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1)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21화(121/200)
15장 모함 : 시도한 망나니
리처드 대장로에게 선동당한 엘프족이 몰티령을 침범했을 때.
엘프 전사 중에는 세례식을 받고 유저에서 익스퍼트가 된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익스퍼트가 된 그들의 마나소드는 무척이나 불안정했고 마나소드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반면에 여기 있는 고수들은 모두 천부적인 재능이나 피나는 노력, 혹은 그 둘이 합쳐져서 익스퍼트에 올랐다.
하물며 가장 경지가 낮은 찰리 힐튼까지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다양한 색깔의 마나소드가 장내를 수놓으며 살벌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헤논 로이드. 헤논 로이드. 헤논 로이드.”
찰리 힐튼 백작이 지가 무슨 저승사자도 아닌데 내 이름을 세 번이나 읊조린다.
“그런다고 안 죽는다. 사람은 칼로 베어야 죽어.”
“뚱딴지 같은 소리군. 아무튼 주변에 이렇게 고수가 많을 줄은 몰랐다. 하물며 데리고 다녔던 하녀와 덩치까지 익스퍼트였다니.”
“네가 보는 눈이 없는 거겠지. 네가 상대할 인물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조차 안 하는 머저리고 말이야.”
자비 없는 팩트폭행에 찰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건방진 놈! 죽여주겠다!!”
찰리의 돌격이 트리거가 되었을까.
이를 시작으로 내 진영과 힐튼 진영이 충돌했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드넓은 알현실 곳곳에서 칼부림이 벌어진다.
고수들이라 눈썰미가 좋아서인지 각자 자기에게 맞는 짝을 찾는 분위기였다.
가장 먼저 호넷 백작과 힐튼 백작.
둘 다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둔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랜 시간 반목해왔던 둘은 이때다 싶어 대치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가끔 네 면상을 볼 때마다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하동문이다.”
호넷 백작과 힐튼 백작이 무아지경으로 싸우기 시작했고.
힐튼 가의 다섯 손가락도 내 동료와 각각 대치했다.
우선 엄지와 캠벨과 시온 콤비.
척 봐도 강해보이는 쌍도끼 전사를 앞에 두고 비슷한 체격인 캠벨이 나섰다.
“이거야 원. 사람을 죽이러 왔더니 웬 짐승이 앞에 있군.”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몬스터라니. 이것 참 신기한걸?”
캠벨이 기세 좋게 되받아치자 엄지의 이마에 혈관이 뚜둑 튀어나온다.
“방금 발언으로 네가 편히 죽을 길은 사라졌다. 제발 죽여달라고 빌 때까지 사지를 잘라주···”
스핏!!
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빗살같이 날아온 단도가 그의 볼을 스쳤다.
덩치 좋은 캠벨의 등 뒤에 은엄폐했던 시온의 일격.
엄지는 고개만 우측으로 기울여 가볍게 피해냈다.
그럼에도 흘러내리는 한줄기 선혈.
엄지가 혀로 할짝 핥아먹는다.
미우나고우나 매번 같이 훈련해서 합이 잘 맞는 시온과 캠벨 콤비를 바라보는 엄지의 미소가 진해졌다.
“크크큭, 지루하진 않겠어.”
한편, 다른 쪽에서도 각자 상대를 잡았다.
검지와 라칸, 그리고 중지와 에이든.
서로가 맞수임을 확신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민 없이 검을 나눈다.
여전사 간의 매치도 잡혔다.
다섯 손가락의 홍일점인 약지는 화장 진한 얼굴로 연신 낄낄댔다.
“세상에! 엘프잖아? 귀쟁이의 살을 자르면 어떤 느낌이 날까? 궁금해서 미치겠어!”
“만나는 인간마다 하나같이 천박하고 별종이군. 미간에 화살을 꽂아주지.”
거리를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꿇은 아멜리아가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시위 하나에 무려 세 개의 화살이 걸려있었고 모든 화살촉에는 선명한 녹빛 마나가 서려 있었다.
쾅! 콰쾅! 콰콰쾅!
알현실이 난장판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느 쪽도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 실력이 엇비슷했다.
단 한군데를 제외하곤 말이다.
“헤논, 예전부터 너를 죽이고 싶었다. 오늘이야말로 허풍뿐인 가면을 벗겨주마.”
찰리가 살기를 뿌려대며 내 앞에 섰다.
그 모습이 마치 호랑이 앞에서 꼬리를 바짝 세운 괭이 새끼 같았다.
이 녀석은 대체 뭘 믿고 나한테 이렇게 자존심을 세우는 걸까.
