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7)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27화(127/200)
16장 위장 : 떼버린 망나니
길드 건물로 들어오고 나서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기존에 내가 알던 성녀는 신성국에 있지 않았던가. 혹시 성녀는 두 명이 될 수도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이곳은 게임 속 세상이고 메인 스트림을 뒤흔들 수도 있는 성녀 같은 특수 클래스를 여러 명에게 배정했을 리 없었다.
따라서 결론은 하나로 귀결됐다.
‘둘 중 하나는 가짜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시스템창이 있고 이 녀석은 진실만을 말한다.
한마디로 방금 목격한 고양이 소녀가 진짜 성녀고 신성국에서 성녀라고 온갖 추앙을 받는 여자는 가짜라는 기막힌 결론이 나와버렸다.
“칸,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후딱 의뢰 끝내고 골드로 승급해야지.”
캠벨의 재촉이 귀에 안 들어왔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구석에 앉아있던 성녀를 건장한 사내들이 둘러싼 것이다.
“이봐, 요새 길드에 죽치고 앉아있던데, 혹시 의뢰는 하고 있는 건가?”
성녀는 겁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요리조리 돌렸다.
“아···네! 어제 실버로 승급했어요!”
“그래. 1점짜리 잡일만 꾸준히 하더니 기어이 백점을 찍고 은패를 받더군. 나라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그렇게는 점수 못 올리겠던데. 으핫하하하!!”
“크하하하하!!!”
잠시 동안 실내는 건들거리는 양아치 모험가들이 비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웃음소리가 멎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흉터남이 징그러운 얼굴을 성녀에게 가까이 갖다 댄다.
“이봐,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점수 올리겠어? 실버야 백점 올리면 승급이지만 골드는 무려 천점을 모아야 한다고? 이번에도 1점짜리 천 개 할 거야?”
성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흉터남이 성녀가 앉은 식탁을 손바닥을 쾅 치며 고함을 내지른다.
“사내새끼가 그렇게 배짱이 없어서야 어따 써먹어? 앙? 애초에 1점짜리 의뢰는 천 개가 나오지도 않아.”
“히끅!”
두려웠는지 눈물을 글썽이는 성녀.
겁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은근한 목소리로 꾀어낸다.
“자자, 우리가 뭐 윽박지르러 온 것도 아니고. 좋은 제안하러 왔어. 우리는 전원 골드 등급인데 파티에 결원이 생겼다. 그러니 실버인 너를 특별히 끼워주마.”
얼핏 듣기엔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를 들은 브론 아재가 혀를 쯧쯧 찼다.
“또 시작됐군.”
“누군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아쉘 패거리라네. 갈라나흐에서 유명한 악질팸이지.”
브론 아재 말로는 아쉘 패거리는 현재 플레티넘 승급을 앞둔 골드 최상위 모험가란다. 갈라나흐에서도 유명한 놈들이라고.
특히나 이들은 자신보다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파티원을 억지로 끼워서 현장에서 짐꾼이나 노예로 부려먹는 게 일상이란다.
그래야만 의뢰 도중에 습득한 몬스터 부산물을 자기네들이 독점할 수 있고 위기상황에서는 미끼로 던져서 살아나온다 설명했다.
“쓰레기군요.”
“제대로 악질이지.”
“어째서 아무도 제지를 안 하죠?”
“자기네 일이 아니니까. 저래 봬도 열 명이 모두 골드 등급이고 아쉘은 플레티넘 실력이야. 갈라나흐 길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지.”
워낙 의뢰 수행률이 높고 이 바닥을 꽉 잡아서 길드 차원에서도 손 쓸 수 없다는 말인가.
새내기 길드원 몇 명 죽더라도 아쉘 패거리가 수행하는 의뢰로 인해서 얻는 길드 수익이 더 많으니까.
이럴 때 보면 조직이란 참으로 냉혹하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되어버리니까.
