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1화(11/200)
2장 음모 : 늘취한 망나니
옆동네 촌장과 연락두절이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었나?”
“주정뱅이 해리슨이니까요. 술 마시고 깜빡하는 게 한두번이 아니긴 했죠.”
“그러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자주 그러긴 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적은 없었습니다.”
촌장에게 해리슨이 있는 케이브 장원이 어딘지 확인했다.
이번 임무를 받으면서 총 아홉 개의 장원을 돌아야 했는데, 해리슨이 촌장으로 있는 케이브 장원은 일곱번째 순서였다.
“어차피 그곳에 들러야 하니 그때 소식 전해주마.”
“예, 부탁드립니다.”
* * *
이후 다른 장원들도 차례로 방문했다.
장원에 들를 때마다 내 정체를 밝히자 촌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이 기겁하며 엎드렸다.
새삼스레 내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게 되는 여정이었다.
“이리 온?”
한 장원에서는 아이가 나만 보면 울길래 마을 사람들이 봐달라고 애걸복걸했다.
마치 애가 울면 그 유명한 망나니 헤논이 때려서라도 입을 막을 거로 생각했나 보다.
나는 아이를 폭행하는 대신 성에서 가져온 쿠키를 주었다.
빵긋 웃는 아이를 보며 나도 같이 웃어줬더니 이를 지켜본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시온.”
“네.”
“그냥 때릴까? 사람들이 내가 망나니로 행동하길 바라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도련님이 훨씬 좋습니다.”
주인공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장원을 이동하면서도 나와 시온은 틈틈이 대련을 진행했다.
시온도 주인공 포지션이라 그런지 나와 대련하면서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나도 성장하는데 시온도 같이 성장하니 그 폭이 줄긴 줄어도 크게 줄진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 둘은 착실히 강해지고 있었다.
천마검도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처음에는 똥통에 빠지기 싫어서 억지로 조언해주는 티가 났는데, 요새는 자기가 먼저 이것저것 말을 해줬다.
아무래도 천살 먹은 노인네라 그런지 사람이 고팠던 모양이다.
-검을 거기서 그렇게 휘두르면 쓰나.
-옆구리가 비었잖아!
-넌 혈도부터 외워라. 기혈도 모르고 어떻게 내공을 쓰려고 그러냐?
훈수부터 시작해서.
-내가 말이야, 한때는···
-왕년에 내가 얼마나 잘 나갔었냐면은···
-그래서 무림 일통을···
그 외 시간은 모두 자기 자랑으로 알뜰히 채웠다.
수다쟁이 천마의 넋두리를 라디오처럼 듣고 있으니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런데 천마님.”
-왜.
“천마님은 누구에게 졌길래 검에 봉인된 겁니까?“
-그걸 왜 물어!
천마는 자기가 싫어하는 주제가 나오자 틱틱댄다.
확실히 이 노인네는 자기가 강하고 잘한다는 이야기만 좋아했다.
“궁금하잖아요. 천마님이 검에 봉인되지 않았더라면 저희가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정말 드래곤이라도 만난 겁니까?”
내 질문을 받은 천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날 가둔 놈은 인간이었다.
조금 의외다.
얘기만 들어보면 천마는 거의 대륙 최강자급이었던 것 같은데.
천년 전에 천마를 봉인할 만한 용사라도 있었던 걸까.
-나도 당시엔 무서울 게 없었다. 중원대륙을 평정한 후 지루함을 못 참고 새로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난 참이었거든.
“그래서요?”
-도착하자마자 현지 고수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수준들이 아주 형편없었지. 그러다가 놈을 만났다.
드디어 나오는 건가.
-놈은 그···아니다. 아무튼 검 쓰는 놈은 아니었다. 도사 같은 놈이었는데 지금 다시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결국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더 물어보려 했는데 밖에서 병사가 목적지에 도착했단다.
이번에 방문할 곳은 전에 첫번째 마을 촌장이 말한 케이브 장원이었다.
마차에서 내리니 케이브 장원의 전경이 보였다.
겉모습은 여태까지 방문했던 장원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깡촌이었다.
그나마 특이할만한 점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대부분 장원과는 달리 이곳은 산을 끼고 있었달까.
“어서 오십시오. 저는 촌장 해리슨이라고 합니다. 혹시 새로 부임되셨습니까?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푸근한 인상의 촌장이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어느 장원에서나 처음 나를 볼 때는 저런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가 정체를 공개하고 나면 표정관리를 못하곤 하지.
“관리인이 아니다. 난 로이드 후작님의 아들 헤논이라고 하다. 내 명성은 잘 들었겠지?”
