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genius is good at soccer RAW novel - Chapter (97)
097
꼬르륵.
어색한 분위기 속, 뜬금없는 소리에 윤다예가 푹 고개를 숙였다.
“다예 배고픈가보다. 우리 밥 먹자.”
“…….”
긴장감이 풀리니 그제야 몰려오는 공복에 룸 서비스를 시켰다.
그러고보니 윤다예도 그렇고 오하린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삐쩍 말랐어. 식사는 제대로 하고 다니나.
“너네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내 걱정말고 너나 잘 먹어.”
“그럼 하린이 입술 먹어야지.”
“…짬밥먹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역시 우리 하린이, 까칠하기도하지.
그래도 오랜만에 짬밥이 아닌 맛난 음식을 먹으니 힐링된다. 이게 섹스지.
얼추 식사가 끝나갈 무렵,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까칠한 분위기를 내뿜던 오하린도 우울함 가득이었던 윤다예도 맛난 음식이 들어가니 한결 기분이 풀린 모양.
상황을 보아하니… 오해긴 하지만 두 여자가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마치 EPL의 전성기 시절, 잉글랜드 출신의 전설의 레전드 두 미드필더 램파드와 제라드 같은 사이의 두 사람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을!
개개인의 기량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같이 뛰기만 하면 합이 맞지 않아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영원한 숙원이라 여겨지던 램파드와 제라드의 공존.
전설의 램-제 라인처럼 섞이지 않던 두 사람, 오하린과 윤다예가 공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쥐어졌으니 어떻게 잘 활용하기만 하면…!
“하린아.”
묵직하게 입을 열자 오하린이 눈을 치켜뜬다.
“…왜 눈을 그렇게 떠.”
무섭게.
뒷말은 꾹 삼켰다.
“또 무슨 이상한 소리하려고 그렇게 불러.”
“와~ 어이가없네. 내가 뭘?”
수상쩍다는 시선에 오히려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주니 흐음, 한숨같은 숨을 내쉰 오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 뭔데?”
과거의 나였다면 다이렉트로 달려들었겠지.
그러나 냅다 내지르는 롱볼은 현대 축구에 어울리지 않는 법. 현대 축구에선 롱볼 전술도 정교한 패턴하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나 임대갈 팀말야.”
“…응.”
각이 보였다고 무턱대로 이니시를 열었다간 본전도 찾지 못할 거란 예측에 우회 전략을 시도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의심스럽다는 듯 팔짱을 끼고 까칠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오하린이 금세 순한 양이 되었으니까.
“다예가 축구판 돌아가는 것도 빠삭하고, 얘가 냉철하니 분석력도 좋아. 같이 살펴봐도 될까?”
묵묵히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던 윤다예의 눈이 동그래졌다.
힐끔 그 모습을 본 오하린이 마지못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아 그리고 임대할 구단 근처에 우리 같이 살 집 구해야하잖아.”
“잠깐, 같이라고?”
“그럼. 3명 같이 살아야지. 이번 임대만큼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
입술을 달싹이던 오하린이 맥이 풀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했나?
“…자료 가져올게.”
통했다.
빌드업 다해놓고 똥볼차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유효슈팅까지 연결했다.
이제 남은 건 골로 만드는 것 뿐.
이건 두 사람이 보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이후에 시도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고마워.”
윤다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오하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용서해줘서… 그리고 받아줘서 고마워.”
오하린이 묵직한 서류 뭉치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새, 생각보다 서류가 많네?”
“응. 이번엔 최대한 준비했으니까.”
바르셀로나 이적은 워낙 급박하게 이뤄졌다.
올림픽이 끝나고 대표팀 소집이 해제된 건 8월 초, 그것도 중순에 가까운 초였다.
이적 시장이 끝나는 9월 1일까지 고작해야 보름 조금 넘는 시간이 있었을 뿐이니 제의를 살펴보고, 구단의 상황을 알아보고 득실을 따지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지.
물론 유명 에이전시라면 미리 이적을 준비했거나 설혹 갑작스레 이적을 추진하더라도 그간 쌓은 정보나 인맥, 노하우가 있었겠지만 신생 에이전시에 그런 노련함이 있을리가.
바르셀로나를 선택한 건 전적으로 내 결정이지만, 날 서포트하기 위해 에이전시를 차리기까지 한 오하린 입장에선 부족함을 느꼈겠지.
그러니 책임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윤다예를 부른거고.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거지만 순도 99% 오해를 하고 있는 윤다예보다야 뭐….
“그럼 하린이가 정리한 자료 다예랑 같이 분석하면 되겠다. 그치?”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하린과 힐끔 눈치를 살피는 윤다예.
