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14화(114/200)
15장 모함 : 물어본 망나니
전에도 말했다시피 욕심 많은 힐튼 가문이 가만히 있으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나 엘든 왕실을 제국에 갖다바치며 얻을 기대 수익만 이십년 간 수백만 골드에 달할 텐데 이걸 포기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힘써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암살이었다.
하지만 나와 동료들은 하나같이 강하고 남이 주는 음식을 덥석 집어먹은 팔푼이들이 아니다.
아, 캠벨은 제외하고.
근데 캠벨은 왠지 독을 먹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이미지다.
다음은 왕족에 대한 직접 암살.
이 방법은 리스크가 클 뿐만 아니라 레베카 왕녀가 뱀파이어로 각성하면서 의미 없는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암살이 안 된다면 정치적인 여론 공세로 나를 실각시키는 방법인데 이 또한 애매해졌다.
이유는 아놀드 공작 때문.
왕실 종친들을 꽉 쥐어 잡은 아놀드 공작이 레베카 왕녀의 권속이 되면서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찰리가 친제국파 실세라 해도 정치적으로 날 옭아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래저래 힐튼 가문에게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는 놈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즉위식과 임명식을 막으리라 예상했다.
결국 즉위식 직전 힐튼 남작이 꺼낸 패를 확인했고 속으로는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국을 끌어들였는가.’
나를 악마로 몰았으니 등 뒤에 어떤 배후세력을 업었을지는 뻔했다.
원래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외부 세력을 끌고 오는 게 정석이긴 했다.
사실 나는 제국 쪽 인사를 끌고 올 줄 알았는데 신성국은 의외였다.
“말조심하시오! 악마의 씌었다니. 함부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은 하는 게 아니외다.”
호넷 백작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그만큼 찰리 힐튼의 발언은 충격이었다.
20년 전 마왕 바알의 준동 이후 악마는 모든 대륙인에게 트리거와 같은 단어가 되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실재하지 않는 공포랄까.
따라서 악마에 씌었다는 주장은 만약 모함일 경우에는 본인이 그에 준하는 형벌을 받겠다는 승부수나 마찬가지였다.
“괜찮습니다.”
지목 받은 내가 일어나서 장내를 진정시켰다.
어차피 목표가 된 이상 저쪽도 나름의 묘수를 준비해왔을 테니 뒤로 빼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일단은 찰리가 준비해온 팻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로 했다.
“힐튼 남작, 어째서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지 이유나 듣고 싶군.”
“속으로는 찔리면서 퍽이나 태연한 척하는군. 내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하지?”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내가 악마에 씌였는지 이유를 대라.”
살짝 기세를 내뿜자 잠시나마 움츠러든 찰리가 이내 바락바락 대들며 근거를 풀어놓았다.
“내가 듣기로 너는 십대 후반까지 술이나 처먹고 행인을 폭행하는 쓰레기 같은 생활을 했었다. 한마디로 망나니였지. 내 말이 틀렸나?”
“옳다. 헌데 그것과 악마가 무슨 상관이지?”
“그러던 놈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몇 달 만에 유저급의 고수가 되고 몇 년 만에 익스퍼트급의 고수가 된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뭔가 싶었는데 겨우 이거였나.
준비한 계략치고는 다소 엉성하다.
“내가 급성장한 건 맞다만,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다. 단순히 규격 외의 성장을 했다고 악마에 씌었다면 세븐 스타들도 악마에 씌인 자들인가?”
내 말을 들은 대소신료들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이할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이며 강해진 고수는 꽤나 많았다.
물론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네가 악마에 씌였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말해라.”
“약 일년 전에 로이드 영지에서 중급 악마 단탈레온이 소환되었지. 이 사건은 모두가 아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건 사실 그 자체라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
“그래서?”
“최후의 전쟁이 끝난 이후로 악마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가 이십년 만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곳이 하필 로이드 영지라고?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수상하지 않나?”
“수상할 순 있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악마에 씌였다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억측이군.”
“아니? 너는 그때 단탈레온을 물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전부터 단탈레온에게 먹혔던 거지. 너는 지금 헤논이란 망나니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악마 단탈레온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왕국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점이 단탈레온을 처치한 이후다.
이때부터 난 악마살해자로 불렸다.