이번에는 그 무고한 희생자가 다친 고양이를 치료하고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착한 소녀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저 소녀만큼은 특별하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녀는 벨라누스교의 상징. 그리고 이 사실은 나만 알고 있다.
“캠벨, 움직인다.”
“정말로?”
캠벨이 의외란 표정을 짓는다.
자기 일이 아니면 꿈쩍도 안 하는 내가 움직이니 놀랐겠지.
“웬일이야? 부단···칸답지 않아.”
“너는 진작에 구해주고 싶었잖아.”
“맞아.”
“그래서 구해주는 거다.”
캠벨의 눈에 감동이 들어섰다.
당연히 저 여자가 성녀라서 구해주지만 기왕 도와주는데 캠벨에게 생색 좀 내봤다.
“잠깐. 스톱. 웨잇 어 모먼트.”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와 캠벨을 브론 아재가 막아섰다.
“설마 자네들 저 소년을 구해주려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아쉘에게 맞서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갈라나흐에 영원히 발붙이지 못할 걸세. 목숨이나 건지면 다행이야.”
아저씨가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가끔 오지랖을 부릴 때가 있다.
단전에서 이원마나를 뿜어냈다.
‘으윽! 무슨 놈의 기운이···’
브론은 숨이 막혔다.
트롤을 단번에 베어 넘길 때부터 칸이 범상찮은 실력자임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건 차원이 달랐다.
눈이 마주치자 이건 무슨 야수의 눈빛이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의 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선배는 파티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막으셨죠.”
“그, 그랬지.”
“지금 저희의 마지막 파티원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차이점은 몬스터에게 둘러싸였느냐, 양아치에게 둘러쌓였느냐, 그뿐이죠.”
마지막 파티원이라고?
저 쥐방울만한 소년이?
브론의 의문을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캠벨과 나는 아쉘의 앞을 막고 있었기에.
“엉? 너희는···요새 잘 나간다는 녀석들 아니여? 무슨 일이냐?”
아쉘은 역시 우리를 알아보았다.
“별건 아니고. 이 아이는 우리가 먼저 찍었거든. 이만 손을 떼줬으면 좋겠는데.”
숨 막힐듯한 정적이 길드 건물을 감쌌다.
모두가 갈라나흐 골목대장에게 정면으로 대든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브론은 내가 화끈하게 저질러버리자 이마에 손을 짚고 휘청였다.
“뭐? 푸합! 푸하하하핫!”
“크하하하하!!!”
아쉘을 비롯한 졸개 놈들이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젖힌다.
그러다가 웃음을 뚝 끄친 아쉘이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이봐, 멍청이 브론!”
“으···응?”
“내가 누군지 이 샛별들에게 안 알려줬나 봐?”
“그게···알려줬는데.”
“알고도 나한테 이랬다?”
잠시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던 아쉘이 브론에게 묻는다.
“브론, 너도 이 아이를 파티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내가 볼 때는 칸이 즉석에서 거짓을 꾸며낸 것 같아서 말이지. 합의된 게 맞아?”
겉으로는 단순한 질문이지만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브론이 합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내 주장은 신뢰성을 잃어버린다.
한마디로 브론이 나를 배신한 셈이 된다.
지금 아쉘은 브론에게 묻고 있다.
누구한테 줄 서겠느냐고.
“그게···그게···”
“답답하네. 빨리 안 말해?”
“합의가···됐지. 그럼. 나도 그 아이를 파티원으로 찍어두고 있었는걸.”
오호라.
예상외로 브론이 내 편을 들었다.
사실 누구 편을 들던 상관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건 모조리 치워버릴 예정이었으니까.
브론 아재는 확실히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은 자답게 생존감각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군. 내가 한 발 늦었네.”
브론이 돌아선 걸 확인하자 아쉘도 어깨를 으쓱이고 물러났다. 뒤끝 넘치는 발언을 남기면서.
