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34화(134/200)
17장 가짜 : 권유한 망나니
홀로니움 대성당은 벨라누스 신성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성지 그 자체.
이런 곳에 황금가지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 넓은 곳을 탐색하는 건 고사하고 입장부터가 난항이군.’
물론 성지를 순례하러 온 외국인 교도로 위장하면 들어갈 수야 있을 것이다.
다만 한계가 분명하겠지.
엄중한 감시 속에 제한구역만 돌아다녀야 할 텐데, 수색이 가능할 리가 없다.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황금가지는 성당 내부에서도 외진 장소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려 교황과 성녀가 기거하는 대성당을 자유롭게 거닐 방법이 없을까.
‘조금 더 고민해보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홀로니움 대성당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일단의 병사가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 대장으로 보인 성기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수색하라!”
뎅! 데엥! 뎅!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고 있던 참이라 일반교인들은 엎드린 채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그래도 눈빛에는 다들 호기심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길래 기사와 병사들이 저리 다급하게 움직일까.
궁금한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뒤를 밟아볼까.’
슬쩍 몸을 일으켜서 골목길 사이로 몸을 숨겼다.
[윈드 컨트롤] [순보]공기를 박차고 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신성국 중심가는 번화가라서 대다수 건물이 4~5층 이상이었고, 높은 지붕에 엎드린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철컥철컥
추격은 손쉬웠다.
성기사가 입은 백색의 플레이트 갑옷이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를 냈다.
지붕을 타고 이들을 쫓아갔다.
동시에 라이프 컨트롤을 발동했다.
[라이프 컨트롤] [시야공유] [테이밍]그동안 라이프 컨트롤도 숙련도가 많이 올라서 쥐 한 마리 조종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생쥐가 병사의 종아리에 찰싹 붙었다.
이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마치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도망간 여자를 잡아라!”
“귀찮게시리. 어떻게 도망간 거랍니까?”
“시체 속에 숨어있다가 탈출했다더군.”
“지독한 년.”
시체? 탈출? 도주?
여러 단어가 들렸다.
“그래봐야 힘없는 아녀자다. 숨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 빨리 수색하고 끝내자.”
성기사의 말대로 이들은 곧 도망친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신성국에서도 사람이 거의 없는 쓰레기장 쪽에 있었다.
온몸에 긁힌 상처가 빼곡했고 피를 제법 많이 흘려서 몸을 비틀댔다.
그 와중에도 눈빛은 형형했고 독기가 가득했다.
“찾았다. 이 빌어먹을 년. 네년 하나 때문에 도대체 몇 명이 고생하는 거냐?”
여자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독설을 퍼붓는다.
“벨라누스교는 끝났다. 악마 같은 너희가 신의 병사를 자청하고 마왕 같은 여자가 성녀를 행세하니 말이다.”
“저런 망할 년이! 네년은 편히 죽을 권리조차 없다. 영원히 참회실에서 고통받게 되리라.”
성기사와 병사들이 포위망을 좁혔다.
‘다가오지 마!!’ 여자가 각종 쓰레기를 던지며 고성을 질러댔으나 소용없었다.
“너희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날카로운 흉기를 든 여자가 뾰족한 부분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슬슬 나설 타이밍이다.
저 여자를 죽게 내버려두기엔 아는 정보가 꽤 많아 보였으니.
“잠깐 스톱! 전원 정지!”
모습을 보였다.
성기사와 병사들은 아무도 없던 쓰레기장에 갑자기 웬 사내가 나타나자 당황한 기색이다.
“넌 누구냐?”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그러면 계속 지나가라.”
“단어 몇 개를 빼먹었군.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그네다.”
상황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하자 적의 칼날이 내 쪽을 향했다.
“정신 나간 새끼.”
“오늘 만나는 연놈마다 죄다 미쳤군.”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
“객기를 부렸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성기사만 여자가 도망치는지 감시하고 병사들은 나를 둘러쌌다.
“하암~”
지루해서 잠시 하품이 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꽤 많이 동동거렸지.
육체적 피로는 몰라도 정신적 피로가 쌓였나 보다.
“감히 하품을 해? 죽어라!”
맨 먼저 달려오는 놈에게 빛살 같은 검격이 그어졌다.
저들의 수준은 최하 혹은 최저.
내가 발검하고 납검하는 동작조차 보지 못했다.
서걱―!
허공에 피가 튀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간 병사.
갑자기 손을 잃은 상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손목에서 꿀렁거리며 흘러내리는 생명의 기운만을 멍하니 쳐다본다.
“끄아아아악!! 내 손! 내 손이!”
“이제 시작이야.”
서걱! 서걱! 서걱!
천천히 걸어갔다.
마치 산책하듯이.
여유가 넘쳐흘렀다.