그런 내가 악마 단탈레온에 씌였다는 주장은 내 명예와 능력을 동시에 흠집내는 행위다.
“찰리 힐튼, 못하는 말이 없군.”
“당연하지. 물지 못할 거면 짖지도 말라고 했어. 나는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인도 데리고 있다.”
로이드 후작성에서 단탈레온과 벌였던 치열한 사투는 내성에 거주하는 모든 식솔이 두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심지어 가주인 로이드 후작도 목격했는데 증인을 데려왔다라.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어떤 증인을 데려왔는지 면상이나 한 번 보고 싶었다.
“증인을 데려와라. 보고 판단하겠다.”
찰리 힐튼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왕궁의 외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좌우로 열렸다.
태양빛을 등지며 한 인영이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빛 때문에 그림자만 보였다.
그러나 점차 명순응이 되며 정체가 보였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필립.”
그렇다.
증인의 정체는 바로 필립.
내 이복형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이건 상당히 의외다.
필립이 어째서 여기에 있을까.
몰티령에서 실종된 줄 알았는데.
동부 대산림에서의 엘프 준동 이후에 몰티령은 작살이 났다.
당장 필립의 외조부였던 몰티 자작만 하더라도 엘프에게 잡혀서 목이 내걸리지 않았던가.
거기에 필립의 목은 없었지만 당연히 엘프에게 잡혀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서 내 앞에 모습을 보이다니, 머릿속에서 한 가지 무서운 가설이 떠올랐다.
“엘든을 빛내주는 신사숙녀 여러분! 제 이름부터 밝히겠습니다. 저는 필립 로이드. 현 세븐 스타인 로이드 후작의 적장자입니다.”
필립 로이드.
필립이라는 이름은 보잘것없지만 그 뒤에 붙은 로이드란 성은 가볍지 않다.
특히나 국서 즉위식을 앞두고 있는 헤논 로이드와 형제 사이이니 사람들의 호기심이 증폭되는 건 당연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섰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그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께 전달하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필립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나를 가리켰다.
“바로 제 이복동생. 이제는 이복동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군요. 악마 단탈레온이 그의 몸에 들어간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후 필립의 헛소리는 차마 듣기 힘든 수준이었다.
“빙의된 이후 헤논의 몸속에 있던 단탈레온은 우연히 제게 본모습을 들켰습니다. 그러자 놈은 저를 죽이려고 본체를 드러냈죠. 그러다가 악마 현현이라는 사고를 친 것입니다.”
필립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점인데 저놈이 화술은 제법 괜찮다.
마침 소재도 자극적이어서 청중이 귀 기울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놈은 제 발이 저렸는지 황급히 본모습을 감추었고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헤논이라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악마살해자라는 별호가 붙었습니다.”
“거짓말도 정도껏 쳐야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무서워진 저는 외가인 몰티령으로 도망갔습니다. 헌데 본모습을 들킨 단탈레온은 제가 거슬렸는지 이종족을 꾀어서 몰티령 전체를 불태우더군요.”
참고로 몰티령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한 건 리처드 대장로에게 빙의된 드루이드 멀린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필립은 그때의 참사가 마치 내가 계획한 일인 양 꾸며댔다.
어쨌든 증거가 없으면 어떤 말이든 펼칠 수 있는 법이다.
필립의 무근본 주장은 제법 그럴싸했고 귀족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일련의 변화를 지켜본 레베카 왕녀는 격분하여 필립에게 따졌다.
“필립 공자라고 하셨나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요.”
“왕녀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시구요. 공자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구멍투성이입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지셨는지 말씀해주신다면 새겨듣겠습니다.”
레베카 왕녀는 필립의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콧방귀를 뀌며 조목조목 허점을 짚었다.
“제가 듣기로 로이드 후작님도 당시 장면을 지켜봤다고 했어요. 심지어 공자께서는 현장에 없었다고 했죠.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죠?”
왕녀의 질문을 듣자마자 필립의 얼굴이 수심에 찼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저도 왕녀님께서 궁금해하시는 부분을 이 자리에서 실토하고자 합니다. 비록 죽을 만큼 힘들지만요…”
손수건으로 거짓 눈물을 훔친 필립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버려진 자식이었습니다. 후작께서는 사생아여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인 헤논만 총애했죠.”
필립이 적장자여서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지는 나도 알고 필립 본인도 안다.