저 윤다예가 다른 사람 눈치를 살피는 광경을 볼 줄이야.
“난 여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해. 팀의 대우나, 감독의 의지, 그리고 가능성까지. 리그 수준이 아쉽지만 반대로 더 돋보이는 활약을 할 수 있을테고… 아직 컵대회에서 탈락하지 않았으니 여기서 상위권 팀들과 겨뤄볼 수도 있을거야.”
“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윤다예의 말대로 임대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네. 무엇보다 전술의 핵으로 중용해준다니까. 나도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 * *
『(photo) 훈련소를 떠나는 홍민준』
『주전 경쟁에서 밀린 홍민준의 행선지는?』
『후반기 일정이 시작되었음에도 3일간 칩거 중?』
『드디어 입을 연 호르헤 “그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 없어”』
출국 수속을 위해 기다리며 기사를 훑다보니 별 얘기가 다 나온다.
이미 팀에서 방출되었느니, K리그로 복귀한다느니… 그래도 호르헤 녀석만큼은 안목이 있군. 내 라이벌다운 견해야.
음, 음, 기사를 훑어보던 중 흥미를 끄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팀에 복귀하는 페르난도, 팀을 떠나는 홍민준.』
「올림픽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홍민준(20. 바르셀로나)가 팀을 떠나는 모양새다. 후반기가 시작된 지금, 바르셀로나의 1군 로스터에 페르난도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프리메라리가의 1군 로스터에는 최대 25명의 선수를 등록할 수 있는데, 기존 25명이었던 로스터에 페르난도를 추가하면서 자연스레 한 명의 선수가 로스터에서 빠졌다. 바로 홍민준.
최근 부진에 시달리던 홍민준은 1군 로스터 명단에서 제외되며 위기설이 사실임을 나타냈다. 그를 대신해 투입된 것은 시즌 초, 홍민준의 영입으로 임대를 떠났던 페르난도 도밍게스(22. 바르셀로나).
아이러니한 일은 바르셀로나가 홍민준을 영입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것이 페르난도라는 사실.
페르난도는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친 특급 유망주로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이 U-17, U-19 유로와 U-20 청소년 월드컵에서 를 연달아 우승하는데 일조한 황금세대의 일원.
더불어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성골 바르셀로나 유스로 지난 시즌 든든한 백업 맴버로 선발로 8경기, 교체로 9경기를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럽 최상위 리그인 프리메라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페르난도는 올림픽 조별예선 한 번, 그리고 결승에서 또 한 번 홍민준을 상대했다.
결과는 홍민준의 압승.
조별예선에서 무려 3골을 넣으며 스페인 수비진을 붕괴시킨 홍민준은 결승에서도 페르난도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2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를 지켜본 바르셀로나는 홍민준의 가능성을 확신하며 그를 영입했고, 홍민준의 자리를 위해 페르난도는 임대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반 년이 흐른 지금, 두 선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됐다.
팀을 떠나야했던 선수는 복귀하고, 팀을 떠나게 만들었던 선수는 팀을 떠나게 되었다.
과연 홍민준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조용히 핸드폰 화면을 껐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단 말이지. 활약하지 못할 자신이.
‘스페인이 U-17, U-19 유로와 청소년 월드컵을 연달아 제패하던 베스트 11맴버로 황금세대의 일원이자 라 리가에서 나름 가능성을 보여주던 페르난도의 실력이 고작 그 정돈데. 녀석을 씹어먹은 내가 벤치따리도 못 한다고? 그럴리가있나.’
내색은 안했지만 분했다.
사람들의 비난은 그러려니 한다. 나도 이해하니까.
기대했던 선수가 제대로 된 활약은커녕 똥만 싸고 있으니 실망감에 비난 좀 할 수 있지.
어차피 폼을 회복하면 언제그랬냐는 듯 찬양할 것이 분명하니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
내 실력을 제대로, 내 진면목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너무 분하다.
‘짜증나네. 푸짐하게 똥만 싸던 내가 이런 말하긴 뭐해도,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바르셀로나를 최고로 만들었을텐데.’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고… 팀의 일원으로 보여주지 못한 실력, 상대팀에서 증명하면 된다. 원래 잘하는 우리팀보다 잘하는 상대팀 선수가 더 눈에 들어오는 법 아니겠어?
「대한항공 A302편을 탑승하실 승객분들께서는—」
곧이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가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맞은편의 두 여자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독일행, 독일행 비행기를 승객께서는—」
곧이어 비행이가 이륙했다.
목적지는 독일. 한국의 레전드 차붐이 뛰었던, 그리고 구단의 레전드로 추앙받는 붉은 독수리의 팀, 프랑크푸르트.
바르셀로나는 너무나 성급한 판단으로 지금,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