, 나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또, 나 때문에… 흐윽.”
“아. 그때.”
고등학생 시절의 길었던 부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윤다예가 있긴하다.
근데 그걸 윤다예 탓이라 할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어렸을 적에는 모든 게 윤다예 탓인 것만 같았다.
나도 그리고 녀석도 서로의 마음을 뻔히 아는데 고백을 거절한 것도, 녀석이 원하는 걸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녀석은 말도 없이 떠난 것도.
그 모든걸 윤다예 탓으로 돌렸지만… 솔직히말해 윤다예는 잘못이 없다.
오롯이 내가 원인이었지.
마음을 확신했다? 내 생각일 뿐, 정말로 윤다예가 날 좋아했는지 모른다.
내가 윤다예의 마음에 들어가본 것도 아니고, 타인의 마음을 확신하는 것이 오만이겠지.
설혹 좋아했다한들 그게 꼭 승낙할 이유는 아니잖은가.
사귀고 싶을 만큼 좋아하지 않았을수도 있고, 그때의 말처럼 좋아하지만 능력이 마음에 안 들었을수도 있다.
고백을 거절하는 건 본인의 자유.
말도 없이 다른 지방으로 진학한 거? 그야 내가 녀석을 피했으니 연락하기 힘들었겠지.
당시의 난 병신같이 차인게 쪽팔려 윤다예를 피해다녔다. 당연히 연락도 씹고.
능력을 증명한다고 명문고 진학한 뒤 다시 고백할 생각만 했지, 윤다예가 어떤 생각이고 어떤 마음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뭐, 정말 알리려고 했다면 부모님을 통해서라도 알릴 수 있었겠지만… 결국 그렇게 떠났으니 끝난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녀석이 부모님과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니. 그건 좀 충격이었지.
지금와서 생각하면 고등학생 시절의 부진은 전적으로 내 탓일 뿐.
근데 녀석은 왜 사과하는걸까?
“무, 무서웠어. 네가 날 원망하는 줄 알고… 나를 피하니까, 흑, 그러니까, 흐끅, 내, 내가 싫어진 줄 알고…”
“뭐? 무슨 소리야. 싫어지긴 뭐가 싫어져. 난 그냥 쪽팔려서 피했을 뿐이야.”
“하, 하지만 그뒤로 슬럼프에 빠졌잖아. 그래서, 흐윽, 나 때문이라 원망하는 줄 알았다고.”
“…….”
음.
정확하네.
역시 홍민준잘알.
당시의 난 정말 저렇게 생각하며 윤다예를 원망했지.
“거봐. 나, 날 원망하는거지? 이젠 내가 싫어진거지? 흐아아앙.”
쪼물거리던 담요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뜨리는 윤다예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어른스럽게 보였던, 그렇게 야무지고, 똑똑하고, 뭐든 잘할것처럼 보였던 윤다예도 결국 나랑 동갑의 여자애였다.
“그래서 연락 안 했던거야?”
“흐윽, 나, 나 싫어하는거, 흑, 들으면, 너무, 너무… 못 견딜 것 같아서…”
“다예야. 나 봐봐.”
“싫어.”
방패마냥 담요로 얼굴을 가린 윤다예의 손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약하네.
그토록 대단하게 보였는데, 윤다예는 그저 예쁘고, 똑똑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여자애일 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풉.”
“왜, 왜 웃어!”
“귀여워서.”
“…!?”
퉁퉁 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리는게 귀여웠다.
“다예야. 나 좋아했어?”
“모, 몰라.”
파닥거리며 담요로 얼굴을 가리려는 걸 막으며 시선을 맞췄다.
“솔직하게 말해줘. 나 좋아해?”
“…좋아. 처음부터, 좋아했어.”
가슴이 간질거린다.
“그때는 왜 거절했어?”
“그야… 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니까.”
“…….”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네.
천재과였던 나는 설렁설렁하면서도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윤다예가 고백을 거절 한 후, 능력을 보여준다고 훈련에 매진하면서 중등 리그 메시 소리를 듣기 시작했지.
“고, 공부도 못하고, 다른 일에 흥미를 보이지도 않고, 그나마 축구에 재능이 있는데 넌 노력하지 않았잖아.”
그만 때려… 팩트폭격 그만하라고.
“그나마 축구하는거 멋있다고 하니까 대충 축구부에 나가고. 그래서… 넌 만족하면 배부른 돼지가 되니까 그런건데…”
“음. 그렇구나. 알겠어. 그만 말해도 돼.”
“그래서… 그래서, 대표팀 경기보고, 무서웠지만 만나고 싶었는데…”
울먹이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윤다예의 말에 조금 상처받을 뻔했다.
윤다예의 시선이 힐끔 뒤를 향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오하린의 모습.
“아. 하린이?”
“으응… 너무, 질투나서… 미안해.”
그러면서 엉엉 우는 윤다예를 안고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이번에도 자신이 떠나면서 내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착각했겠지.
…오하린이나 윤다예나 둘 다 착각계 속성이 있나?
달래주기 위해 입을 열려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스쳤다.
‘가만. 이거 잘하면… 가능하겠는데.’
오하린과 윤다예가 내 여자로 사이좋게…까진 아니어도 서로 인정하는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