애초에 놈이 적장자가 아니었다면 가주 쟁탈전은 훨씬 이전에 끝났을 것이다.
필립놈이 입에서 내뱉는 소리가 죄다 똥같길래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아버지는 이미 자식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제가 먼저 단탈레온에게 죽을 것 같아서 지옥에서 도망친 것입니다.”
이건 되돌릴 수 없다.
필립은 나뿐만 아니라 세븐 스타인 로이드 후작까지 건드렸다.
영원히 가문을 등지겠다는 선전포고.
화를 내려는 레베카에게 손을 내저어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는 내가 앞으로 나섰다.
“필립, 방금의 그 발언 책임질 수 있겠나?”
“나는 악마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웃기는군. 혹여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러면 내가 악마임을 어찌 증명할 셈이지?”
“여기서부터는 제가 말하지요.”
필립의 등장 이후 돌아가는 상황을 즐겁게 관람하던 찰리 힐튼이 나섰다.
“조만간 벨라누스 신성국에서 대주교와 심문관께서 방문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미 국경 근처에 도착하셨으니 며칠 내로 도착하시겠지요.”
귀족들이 벼락 맞은 것처럼 놀랐다.
레베카 왕녀도 마찬가지였다.
“신성국 대주교과 이단심문관이 내리는 판결이라면 확실하겠지요. 만약 헤논이 벨라누스님의 심판을 피한다면 저와 필립 공자 또한 왕실의 부마를 억울하게 모함한 죄값을 달게 받겠습니다.”
찰리 힐튼이 준비한 수는 제법 강력했다.
장례식은 흐지부지 끝났고 원래라면 동시에 진행되었어야 할 즉위식과 임명식은 유야무야 연기되었다.
참석자 전원은 귀가한 후 오늘 벌어진 사건을 신나게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며 성급하게 줄을 서진 않았다.
모든 결과는 신성국 대주교와 이단심문관이 오고 나서야 결정될 일이었다.
* * *
수도 폰타노는 알폰소 국왕의 장례식과 겹쳐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평소라면 주점에서 시끄럽게 떠들기 바쁘던 호사가들도 웬일인지 입을 굳게 다물고는 술만 목구멍에 때려넣었다.
그만큼 혀를 잘못 놀리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즌이었다.
그 시각 나는 안드레의 저택에 있었다.
시온과 캠벨, 그리고 안드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마주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내 심복이라 당연하게도 필립의 개소리 따윈 믿지 않았다.
다만 시온은 필립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련님, 믿기지 않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수로 몰티령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당장 외조부인 몰티 자작도 그 난리에 죽지 않았습니까?”
시온의 의문.
순진해서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겠지.
그녀 정도면 생사고비를 여러번 넘겼고 세상 경험을 할만큼 했으나 아직 부족하다.
귀족이란 족속이 진정으로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끝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말이다.
“시온, 엘프의 안식처에 있을 때 리처드 대장로 집에서 발견한 편지를 기억하나?”
“그렇습니다. 힐튼 가문과 엘프 대장로 간의 은밀한 뒷거래가 적힌 밀서였지요.”
“맞아. 여기서 한 가지 요소만 더 추가하면 된다. 정말 엘프족의 공격을 몰티령에서는 단 한 사람도 모르고 있었을까.”
시온의 정수리에 난 꼬리털이 쫑긋 섰다.
“설마!!”
“맞아. 필립은 힐튼 가문과 몰티령을 대가로 뒷거래를 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의 생존이 설명되지 않아.”
“그렇지만 몰티 자작은 필립 공자의 외조부였습니다. 도련님께서는 공자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제물로 힐튼 가문에 붙었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장례식장에서 필립은 친아버지까지 저격했다. 이미 가문을 완전히 등지기로 마음먹은 거야.”
‘이후 힐튼 가문이 로이드 가문을 무너트리면 자신이 허수아비 가주라도 되려는 속셈이었겠지.’ -라고 덧붙였다.
엄청난 야욕의 민낯을 목격한 시온이 할 말을 잃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캠벨이 뒤통수에 깍지를 낀 채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정말 대단하군. 역시 윗동네 나으리들이 더하다니깐.”
시온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도련님, 이제 어찌하나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신성국에서 온 대주교가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확률이 높다.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아마 그러겠지.”
