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10화(110/200)
14장 간택 : 풀어준 망나니
레베카 왕녀와의 독대.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그녀가 나를 부를 줄 알고 있었다.
표정부터 봐라.
궁금한 게 잔뜩이라고 얼굴에 쓰여있다.
“헤논 로이드 자작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헌데 야심한 시각에 손님을 초대해놓고 차 한 잔도 없는 겁니까?”
“아! 죄송해요. 차 드릴게요.”
슬쩍 던진 공에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긴 해도 사회적 스킬은 좀 더 기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랜 기간 방 안에만 박혀있어서 그렇겠지.
주기적으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차차 나아지리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앞에 두고 레베카 왕녀와 나는 마주앉았다.
왕녀는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어떻게 알았죠?”
“무엇을 말입니까?”
“······”
역으로 받아치니 왕녀로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본인이 남들 몰래 지식을 쌓아왔던 행동을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다.
게다가 내가 정말로 뭔가를 알고 있는지 확신도 안 서겠지.
“그게···”
우물쭈물하는 왕녀를 대신해서 내가 말해주었다.
“왕녀님이 현자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당장에라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사실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거에요!”
“비밀입니다.”
드루이드 스킬을 떠벌릴 순 없으니 비밀이라고 간단하게 에둘렀다.
허리춤에 양손을 짚은 왕녀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심술쟁이. 비밀이 많은 남자였네요.”
“원래 여인뿐만 아니라 사내 또한 비밀이 많은 법입니다. 남녀를 구별 지을 필요가 없지요. 마치 어떤 성별이 군주가 되든 상관없는 것처럼요.”
군주가 되는데 성별은 무관계하다.
넌지시 던진 내 의견에 레베카의 루비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소 직설적인 언사였다.
왕녀가 잠시 뜸 들이다 입을 열었다.
“로이드 자작님은 왠지 그럴 것 같긴 했는데 여타 다른 귀족분들과는 다르시군요.”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자작님은 못 느끼셨나요? 저는 궁에서 평생을 살았고 또래 소녀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고 자부해요. 허나 그중에서 여성이 정치를 해도 무방하다 말씀하는 사람은 자작님이 처음이에요.”
그녀가 말을 덧붙인다.
“당신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아요. 여성도 정치하는 독특한 세상에서요.”
어떻게 알았지.
과연 레베카 왕녀.
예비 현자답게 통찰력이 대단하다.
“왕녀님도 알다시피 저는 서출에서 시작해서 소가주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제가 성별과 신분에 얽매였으면 진작 벽에 가로막혀 아스러졌겠지요.”
그녀가 내 말을 경청한다.
느끼는 바가 많은 듯하다.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그 선은 다르지요. 열심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이런 현실감 없는 소리는 안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내게 닥친 고난과 역경이 진짜 한계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장애물인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레베카 왕녀가 내 조언을 받아친다.
“허면 하나 묻지요. 로이드 자작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한 현재 환경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이 불가능한 벽인가요? 아니면 도약할 수 있는데 제가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걸까요?”
순수한 호기심이 묻어나는 질문.
그녀에게 씩 미소를 지어주었다.
“만약 불가능하다고 여겼다면 전 여기 없었겠지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왕녀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호쾌한 대답을 들은 왕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
“당신은 참 신기해요.”
“그런 얘기 자주 듣습니다.”
“자작님 정도면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물론이죠. 친제국파 귀족이 왕실과 수도 전체를 먹었죠. 심지어 아놀드 공작마저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제가 혼자 날뛴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자작님이 합세해도 마찬가지고요. 패배는 기정사실화 되었죠. 그런데······”
말꼬리를 흐린 레베카 왕녀.
“어째서 당신의 허무맹랑한 호언장담이 믿음이 갈까요? 상황은 절망적인 수준인데 말이죠.”
방금의 말을 듣고 나는 레베카 왕녀가 천상 군주감이라는 걸 확신했다.
“왕녀님,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요구하는 게 좀 많아야지요.”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인류학 등 수많은 학문을 타파해야 올바른 군주라 할 수 있습니다만. 그보다도 중요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죠?”
“바로 직감입니다.”
군주에게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가 수없이 찾아온다.
심지어 자신이 내린 결정 하나하나에 수많은 목숨이 왔다갔다한다.