반면에 신성국 병사는 그렇지 못했다.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주변에선 비명과 고함이 울려 퍼졌다.
피가 튀길 때마다 적은 공포에 잠식되어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잠깐이었다.
모두가 죽어나가자 유일하게 남은 병사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한다.
“사, 살려주십쇼.”
푹!!
말조차 아깝다.
심장에 천마검을 넣어 침묵시켰다.
이제 남은 건 대장 격인 성기사 한 명.
“너는 대체 누구냐?”
성기사는 혼비백산했다.
해당 임무를 맡으면서 죽으리란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여자 한 명 잡는 일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여자를 죽이고 몰래 숨겨둔 술이나 마시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웬 행인이 와서 훼방을 놓는다.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었다.
세상에 미친놈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미친놈에게는 수식어가 붙었다.
‘엄청나게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성기사라서 더욱 잘 체감됐다.
놈과 자신과의 격차가.
아득하게 벌어진 무력의 벽이었다.
“당신 같은 분이 어째서 저희를 박해하십니까?”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성기사를 보자 웃음도 안 나온다.
“너희도 힘없는 여인을 박해했잖나. 본인이 박해받을 줄은 몰랐나 보지?”
이래서 사람은 역지사지를 체험해야 한다니까.
성기사는 최후의 발악으로 검기를 뿜어냈다.
흰색 마나소드가 제법 보기 좋았으나 딱 거기까지.
에메랄드 빛이 퍼지는 순간 성기사의 검은 마나소드 채로 두 동강 났다.
“자비를···”
“너희는 저 여인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었나?”
“이 빌어먹을 놈아! 벨라누스님이 결코 용서치···커헉!”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성기사.
말을 끝맽기 전에 마무리 지었다.
이제 여인을 구출할 차례.
그녀에게 가봤더니 쓰레기장에 누운 채 기절해 있었다.
맥박을 재봤더니 정상이었다.
아마도 긴장이 풀려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일단 메리안의 집으로 데려가자.’
기절한 여자를 어깨에 둘러멨다.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난데없는 불청객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자를 내려놓거라.”
여인의 목소리였다.
가면과 후드를 써서 얼굴과 머리카락이 가려졌다.
그런데 목소리도 그렇고 체형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누구냐?”
“알 필요 없다. 다만 그 여자는 내가 데려간다.”
“그럴 수 없다면?”
“굳이 똥을 찍어 먹어봐야 아는 타입인가?”
여자가 단검을 두 개 꺼내 역수로 쥔다.
암살자 타입.
신속하고 치명적인 일격을 구사할 듯하다.
일단 기절한 여자가 다칠 수 있으니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괜히 덤비다 다치지 말고 가라.”
“···신성국과 연관은 없는 듯하니 죽이진 않으마.”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는 말투.
광오한 자신감이었다.
여자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챙강!!
급하게 휘두른 천마검과 여인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정체불명인의 공세가 점차 매서워졌다.
사각에서 집요하게 노렸다.
하나하나가 놓치는 순간 죽음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제법이군. 그러면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여인이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몸에서 뿜어져 나온 철사가 단검 두 개를 매달고 두둥실 떠오른다.
마치 거미의 다리처럼.
아까는 물도마뱀 발걸음을 쓰던데.
이쯤 되자 여인이 누군지 확신했다.
“야. 너 설마···”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잠시 기절만 시켜주마!”
검 두 개가 내 양옆을 노리며 쇄도했고, 정면으로는 상대가 짓쳐들어왔다.
피할 각도를 좁힌 후 공격을 적중시킬 의도가 훤히 보인다.
요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코를 납작하게 눌러줘야지.
[스톤 컨트롤] [스톤 실드]콰콰콰콱!!
땅에서 솟아오른 돌벽이 그녀의 공격을 차단함과 동시에 시야를 가렸고,
“어라?”
[윈드컨트롤] [순보] [헤이스트]바람 스킬을 활용해서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그녀의 뒤를 완벽하게 잡은 후 뒤통수를 강하게 후렸다.
따악!!!
“아야!”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녀.
그 와중에도 몸을 돌려 비수를 던진다.
가볍게 고개를 젖혀 피해 주고는 목에 천마검을 갖다 댔다.
“꽤 강해졌네. 아직 멀었지만.”
손으로 후드를 잡고 넘겼다.
그러자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보라색 머리카락.
처음 대쉬할 때 썼던 이동기 물도마뱀 발걸음과 암살자 특유의 공격.
마지막으로 나태가 썼던 거미다리 공격까지.
날 기습했던 여자는 바로 시온이었다.
“오랜만이다?”
* * *
이후 시온은 나를 못 알아본 죄로 혼났다.
사실 몰라볼 만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혹시라도 신분이 특정될까봐 천마검의 검자루 부분을 검은색 천으로 꽁꽁 싸맸기 때문.