빵집에서도 객기 부리다 혼났고 귀족들이 다 보는 앞에서 멱살잡이까지 당했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이 제대로 싸우면 나와 해볼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나는 성기사 요한과 싸워서도 상처를 입혔어. 네가 상대가 될 거라고 보냐?”
“요한님이 네놈의 세 치 혀에 넘어가서 스스로 상처를 만드셨겠지. 다른 놈은 몰라도 나는 거기에 안 넘어간다.”
사람은 옆사람이 예상보다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면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거나 결과 자체를 부정한다.
특히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찰리는 부마자리를 빼앗긴 데다가 연달아 내게 당했던 굴욕을 이번 기회에 청산하려고 눈이 벌게져 있었다.
“마음대로 공격해봐. 그러면 내가 거둔 위명들이 허울뿐이었는지 진짜인지 실감이 나겠지.”
“어디서 여유로운 척이냐!!”
찰리가 옅은 마나소드가 담긴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 기세가 사뭇 맹렬했으나 내 눈에는 하찮아 보일 뿐이었다.
-오른쪽 갔다가 왼쪽
-정중앙
-허리쪽 사각 공격···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이 녀석에는 천마게이션도 사치다.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드루이드의 직감은 보통의 검사보다도 훨씬 예민한 육감을 지니게 해줬고, 찰리 같은 영약빨 애송이 검은 내 털끝도 스치지 못했다.
“무슨 잡수를 부리는 거냐!”
“글쎄. 네놈은 딱히 잡수를 부릴만한 상대도 아니다.”
수직으로 내리긋는 공격을 몸을 비틀어서 슬쩍 피한 뒤 정강이를 걷어차줬다.
빠악!!
“끄헉!!”
발끝으로 정강이 걷어차인 건 맞아본 사람만 안다.
진짜 눈물 쏙 빠지도록 아프다.
찰리가 약한 모습을 숨기고 싶은지 억지로 통증을 참으며 저도 모르게 깽깽이발로 물러났다.
“아프냐?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육시럴 놈이!!”
찰리가 다시 쇄도한다.
그런 녀석을 위해 비장의 스킬을 사용해줬다.
“비기! 때린데 또 때리기!!”
빠가각!!
정확하게 때린 정강이 쪽을 다시 한 번 걷어차주자 찰리는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렸는지 방방 뛰며 좋아죽는다.
“이런 개자식이!”
“비기! 때린데 때린데 또 때리기!”
“끄아아악!!”
벌써 3연타째.
맞은 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찰리가 악다구니를 써댄다.
“정면승부가 안 되니 자꾸만 치졸한 수만 쓰는구나! 어디 한 번 제대로 걸려봐라. 아주 작살을 내주마!”
“비기! 때린데 때린데 때린데 또 때리···”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사이에 뇌에 정강이 타격이 학습된 찰리가 조건반사적으로 오른쪽 정강이를 뒤로 스윽 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고 고개가 아래로 기운다.
“···지 않고 이번엔 뒤통수 후리기!!”
뻐억!!
손바닥으로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때리자 찰리가 바닥에 대자로 엎드리며 납작 쥐포가 되었다.
“커헉!”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져서 코가 뭉개진 그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간신히 일어났다.
“이런 치사한 놈을 보았나! 진지하게 싸우란 말이다!!”
벌컥 화를 내는 찰리.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숨쉬기가 불편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내가 놈의 앞머리를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똑바로 봐.”
그제야 찰리는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나는지 동공에 두려움이 번졌다.
“진지하게 하라고? 진짜로 했으면 넌 1분 안에 목이 날아갔어.”
농담이 아니다.
비록 나는 익스퍼트에 있다지만 일반적인 익스퍼트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
드루이드의 능력도 있고 고대의 유물도 있고 전투를 보조할 아기용도 있다.
천마검까지 활성화하고 도토리를 섭취한 채 전력투구하면 약한 축에 속하는 소드마스터와도 대략 엇비슷하게 전투를 이끌어나갈 자신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영약빨로 겨우 익스퍼트의 문턱을 넘은 찰리는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지금도 봐라.
이미 나는 천마검을 검집에 넣은지 오래다.
맨손으로 찰리의 전심전력과 싸우고 있었던 거다.
“제기랄.”
욕설을 걸쭉하게 내뱉은 찰리가 앞머리를 잡은 내 손을 손등으로 탁 쳐내고 어디론가 향해 달렸다.
그곳은 바로 왕좌에 앉아있는 레베카 쪽이었다.
뒤늦게 기가 살아난 찰리가 광소하며 지껄였다.