이번에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조금 색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아! 헤논님이셨군요! 참으로 반갑습니다!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과할 정도로 환대하는 해리슨 촌장을 보자 절로 고개가 갸웃했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면 원래 해리슨 촌장이 친절한 성격이겠구나 여기고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다른 놈도 아니고 후작성의 개망나니 헤논 아닌가.
내가 누군지 알고도 이렇게 환영을 한다고?
‘부자연스러워.’
왜 이렇게 반가워하는 걸까?
여기에 최근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어서 드시지요. 비록 누추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흠, 그럼 즐겨볼까?”
장단을 맞춰주며 마을 공터로 갔다.
야외에 식사장을 차린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우리를 진심으로 반겨주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후작성에서 데리고 온 병사들은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의기양양해졌다.
“크하하하! 고기다! 고기라고!”
“이런 시골에서 포도주를 마실 줄이야! 횡재했어.”
“흐흐흐,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이것참 쑥스럽구먼.”
병사들은 금세 풀어져서 흥청망청 놀기 시작했다.
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해리슨 촌장이 나에게도 음식을 권했다.
“어서 드셔보시지요. 방금 잡은 돼지로 만든 햄소세지입니다. 맛이 아주 기가 막히죠. 포도주와 같이 드셔보십쇼.”
의심되긴 했으나 확실한 것도 아닌데 유별나게 구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
소세지를 한입 베어 물고 여기에 곁들어 포도주를 한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적포도주가 목구멍에 꿀떡 넘어가는 순간, 난데없이 눈앞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포도주에 든 수면제가 상태이상을 유발합니다.] [패시브 스킬로 인해 상태이상이 무효화됩니다.]아, 이상한 거 맞았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슬쩍 옆을 보니 시온이 흥겨운 분위기에 휩쓸려 미미한 미소와 함께 포도주를 한입 먹으려 했다.
“야, 내놔.”
시온의 포도주잔을 홱 뺏어서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포도주에 든 수면제가 상태이상을 유발합니다.] [패시브 스킬로 인해 상태이상이 무효화됩니다.]난데없이 술잔을 빼앗긴 시온은 기가 찬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이 망나니 요근래 조용하더니 또 시작이네.’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포도주를 뺏어먹고 해리슨 촌장을 슬쩍 곁눈질했다.
아까부터 웃고 있던 촌장이 처음으로 움찔거리며 동요했다.
“포도주가 너무 맛있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그럴 수 있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예 포도주를 통째로 가져오겠습니다.”
촌장이 자리를 비우자 잠깐이지만 시온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다.
아직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포도주에 수면제가 타져 있다. 술이 오면 마시고 잠든 척해라.”
시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 답하려던 찰나, 해리슨 촌장이 다시 와서 앉았다.
“하하하! 다시 시작해보지요. 이번엔 이쪽 레이디도 모자를 일 없을 겁니다.”
“천한 하녀에게 레이디라니. 과분한 호칭이다.”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후작성에 계신 여성분이면 다 레이디죠. 헤헤.”
이후 시온은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있다가 아무도 안 볼 때 슬쩍 땅에 버렸다.
나는 촌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옆동네 촌장이 최근 자네가 연락을 안 했다고 안부를 궁금해하더군. 무슨 일이 있었나?”
“하하, 별일 없었습죠. 제가 워낙 술을 좋아해서 또 까먹은 탓이겠지요. 내일이라도 당장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둘러대는 해리슨 촌장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렇군.”
술자리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안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마신 데다가 수면제까지 타져 있었으니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절했다.
나 같은 경우는 패시브 스킬로 수면제와 취기가 회복되어서 말똥말똥했다.
옆을 보니 시온도 멀쩡한 모양.
그래도 저들의 의도가 뭔지 알고 싶어서 일부러 비틀거렸다.
“으음, 과음했나? 조금 졸리군.”
“하하하, 확실히 많이 마시긴 했습니다. 들어가서 편히 쉬십쇼.”
촌장은 자신의 집을 빌려줬다.
그곳에 누워 자는 척을 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들어왔다.
“확실히 잠든 거 맞지?”
“맞아. 수면제 든 포도주를 몇 잔을 마셨으니.”
“하녀까지 같이 옮겨라.”
장정들이 밧줄을 들고 와서 내 손목과 발목을 묶고 번쩍 들어 올렸다.
바깥으로 나오자 살짝 실눈을 떠서 상황을 파악했다.
놀랍게도 나뿐만 아니라 병사 서른명과 시온까지 줄줄이 묶여서 수레에 실어져 있었다.
“이동한다.”
