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2)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22화(122/200)
15장 모함 : 처형한 망나니
네크로맨서, 즉 사령술사.
죽은 자의 영혼을 시체에 잡아두어 조종하는 역천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일정 부분 죽음에서 자유롭다는 사실 때문에 네크로맨서들은 항상 두려움의 존재로 비춰졌다.
허나 자세히 살펴보면 네크로맨서도 만능은 아니었다.
우선 실력에 따라 부릴 수 있는 개체 수와 개체 종이 달랐다.
하급 네크로맨서는 일반인 몇 명을 좀비로 가볍게 부리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영혼이 시체에서 탈출하거나 시체가 부패해서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에 상급 네크로맨서로 갈수록 다룰 수 있는 망령의 수가 증가한다.
좀비뿐만이 아니라 한 단계 진화한 구울, 더 나아가서는 데스나이트나 데스킹까지 부리게 된다.
데스나이트를 부릴 정도의 네크로맨서라면 꽤 상급술사라 봐야 했다.
이 정도 사령술사가 부리는 망자들은 지능도 제법 높고 시체의 부패도 더디며 생전의 실력까지 7할 이상 갖추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르카는 아르니아 대륙을 다 뒤져봐도 손꼽히는 네크로맨서라 봐도 무방했다.
익스퍼트의 고수들을 즉석에서 데스나이트로 만들어 일으켰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는 신성력이 포함되거나 오러소드급의 강력한 파괴력이 아니면 죽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불사의 군대였다.
“으하하하!! 얌전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시지요. 여러분은 데스나이트를 잡을 수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와는 달리 생전에 가장 강력하게 느꼈던 감정에만 사로잡힌 힐튼 백작과 다섯 손가락을 보았다.
저들이 찢어 죽일 짓을 한 건 맞지만 죽음 이후에 영혼이 농락당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천마검을 뽑고 단전에서 이원마나를 끌어올리자 눈부신 옥빛이 검신을 은은하게 감쌌다.
“우르카라고 했나? 너에게 하나 묻지.”
“살려달라는 지루한 부탁만 아니면 경청하지요.”
“황혼교도라면 일전에 로이드 영지에서 악마 단탈레온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우르카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군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 때문에 당신은 악마살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맞아. 그랬지. 여기서 문제. 악마도 처리했던 내가 과연 데스나이트를 못 죽일까?”
[순보] [헤이스트]공기를 박차자 내 신형이 쭉 늘어났다.
가장 가까운 데스나이트는 힐튼 백작.
확실하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깔끔하게 목을 잘라주었다.
[패시브 스킬] [파마의 힘 적용]자연의 정기가 녹아든 검격에 머리 잃은 몸이 더는 붙지 않고 힘없이 허물어졌다.
우르카의 텅 빈 동공에서 타오르는 안염(眼炎)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종류의 힘이 있지. 비좁은 울타리에 갇혀 네 식대로 만사를 재단하고 판단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에메랄드 빛이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고 그때마다 데스나이트가 우후죽순 쓰러졌다.
시온과 캠벨을 위시한 동료들도 내가 마지막 일격을 먹일 수 있도록 데스나이트를 붙잡아주었다.
마지막 데스나이트까지 모조리 성불하고 우르카 혼자만 남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대경실색해서 얼이 빠져버린 우르카.
이내 어떤 사실을 떠올리더니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크하하핫!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무슨 수를 쓴지는 모르겠으나 진짜로 악마살해자였군요. 그러나 거기까집니다.”
또 무슨 수가 남았나.
별 것 없어 보이는데.
“저는 리치입니다. 즉 불사의 존재죠. 제 심장과 영혼을 붙잡아두는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지 않는 한 저는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베슬은 주인님 오만께 있습니다.”
뭘 믿고 있나 했더니 겨우 그거였나.
얕팍한 생각에 웃음조차 안 나온다.
“차라리 잘 됐다.”
“뭐라고요?”
“귀가 먹었나? 잘 됐다고 했다.”
내 여유로운 태도와 입가와 맺힌 진한 미소가 허세라고 여긴 우르카가 강짜를 부린다.