“어차피 왕만 잡으면 끝나는 승부다! 네놈이 강해 봐야 결국 머리를 써야 한다 이 말이야.”
찰리의 머릿속이 훤했다.
힘으로는 안 되니까 치사하게 레베카를 인질 삼아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속셈이겠지.
허나 후작가의 망나니로 불리던 내가 그 얄팍한 수조차 예상을 못했을까.
순보를 쓰면 따라갈 수는 있지만 일부러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갔다.
“레베카, 이제부터 너는 인질이···커헉!!”
레베카를 덮치려던 찰리가 그녀의 발차기에 아래턱을 얻어맞고 나동그라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찰리가 아픈 부위를 손으로 부여잡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저 허약한 여자가 내 공격에 반응했지?”
레베카는 무려 알파뱀파이어다.
저번 광란 상태에서 무려 유저 최상위에 준하는 움직임을 보여줬을 정도니 방심한 찰리에게 한 방 먹인 건 쉬운 일이었다.
“당신이 알 필요는 없군요.”
짜아악!!
레베카의 불꽃 싸대기가 찰리의 고개를 돌렸다.
새빨간 손자국이 찰리의 볼에 선명히 새겨지고 금세 부어올랐다.
“당신네 가문은 충성 맹세를 해놓고도 왕실을 우롱하고 능멸했습니다. 그러니 왕실도 더는 당신들을 존중하지 않겠습니다.”
“뭣도 모르는 년이 감히···크학!!”
푹!
욕설을 퍼부으며 레베카를 공격하려던 찰리의 복부에 금속의 날붙이가 쑥 튀어나왔다.
천마검을 뽑아든 내가 등 뒤에서 그에게 칼을 찔러넣은 것이다.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던 찰리가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망할 연놈들.”
쓰러진 찰리.
목에 맥박을 대봤더니 아직 호흡이 미약하게 남아있다.
혹시 몰라서 무기를 챙겨온 레베카가 칼을 뽑아 찰리를 마무리하려 했다.
“잠깐.”
그런 레베카를 내가 말렸다.
“무슨 일이죠?”
“아까 계획한 게 있잖아.”
전투 직전 진행했던 회의 결과, 찰리는 살려두기로 했었다.
왜냐하면 힐튼 가문을 온전히 흡수하려면 직계 생존자가 최소 한 명은 필요해서다.
데이비드 힐튼은 머리도 잘 돌아가고 약아빠진 자이니 확실히 처리하고 위협조차 안 되는 찰리를 살려주는 게 우리 쪽에 이득이었다.
“이 정도 부상이면 곧 죽겠군요.”
“괜찮아. 너에게는 부상자도 살릴 수 있는 스킬이 있잖아.”
난색을 표하는 레베카.
“굳이 이 벌레를 제 권속으로 삼아야 할까요? 정말 싫은데.”
“그것이 국왕이 짊어져야 할 무게다.”
“휴, 어쩔 수 없네요.”
결국 한숨을 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찰리에게 댄다.
피를 빠는 소리와 함께 찰리의 눈에 붉은 귀기가 서렸고 동시에 아랫배에 뚫린 구멍도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정신을 차린 찰리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새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야! 내 몸이 어떻게 된 거야! 목이 말라! 목이 마르다고!”
“야, 조용히 해.”
빠각!!!
광란에 빠지려는 찰리의 뒤통수를 강하게 치자 놈이 돌맞은 개구리처럼 까무러친다.
한 건 수월하게 해결했고.
여유가 생기자 다른 쪽 싸움을 주시했다.
전사들은 서로 정신없이 싸우느라 이쪽이 승부가 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고전하는 쪽은 역시나 엄지를 상대하는 시온 캠벨 콤비였다.
2대1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를 목전에 둔 엄지의 매서운 쌍도끼 세례에 캠벨과 시온은 연신 애를 먹었다.
“좀 제대로 막아보시죠.”
“답답하면 네가 막던가! 공격 좀 먹여봐! 유효타가 하나도 없으니까 저놈이 활개치잖아.”
“으핫하하하!! 그리 투닥댈 필요 없다. 사이좋게 숨통을 끊어주마.”
여기부터 개입해야겠군.
드루이드 스킬을 써서 몸부터 속박했다.
[우드 컨트롤] [바인드]“응?”
몸이 묶이자 당황하는 엄지.
그새를 놓칠 시온과 캠벨이 아니었다.
“으랴아아!!”
캠벨의 바스타드 소드는 막아냈으나 옆구리에 시온의 단도가 박힌다.