“으잉? 어째서? 부단장이 너무 부정적인 거 아니야?”
“믿기는 싫지만 신성국 인사들도 힐튼 가문에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 김에 확실하게 파악하기로 했다.
놈들이 어디까지 수를 두었는지.
새벽 2시.
안드레에게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으라 일러두고 나와 시온, 그리고 캠벨은 저택 지붕에 안착했다.
대문으로 안 나오고 몰래 나온 이유는 혹시 모를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골목에는 낯선 사내들이 안드레의 집 주변에 매복한 채 유심히 이쪽저쪽을 살피고 있었다.
딱 봐도 힐튼 가문에서 심어놓은 감시역이었다.
-부단장 어떻게 할까? 죽여?
-아니. 몰래 통과한다.
북부에서 배운 수신호로 무언의 의사소통을 나눈 뒤 지붕을 넘나들며 빠르게 이동했다.
나를 포함 전원이 익스퍼트의 고수였기에 속도는 그야말로 날다람쥐 같았다.
어느새 수도를 가로지른 우리는 단 한 명의 경비병에게도 들키지 않고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찰리 힐튼이 머무는 저택이었다.
‘어마어마하군.’
무슨 자기가 왕도 아니고.
왕궁보다 고급진 자재를 사용한 저택.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대문 앞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병사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대기.
수신호로 정지를 명하고 수풀로 숨었다.
그리고는 드루이드 스킬을 시전했다.
[라이프 컨트롤] [시야 공유] [테이밍]저번에 레베카 왕녀를 염탐했을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쥐 한 마리를 길들여서 대저택 구석구석을 누볐다.
낯선 길인만큼 처음에는 조금 헤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한 방을 찾아냈다.
천장을 통해 방안으로 침입했더니 안에는 수정구슬 하나와 두 명의 사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명은 찰리 힐튼, 다른 한 명은 필립 로이드였다.
수정구슬에는 한 남자의 모습이 비쳤는데 찰리와 붕어빵처럼 닮은 게 딱 봐도 데이비드 힐튼 백작임을 알았다.
-제법 성과를 거두었구나.
“아버지 말씀대로입니다. 이제 신성국에서 미리 포섭해둔 대주교가 헤논을 악마 씌인 자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끝입니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거라.
“물론입니다. 듣기로는 이단심문관이 세븐 스타 출신 요한이라고 했으니 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사자 앞 고양이 신세일 뿐입니다.”
두 부자의 대화에 필립이 끼어들었다.
“저기···백작님.”
-응? 너는 누구였지?
“저 필립입니다. 헤헤.”
백작은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고 그럴수록 필립은 더욱 손을 비비며 허리를 굽혔다.
그 비굴한 모습이 아까 왕궁에서 나를 매도하던 이복형의 모습이 맞나 싶었다.
“저···헤논 일이 마무리되면···”
-알고 있다. 차기 로이드 가문의 가주는 너다. 잘 부탁하네. 로이드 백작.
“감사합니다!!”
백작이란 단어에 필립의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필립은 보지 못했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찰리의 경멸스러운 표정을.
‘볼 건 대충 다 봤군.’
쥐를 귀환시켜서 테이밍을 풀었다.
다시 집으로 귀환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설명하자 시온이 분개했다.
“정말이었군요. 필립은 정말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었습니다.”
“부단장, 그보다 나는 그 요한이란 성기사가 신경 쓰이는데? 그 사람 이길 수 있겠어?”
“설득해봐야겠지.”
“아무리 설득해도 팔은 안으로 굽어. 대주교 말을 더 믿을 거 아녀?”
캠벨의 말이 맞았다.
요한의 성격은 모르지만 이야기만 들어봤을 때는 완전히 돌아선 듯했다.
고심에 잠겼던 차에, 시온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요한이 세븐 스타라고 했으니 같은 세븐 스타끼리는 알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정보를 얻어보면 어떨까요?”
“!!!”
묘안이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고맙다. 덕분에 좋은 타개책을 찾았어.”
잘했다는 의미로 시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볼이 미미하게 상기된 것 같지만 아마도 착각이겠지.
어쨌든 현재 나는 세 명의 세븐 스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두고 있다.
로이드 후작과는 부자 관계.
홍염의 카리나와는 후견인 관계.
순례자 톰과는 선후배 관계.
이 셋에게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