레베카 왕녀는 데이터가 부족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찾아내는 직감을 가졌다.
조금 전 연회식에서도 그렇다.
찰리 힐튼 공자는 다소 갑작스럽지만 제대로 된 어필을 위해서 레베카 왕녀에게 장미꽃을 바쳤다.
보통의 여인이라면 주변의 분위기와 호응 때문이라도 못 이긴 척 그 꽃을 받았을 터.
하지만 레베카 왕녀는 그러지 않았다.
꽃을 손에 가져가는 듯하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행동을 멈추었다.
거기서부터 대강 느끼고는 있었는데 방금 대화를 나누면서 보다 확실해졌다.
이 여자는 ‘감’이 살아있다.
귀신같이 정답을 찾아내는 직감.
이래서 왕족의 핏줄은 무시 못한다.
“지금부터 제가 왕녀님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 겁니다. 이를 믿으셔도 되고 안 믿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왕실을 지키고 군주가 되려면 반드시 믿어야 하겠군요.”
“역시 감이 좋으십니다.”
레베카 왕녀에게 일러준 계획의 전모는 이러했다.
1. 레베카에게 뱀파이어임을 알려준다.
2. 그녀를 뱀파이어로 각성시킨다.
3. 감염된 뱀파이어가 숙주 뱀파이어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점을 이용해서 정적들을 감염시킨다.
내 이야기를 들은 레베카가 경악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가능할까요? 너무나 색다른 접근이라 듣고도 믿기질 않는군요. 애초에 제가 자작께서 말씀하신 뱀파이어란 이종족인지도 모르겠네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입니다. 아니면 찰리 힐튼 남작과 결혼하고 왕녀님의 훌륭한 재능은 영원히 썩히시겠습니까?”
왕녀가 고개를 격렬하게 가로저었다.
“하는 데까지 발악해볼게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그럼 움직이시죠.”
* * *
왕실에서 특별히 준비한 육두마차가 조용히 관도를 미끄러진다.
깊은 밤이라 주변은 조용했다.
이따금씩 코 고는 소리와 투레질 소리가 편안한 자장가를 만들었다.
마차는 안드레의 저택에 멈췄다.
문이 열리며 내가 내렸고.
이어서 놀랍게도 흑색 드레스를 입은 레베카 왕녀가 내렸다.
아직 마차에 타고 있는 호넷 백작이 레베카에게 말했다.
“왕녀님, 시간은 많이 못 드립니다. 지금도 누군가 본다면 크게 문제 삼을지도 모릅니다.”
“고마워요. 삼촌. 이 은혜 잊지 않을께요.”
레베카가 호넷의 정수리에 살짝 뽀뽀했다.
전전긍긍하던 호넷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대신에 나를 보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왕녀님을 잘 보필하게. 만약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간···”
“잘 알겠습니다.”
이거 마치 예비 장인어른 앞에서 여자친구 데려가는 느낌인데.
내 착각이려나.
아무튼 레베카와 함께 저택으로 복귀했다.
문을 열고 맞이한 안드레는 내 옆에 웬 아리따운 여자가 서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이 레이디는 누구시죠? 어디 귀족가 영애 같으신데.”
“잘 봐봐. 너도 잘 아는 분이시다.”
“글쎄요? 제가 폰타노에 자주 오질 않아서요. 알만한 영애그아아으허워어왕녀님!!!”
대경한 안드레가 자동으로 엎드렸다.
“아니! 왕녀님! 누추한 분이 어찌 이런 귀한 곳에.”
“그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귀한 분이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호호···연회식 때도 재밌으신 분 같으셨는데 제 예상이 맞았군요. 반가워요. 레베카라고 합니다.”
“흐어어어엉!! 영광입니다!!”
얘 왜 우냐.
하긴 평생 왕국에서 산 사람에게 자국 공주님은 최고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려나.
어쨌든 안드레를 진정시키고 뒷마당으로 나왔다.
누구도 접근 못하게 막아달라고 했더니 착한 안드레 녀석은 아예 문을 꽁꽁 닫아걸었다.
그래서 지금 뒷마당에 있는 사람은 나와 안드레와 레베카, 그리고 시온과 캠벨이었다.