“이런 개자식이! 어떤 놈이야!!”
“나다.”
[윈드 컨트롤] [순보] [헤이스트]광분하는 엄지의 옆에 어느새 내 신형이 나타났다.
코앞에 나타나자 놀랐는지 엄지의 콧구멍이 벌름대는 게 선명히 드러났다.
뒤늦게 대처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천마검이 에메랄드 빛을 흩뿌렸고.
엄지의 심장에 검이 관통됐다.
“앗! 대장!”
“엄지!”
이를 목격한 다른 손가락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이들도 각자 상대를 담당하느라 도와줄 여력이 없다.
자유를 되찾은 시온과 캠벨, 내가 다른 싸움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라칸을 상대하던 검지의 호흡이 끊겼고.
에이든을 상대하던 중지 또한 등에 깊은 검상을 입은 채 절명했다.
“이런, 망했네?”
홀로 포위당한 약지가 분투하며 사방으로 비수를 날려댔으나 나와 시온, 캠벨이 연달아 막아냈고.
결국 손발이 어지러워진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정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푹!!
아멜리아는 장담했던 대로 정확히 미간에 화살을 꽂아주었다.
약지를 마지막으로 모든 손가락이 쓰러졌고 남은 자는 호넷 백작과 싸우고 있던 힐튼 백작과 싸움 내내 뒷짐을 지던 정체불명의 흑의인이었다.
호넷과 힐튼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충 정리가 나자 검을 맞대는 걸 그만두고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다 끝났다. 힐튼 백작.”
앞으로 나서서 결과를 통보했다.
설마 다섯 손가락이 모두 당할지 상상조차 못한 힐튼 백작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동안 비싼 밥과 돈을 처먹어놓고 1인분조차 못하는 한심한 놈들.”
힐튼 백작이 많이 답답했는지 뒤에 있던 흑의인에게 일갈한다.
“우르카님! 뭐라도 해보시지요. 아까부터 왜 가만히 있습니까?”
나도 우르카라 불리는 저놈이 궁금했다.
싸움이 벌어지는 내내 남일이라면서 사태를 관망하던 놈.
“흘흘흘, 본인이 견적을 잘못 내서 패배해놓고 누구에게 성을 내십니까?”
“내가 죽으면 당신도 죽어. 정신 차려!”
“글쎄요. 여기가 제 무덤은 아닐 것 같군요. 흘흘.”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우리를 향해 양손바닥을 내보인 흑의인이 이 사태에 관여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해보였다.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손절당한 힐튼 백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래서 제국 잡것들은 믿는 게 아니었는데.”
제국 출신이었는가.
엘프를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신성국을 이용해 나를 모함하고 종래에는 제국과도 손을 잡다니.
힐튼을 바라보는 레베카의 눈에 경멸이 스며들었다.
“최악 중의 최악이군요. 죽음을 달게 받으세요.”
데이비드에게 모두가 달려들었다.
시온, 캠벨, 호넷, 에이든, 라칸, 아멜리아까지.
일대일로 정정당당?
힐튼에게는 과분한 사치다.
다굴을 맞은 데이비드는 몇 합 버티지도 못하고 목이 잘렸다.
힐튼 가문의 허무한 몰락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우르카와 마주보고 있었는데 혹시나 다른 뒷수작을 부리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놈은 정말로 데이비드가 죽을 때까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죽고 우르카 하나만 남은 상황.
흑의인을 원형으로 둥글게 둘러싼 채 포위했다.
“우르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흘흘흘.”
“한 가지만 묻지.”
“두 가지 물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널 살려줄 것 같나?”
근본적인 물음이다.
제국에서 왔든 어쨌든 야심한 시각에 왕궁으로 쳐들어온 역도 무리의 동행자다.
고이 보내줄 리가 없었다.
“흘흘흘, 아마 죽이겠지요.”
우리가 죽일 걸 알았음에도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힐튼 백작이 죽는 걸 방관했다라.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흘흘, 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죽이려고 시도하겠지만 오늘 여기서 죽는 건 당신들입니다.”
펄럭!!
우르카가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후드를 벗어던지고 가면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본모습을 본 모두가 놀랐다.
“리치?”
그랬다.
우르카는 해골로 된 몸에 로브만 앙상하게 걸치고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흑염만 고요히 타오른다.
제국에서 왔다는 인사가 고위 몬스터이고 심지어 흑마법사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힐튼도 갈 데까지 갔군. 리치와 손을 잡다니.”
“흘흘흘.”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던 우르카가 손짓을 하자 손끝에서 흑색 귀기가 빼꼼 나왔다.