“제법 실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눈치는 영 꽝이구먼. 안타깝게 되었어.”
그리고는 길드 건물을 나간다.
상황이 종료되자 구경하고 있던 모두가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이후에는 나를 보며 수군댔다.
브론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망했어. 우린 망했다고···”
“안 망했으니까 일어나십쇼. 선배.”
“어쩌자고 그런 사고를 쳤어!”
“사고 아닙니다.”
또 한 번 째려봐주자 브론이 얌전해진다.
다음은 의도치 않게 태풍의 눈이 되었던 성녀와 대화할 차례다.
그녀도 눈치가 백단인지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낯빛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어쩌자고 그러셨나요. 괜히 저 때문에 여러분까지 피해가 갔네요.”
손을 잘게 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피해라니. 너는 파리가 주변에 웽웽대는 걸 피해라고 보나? 그건 그저 귀찮다고 하는 거다.”
가면 갈수록 수위를 넘는 발언.
하늘을 뚫어버릴만한 자신감을 마주한 성녀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하, 그렇군요.”
“내 이름은 칸이다. 네 이름은?”
“저는 메리안입니다.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건 남자 이름이잖아. 여자 이름은 무엇이지?”
“히끅!!”
성녀는 놀라면 딸꾹질을 하는 버릇이 있나 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 얼굴로 묻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서로 천천히 알아가자고.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야.”
성녀를 파티원으로 영입하고 의뢰게시판으로 향했다.
게시판에 우글대던 모험가들은 나를 보고 홍해가 갈리듯이 좌우로 흩어졌다.
“흐음···”
원래 아무 의뢰나 받아서 1점을 채운 다음 골드로 승급할 예정이었는데, 성녀가 일행이 되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메리안의 점수는 실버등급 0포인트. 골드로 가려면 1천 포인트를 모아야 한다. 그녀를 파티원으로 끼고 골드 등급 퀘스트를 깬다고 가정하면···
-골드 등급 의뢰-
[트롤 사냥] 80점 [오우거 사냥] 100점 [오크 부족 섬멸] 150점 [아울베어 20마리] 75점하나 같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실버 등급 의뢰를 다시 하고 싶진 않다. 플래티넘 등급 의뢰는 등급이 안 맞아서 못하고.
‘한큐에 메리안을 골드로 만들만한 간편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게시판 맨 위에 붙어있는 시커먼 색깔의 의뢰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리할콘 등급 의뢰-
[마수의 숲지기 토벌] 1000000점※ 어느 등급이나 신청 가능
※ 단체 레이드 가능
※ 파티원 숫자 제한 없음
※ 의뢰 성공시 기여도에 따라 파격 승급 가능.
“이게 딱 맞군.”
못에 박힌 의뢰지를 탁 떼었다.
동시에 뒤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아재! 정신 차리소! 아재!”
저런.
브론이 쓰러져 있었다.
별일 아니겠지.
목숨줄 질긴 양반이니 잘 털고 일어나리라 믿는다.
* * *
갈라나흐 뒷골목.
바싹 마른 모험가 하나가 엎드린 채 부들부들 팔을 떨고 있다.
그의 목에는 브론즈 등급을 뜻하는 동패가 걸려 있었다.
앙상한 사내의 등에는 건장한 체구의 아쉘이 엉덩이를 대고 앉은 채 담배 연기를 뻑뻑 뱉어냈다.
“알아냈나?”
“그렇습니다. 칸하고 캠벨. 갈라나흐에 온 지는 한 달. 짧은 기간에 브론즈 의뢰를 생략하고 실버 의뢰를 휩쓸었습니다. 파트너인 브론이 골드로 승급하고 나서는 골드 의뢰도 휩쓸고 있고요.”
도대체 뭐하는 놈들일까.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심하게 거슬린다.
“과거 이력은?”
“푸른매 용병단에 있었답니다.”