“흘흘흘, 애써 태연한 척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당신은 절 영원히 죽이지 못할 것이며 결국 주인님께서 여러분을 벌하러 오실 것입니다.”
“알았으니까 저놈 양팔 좀 붙잡아.”
시온과 캠벨이 리치에게서 스태프를 빼앗고 몸을 구속했다.
옴짝달싹 못하게 된 우르카 코앞에 천마검을 갖다 댄다.
“영문을 모르겠군요.”
“보면 모르나? 이 칼로 너를 찌를 거다.”
“어리석습니다. 저는 리치. 살점과 근육과 신경이 썩고 뼈만 남은 자입니다. 이런 제가 고통을 느낄 거라 여기십니까?”
“그건 보면 알겠지.”
사악한 존재들은 신성력을 품은 성물이나 무기에 매우 취약하며 심지어 고통마저 느낀다.
자연의 정기가 신성력과 비슷한 효능이 있다면 파마의 힘 또한 리치의 정신을 헤집을 터.
마나소드로 리치의 손가락뼈를 슬쩍 절단해보았다.
뿌각!
[패시브 스킬] [파마의 힘 적용]시스템창이 떴고.
우르카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끄읍!”
“응? 방금 고통을 못 느낀다 하지 않았나?”
“무, 물론이지요! 저는 불사의 존재. 그러니까···끄읍!!”
빠각! 빠각! 빠각!
리치의 뼈를 이곳저곳 조각냈다.
신통하게도 리치의 몸이 부서질 때마다 그를 둘러싼 마기가 실처럼 연결되어 부서진 부위를 다시 복구했다.
“망가지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실험체라니. 오히려 좋아.”
빠각! 빠각! 빠각!!
“심지어 고통도 못 느낀다니 마음껏 잘라도 되겠지.”
팔뼈, 다리뼈, 갈비뼈, 목뼈, 두개골.
부수고, 자르고, 절단하고, 뭉개고, 분쇄하고.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장난치기를 한 시간.
파마의 힘이 계속해서 작용했고.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우르카가 고함을 지른다.
“끄아아아악!!! 그만!”
“뭐야? 안 아프다며?”
“어째서 이런 일이···너는 성기사인가?”
“땡! 틀렸습니다. 한 번 맞혀봐. 정답을 말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크허억!!”
과연 우르카는 내가 드루이드임을 맞힐 수 있을까.
오늘 전투에서는 드루이드 스킬을 많이 쓰지도 않았고 거진 천마검으로만 해결했는데.
[끈질긴 생명력 발동] [체력 회복 대폭 증가]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세 시간이 되었다.
패시브 스킬로 인해 체력이 회복된 나는 처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속도와 강도로 우르카를 고문했다.
마치 기계와 같은 작업 속도에 당하는 우르카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일행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혹여라도 주군을 배신하게 된다면 오늘을 기억해야겠어.”
“도련님, 원래도 말 잘 들었지만 앞으로 더 잘 듣겠습니다.”
“부단장, 최근에 내가 섭섭하게 대한 적 없지? 있으면 말해줘. 사과할게.”
결국 네 시간이 흘렀다.
언덕 너머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땀을 조금 흘렸을 뿐 멀쩡했다.
그건 우르카도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잘랐는데도 여전히 사지가 온전했다.
어디까지나 겉모습은.
내면은 이미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였다.
“끄억···끄억···악마···너는 악마야···”
“재밌는 농담이군.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에게 악마 소리를 듣다니.”
“이제···그만하고 싶다···”
“그럴 일은 없다. 나는 네놈의 이지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고통을 줄 것이니. 그것이 불사를 믿고 오만했던 너의 최후이니라.”
검을 다시 들자 우르카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읊조렸다.
“끄으윽···제기랄···이럴 거면 차라리···”
파삭!!
뭔가가 깨지는 소리.
그와 함께 우르카의 눈에서 피어오르돈 안염이 자취를 감췄고.
동시에 풀썩 쓰러진 시체가 가루가 되어 바람에 쓸려나갔다.
“스스로 삶을 포기했군.”
우르카의 말이 맞다.
리치는 원칙상으로는 라이프 베슬이 부서지지 않는 한 불사신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육(肉)이 있다면 영(靈)이 있고 외면이 있다면 내면이 있는 법이다.