덜그럭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장원 사람들은 우리를 끌고 산기슭을 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나와 시온을 포함한 후작성 병사들은 낯선 동굴 앞에 와있었다.
시커먼 동굴 입구가 마치 맹수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해리슨 촌장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굴 밖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러자 안쪽에서 철판을 쇠를 긁는 듯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클클, 들어오너라.”
“예, 옛!”
그제야 허둥지둥 수레를 끌고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
내부는 곳곳에 횃불을 밝혀놔서 생각보다는 훤했다.
최심부까지 도달하자 역한 냄새가 사방을 잠식했다.
잠든 척이 힘들 정도의 악취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흐흐흐, 신선한 살 냄새가 나는군.”
이윽고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보였다.
깊게 후드를 눌러쓴 사내였는데, 헐렁한 후드로도 놈의 삐쩍 마른 앙상한 체구를 가리지 못했다.
후드 사이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본능적으로 녀석이 누군지 짐작했다.
‘흑마법사로군.’
아르카니아 대륙에는 흑마법사가 존재했다.
이들은 주로 사령술 혹은 지배술, 소환술, 변신술 등 별의별 마법을 다 사용한다.
당연히 음지에서 활동하는 놈들이고 내가 알기로 대부분 흑마법사는 악마추종자들의 모임 <황혼>의 일원이다.
“라울님, 약속한 대로 무려 서른 명이나 되는 제물을 가지고 왔으니 제 아들과 마을 사람들을 풀어주십시오!”
해리슨 촌장의 말을 들어보니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파악됐다.
저 흑마법사 놈이 장원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서 협박했겠지.
해리슨 촌장으로서는 발만 동동 구르며 애만 태웠고.
붙잡힌 가족들이 죽을까 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했을 거다.
그런 차에 알아서 제물이 되어줄 우리가 왔으니 이때다 싶어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벌였을 터.
어째서 해리슨 촌장이 우리를 그렇게 환대했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클클클, 맞지. 약속을 지킨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지. 네 아들과 마을 사람들을 돌려주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가족 간의 재회로군. 그럼 나오거라!”
흑마법사가 손짓을 하자 횃불조차 없는 안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덜컹! 하며 쇠창살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울리는 불길한 하울링.
“그르르르르···.”
“크아아아!”
“크륵, 크르륵.”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타난 존재는 해리슨 촌장의 아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미 살점은 보랏빛이 되어 군데군데 썩어있었고 머리카락은 죄다 빠져있거나 듬성듬성 몇 올만이 남아있었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한쪽 눈이 없거나 두 눈이 모두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끔찍한 시취가 내 코를 괴롭혔다.
그렇다.
그들은 이미 죽어서 언데드화되었다.
구울이 돼버린 것이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던 장면을 목도한 해리슨 촌장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서···”
“반응이 너무 시큰둥하군. 기껏 가족끼리 만나게 해줬는데 말이야.”
“살려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살려준 거 맞는데? 이쪽 업계에서는 이 상태가 살아있는 거야. 우리식 표현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고들 하지.”
“으아아아!!!”
분을 참지 못한 해리슨 촌장이 흑마법사 라울에게 달려들었다.
라울이 한손을 휙 내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구울 한 놈이 갑자기 흉포해져서 해리슨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잔인하게도 그 구울은 한때 해리슨 촌장의 아들이었다.
“크아아악!”
“억!”
구울이 정신없이 해리슨 촌장의 살점을 뜯으려 버둥거렸다.
촌장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공포스러운 장면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망부석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참고로 새로 태어난 우리 아기들이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해서 말이야. 너희도 식량이 되어주어야겠다.”
애초에 흑마법사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한때 가족이었던 언데드에 맞서 싸워야 하나.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해리슨은 구울에게 계속해서 당하고 있었다.
팔뚝이 뜯기고 귀 한쪽이 없어져 있었다.
사라진 귀가 있던 자리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아아, 제이콥, 아빠다. 제발 정신 차려라.”
아버지는 아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간절히 빈다.
본인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다.
아들이 돌아올 리 없음을.
그럼에도 현실을 부정하며 제이콥이 다시 웃으며 아버지를 반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촤아아악!
뎅겅!
구울이 된 제이콥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해리슨 촌장의 위에서 버둥거리던 목 없는 제이콥의 몸통은 이내 축 늘어졌다.
정신을 차린 촌장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사내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헤, 헤논님?”
그랬다.
방금 전까지 잠든 척하던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든 것이다.
“어떻게···수면제가 든 술을 마신 걸 분명히 봤는데.”
횡설수설하는 해리슨 촌장에게 말해주었다.
“망나니는 취하지 않는다. 항상 취해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