“푸른매 용병단? 엘든에 있는 그 용병단 맞나?”
“맞습니다.”
푸른매 용병단이라는 말에 아쉘 패거리가 웅성댔다.
그만큼 주가가 한창 올라가는 용병단이었고 그들 중에도 푸른매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돌아온 녀석이 꽤 있었다.
“캬악! 퉷!”
동요하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쉘이 땅바닥에 크게 가래침을 뱉었다.
“그래봐야 과거에는 이름 모를 용병단이었잖아. 최근에야 반짝 떴지. 보나마나 실력에 거품이 꼈을 거다.”
부하 하나가 나섰다.
“아쉘, 브론에게 듣기로는 그 칸이란 녀석이 단칼에 트롤을 두 동강 냈다던데. 자신감이 있으니까 대든 게 아닐까?”
아쉘이 일어났다.
그리고 분위기 초 치는 부하에게 다가간 후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
철썩!
“커헉!”
“넌 그 말을 믿냐? 멍청이 브론의 말을? 그놈은 십오 년째 골드도 못 찍는 호구였잖아. 자기 파티원 자랑하려고 허풍을 쳐댔겠지.”
“그랬겠지?”
“유언비어 퍼트려서 위화감 조성하지 마라. 기분 잡치니까.”
화가 안 풀린 아쉘이 의자 역할을 해줬던 브론즈 모험가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퍽!
“끄헉!”
“이놈은 왜 이렇게 비실대?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드네.”
다시 담배를 피우는 아쉘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쓰레기처럼 살고 있구나. 동생아.”
아쉘은 음험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끼쳤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그가 골목길 입구를 막아선 롱코트 사내를 주시했다.
“이게 누구야? 형 아니야?”
“크크크크, 잘 지냈나.”
건장한 아쉘과는 달리 키만 크고 젓가락처럼 얇은 모험가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쉘의 부하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 길을 내줬다.
아쉘이 형이라고 부른 모험가의 목에는 자그마치 다이아몬드 패가 걸려있었으니 말이다.
“아론 형, 갈라나흐엔 어쩐 일이야?”
“제임스 공작님이 친히 내려주신 의뢰 수행 중에 생각나서 들렀다.”
“우와···”
귀족, 그것도 공작급이 직접 지명한 의뢰라. 모험가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다. 그만큼 아쉘의 형 아론은 급이 달랐다.
“듣자하니 귀찮게 하는 놈이 있다던데?”
“별 거 아니야.”
“크크크, 신경 쓰이면서 아닌 척하기는. 오랜만에 만난 김에 후딱 해결해주마.”
아쉘의 얼굴이 환해졌다.
칸의 전력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이아 등급인 아론이 도와준다면 상관 없었다.
녀석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때였다.
길드 건물에 심어뒀던 부하 하나가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뛰어왔다.
“아쉘! 아쉘!”
“정신 사납게 뭐하는 짓이냐.”
“미친 소식 하나 물어왔어. 칸이 글쎄 마수의 숲지기를 토벌한다지 뭐야?”
“뭐?”
마수의 숲지기 토벌이라니.
그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의뢰였다.
칸은 미친놈이 확실해 보였다.
아니면 의뢰를 수행하는 척만 하면서 유명세를 떨치려는 관종이던지.
“오히려 잘 됐다.”
아쉘이 킬킬댔다.
“마수의 숲에서 사람 몇 명 죽어나가는 건 일도 아니지. 마수의 숲이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아론 형도 도와줄 거지?”
촤아아악!!
아론은 어느새 뒤에 엎드려 있던 브론즈 등급 모험가를 칼로 찔러 죽였다.
얼굴에 튄 피를 할짝거린 그가 해맑게 웃는다.
“당연하지. 도와주마.”
“의자도 물어내. 나름 애장품이었어.”
“크흐흐, 아무리 그래도 똥내 나는 의자는 아니지 않느냐. 적어도 은의자로 준비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