결국 육체는 온전했으나 정신이 무너진 우르카는 자기의 의지로 라이프 베슬을 깨고 무로 돌아갔다.
큰 싸움이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레베카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 많으셨어요.”
“휘유!”
“아이고, 다리야.”
그녀의 말을 들으니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모두가 털썩 주저앉거나 기둥에 등을 기대고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나는 팔짱을 낀 채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문을 하면서 그에게 알아낸 사실이 꽤 많았다.
먼저 우르카는 오만의 수제자였단다.
오만의 수제자답게 그는 굉장히 오만했고 안일했다.
그래서 처리하기 용이했다.
오히려 충격인 건 오만의 정체였다.
“정말일까요? 황혼교의 대간부 오만이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권력자 제임스 공작이란 사실이요.”
레베카도 그게 신경 쓰였는지 왕좌에 앉아 내게 묻는다.
“우르카가 이런 상황에서 굳이 거짓을 말하진 않았겠지. 제임스 공작이 오만인 건 사실일 거다.”
엘든 왕국에도 공작이 있지만 왕국의 공작과 제국의 공작은 무게감 자체가 천지차이였다.
칼론 제국은 방대한 영토와 부강한 군사력, 그리고 최소 수십 년은 앞선 사회, 문화,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나라의 최고위 귀족인 공작은 일국의 국왕조차 비비지 못할 엄청난 세력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베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도대체 황혼이 어디까지 침투해있는지 짐작조차 안 가는군요. 머리가 아픕니다.”
“레베카, 너는 엘든 왕국을 어떻게 다스릴지만 전념해. 황혼 건은 내가 맡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녀는 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아르니아 대륙의 운명에 관여한다고 하니 걱정 가득한 기색이었다.
“당신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에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제임스 공작의 실체를 알았으니 우리는 그저 조심하면 되잖아요.”
레베카 말대로 후작성과 왕궁을 오가며 365일 바캉스만 즐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멈췄다간 그것이 곧 죽음이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황혼교는 제국을 동원해서 왕국에 마수를 뻗칠 테니 말이다.
“레베카, 처음 내가 부마가 될 때 말했었지. 모든 국정은 너에게 맡기고 나는 뒤로 물러서겠다고.”
“혹시 헤논은 황혼교가 활개치는 상황을 미리 예견했던 건가요?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시는 거죠?”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냥 방구석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게 불쌍하기도 했고 나도 후작령 다스리느라 바쁠까봐 포석 깔아둔 건데.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렇다고 치자.
“크흠흠, 아무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지? 앞으로 왕국을 잘 부탁한다.”
“알겠어요. 헤논은 큰 뜻을 품은 사람이니까 국왕으로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도울게요.”
두 주먹을 꼭 쥐고 다짐하는 레베카.
어쨌든 간에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됐다.
“이제 남은 건 왕실에 반기를 든 잔당의 뒤처리군.”
가장 메인이었던 힐튼 백작이 고인이 되었고 찰리 또한 레베카의 권속이 되었으니 나머지야 쭉정이들뿐.
후딱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엘든 왕국이 발칵 뒤집혔다.
힐튼 가문이 무장집단을 이끌고 왕궁에 침입해서 국왕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이 방방곡곡 퍼졌다.
처음에 일부 친제국파 귀족들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친제국파를 견제하기 위한 왕가의 모함이 아니냐며 부정했다.
그러나 증거가 너무 확실했다.
일단 야심한 시각에 힐튼 백작이 왕궁에 있을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혈족인 찰리 힐튼이 국왕을 암살하려 했음을 자백했기에 골수까지 힐튼을 따랐던 친제국파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힐튼 가문이 그동안 저질렀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하나가 벗겨지면 또 하나가 나왔고 이제 끝이다 싶으면 더 쇼킹한 소식이 터져 나왔다.
“자네, 그 말 들었는가?”
“힐튼 가문이 엘프와 손을 잡고 로이드 가문을 삼키려 들었다지?”
“로이드 가문 쪽에서 엘프족 대장로와 힐튼 백작이 나눈 친필 서한을 공개했다네.”