레베카와 시온과 캠벨은 초면이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왕녀님? 대단한 미인이시네. 북부에서 칼질이나 하던 캠벨이라는 용병 나부랭입니다.”
역시 캠벨인가.
왕녀 앞에서도 구부러짐 없이 소탈하게 인사한다.
이 녀석은 평민이나 빈민이나 귀족이나 왕족이나 말투만 조금 바꿀 뿐 대하는 태도는 늘 똑같다.
그게 캠벨의 매력이다.
“시온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도련님을 쭉 모셔왔고 지금도 최측근에서 모시고 있지요.”
의외인 건 시온의 태도랄까.
무표정한 얼굴이 제법 뻣뻣했다.
예의는 갖췄지만 딱 거기까지.
암살자라서 그런가.
“로이드 자작님이 워낙 특별하시다 보니 일행분들도 하나같이 범상찮은 분들이군요. 반갑습니다. 레베카라고 해요.”
반면에 레베카는 상냥하게 인사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넘겼다.
과연 왕녀답다고 해야 할까.
히키코모리 생활을 오래 했어도 이 정도면 사람 대하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일행도 모두 모였으니 이제 본론을 꺼낼 때.
그 전에 비밀 서약을 받아야 한다.
시온과 캠벨이야 믿을맨이니 넘어가고.
레베카 왕녀도 당사자니까 넘어가고.
남은 건 안드레 하나.
“안드레, 지금부터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할 수 있겠어?”
안드레도 기본적으로 귀족 출신에 부마 후보까지 지원했는데 눈칫밥이 제로는 아니다.
왕녀가 본인의 저택까지 비밀리에 찾아왔는데 뭔가 느끼는 바가 있겠지.
“물론입니다.”
“정말 확실해? 저번에 마차에서 봤을 때는 나한테 온갖 비밀을 수다스럽게 털어놓던데.”
“그때는 자작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라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자 그랬습니다. 원래의 저는 입이 무거운 편이라구요!”
“흐음···”
턱을 쓸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자 안드레가 발을 동동 구른다.
“여기서 바지라도 깔까요? 어떻게 하면 절 믿어주시겠습니까?”
“됐어. 그 흉물스러운 걸 봐서 뭐하게. 어차피 비밀 누설하는 순간 뒤퐁 자작가를 몰살시키면 그만이다.”
“농담이라도 무서운 소리하지 마십쇼.”
“농담으로 들리나?”
진담이었는데.
지금 내 전력이라면 중소 자작가 하나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내 진지한 태도를 눈치챈 안드레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하지.”
나는 일행들에게 레베카 왕녀가 뱀파이어란 사실을 털어놓았다.
시온과 캠벨은 왕궁 도서관에서 뱀파이어에 관해서 질리도록 찾아봤기에 대번에 알아듣고 안드레에게 설명했다.
왕녀도 워낙 많은 서적을 탐독하다 보니 뱀파이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모든 이들이 레베카 왕녀가 뱀파이어라는 데에는 의구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믿기 힘들군요. 정말로 왕녀님이 그 돌연변이 이종족이 맞습니까?”
“맞다. 확신한다.”
“저도 궁금하네요. 자작께서 제 어떤 면모를 보고 뱀파이어라고 확신하시는지요.”
“어렸을 적부터 유독 햇빛을 싫어하지 않으셨나요? 늘 밤산책만 즐기시고요.”
“그렇긴 한데···저 말고도 다른 영애들도 똑같아요. 피부 탄다고 햇빛을 싫어하지요.”
나도 아르니아 대륙에 오기 전에 미리 입수한 정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그런 만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견문이 불여일견이니 그녀가 뱀파이어로 각성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왕녀님,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을 제외한 인간이 흘린 피를 본 적 있으십니까?”
손가락을 턱에 대고 곰곰이 생각하던 왕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없는 듯해요.”
“대단하군. 살면서 피를 볼 일이 없었다니. 왕족은 다르다는 건가.”
뱀파이어의 각성은 인간이 흘린 피에 뱀파이어가 유혹을 느끼면서 시작된다.
도서관에서 찾아본 기록에도 남자보다 여자가, 신분이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이 뱀파이어로 살아남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왜냐하면 남자는 어렸을 적부터 바깥 활동을 하다가 다친 사람을 볼 기회가 많았고 또한 신분이 낮을수록 궂은 일을 하다가 피를 볼 일이 많아서였다.