뱀처럼 꿈틀대던 귀기는 공기 중을 미끄러져 나가더니 이내 쓰러져있던 다섯 손가락과 힐튼 백작의 몸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숨이 끊어진 전사들이 시체 상태로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심지어 목이 잘렸던 힐튼 백작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머리통이 몸과 붙어버리는 괴기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네크로맨서였는가. 그래서 힐튼 백작이 죽도록 방치했군. 시체가 되어야 네가 편히 부릴 수 있으니까.”
“흘흘흘, 과연 머리가 비상하시군요.”
리치가 한 발자국을 내디디며 정중한 자세로 인사했다.
“헤논 로이드, 세븐스타 고든 로이드의 아들. 사실 저는 황혼교도입니다. 바알님께 영광을.”
우르카가 진짜 정체를 밝히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반면에 나는 태연했는데, 이런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우르카의 텅 빈 동공에서 빛이 번쩍였다.
“놀라지 않는군요.”
“당연하지. 이 시기에 너 정도 되는 리치가 황혼교가 아니었다면 더 놀랐을 거다.”
“흘흘흘.”
“오히려 네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군. 단순히 엘든 왕국에 볼일이 있었나? 아니면 내가 목표였나.”
내 질문에 우르카가 대답했다.
“원래는 엘든 왕국 해체가 목표였습니다만, 훌륭한 농부는 낫질 한 번에 여러 개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법이지요. 겸사겸사 당신의 목을 들고 가면 나의 주인님 ‘오만’께서 좋아하실 겁니다.”
오만의 수하였는가.
그러고보니 풍기는 기운 자체가 후작령에서 만났던 사령술사 라울과 비슷하다.
아마 라울도 오만 쪽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우릴 상대로 정체를 공개해도 괜찮겠나?”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해가 뜨면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시체 상태의 다섯 손가락과 목 없는 힐튼 백작이 우르카를 호위하는 진형을 만들었다.
경험이 풍부한 용병단장 라칸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뗐다.
“네가 리치인 사실이 놀랍긴 하나, 그래봐야 우리가 수적으로 우세다. 심지어 언데드가 되었으니 더 약해졌겠지.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여라.”
“흘흘흘.”
가볍게 웃은 우르카가 손짓하자 데스나이트가 된 힐튼 세력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으랴아아!! 뭐든 쳐부숴 주마!”
캠벨이 기세좋게 달려들어 언데드가 된 엄지의 팔을 절단했다.
한쪽 팔이 잘린 엄지.
그러나 흑색 기운이 퍼지더니 그의 팔이 다시 붙어버렸다.
“어라?”
다른 쪽도 마찬가지.
칼로 심장을 찔러도.
발목을 도려내도.
심지어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두 조각을 내버려도 기어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흘흘흘, 데스나이트의 무서운 점을 이제야 아셨습니까? 여러분의 하찮은 마나소드로는 제 장난감을 못 부숩니다.”
자신이 있을 만했다.
일격이 전혀 안 통한다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 쪽이다.
심지어 데스나이트들은 생전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원한을 불태우며 기운이 강해졌다.
[헤논···죽이겠다···] [빌어먹을 로이드 가문···] [너희도···죽어라···]상황이 심상찮다는 걸 깨달은 동료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굳어졌다.
시온과 캠벨이 주춤였고.
라칸과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아멜리아도 데스나이트에게 화살을 몇 발 쏘아보더니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편에서 이를 지켜보던 레베카의 안색도 덩달아 창백해졌다.
유일하게 침착한 건 나뿐이었다.
천마검을 뽑은 다음 단전에서 이원마나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에메랄드 빛 기운이 주변을 환히 밝혔다.
“흘흘흘, 꺾이지 않는 마음. 그것만큼은 칭찬해주고 싶군요. 별 소용은 없겠지만요.”
“과연 그럴까.”
동료들이 데스나이트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가만히 있던 내가 처음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눈알을 뒤집은 힐튼 백작이 다가오다가 내 칼질 한 번에 목이 날아갔다.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창.
[패시브 스킬 발동] [파마의 힘이 적용됩니다.]자연의 정기는 악마기를 물리친다.
신성력과는 다르지만 그 효과는 비슷했다.
목이 잘린 데이비드 힐튼이 털썩 쓰러졌다.
“학습능력이 없으시군요. 그런 물리적인 공격은 안 통한다고 몇 번이나···”
우르카가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을 찔리고 베여도 무한으로 신체를 수복하던 데스나이트가.
내 칼질 한 번에 영원히 침묵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