“조작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물론 글씨체는 조작할 수 있지만 가문의 인장을 조작할 순 없지. 이미 전문가들이 판별을 마쳤네. 친제국파에서 섭외한 전문가마저 친필 서한이 맞다고 했어.”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물밑에서 이루어진 각종 뇌물수수에 힐튼 가문은 인싸마냥 꼭 껴있었다.
오히려 그들 가문이 포함되지 않은 사건을 찾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
여기에 더해 힐튼 가문이 리앙의 노예거래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수면 위에 떠올랐다.
특히나 힐튼 백작의 아내인 힐튼 부인은 주기적으로 리앙에 들렀는데, 그때마다 노예를 구입한 뒤 차마 말로 표현 못할 학대를 자행했단다.
이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서 귀족 사교계와 평민에게까지 공분을 샀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설계한 대로였다.
그간 가지고 있었던 힐튼 가문의 부정한 증거는 부지기수였으나 공개할 시점이 마땅찮았다.
선뜻 꺼냈다가 모함이라면서 친제국파 귀족들이 들고일어나면 애써 모은 증거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
그래서 꼭꼭 쟁여두었다가 모든 게 결정되었을 때 결정타로 날려버린 것이다.
따라서 힐튼 가문은 회생 불가일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친제국파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며 왕가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자연스럽게 즉위 이후 위태했던 레베카 왕녀의 권력은 강화되었고 여성이 정치한다는 뒷말은 쏙 들어갔다.
현재 이곳은 폰타노 중앙광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 며칠간 단두대는 친제국파 귀족의 피를 잔뜩 머금었다.
그동안 힐튼 가문에게 동조했던 가문 중에서 심하게 부정부패를 저질렀거나 노예 거래에 연관된 귀족들을 연일 처형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몰랐던 수도 거주민에게는 오랜만의 구경거리였다.
그들은 집에서 썩은 계란과 토마토를 가지고 나온 뒤 사형수를 향해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렇게 이어졌던 처형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만큼 오늘 처형당할 귀족은 상당한 거물이었고 심지어 여성이었다.
사형수는 바로 힐튼 부인.
개미떼처럼 모인 사람들이 웅성대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악독한 년이 그런 악독한 년이 없어.”
“노예거래도 문제인데 구매한 노예로 했다는 짓이 세상에···”
“무슨 짓을 했는데? 나도 좀 들려주게.”
“남사스럽고 숭해서 이야기하기도 뭣합니다요.”
“에이 참, 왜 그러실까? 목마르지 않나? 이거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러 가지.”
“크흠흠, 그럼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시오. 저 귀족년이 글쎄···”
호사가 한 명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힐튼 부인의 만행을 목소리 높여 떠들었고.
무관심한 척하면서 누구보다 관심 있게 귀를 기울이던 군중들이 매우 놀라며 수군댔다.
술을 사주겠다며 이야기를 청한 노인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감정을 토로했다.
“이럴 수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귀족 여자라고 다들 정숙한 게 아니었구먼.”
“모든 레이디가 그런 건 아니지요. 하지만 힐튼 부인 보십쇼. 더한 년은 귀족들이 더합니다. 상상을 초월하지요.”
“그 정도면 힐튼 가문은 멸문하겠구먼. 이건 갱생의 여지를 줘선 안 돼.”
노인의 말에 호사가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조금은 과한 행동이었지만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군중들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집중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국왕 전하의 은혜가 정말이지 하해와 같으십니다.”
“설마 용서해주셨다는 건가?”
“그동안 힐튼 가문이 왕국에 바쳐온 헌신을 참작하여 힐튼 백작 부부의 죽음으로 마무리 짓겠다는군요.”
“허허! 말도 안 되는 일! 전하께서는 목숨의 위협을 받으셨는데도 관용을 베푸시다니. 즉위하신 지는 얼마 안 되셨지만 벌써 성군의 자질이 보이는구먼.”
“맞습니다. 외모도 아름다우신 분이 어쩜 그리 마음씨까지 고우신지. 앞으로 나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모두가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힐튼 가문을 욕했고 반대로 어진 성품을 지닌 레베카를 찬양했다.