게다가 얼굴은 톰이 준 위장크림으로 가렸기 때문에 모를 수 있었다.
그래도 혼내고 싶었다.
내 허락도 없이 편지 하나 달랑 남기고 떠났으니까.
확실히 강해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혼낼 건 혼내야 한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알겠습니다.”
“나태에게는 많이 배웠나?”
“갈 길이 멉니다.”
시온이 겸손하게 대답하긴 했으나 꽤 강해졌다는 걸 방금 대결에서 체감했다.
물도마뱀 발걸음. 보호색. 거미다리.
쓰는 스킬이 전부 정교해졌다.
이동속도도 빨라지고 힘도 좋아지고 전체적인 스텟이 상승한 느낌이다.
이젠 절대 익스퍼트 초입은 아니고 최소 중급에서 완숙에 이른 느낌.
“그래서 신성국엔 무슨 일로 왔어?”
“도련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자리를 잡아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신성국 상황이 심상치 않더군요.”
역시 시온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보다. 나라 전체가 미쳐 돌아가는 이 꿉꿉한 분위기.
“그리고 도련님께 전해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성녀 레플리의 정체입니다. 그녀는 사실 황혼교의 대간부 색욕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다.
벨라누스교의 대표인 성녀가 황혼의 대간부였다고?
이쯤 되면 저 사이비 세력의 뿌리가 어디까지 내렸는지 가늠이 안 된다.
“부마간택식에서 나를 모함하고 성기사 요한을 보내 처리하려 했군. 이제야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저도 놀랐습니다.”
시온에게도 이쪽의 소식을 알려줬다.
모험가 칸으로 위장했고 현재 오리할콘 모험가라는 점.
무엇보다 진짜 성녀 메리안을 확보했다는 말에 시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시온과의 재회를 마치고.
기절한 여인을 데리고 달동네로 돌아갔다.
여기서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메리안이 기절한 여인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로로 언니!!”
알고보니 로로는 예전에 잡혀간 동네 언니란다.
메리안과도 친한 사이.
신성력을 발한 후에 성기사들이 들이닥쳐 잡아갔다고 말했다.
정신을 차린 로로는 메리안과 재회하고는 펑펑 울었다.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준 다음 그녀에게 물었다.
“성당에 끌려간 뒤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때의 일을 묻자 로로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손발을 덜덜 떨고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흐윽···흐흐흑···”
“언니 괜찮아?”
“으응···”
흐느끼던 로로가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다.
그녀가 성당 내부에서 겪은 일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차마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였다.
사실상 가축보다 못한 대우.
그중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신성력 착취였다.
“신성력을 착취했다?”
“네. 대주교가 이상한 마도구를 가져왔어요. 우리는 주기적으로 그곳에 신성력을 담아야 했죠.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겠어요.”
“로로 언니, 제 친언니는 어떻게 됐나요?”
그러고 보니 메리안의 친언니도 성당에 잡혀갔다고 했었지.
로로가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하루에도 몇 명씩 신세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단다. 네 친언니도 그중 하나였어.”
저런.
메리안의 친언니가 죽었구나.
소식을 들은 메리의 어머니는 기절했고.
메리안도 입술을 꽉 깨물더니 집을 뛰쳐나갔다.
“내가 나가보마.”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따라갔다.
메리안은 달동네의 가장 높은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수수했다.
겉치장 하나 없는 본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친근하고 다가가기 쉬웠다.
벨라누스가 어째서 메리안을 총애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셨군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난 그저 평범한 소녀인데, 어째서 목숨을 걸어야 할까. 설령 내가 결심한다 해도 바뀌기나 할까.”
그녀의 독백.
“그런데 칸님 말이 맞았어요. 가만히 있어도 슬픔과 위험은 찾아왔으니까요. 어쩌면 언니의 죽음은 제 탓일지도 몰라요.”
“지나친 자책이다. 네 탓이 아니야.”
“아뇨. 맞아요. 벨라누스님도 말했어요. 제가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비겁하게 도망치기만 했죠. 결국 벌을 받은 거예요.”
응어리진 말을 차분히 풀어낸다.
묵묵히 들어줬다.
“다음엔 누구일까요? 어머니? 로로 언니? 아니면 칸님? 누군가는 또 저 때문에 희생되겠죠.”
“그럴 일은 없다. 게다가 나는 누군가의 운명에 휘둘릴 정도로 약하지 않아.”
“헤헤, 맞네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칸님 걱정이죠.”
메리안이 쓰게 웃더니 달동네를 훑어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결심했어요. 성녀 노릇을 해보려고요.”
“진심이냐?”
“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메리안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겸사겸사 내 황금가지도 찾고 말이다.
머리통을 굴렸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메리안, 이렇게 해보자꾸나.”