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17)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17화(117/200)
15장 모함 : 궁금한 망나니
마스터란 무엇일까.
전에도 설명했다시피 아르니아 대륙에서는 무인의 경지를 비기너-유저-익스퍼트-마스터 순으로 선을 그어 구분한다.
그러나 이는 통상적인 분류일 뿐, 구체적으로 따지면 마스터의 범위는 굉장히 두루뭉술한데다가 광범위하다.
분명한 건 단순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들고 무조건 재능과 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만큼 마스터급 고수의 파괴력은 상식을 넘어선 수준의 천외천이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이라고 보면 된다.
당장 과거 북부에서 싸웠던 질투 니플헤임과 사령관 카리나도 지형지물을 바꿔버릴 정도의 힘을 지니지 않았던가.
요한 또한 그녀들에게 밀리지 않는 고수였기에 정면승부에서 그를 이길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했다.
아무리 내가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둔 고수라도 말이다.
그만큼 익스퍼트와 마스터 사이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만약 요한이 진정으로 나를 죽이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면 어땠을까.
승부는 일방적으로 흐르고 나는 그의 털끝조차 스치지 못했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요한의 목적이 날 죽이는 게 아니라 심문 전 제압이었기에 그 틈을 잘 노렸다.
한마디로 운이 억세게 좋았다.
완전히 방심한 상태였던 요한에게 생소한 드루이드 스킬과 천마검술과 고대의 유물을 섞어 기습했고.
아기용 코코의 도움까지 받아 일격필살을 날렸기에 승리했던 전투였다.
그래도 어려웠다.
다전제로 싸웠다면 열 판 중에 한 판 이길까 말까한 싸움에서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꿇고 그 한 판을 건져냈다.
“집배원이라니. 영문 모를 말이군.”
요한은 내가 이마에 붙여준 편지봉투를 손으로 짚었다.
봉투를 열자마자 낡은 묵주 하나가 딸려나온다.
손때 가득한 묵주를 본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알아보시겠습니까?”
“모를 수가 없지. 카리나에게 목숨 빚을 지고 그 답례로 선물한 성물이다.”
요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서 네가 이걸 가지고 있지? 설마 카리나에게 무슨 해라도 끼친 거냐?”
“진짜 의심병 환자입니까? 딱 말할게요. 제가 카리나를 어떻게 할 실력이 된다고 봅니까? 그녀 성격에 만만하게 당해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해주자 완전히 납득해버린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그럴 리 없지.”
“그녀는 제 후견인입니다.”
“···후견인?”
“네.”
후견인이라는 말에 요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고보니 너는 고든의 아들 아닌가? 카리나의 후견인이면 세븐 스타를 둘이나 알고 지낸다는 말이냐?”
“그뿐만이 아니죠. 당신에게 결정타를 먹인 이 리볼버를 누구한테 받은 것 같나요?”
권총의 방아쇠 부분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빙빙 돌렸다.
요한의 얼굴에 당혹감이 짙어졌다.
“설마···톰과도 인연이 있나?”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서 묻지요. 만약 제가 악마빙의자라면 과연 세븐 스타 셋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요?”
세븐스타들은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게 아니다.
물론 요한처럼 특수 케이스는 있지만 경지에 오른 자들은 기본적으로 시야가 넓고 견문이 깊다.
결국 요점은 내가 정말로 악마에 씌인 자라면 세븐스타 셋이 전부 못 알아차렸겠냐는 말이었다.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요한도 알고 있기에 볼을 긁적였다.
“아직도 의심되십니까? 그러면 카리나가 쓴 편지도 있으니 읽어보시죠.”
봉투에 동봉되어있던 편지를 펼친 요한이 글자를 쭉 읽어내렸다.
글을 읽는 요한의 얼굴색이 붉은색과 푸른색을 왔다갔다하면서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했다.
진땀까지 뻘뻘 흘리길래 뭐라고 쓰여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내 얼굴에서 생각이 드러났는지 편지를 다 읽은 요한이 편지를 건넸다.
“잘 읽었다. 카리나가 쓴 게 확실하군. 절대 위조가 아니다.”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언년이야? 언년이 너 꼬셨길래 또 헤벌레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주변 지인들 말 맹신하는 버릇 좀 고치라고. 네가 맹신해도 될 사람은 나뿐이야. 알았어? 특히 여자는 더더욱 나뿐이고.