그렇게 군중들이 선동되었을 때, 맨 처음 대화의 물꼬를 텄던 호사가와 노인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뒷골목으로 사라졌던 둘은 어느새 내 앞에 와서 부복했다.
“명령대로 수행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분장이 조금 덥긴 하더군요.”
흰수염을 뗀 노인의 정체는 라칸이었고 옆에 있던 호사가의 정체는 에이든이었다.
둘은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수도 전역을 돌며 여론을 형성하고 군중을 움직이는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이 작업은 나름 중요했다.
밑바닥을 착실히 다져놔야 수도에서 형성된 여론이 지방까지 퍼지며 왕실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아지고 반대로 힐튼 가문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테니 말이다.
“저기다! 악마년이 나온다!”
“저 빌어먹을 년! 죽어라!”
“넌 사람도 아니야!”
마침 사형식이 진행되었다.
단두대로 올라가는 힐튼 부인은 처음으로 허름한 원피스를 입은 모습.
그런 그녀에게 경멸의 시선과 함께 온갖 오물과 썩은 채소가 던져졌다.
그러다보니 머리카락이 봉두난발이 되고 옷이 걸레 조각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시온, 준비해라.”
“네.”
오늘 사형식은 특별히 나와 시온이 집행하기로 했다.
검은 후드로 온몸을 감싼 시온을 대동하고 무대로 올라왔다.
사생아 출신으로 여왕의 남자까지 된 내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한 스토리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 악마살해자다!!”
“잘생겼어. 여왕님이 반할만하군.”
“단순히 외모만 수려한 게 아니라 능력까지 출중하신 분이다.”
“난 남자지만 저분과 결혼하고 싶어.”
나를 향한 뜨거운 성원에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단두대로 직행했다.
힐튼 부인은 이미 사지가 결박된 채 단두대의 파인 폼에 머리를 갖다댄 상태였다.
이제 밧줄만 자르면 칼날이 내려와 목을 잘라버리겠지.
그 와중에도 힐튼 부인은 내 얼굴을 보더니 온몸을 뒤틀며 발작했다.
“빌어먹을 놈! 네놈만 없었다면! 네놈만 없었다면!”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나타나서 너희를 단죄했을 거다. 결국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힐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힐튼 가문이 엘프와 손을 잡고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몰티령에서 죽은 희생자만 몇 명일까.
리앙에서 노예로 잡혀 와서 인간 대접도 못 받고 죽거나 개고생한 희생자만 몇 명일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힐튼 가문의 밑바닥은 아무리 파도파도 최저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 한 가지만 묻지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혹시 저 기억 안 납니까?”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그러자 힐튼 부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네놈이 누구냐니. 헤논 로이드. 비천한 사생아에 운빨 좋은 사기꾼 아니냐.”
“제 목소리가 낯익지 않습니까?”
“이상한 소리 말고 밧줄부터 풀어라. 대화로 해결하자.”
이쯤 되면 정말 모른다고 봐야 한다.
뒤에 있던 시온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후드에 달린 모자를 훌러덩 벗었다.
풍성하고 윤기 넘치는 보랏빛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뭐냐? 갑자기 웬 모르는 여자가···응!?”
말꼬리를 흐리던 힐튼 부인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건 몰라도 시온의 보랏빛 머리카락은 기억하겠지.
리앙의 노예시장에서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박박 갈았으니까.
“너희였구나! 빌어먹을 연놈들!”
“이제야 기억이 나시나 봅니다.”
힐튼 부인이 입에 게거품을 문다.
그런 부인에게 시온이 보란 듯이 목에 걸린 인어의 눈물을 흔들어 보였다.
“으아아아악!!!”
“저승에서 당신에게 희생당한 분들께 조금이라도 사죄하십시오.”
“죽여버릴 거다! 죽여버릴 거라고!”
“때가 되었군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가시길 바랍니다.”
쿠웅! 싹둑!
천마검을 뽑아 밧줄을 단칼에 잘랐다.
단두대의 칼날이 서늘한 예기를 발하며 추락했고.
힐튼 부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와아아아아!!!!!”
하늘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중앙광장을 울렸다.
힐튼 부인을 마지막으로 친제국파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로써 엘든 왕국은 온전히 나를 지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