각성 과정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광란 상태가 찾아오기에 대부분의 뱀파이어는 각성조차 못하고 미친연놈으로 취급받으며 죽기 십상이었다.
이런 면에 비추어 보면 레베카 왕녀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곁에 있는 시녀가 대신해주었고.
심지어 사춘기부터는 내내 방에 박혀있어서 타인의 피를 보고 싶어도 볼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17세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도 뱀파이어로 각성하지 않고 여태껏 정체를 잘 숨겨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주의 깊게 들은 레베카 왕녀가 침중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여기 있는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제가 거기에 유혹을 느낀다면 뱀파이어임이 입증되는 거군요.”
“맞습니다. 오늘 저희는 왕녀님을 뱀파이어로 각성시킬 계획입니다.”
“만약 그랬다가 제가 이성을 잃고 누군가를 공격하면 어쩌지요? 그건 조금 무서운데요. 여러분이 다칠까봐 우려되기도 하고요.”
레베카 왕녀의 말을 들은 시온과 캠벨이 그녀가 귀엽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가 공격한다고 해서 다칠 위인들이 아니니까요.”
“저기요? 저는 다칠 수 있는데요?”
“뒤퐁 공자님은 제가 지켜드리지요.”
드디어 실험을 개시할 차례.
피를 흘릴 사람은 나로 정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제일 강하니까.
무엇보다 뱀파이어가 피를 빠는 순간 감염이 시작되는데, 나는 이미 드루이드니까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럼 해보지요.”
천마검을 뽑고 팔뚝에 그었다.
붉은 선혈이 금세 한쪽 팔면을 뒤덮고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시온이 깜짝 놀라서 소리친다.
“도련님! 너무 깊게 베었습니다.”
“괜찮다. 나잖아.”
[패시브 스킬 시전]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됩니다.] [체력회복량이 증가합니다.]다 믿는 구석이 있단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다.
레베카 왕녀의 반응.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이 흘리는 피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는데요. 엄청 생생하고 신기하네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잘못 짚었나.
다들 의아해하던 차에.
레베카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런데 뭐랄까···조금 향기로운 것 같기도 하고···맛있어 보인달까···츄릅···”
착각이 아니다.
레베카 왕녀는 피가 흐르는 내 팔뚝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름다운 루비 눈동자에 서린 붉은 요기가 짙어지고 풍기는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다.
“휘유! 부단장 말이 맞았잖아?”
캠벨이 휘파람을 불며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었고,
“뒤퐁 공자님, 제 뒤에 꼭 붙어있으세요.”
시온도 단검 두 개를 역수로 쥔 채 안드레 쪽을 막아섰다.
안드레도 벌벌 떨면서도 레베카 왕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로이드 자작님, 깨끗한 피를 가지고 계시네요. 청량한 내음이 제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호호호···”
“원하면 와서 가져가시죠.”
“아니에요. 저는 피를 먹는 그런 괴물이 아니에요.”
아직은 이성이 남아있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강제로 각성시킬 수밖에.
팔뚝을 휘둘러 피를 흩뿌렸다.
촤아아악!!!
붉은 혈흔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중 몇 방울은 레베카 왕녀의 얼굴에 튀었다.
백옥 같은 새하얀 피부에 새빨간 피가 묻으니 귀기스러운 광경이 연출됐다.
“히끅!”
피가 바로 옆에 튀자마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던 레베카 왕녀가 놀라서 딸꾹질을 했다.
반사적으로 혀를 내민 그녀가 내 피를 살짝 맛보았다.
혓바닥에 혈액이 스며드는 순간 붉은 안광이 폭사되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흐히히히히히히히!!!!”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뱉는 왕녀.
그녀의 안면 윤곽이 뒤틀린다.
상냥하고 자애롭던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레베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최대한 노력했어요···이건 자작님 잘못이야.”
“알고 있다. 네가 이 모습을 보이길 원했어. 그게 너의 참모습이다. 본질을 마주해라.”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어.”
“얼마든지 와라. 난 준비되었으니.”
마지막 고삐를 풀어줬고.
레베카 왕녀가 포효한다.
“캬하아아아악!!!”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고.
알파 뱀파이어가 나를 향해 쇄도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빠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