헤논에게서 이야기 잘 들었다. 아주 삽질 제대로 하고 있더라? 얘가 악마에 빙의된 애였으면 죽였어도 내가 진작에 죽였어. 이 멍충아.
혹시라도 또 무식한 짓거리 할까봐 묵주 보낸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만약 이걸 보고도 헤논의 머리털 한 올이라도 건드리면 직접 칼 들고 신성국 찾아가서 사생결단 낼 테니 그리 알어.
그리고 이 밑으로는 내가 너한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인데, 이 씨X XXX XXXX XXXX XXXXX 개XXX XX XXX XX 병XXX XXX XXX!!!!
시간 날 때 북부로 놀러와. 맛있는 술 챙겨오는 거 잊지 말고.]
오우야.
격한 표현이네.
요한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위조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카리나는 이렇게 쓰고도 남을 여자다.
쿵!
철갑을 입은 요한이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드디어 오해가 풀린 걸까.
한시름 놓았다.
“카리나의 전언이 아니라도 싸우면서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사용하는 기술이 하나같이 자연과 관련되어 있더군. 마계에서 넘어온 악마에게 아르니아 대륙이 이 정도까지 힘을 빌려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요한의 말을 듣다 보니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묻거라.”
“애초에 신성국에서 어떤 소문이 돌았길래 악마를 잡은 제가 오히려 악마에 씌인 자가 되었습니까?”
단순히 프란시스 대주교가 개인적으로 요한을 움직였다기엔 그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다.
아무리 신성국의 대주교라 해도 최후의 전투까지 참여한 세븐 스타를 멋대로 움직이는 게 신성국에서 가능한 일인가.
“음.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그저 성녀님의 명령을 내렸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따랐을 뿐이다.”
“성녀님 말인가요?”
“그렇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성녀라면 요한이라도 충분히 존경심을 표하고 명령을 수행할 만하다.
그렇다면 의문은 어째서 성녀가 힐튼 가문의 뒷수작에 같이 동조했냐는 말이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성녀 또한 요한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무작정 믿을 정도로 팔랑귀일 경우.
그러나 이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나라의 지도자 격인 성녀가 이런 성격이었다면 신성국은 진작에 무슨 사달이 났을 것이다.
아니면···
‘성녀 또한 속세에 찌든 타락한 여자라는 의미겠지.’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보통 성녀라고 하면 신성국 전체를 좌지우지할만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지 않나.
막말로 신성국의 수장인 교황과 맞먹는 권력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녀님이 그릇된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나도 많이 혼란스럽다.”
요한은 정말로 헷갈리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슬쩍 떠보았다.
“혹시···성녀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니.”
“평소에 성녀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민망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녀님 그 자체시다. 너무나 착하시고 선하시고 교인들의 슬픔을 끌어안고 기쁨을 나눠주시는 선녀시지. 신성국을 비춰주시는 빛이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금과 같은 분이시다.”
이건 안 된다.
여기서 더 떠보다가는 또 싸울 수도 있겠다.
그만큼 성녀에 대한 요한의 믿음은 견고햇다.
지금으로서는 불확실한 성녀는 제쳐놓고 확실하게 나를 노렸던 프란시스 대주교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제가 볼 때는 말입니다. 이 명령은 성녀가 아니라 프란시스 대주교가 꾸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리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귓속말로 내 계획을 속삭여줬다.
놀란 요한의 동공이 흔들린다.
주저하는 그에게 카리나의 묵주를 보여줬더니 결국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시 돌아와서.
폰타노 왕궁.
헤논이 궁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요한이 따라나간 지 벌써 두 시간 째.
레베카 왕녀를 포함한 궁의 모든 귀족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섣불리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부마 로이드 자작님과 성기사 요한님 입장하십니다!”
레베카 왕녀가 벌떡 일어났다.
모두가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
요한은 허벅지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옆에서 내가 어깨에 팔을 둘러맨 채 부축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둘 사이에 전투가 있었고 내가 이긴 것처럼 보였다.
이 모습을 본 귀족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지금 로이드 자작이 성기사 요한을 이긴 거야?”
“말도 안 돼. 요한은 세븐 스타에 마스터급의 절대 강자야.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럴 일은 없어.”
“하지만 저걸 보라고. 다리를 크게 다쳤잖아. 저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길 가다가 넘어졌나?”
“어휴.”
어처구니 없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요한의 패배는 현실성 없는 결과였다.
반면에 레베카 왕녀는 결과는 듣지도 않았는데 이미 감격한 표정이었다.
나라면 해낼 줄 알았다는 표정.
날 믿어주는 마음이 고마운 여자다.
반면에 요한의 패배는 상정조차 안 한 프란시스 대주교가 떨리는 목소리로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님,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별일 아니다. 그보다 헤논은 결백하다. 심문했는데 악마에 씌였기는커녕 오히려 악마를 잡은 대륙의 영웅이더군.”
판결이 내렸다.
레베카 왕녀가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야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는지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그녀가 황급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권속이 된 아놀드 공작이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렇다면 부마 로이드 자작은 진정 악마살해자였군요. 레베카 왕녀님의 옆자리를 지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입니다. 모든 건 왕국의 홍복이옵니다.”
안드레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섰다.
“레베카 왕녀님 만세!!!”
목청 좋은 목소리로 만세 삼창을 부르자 다른 귀족들도 눈치껏 안드레를 따라했다.
“만세!!”
“악마살해자 만세!!”
“만세!!”
“엘든 왕국 만세!!”
“만세!!”
왕궁이 뒤흔들렸다.
대세는 완전히 넘어왔다.
방금 만세삼창을 외친 귀족들은 반제국파 귀족뿐만이 아니었다.
왕실 종친들을 포함해서 친제국파 귀족들까지 모두 일조했다.
유일하게 가만히 있는 사람은 프란시스 대주교와 찰리, 그리고 필립뿐이었다.
찰리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고 필립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세븐 스타인 요한이 질 거라고는 상정조차 하지 않던 프란시스 대주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분을 터트렸다.
“요한님! 심문이 제대로 된 게 맞습니까? 지금 보니까 서로 싸우다가 져서 심문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끝난 게 아니신지.”
프란시스 대주교의 의심에 요한이 얼굴을 굳혔다.
다리를 다쳤어도 마스터는 마스터다.
능력 없는 프란시스 대주교 상대로는 숨 막힐듯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프란시스. 감히 내 판단을 믿지 못하는 건가.”
정색한 채로 딱딱 끊어 말한다.
대주교는 본능적으로 선을 넘었음을 감지했다.
“그게 아니오라···”
“대주교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나는 신성국 최후의 검이다. 그런 내가 판단하기에 헤논은 결단코 악마빙의자가 아니다.”
그렇다.
요한이 옹고집쟁이라 그렇지, 이름값을 내세우면 대륙에서 정면으로 맞설만한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자 프란시스가 이번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벌컥 화를 냈다.
“도대체 무슨 사특한 수를 썼길래 요한님까지 끌어들인 것이냐?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왕족과 귀족들을 네 편으로 끌어왔느냐?”
“대주교! 말조심하세요!”
레베카가 소리를 질렀다.
판결이 안 났다면 모를까 결백하다는 판정이 내린 상황에서 프란시스의 무례를 더는 참아줄 이유가 없다.
반면에 나는 지나칠 정도로 태연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프란시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모습에서 불길함을 느꼈을까.
대주교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턱!
등이 벽에 닿으며 더는 도망칠 곳이 없어졌다.
“왜 이러는 겁니까?”
“당황할 필요 없다. 그저 썼던 물건을 돌려주러 왔을 뿐이니.”
프란시스 대주교의 손을 잡고 거기에 성물을 쥐여주었다.
아까 전 판별에 썼던 저주 어린 성물 ‘태양의 기쁨’이었다.
“크흠흠! 고맙군요.”
“고맙다니. 지금부터 시작인데.”
“무슨 뜻인지?”
“성물을 작동시켜 봐라.”
내 말뜻을 못 알아들은 대주교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물을 작동시키라니?”
“말 그대로다. 악마살해자인 나를 악마에 씌인 자로 모함한 너를 믿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너 또한 나처럼 심문을 받도록.”
원래 사람은 역지사지라고.
했던 대로 똑같이 당해봐야 그 심정을 안다.
고통의 저주가 내포된 성물을 작동시킨 프란시스 대주교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나처럼 상태이상 면역이어서 태연할까.
아니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통을 참을까.
진심으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